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엉뚱하게 시작된 융복합 해양학 연구
24. 엉뚱하게 시작된 융복합 해양학 연구
  • 김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 승인 2023.08.1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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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생태학-물리학 융합 연구를 위한 ALS 및
해양생태학-물리학 융합 연구를 위한 ALS 및 PLS 방문

[현대해양] 해양학 입문 30년이 훌쩍 지났다. 막연했던 해양학은 구체화 됐고 그간 성과도 있었다. 그 성과를 돌아보니 ‘융합’과 ‘복합’이란 키워드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소통’이 중요했던 것 같다. 특히 해양생태학자로서 바다와 바다생물을 관찰하면서 자연의 (불)규칙성을 찾고 그 이유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을 만나고 또 큰 도움도 받았다. 그렇게 바다와 사람과 소통하면서 융합해양학에 점점 빠져들었다. 엉뚱하게 시작된 나의 ‘융복합 해양학’ 연구를 되돌아봤다.

해양생태학-물리학 융합 연구를 위한 실험

‘해양학’의 특수성과 매력

해양학은 무지개 스펙트럼처럼 다면적 특성을 갖는다. 해양학은 크게 볼 때 지구과학에 속하지만, 바다의 모든 자연현상이 대상이므로 물리학, 화학, 생물학, 수학(통계) 등과 같은 순수 기초학문 분야와 모두 관련이 있다. 과거 해양학이 크게 ‘물리해양학’, ‘화학해양학’, ‘지질해양학’, 그리고 ‘생물해양학’이란 4개 범주로 나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학부 커리큘럼은 현재도 이 체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유다. 해양학은 기상, 기후, 천문, 수리, 수문, 지리, 지형, 환경 등 다양한 지구과학 영역의 학문과도 밀접하다. 그래서 해양학을 ‘종합과학’이라 부른고 그만큼 어렵기도 하다.

나는 ‘생물해양학자’다. 종종 ‘해양생물학자’라고도 하는데 엄격히는 틀린 말이다. 생물해양학자는 해양학자, 해양생물학자는 생물학자니 말이다. 즉, 생물해양학자는 바다 현상을 설명하는 데 방점을 둔다. 반면, 해양생물학자는 연구 대상생물만 해양생물일 뿐 바다 현상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 물론 연구방법론이나 세부 기술(도구)에 있어 큰 차이는 없다. 생물해양학자도 해양생물학자처럼 생태, 분류, 계통, 진화, 생리, 독성, 유전, 세포, 분자, 미생물, 생화학 등 다양한 생물학 분야를 다루기 때문이다. 결국, 두 학문 간 차이는 질문, 접근법, 해석과 의미 부여 등 ‘철학’적 부분이 크다.

한편, 해양학은 기초학문 특성 외에도 공학, 경제학, 인문·사회학, 정책학, 법학 등 타 범주의 기초 및 응용학문과도 소통한다. 최근에는 고전적인 해양학 연구에 첨단 과학기술 분야인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나노, 에너지, 스마트수산, 우주 등이 결합하면서 해양학의 새로운 비전까지 제시되고 있다. 이쯤 되면 해양학은 명실상부 종합과학이라 할만하다. 이제 미래 해양학 연구를 논할 때 ‘융복합’이란 키워드는 필수가 됐고, 가장 매력적인 학문 분야로 성장해나갈 것임을 확신한다.

바다가 화가 많이 났다. 산업혁명 이후로 인간의 개발 욕구는 지구를 그리고 바다를 모두 망가뜨렸다. 지난 2021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주도한 ‘국제한림원연합회’의 ‘해양환경보호 성명서’는 바다를 살리자는 간절함을 담아 주요 ‘해양 난제’에 대한 글로벌 실천 강령을 제안했다. 이제 △해양 건강성 악화 △서식지 파괴 △환경오염물질 △기후변화 △남획의 5대 해양 난제를 전 지구인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 과학자의 역할도 더 커졌다. ‘융복합’ 해양학 연구가 더 절실해졌다.

 

해양학과 물리학의 엉뚱한 만남

나는 해양학 박사를 마치고 캐나다로 향했다. 석사 과정 때 인연을 맺은 기지 박사의 러브콜로 서스캐처원 대학 ‘독성센터’에 연구원으로 가게 된 것이다. 운 좋게 엉뚱한 천재 물리학자를 만나게 됐다. 기초물리학을 공부하는 장갑수 교수다. 그 인연이 15년을 훌쩍 넘었고, 나는 그와 함께 지금 융복합 해양학 연구에 심취해 있다.

