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 묻힌 해외순직 원양어선원 유해 3위, 고국으로 돌아오다
스페인에 묻힌 해외순직 원양어선원 유해 3위, 고국으로 돌아오다
  • 김기현 기자
  • 승인 2023.07.1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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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산업화 주역 국내 이장…“가족의 짐을 덜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스페인 라스팔마스에 묻혀 있던 원양선원의 유해가 14일 한국원양산업협회에서 열린 유해 인도식을 통해 유가족에게 전달되고 있다.

[현대해양] 1970~80년대 경제역군으로 세계의 바다를 누비다 이역만리에 묻힌 원양어선원 유해 3위(位)가 14일 그리웠던 고국으로 돌아왔다.
해양수산부(장관 조승환)와 한국원양산업협회(회장 윤명길)는 14일 서울 서초구 한국원양산업협회 대회의실에서 원양어선원 유해 인도식을 개최했다.
원양선원 유해 인도식 행사는 2019년을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영향에 의해 중단됐다가 4년 만에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고 김우명 고 윤종현 고 김수진 등 3인의 유해는 35년만에 유족의 품에 안겼다.
고 김우명은 켄스마트라스호를 승선하다 1989년에 스페인 라스팔마스에서 작고했다. 유가족들은 유해를 인도받고 “도대체 그 바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며 목놓아 울었다.

고 윤중현은 마린수타호를 승선하다 1988년에 스페인 라스팔마스에서 작고했다. 그는 향년 27세로 그의 유가족들은 “해군을 전역하고 바로 승선한 배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35년 전에는 외국에 연락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는데 이제라도 돌아오게 되어 반갑다”고 말했다.
고 김수진은 그레이트스펜들호를 승선하다 1991년에 스페인 라스팔마스에서 작고했다. 그의 유가족들은 인도받은 유해를 안고 말없이 고개 숙여 눈물을 흘렸다.

해수부는 2002년부터 해외 선원묘지 정비 사업을 통해 스페인 라스팔마스(Las Palmas)와 테네리페(Tenerife), 사모아(Samoa) 등 7개 나라에 있는 318기의 묘지를 보수하고 현지 한인회 등의 도움을 얻어 관리해 왔다.
특히 2014년부터는 유족이 희망하는 경우 현지 정부와 협의를 통해 원양어선원 유해를 국내로 옮겨와 2019년까지 31위를 이장했고, 이번 3위를 포함해 지금까지 34위의 유해를 이장했다. 남은 유해는 284위.

우리 원양어업은 1957년 시험조사선 ‘지남호’의 출항을 시작으로 오대양에 진출해 외화 획득과 국위 선양, 민간 외교에 기여해 왔다. 1971년 원양수산물의 수출액은 5,500만 달러로, 우리나라 총 수출액(10억 7,000만 달러)의 5%를 차지할 만큼 원양어업은 수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1970년대 후반 들어 연안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선포와 공해어업 규제 등으로 원양어업의 세력이 약화되기도 했지만, 1977년에는 원양어선 850척(2018년 214척)에 2만 2,000여 명의 어선원이 오대양을 누볐다. 그 중에는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어선원도 있었고, 여러 사정으로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 현지에서 운명한 경우도 있었다.

故 김우명 유가족들은 “가족의 숙원을 해결해줘서 감사하다”며 협회 측에 감사편지를 전달했다.
故 김우명 유가족들은 “가족의 숙원을 해결해줘서 감사하다”며 협회 측에 감사편지를 전달했다.

윤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그분들이 남기신 그 뜻과 유업을 정성을 다해 잘 받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재영 해양수산부 원양산업과장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고혼이 된 원양어선원의 넋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해외 선원 묘지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고 유해의 국내 이장 사업도 지속해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원양어선원 유골의 국내 이장 사업은 한국원양산업협회가 해수부로부터 위탁 수행하고 있으며, 자세한 사항은 협회(02-589-1621)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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