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양해군이어야 하는가?
왜 대양해군이어야 하는가?
  • 문병옥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 사무총장 예비역 해군 소장
  • 승인 2023.08.0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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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옥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 사무총장 예비역 해군 소장
문병옥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 사무총장 예비역 해군 소장

[현대해양] “한국 사활 걸린 해상수송로, 동남아 국가와 협력 강화할 때” 2022년 11월 23일자 중앙일보에서 이 제하로 한국-중동 간 바닷길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동남아와 외교적 관계를 강화하고 해군과 해양경찰이 앞장서서 아세안과 군사, 안보, 해양교류를 강화해야 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대륙으로 연결이 차단된 우리나라는 섬나라와 같은 해양 국가다. 부존자원의 미비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해외 교역에 의존하고 우리 물류의 99%를 해상수송이 담당하는 만큼 해상교통로의 안전 확보는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특히 동남아를 지나는 해상교통로는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와 연결되는 항로로 우리 물동량의 32%가 이곳을 이용한다. 더욱이 우리 산업에 중요한 원유도 대부분 이 항로를 통해 수송되는 만큼 이 항로의 방해나 차단은 우리 생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분쟁을 억제하거나 제거하기 위해서 정치, 경제, 외교적 방안을 활용한다. 국가 간의 문제일 경우는 이런 방안이 작동될 수 있다. 하지만 소말리아 해적과 같은 초국가적인 테러단체라면 군사적 방안이 불가피하다. 해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군사적 방안은 해군력이다.

17세기 중엽부터 유럽의 각 나라들은 100여 년간 끊임없이 전쟁을 수행했다. 전쟁의 원인제공이나 발단은 유럽 내였지만 실제 전장은 전 세계 해역에서 이뤄졌다. 국가 간 전쟁 목적에 식민지와 본국을 잇는 해상교통로 쟁탈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대서양과 인도양에서 해양력을 확보하는 것이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기에 해군 함정을 정비해 자국의 통상을 보호하는 한편 다수의 사략선과 함께 적국의 통상을 파괴하는 활동을 했다. 영국은 국부 창출을 위해 해적 행위를 법적으로 허락하는 자국 상선 보호령을 발동해 경쟁국의 통상을 방해했다. 이 시기에 크게 활약했던 인물이 해적인 동시에 해군의 장성급 장교였던 프랜시스 드레이크이다.

현재 세계 최고의 해군력을 자랑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 해군은 영국과의 독립전쟁 기간 중 해상교통로를 봉쇄해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영국으로부터 자국 선박 보호와 해안방어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지원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창설됐다. 그러나 1785년 8월, 재원 부족으로 해군을 해산하고 10년간 해군을 보유하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의 상선들이 북아프리카의 바바리 해적에게 무방비로 노출돼 통상에 지장이 초래되자 1794년 3월 상설 해군법을 통과, 1799년 해군을 재창설했다. 재창설된 미 해군의 첫 번째 전투는 바바리 해적으로부터 미 상선대를 보호하기 위해 1801년부터 5년간의 제1차 바바리 전쟁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해군의 역할을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대양을 주름잡았던 나라들의 해군 창설과 유지가 통상로 확보와 보호 목적이었다. 미국과 영국도 해군의 임무를 국가 이익 보호–통상 보호와 확보를 위한 해양의 자유로운 이용에 두고 있다.

대한민국 해군은 창설 후 채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북한의 남침과 계속 이어진 군사적 위협으로 국가 보존에 주력해 왔다. 해양 활동의 빈약함으로 우리 주권이 미치는 해역 밖으로까지 해양안보 능력을 확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의 해운은 1990년대 해운 산업 규제가 완화되고 각종 선진제도가 도입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국제화가 시현됐다. 해군의 발전도 해운과 궤를 같이했다. 7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군사원조에 기대어 함정을 확보, 운용하다가 1981년에 비로소 우리 손으로 만든 호위함을 작전에 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하톤수 1,500톤으로 작전 지속 일수도 크게 제한돼 대양에서의 작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한국 해운 산업이 국제 시장으로 발돋움하면서 해군에서도 대양해군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양해군이란 대양에서의 국가 이익 수호를 기본으로 한다. 통상 보호와 국가방위를 위한 해양안보 능력–장기 작전 지속능력 확보가 요구된다.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함정들이 현재 아덴만에서 우리 선박보호를 위해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해상물류의 29%가 통과하는 아덴만에서 우리 선박을 보호할 정치, 외교적 방안을 운용할 수 없어 부득이 군사적 방안으로 2009년 청해부대가 파병됐다.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을 파병함에 많은 우려가 있었다. 북한의 위협이 급박한데 우리의 주력함을 파병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이었다. 2010년 천안함이 피격돼 우리 장병들이 산화되었을 때에는 조롱의 대상이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덴만에서 자국 선박보호를 위해 작전을 수행하는 다른 국가의 함정들과 연합작전을 위해서는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의 파병이 불가피했다. 광개토대왕급 구축함은 다른 나라의 해상작전 헬기가 착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연합세력의 해상작전 헬기로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을 신속하게 이송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우려를 무릅쓰고 대형함정을 파병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밖에도 리비아 난민 철수, 예멘 교민철수, 가나 해적에 납치된 한국인 선원 구출 등 많은 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장기 작전이 가능한 함정이 파병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인도양의 다른 해역에서 국위 선양과 식량자원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원양 산업의 경우도 상시 해적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전력의 부족으로 청해부대가 작전해역으로 이동, 복귀하는 과정에서 잠시 조업해역 인근을 경유하는 형태로 지원하는 것이 전부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 속에서 우리는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경제 전쟁을 치루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원자재와 우수한 기술로 생산한 완제품을 운송하는 우리의 선박들이 최전선에 있다.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보장해야 한다. 한스 모겐소는 “국가 외부의 영역은 생존의 영역이기 때문에 도덕적 진보나 이상, 보편적 정의가 통하지 않으며 세력균형을 통해서만 일시적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라며, 국제관계는 계속되는 투쟁의 영역이자 생존을 위한 투쟁의 공간이다”라고 역설했다. 우리의 생명선인 해상교통로가 방해, 차단될 경우 정치, 외교적 방안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달리 해외 무역을 위한 경쟁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느 순간 우리의 목을 옥죄일 심각한 위협이다. 이제는 생존과 번영을 위한 안보 전략을 변경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해양안보 능력 확보가 절실하다. 왜 대양해군이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답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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