장갑수 교수와의 융복합 연구는 내가 공부했던 대상, 주제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바로 해양오염의 주범인 각종 육상기인 유기화합물질의 생태(생리)적 반응 메커니즘에 관한 질문이었다. 의학, 약학 분야에서 흔히 말하는 ‘독성’이다. 어떤 물질이 독성이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인가에만 관심이 있던 내게 독성의 근본적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원초적 질문에 빠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한동안 농반진반으로 토론을 이어갔고, 수개월에 걸친 소통 덕에 본격적인 공동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돌아보니 이때 비로소 나는 융복합 해양학 연구를 시작한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공동 연구는 선행연구 고찰, 실험 디자인 수립, 예비 실험까지 진행된 후 멈췄다. 내가 2009년 급작스럽게 국내로 직장을 옮기게 되면서 물리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약 1년간의 공동 연구도 사실 쉽지는 않았다. 실험 디자인 설계부터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고, 분석 항목을 결정하고 본 실험을 준비하는 동안 양보와 타협은 필수였다. 우리를 도와줄 대학원생, 포스트닥 연구원을 설득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연구비도 없고,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연구는 중단됐고, “다음에 식사 한번 하자”는 말처럼 차츰 잊혀갔다.

 

공동 연구 재기, 그리고 기대 이상의 성과

그런데 2017년 가을 어느 날 역시 장갑수 교수로부터 뜬금없는 전화가 왔다. 2018년 여름부터 안식년으로 한국에 1년간 들어올 예정이라고, 자주 보자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는 아쉬움에 “서울대 오세요”라고 대꾸했다. 우여곡절 끝에 장 교수의 연구년 전쟁터는 서울대로 바뀌었고 나는 신이 났다. 그사이 운 좋게도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 사업’과 ‘해외우수과학자유치사업’도 함께 선정됐다. 재정적으로 연구 여건이 마련됐고 공동 연구는 순항했다.

우리는 당시 국내 해양오염의 주범으로 확인된 석유·연소 기원의 유기화합물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polycyclic aromatic hydrocarbons, PAHs)’를 대상 물질로 선정했다. 유류 분해나 유기물의 불완전 연소를 기원으로 하는 대표적인 발암물질로 구조가 다른 수백개의 물질이란 점에서 모델물질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PAHs는 내가 석사, 박사 때 생태독성 실험과 화학분석을 해봤던 물질이라 익숙하기도 했다.

우리는 역할 분담을 했다. 장갑수 교수 연구실에서는 이 물질의 X-선 흡수 분광학적 특성을 분석하여 ‘제1 원리’라 불리는 물질의 물리·화학적 성질을 계산하기로 했다. 나는 PAHs를 대상으로 다양한 생물에 대한 생물검정 실험에 착수했다. 우리는 물리·화학 자료와 독성자료를 통해 PAHs의 ‘제1 원리 기반 밀도 범함수 이론(Density functional theory, DFT)’을 성공적으로 계산해냈다.

유해물질의 물리화학적 특성과 수용체 결합 모식도 (야구에 비유)
유해물질의 물리화학적 특성과 수용체 결합 모식도 (야구에 비유)

물질마다 다른 독성, 왜? 글러브에 꽂힌 볼!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우리는 13개 종류의 PAHs에 대해 기초적인 물리·화학적 성질을 계산해냈고, 대상 물질 모두 예외 없이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물질 간 독성을 일으키는 물리·화학적 특성과 그 특성의 힘과 방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증명했고, 그 예측값이 실제 독성 값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믿기 어려운 진실을 밝혀낸 것이다. 우리끼리 ‘대박’이라고 브라보를 외쳤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해당 연구 결과를 ‘야구’에 빗대면 좀 더 쉽게 이해될 것 같다. 물질의 독성이 발현되려면 물질이 생물체 내 수용체와 결합해야 한다. 물질을 ‘볼’, 수용체를 ‘글러브’로 생각해보자. 투수가 던지는 구종은 ‘패스트볼’, ‘커브’, ‘슬라이드’, ‘포크볼’ 등 다양하고, 포수의 글러브에 꽂힌 볼의 모양, 속도, 방향 역시 모두 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각 물질(볼)이 수용체(글러브)에 결합할 때의 물질의 힘(쌍극자 모멘트), 방향(각도) 등에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결국 독성 유무와 크기를 결정한다는 놀라운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는 그 관계를 나타내는 새로운 독성 예측 모델을 DRF(Directional Reactive Factor)로 명명하고 꽤 유명한 저널에 게재하게 됐다. 해당 연구는 2022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첫 융복합 연구 성과는 기대 이상 컸음에 감사하다.

