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 여행 5.제척기간 도과 이후 제척기간 연장에 합의하면 그 합의는 유효한가
해양수산법 판례 여행 5.제척기간 도과 이후 제척기간 연장에 합의하면 그 합의는 유효한가
  • 이상협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 승인 2023.08.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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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협 김&장법률사무소 변호사

Ⅰ. 들어가며

개품운송계약은 운송인이 개개의 물건을 해상에서 선박으로 운송할 것을 인수하고, 송하인이 이에 대하여 운임을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해상운송계약의 일종으로(「상법」 제791조), 주로 컨테이너 화물에 관하여 체결된다. 우리나라 「상법」은 개품운송계약에 관하여 1년의 제척기간(제소기간)을 규정하고 있다. 즉, 운송인의 송하인 또는 수하인에 대한 채권 및 채무는 그 청구원인의 여하에 불구하고 운송인이 수하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한 날 또는 인도할 날부터 1년 이내에 재판상 청구가 없으면 소멸하되, 당사자들이 합의로써 위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상법」 제814조 제1항).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로 제척기간의 연장을 허용한 것은 헤이그-비스비 규칙(Hague-Visby Rules)과 같은 국제협약 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상법」이 정한 1년의 제척기간이 도과한 이후에 당사자들 사이에 제척기간 연장에 합의할 경우에 이를 유효한 합의라 할 수 있는 것인지가 문제된다. 이는 제척기간의 도과로 권리가 소멸된 경우, 그로 인한 이익을 받는 상대방 당사자가 그 이익을 포기하고 제척기간 연장에 유효하게 합의할 수 있는지의 문제로도 볼 수 있다.

 

Ⅱ. 사실관계

A회사는 D회사와 냉각기 및 그 부속품(이하 ‘이 사건 화물’이라고 한다)을 매매대금 347만 9,686유로에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A회사는 해상운송인인 피고와 이 사건 화물에 관한 운송계약을 체결하였다. A회사는 수하인으로서 2013. 12. 4. 이 사건 화물을 인도받았는데, 이 사건 화물은 인도 당시 해상운송 중 악천후로 이미 손상된 상태였다. A회사는 2014. 12. 15. 피고에게 이 사건 화물의 손상에 대하여 “보험처리가 완결되지 않아서 Time bar(구상시효) 연장이 필요하다.”라고 하면서 그 연장을 요청하였고, 피고는 2014. 12. 18. “시효를 2015년까지 연장하는 데 동의한다”라고 회신하였다.

원고는 이 사건 화물에 관하여 적하보험계약을 체결한 보험자로서 피보험자인 A회사에게 이 사건 화물 파손으로 인한 손해액을 보험금으로 지급하였다. 원고는 A가 피고에 대하여 갖는 손해배상채권을 대위취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화물의 인도일로부터 1년이 지난 뒤인 2015. 12. 28.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피고는 이 사건 소가 「상법」 제814조 제1항에서 정한 제소기간인 운송물을 인도한 날부터 1년이 지난 뒤에 제기되었으므로 부적법하다고 주장하였다.

 

Ⅲ. 하급심의 판단

제1심과 제2심 법원은 「상법」 제814조 제1항에서 정한 제소기간이 경과하면 운송인의 채무는 확정적으로 소멸하며 그 이후에 당사자 사이에 제소기간 연장의 합의를 하더라도 이미 소멸한 권리가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이유로 당사자들이 1년이 지난 뒤인 2014. 12. 18. 제소기간 연장에 동의하였더라도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6. 12. 21. 선고 2015가단5393818 판결(제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6. 29. 선고 2017나7452 판결(제2심)].

 

Ⅳ.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상법」 제814조 제1항에서 정한 제척기간이 지난 뒤에 그 기간 경과의 이익을 받는 당사자가 기간이 지난 사실을 알면서도 기간 경과로 인한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시한 경우에는, 소멸시효 완성 후 이익의 포기에 관한 「민법」 제184조 제1항을 유추적용하여 제척기간 경과로 인한 권리소멸의 이익을 포기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특히 대법원은 「상법」 제814조 제1항 단서가 해상운송에 관한 분쟁 가운데는 단기간 내에 책임소재를 밝히기 어려워 분쟁 협의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는 것을 감안하여 당사자들에게 제소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분쟁에 대한 적정한 해결을 도모할 기회를 부여하고자 당사자들이 기간 연장을 합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는 전제 하에, 「상법」 제814조 제1항에서 정한 제척기간은 일반적인 제척기간과는 구별되는 특성이 있어 당사자에게 그 기간 경과의 이익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하여 법률관계에 관한 구체적인 사정과 형평에 맞는 해결을 가능하게 하더라도 특별히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라고 볼 수 없다고 보았다.

 

Ⅴ. 검토

우리나라 사법(私法)상 권리 행사와 관련한 기간은 크게 소멸시효와 제척기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양자의 법적 효과는 비슷하지만, 이 중 소멸시효는 「민법」 제162조 내지 제184조에서 시효의 중단, 정지, 시효의 이익의 포기 등을 비롯한 상세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반면, 제척기간은 소멸시효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이에 제척기간에 관한 사항은 상당 부분이 해석론에 맡겨져 있고, 제척기간 도과 이후의 이익을 포기할 수 있는지 여부도 「민법」이나 「상법」 등에서 달리 규정하고 있지 않아 해석론에 따라 판단될 사항에 해당한다.

소멸시효의 경우, 「민법」 제184조 제1항의 해석상 소멸시효 완성 이후에 당사자가 소멸시효 완성에 따른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허용된다. 대법원은 「상법」 제814조 제1항에서 정한 1년의 제척기간에 대해서도 소멸시효에 관한 법리를 유추적용하여 제척기간 도과에 따른 이익을 포기할 수 있는 것으로, 즉 당사자들이 제척기간 도과 이후에도 제척기간 연장에 관한 합의를 유효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에 대해서는 지지하는 견해와 반대하는 견해가 대립된다.

사견으로는 대법원의 입장이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상법」 제814조 제1항 단서는 다른 제척기간에 관한 조항과 달리 당사자 사이에 적용될 제척기간을 합의로써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므로, 당사자가 제척기간 도과 후에 그 이익을 포기하는 것 역시 허용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특히 「상법」 제814조 제1항 단서는 해상운송에 관한 분쟁에 있어서는 책임소재 규명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기에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여 개품운송계약 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제척기간의 연장을 허용하고자 도입된 조항인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당사자가 제척기간이 지난 사실을 알면서도 기간 경과로 인한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시한 경우에는 그 의사대로 법적 효과를 인정하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한 가지 유념하여야 할 점은 위 대법원 판결이 「상법」 제814조 제1항에서 정한 제척기간 외에 다른 유형의 제척기간에 대해서까지 당연히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문제되는 제척기간을 정한 취지, 목적, 권리의 성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제척기간 도과에 따른 이익을 포기하게 하더라도 특별히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위 대법원 판결의 적용 여부를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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