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66.강물을 따라 그리움이 흐르다 머물다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66.강물을 따라 그리움이 흐르다 머물다
  • 김준 박사
  • 승인 2023.07.3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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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군 하동포구
하동포구 모래밭
하동포구 모래밭

[현대해양] 하동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광양과 마주 보고 있다. 섬진강은 진안에서 출발해 구례 광양 하동 남해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강이다. 섬진강은 모래가 곱고 아름다워 모래가람, 모래내, 다사강, 사천 등으로 불렸다. 고려시대 우왕 11년(1385) 섬진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세종실록(1458)」에는 다사강, 「동국여지승람(1486)」에는 ‘섬진’으로 기록했다. 왜구들이 주민들을 괴롭히려 하자 두꺼비가 몰려와 왜구들 상륙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해서 두꺼비 섬, 나루지 진, 섬진강이 되었다고 전한다. 강의 유역면적은 4,911.89㎢이고, 길이는 223.86㎞으로 소백산맥과 지리산맥 동남향으로 펼쳐져 있다. 국립공원 1호 지리산과 남쪽으로 백운산을 휘돌아 남해바다로 흘러든다. 강에는 재첩, 참게, 다슬기, 은어 등이 서식하고, 바다에는 뱀장어, 감성돔, 전어, 농어, 숭어 등이 많았다. 뱀장어나 참게나 은어는 옛날 같지 않지만, 재첩은 여전히 생계를 책임지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강어촌마을이다.

하동송림
하동송림

자연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

하동포구의 상징을 꼽으라면 송림과 재첩을 빼놓을 수 없다. 송림은 잡귀를 막고 부를 부른다는 소나무가 하동읍내 앞에 섬진강변에 심겨 있다. 호안림의 하나인 하동송림이다. 조선 영조 21년 도호부사 정천상이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소나무 숲이다. 육상생태계와 수서생태계를 연결하며 먹이와 서식처를 제공해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고, 토사와 오염물질이 강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다. 모두 750여 그루의 소나무가 하얀 백사장과 강과 어우러져 명승을 연출한다. 여름철에는 주민들은 물론 여행객들도 더위를 피하고,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남해에 물건리 어부림이 있다면 하동에는 송림이 있다. 어부림이 물고기를 부른다는 말이 있는데 송림은 재첩을 부른다. 송림 주변에 하얗게 쌓인 모래 덕분이다. 그뿐인가. 송림 뒤로는 습지가 형성되고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민물이 머물며 습지를 만들고 주민들은 농사를 지었다. 산자락에는 야생차가 자라고 감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산자락 밑에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니 그게 하동이다. 큰 산 ‘지리산’과 큰 강 ‘섬진강’과 너른 바다 ‘남해’가 있는 곳이다.

이렇게 강물의 범람과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심은 송림은 바람과 온습도를 조절하면서 마을주민들의 건강과 생활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동송림은 마을숲이 그렇듯 식량자원 공급, 온습도 조절, 방풍림 등 재해 예방, 더위를 피하고 물놀이를 즐기는 여가 놀이 기능, 그리고 마을의 액을 막고 보하는 비보 기능까지 맡고 있다.

배로 채취해온 재첩을 세척하는 모습
배로 채취해온 재첩을 세척하는 모습

모래밭이 준 선물, 재첩

고문헌에 재첩을 특정해 기록한 것은 찾기 어렵다. 다만 동의보감(1610)에 재첩은 ‘무독(無毒, 다른 음식과 섭취 시 부작용이 전혀 없다), 명목(明目, 눈을 맑게 하고 피로를 풀어 준다), 목황(目黃, 간 기능을 개선·향상 시켜주며, 황달을 치료한다), 개위(開胃, 위장을 편안하게 한다), 소갈(消渴, 소변을 맑게 하고 당을 조절한다), 하열기(下熱氣, 몸의 열을 내리고 기를 북돋운다)’에 효능이 있다고 기록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식량자원이 부족한 시절에 낙동강과 섬진강 유역의 어머니들은 재첩국을 팔아서 보리, 콩 등 식량을 구하기도 했다. 특히 1990년대 우리나라 최대 재첩서식지인 낙동강 하굿둑이 개발되면서 섬진강 재첩은 더욱 가치가 높아지고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지금도 우리나라 재첩 생산량의 90% 이상이 섬진강에서 채취되고 있다. 기수재첩은 알이 굵고 향과 맛이 좋다. 하동과 광양에서 채취한 유통하는 재첩은 기수재첩에 해당한다. 섬진강에 서식하는 재첩은 재첩, 참재첩, 기수재첩 3종이 확인되고 있다. 재첩과 참재첩은 염분농도가 기수지역보다 높지 않고 주로 모래로 구성된 하상기질에 서식한다. 반면에 기수재첩은 염분농도가 3~20퍼밀의 1~2급수에서 서식한다.