우리 연구 이전에도 물질의 독성을 예측하는 연구는 꾸준히 발전해왔다. 특히, 신약을 개발하는 약학이나 인체 독성을 연구하는 의학, 보건학 분야 등에서 다양한 모델이 지속해서 개발, 제시돼왔다. 상용화된 모델도 꽤 있어 신약 개발에 이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기존 독성 모델과 우리의 DRF 모델 간에 큰 차이가 있다. 다시 야구에 비유해보자면, 기존 독성 모델이 ‘직구’와 ‘변화구’ 정도의 차이에 기반해서 독성을 예측했다면, 우리의 DRF 모델은 위에서 언급한 좀 더 많은 구질의 미세한 차이를 모두 고려해서 독성을 예측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독성 예측의 정밀도가 향상된 셈이다.

이번 연구 결과의 파급효과가 상당히 크다고 본다. 예를 들면 신약 개발에 있어, 후보군 물질의 기초연구에 드는 고가의 스크리닝 연구비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물질의 합성이나 분리, 그리고 사후 예방과 관리 등에 드는 천문학적 경비와 불필요한 연구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올해 장갑수 교수가 안식년으로 다시 돌아왔고 후속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번에도 또 운 좋게 두 번째 ‘중견연구자지원 사업’과 두 번째 ‘해외우수과학자유치사업’가 잇따라 선정됐다. 앞선 첫 번째 공동 연구가 수용체에 유해물질이 다가가는 힘을 계산하고 예측했다면 이번 두 번째 공동 연구는 물질이 수용체에 달라붙는 확률까지 계산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모델을 ‘DBF(Directional Binding Factor)’로 명명할 생각이다. DRF와 DBF를 연계하면 유해물질의 독성 예측은 더 높은 정확도를 갖게 되리라 확신한다. 기회가 된다면 첨단 AI 기술까지 접목할 생각이다.

해양+AI 관련 연구개발 동향
해양+AI 관련 연구개발 동향

 

최첨단 융복합 해양학 연구, AI도 한몫?

최근 오픈 AI가 개발한 ChatGPT가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다. 해양학 분야에서도 기후변화, 생태계 예측 등 불확실성이 큰 이슈와 각종 해양 난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AI가 속속 도입되고 있다. 최근 국내 해양 분야 AI 관련 연구 논문 수는 지난 5년간 약 300% 증가했다. 중국과 비교하면 1/8 수준으로 갈 길이 멀지만, 고무적인 성과임이 분명하다. 이제 고전적, 전통적 해양 연구 방식에서 벗어나 최첨단 AI 기술을 접목한 융복합 해양학 연구 시대가 열린 것 같다.

분야를 좁혀, 해양환경영향평가 역시 AI 기술 적용이 가능한 분야로 생각된다. 해양 이용 개발 압력이 증가하면서 해양환경 오염과 해양생태계 훼손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2009년 1,663건이었던 해역이용협의 영향평가는 2019년 2,401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2017년 기준 해상풍력발전기는 1.2GW였으나 2030년 17.7GW까지 설치될 예정이다. 이와 같은 해양의 이용압력은 광범위한 생태계 영향을 초래할 수 있고, 그래서 새로운 진단, 예측 기술 도입이 더욱 중요해졌다. 최근 해양수산부에서는 해양생태계 변동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로 빅데이터를 이용한 AI 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융복합 해양학 연구의 성공 열쇠는?

융복합 해양학 연구는 성격상 해양학 개별 분야 연구에 비해 성공할 확률이 낮다. 연구 자체의 어려움 외에도 연구자 간 눈에 보이지 않은 소리 없는 전쟁까지 치러야 하는 이중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융복합 연구의 성공은 결국 연구 주체 간의 ‘개방’과 ‘수용’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소통’이 열쇠인 것 같다. 서로 자주 이야기하고 의견을 교환하고 즐거운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홀로 고민하는 것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답을 찾을 수 있음은 자명하다.

내게는 숫자 개똥철학이 있다. 그중 하나가 ‘51 vs. 49’다. 풀어서 51을 주고 49를 갖는 것이다. 사실 매우 어렵고 용기도 필요해서 잘 지키지는 못한 것 같다. 서로에 대한 존중, 배려, 포용, 화합을 위해 1만 양보하면 되는데 말이다. 나라 안팎으로 어렵고 험난한 해결할 해양 난제가 너무 많아졌다. 융복합 해양학 연구의 열쇠인 ‘소통’을 위해서라도 1만큼 양보하는 노력을 더 많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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