바닷모래의 가치와 중요성
바닷모래의 가치와 중요성
  • 하호경 인하대 해양과학과 교수
  • 승인 2023.09.12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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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호경인하대 해양과학과 교수
하호경
인하대 해양과학과 교수

모래는 우리의 일상과 함께 존재한다

모래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우리 생활 곳곳에 존재한다. 아이들의 놀이터 바닥은 물론 우리가 일하는 직장, 돌아가 쉬는 가정의 건물에는 대부분 모래가 포함되어 있다. 모래가 일상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모래의 기원이나 가치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하였다.

모래는 건축용어로는 골재(骨材)라고 불린다. ‘건축의 재료(材) 가운데 중요한 뼈대(骨)’라는 뜻이다. 현대건축은 모래 없이 상상하기 힘들다. 과거에는 주로 하천, 산림 등에서 골재를 채취했다. 접근성과 경제성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증가와 경제성장에 따른 주택 건설과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으로 골재에 대한 폭발적 수요가 생겨났다. 특히 1990년대 수도권 1기 신도시의 건설과 함께 바다 골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기존의 하천과 산림 골재만으로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결국 해저(海底)에서 바닷모래를 채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닷모래 채취는 연안의 취약성을 가속화 시킨다

바다 골재는 주로 진공청소기 같은 흡입기를 이용하여 해저에서 수면 위로 강제로 뽑아 올리면서 채취된다. 해상에 정박된 바지선 위에는 모래만 남게 되고, 함께 운반된 바닷물은 월류수(越流水)로 배출된다. 이 과정에서 탁한 물기둥이 해류를 따라 수십 km에 걸쳐 퍼져나간다. 더욱이 바다 골재를 채취한 후 바다 바닥은 그만큼 깊어진다.

최근 공고된 서해 EEZ 골재채취단지의 광구는 가로, 세로 각각 2km, 채취 깊이는 약 10m 내외에 이른다. 수심 70~80m의 서해 한가운데 거대하고 깊은 네모난 웅덩이가 생기는 셈이다. 골재 채취로 생겨난 해저 웅덩이는 태풍이나 폭풍 같은 강한 외력이 발생하면 빠르게 복원되는 것처럼 보인다.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웅덩이 주변이 무너지면서 마치 빈 공간을 채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빠진 치아를 그대로 두면 양옆의 치아가 밀고 들어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린아이의 유치는 빠져도 더 튼튼한 영구치로 ‘재생산’되지만, 바다 속 모래는 그렇게 쉽게 생성되지 않는다. 웅덩이 주변은 다시 주변의 모래를 이동하게 만들고, 결국 바다 속 모래는 새로운 평형상태(Equilibrium)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주변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이나 바다 한가운데 모래가 쌓여 형성된 풀등(일종의 모래톱)은 침식되고 사라진다. 특히, 해수면 상승과 같은 기후변화와 맞물리면 우리 생활공간인 연안지역의 취약성은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바다 골재는 유한한 자원이다

2020년 국토부에서 발표한 골재자원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바다 골재의 부존량은 약 204억㎥이며, 이 중 채취와 개발이 가능한 양은 약 158억㎥이다. 엄청난 양의 모래가 수 천 년 이상의 지질학적 시간 동안 한반도 주변해역에서 형성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자연이 바닷모래를 만드는 속도가 인간이 골재를 채취하는 속도보다 훨씬 느리다는 점이다. 과도한 채취 행위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면, 짧은 시간 안에 원상태로의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3년에는 연안 및 EEZ에서 채취된 바다골재가 전체 골재수요의 16.1%까지 차지했지만, 10년이 지난 2023년에는 전체의 약 5% 수준까지 감축하는 채취 방안이 시행되고 있다. 후속 세대를 위해 바다 골재를 보호하고, 채취 비율을 최적화하려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은 고무적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서 발표한 제6차 골재 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향후 연평균 건설투자 증가율은 약 0.8%로 전망된다. 증가될 골재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역시 골재 채취원(原)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 산과 강, 바다에서 골재를 채취하기보다는 이미 사용된 골재를 재활용하거나 친환경 합성골재를 개발하여야 한다.

해양공간 이용에 관한 투명한 관리체계 필요

바다 골재 채취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저감 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해양수산부에서는 연구 개발(R&D) 과제를 통해 우리나라 해역에서 수집된 해양관측자료를 빅데이터화 하고, 그 분석 결과를 근거로 ‘바다골재 해역이용영향평가’를 위한 작성 및 검토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가이드라인에 대하여 기대와 우려가 함께 존재한다. 과거 산-학-연-관의 입장 차이로 규정에 포함되지 못한 평가항목들을 새롭게 추가해야 하고, 항목별로 명확한 측정 방법과 영향평가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예컨대, 바다 골재 채취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유사의 확산 범위를 산정하는 기준을 개별사업은 물론 우리 바다의 특성을 고려하여 마련해야 한다.

조류가 빠른 서해와 파랑이 강한 남해를 같은 방법과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평가항목과 범위를 개별사업 및 해역별로 탄력적으로 설정하는 ‘스코핑(Scoping) 제도’의 법제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수치모델 신뢰 중요

또한, 골재채취의 영향을 예측·평가하는 핵심 수단인 수치모델실험의 정확성과 신뢰성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거 관행적으로 사용하던 이웃나라의 관측값을 과감하게 버리고, 우리 해역에서 관측된 결과를 입력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

옛말에 열길 물 속은 안다고 했지만, 사실 우리는 그렇게 바다를 잘 알지 못했다. 바다 골재를 캐내기만 했지 그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조사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제 유한한 자원 바다 골재를 제대로 바라보고 적정한 가치를 매길 때도 되었다. 미래 세대에게 콘크리트 도시와 황량한 바다만을 건네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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