섬진강 재첩
섬진강 재첩

위기를 맞는 재첩서식지

어민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재첩을 잡아 생계는 물론 아이들 교육과 시집·장가까지 보냈다. 하동읍이나 광양 다압마을 등 일대 재첩잡이 주민들에게 섬진강 모래밭은 문전옥답이나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재첩은 섬진강 사람들에게 보물이며 ‘흑진주’나 다를 바 없다. 재첩은 모래 속 유기물을 걸러 먹는다. 따라서 모래는 재첩의 생존을 결정하는 기본 환경이다.

지난 20~30년 사이 섬진강 모래를 준설하면서 재첩 채취량은 1/10로 줄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3,400만 톤의 모래를 준설했다고 한다. 섬진강 하구 망덕포구에서 상류로 15㎞까지 5m 깊이로 판 것을 의미한다니 엄청나다. 모래를 준설하기 전인 30, 40년 전에는 재첩은 하동이 아니라 15㎞ 남쪽으로 내려가 망덕포구에서 채취했다. 준설로 바닷물이 올라오고 모래가 유실되면서 재첩의 서식지가 섬진강 상류로 하동읍과 광양 다압면 일대로 바뀌었다. 모래 채취와 유실이 계속된다면, 재첩으로 유명했던 낙동강이나 금강처럼 섬진강에서도 재첩이 사라질 수 있다.

요즘 기후위기로 폭우와 긴 장마가 이어지면서 섬진강에서 재첩을 잡는 어민들은 걱정이 크다. 몇 해 전, 섬진강이 범람한 이후 수년 동안 그전에 채취했던 재첩량의 절반에도 훨씬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재첩이 잘 자라려면 모래, 수온, 염도 등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당시 홍수조절을 목적으로 수문을 열면서 모래가 쓸려나갔다. 비가 많이 오면 염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온 상승으로 재첩의 서식에 비상이 걸렸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으로 생각한다. 섬진강은 국가하천인 데다가 양식어업도 아니기에 생계를 오롯이 재첩에 의지한다 해도 현행 농어업재해보상법으로는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재첩잡이 손틀어업
재첩잡이 손틀어업

국가중요어업유산,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되다.

재첩잡이는 ‘섬진강 하구 재첩잡이 손틀어업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2023년 7월 어업 분야에서는 최초로 세계농업유산에 등재되었다. 농업 분야는 제주 밭담농업, 완도 청산도 구들장논, 하동 전통 차농업, 금산 인삼농업, 담양 대나무밭농업 등 모두 5개의 농업유산이 등재되어 있다. 하지만 어업 분야는 지정되지 못해 아쉬웠다.

재첩잡이 손틀어업
재첩잡이 손틀어업

섬진강 재첩잡이는 전통어로 방식인 사람이 ‘거랭이’를 끌어서 채취하는 ‘손틀어업’과 배를 이용해 ‘형망’을 끄는 ‘끌망어업’으로 나뉜다. 이중 사람이 직접 강물에 들어가 거랭이를 끌고 흔들어 모래 속에 서식하는 재첩을 채취하는 어업이 세계농업유산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번에 등재된 재첩잡이 손틀어업은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 섬진강 하류 일대에서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재첩이 밥상에 오르기까지는 채취(8시간 이상), 선별(3차례), 해감(12시간), 세척(1차례), 삶기, 조갯살과 육수 분리, 조갯살 세척, 살과 육수 분리, 급랭 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모래 속에서 유기물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재첩 살의 외형을 오롯이 유지한 채 모래를 제거하는 것이 상품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하동에서 많을 때는 썰물에는 60여 명이 재첩잡이에 나선다. 물이 없으면 거랭이를 끌기 힘들며 너무 깊으면 물속에서 작업할 수 없다. 물때와 조수간만의 차이를 잘 이해해야 한다. 채취 도구도 거랭이와 커다란 고무통 함지박과 플라스틱 바구니 전부다. 거랭이를 끌어 재첩을 모으고 흔들어서 모래와 분리한다. 그리고 플라스틱 바구니로 옮겨 담아 물에 흔들어 선별한 후 큰 고무통에 담는다. 주민들은 거랭이 질을 할 때 소리를 듣고, 재첩인지 돌인지 구분한다. ‘좌르륵’ 소리가 나면 거랭이로 돈 들어가는 소리요, ‘드르륵’하면 돌 들어가는 소리란다. 물이 가장 많이 빠질 때 고무통에 서로 가져온 도시락을 펼치고 허기를 채우고 다시 거랭이질을 했다. 재첩이 많이 잡힐 때는 하루에 수십만 원도 거뜬했지만, 지금은 10만 원도 고맙다고 한다. 그렇게 재첩을 혹은 재첩국을 만들어 팔아서 식량을 구했다.

재첩정식
재첩정식

하동을 대표하는 먹을거리는 말할 것도 없이 ‘재첩국’이다. 재첩 채취량은 광양이 앞서지만 재첩 밥상은 하동이 앞선다. 일찍 재첩마을을 만들고 재첩국만 아니라 재첩회, 재첩비빔밥, 재첩전 등 다양한 먹을거리를 내놓고 있다. 재첩 정식을 주문하면 다양한 재첩요리를 맛볼 수 있다. 부디 그 맛이 우리 세대에 멈추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길 기원한다. 그것이 재첩잡이를 둘러싼 생태계를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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