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동경, 치유, 탐험, 소통의 제주 바다
23. 동경, 치유, 탐험, 소통의 제주 바다
  • 김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 승인 2023.07.13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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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생물해양학 및 실험 현장조사: 우도와 종달리 갯벌에서 해양생물을 채집했다.
2013년 생물해양학 및 실험 현장조사: 우도와 종달리 갯벌에서 해양생물을 채집했다.

[현대해양] 여행은 늘 즐겁고 유쾌하다. 그리고 해양학자는 그 여행을 공짜로 한다. 우리 연구실 대학원생은 1년 중 절반 가까이 바다 여행을 하기 때문이다. 일로써 바다를 대하면 성립되지 않는 말이지만 바다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해양학자라면 맞는 말이지 싶다.

나도 해양학을 공부하면서 지난 30년간 우리나라 웬만한 바다를 거의 공짜로 여행한 것 같다. 사람마다 특별히 더 좋아하는 바다도 있을 것 같다. 내게는 ‘제주’가 그렇다. 우리나라 무지개색(다양한) 바다를 대표하는 제주는 내게 유쾌한 기억과 추억을 많이 줬기 때문이다. 돌, 바람, 여자(해녀)가 많아 ‘삼다도’라 불리는 제주, 가진 것, 보여지는 것 이상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해준 고마운 제주 바다를 추억해봤다.

 

90s 학부생 때, 동경의 제주!

내가 꿈에 그리던 제주 땅을 처음 밟은 것은 대학 때다. 1학년 여름 재수 시절 동고동락했던 6인의 끈끈한 동지들(“우리가 남이가”를 따서 우남회)은 전국 일주란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승효형, 상혁, 경식, 병욱, 성호와 나까지 6인의 피 끓는 청춘은 2주간의 전국 일주 대장정을 떠났다. 신형 ‘갤로퍼’를 타고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을 온종일 듣고 따라부르면서 해방감을 만끽하며 신나게 돌아다녔다. 꿈에 그리던 제주 땅은 밟지 못했지만, 대체로 전국 일주라 할 만한 했다. 서울 출발, 광주, 지리산, 거제도, 부산, 속초, 설악산을 찍고 돌아왔으니 말이다.

동경의 제주는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3학년 때 우리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2차 전국 일주를 도모했다. 이때는 해남 땅끝마을을 사뿐히 밟고 완도항에서 페리를 타고 마침내 제주 상륙에 성공했다. 그때 처음 본 한라산과 제주 바다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두 차례의 전국 일주로 산(지리산, 설악산, 한라산)과 들(서울에서 땅끝마을까지,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부산에서 속초까지), 그리고 섬과 바다(거제도, 완도, 제주도)를 두루 섭렵했다. 어설프지만 나름 호연지기를 키웠던 철없던 시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여행하기를 늘 좋아했다. 경식과는 2학년 때 단둘이 유럽 여행까지 다녀왔으니 학부 때 여행은 실컷 한 셈이다.

보는 기쁨에 먹는 즐거움은 덤이었다. 경유지마다 친구 부모님과 친지분이 정성껏 준비해준 향토 음식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전주에서 제대로 된 전통 비빔밥을 처음 맛봤고, 지리산에서는 직접 잡은 미꾸라지로 추어탕이란 끓여봤다. 지금은 흔하지만, 광주에서는 푸짐한 소갈비찜을 맛봤고,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는 환상적인 회 맛에 황홀했다. 소위 ‘스끼다시’라고 하는 전문용어로 ‘대형저서무척추동물’, 지금의 내 전공인데 그때는 제대로 구분도 못 했던 시절을 회상하니 웃프기도 하다.

제주행 페리에서 찬 맥주가 없어 뜨뜻미지근한 캔맥주를 마신 것도 생생히 기억난다. 뜨거운 맥주 맛도 좋을 만큼 젊은 청춘을 보냈음에 감사하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 시절을 이야기하고 그리워한다. 누구나 그렇듯 말이다. 엊그제 카톡을 하다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30주년을 기념한 제주행을 결의했다. 올가을은 ‘백 투 더 제주’로 청춘을 소환해야겠다.

2004년 제주 조사를 빙자한 치유여행(종달리 갯벌)
2004년 제주 조사를 빙자한 치유여행(종달리 갯벌)

00s 대학원생 때, 치유의 제주!

이후 학부 졸업 때까지 나는 한동안 제주 바다를 잊고 살았다. 대학원 시절 역시 내 연구 대상은 저서생물(저서미세조류, 대형저서무척추동물 등)과 저서퇴적물(생물검정, 환경영향평가 등) 이었기 때문에 주로 갯벌(강화도, 대부도, 새만금, 낙동강 하구)과 오염된 연안해역(시화, 광양만, 마산만, 온산만, 울산만 등)에 국한됐다.

제주를 다시 찾게 된 계기는 조사도, 학회도, 미팅도 아닌 단순 재충전을 위해서였다. 2004년 박사과정 말년 지칠 대로 지친 류종성 선배와 학위논문 주제가 갑자기 바뀐 혼란스럽던 나는 특별한 치유가 필요했다. 요즘 주목받는 ‘해양치유’를 우리는 20년 전에 이미 경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막내 봉오까지 셋이서 답사를 핑계로 제주로 떠났고, 성산일출봉, 섭지코지, 우도, 종달리까지 단숨에 둘러봤다. 해변에서 갓 잡은 홍해삼(홍조류를 주로 먹어 붉은색을 띠는 해삼)회란 것을 처음 먹어보기도 한 내게는 또 다른 새로운 여행이었다. 짧지만 굵직한 1박 2일의 알찬 치유 여행은 지친 영혼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10s, 신임교수 때, 탐험의 제주!

대학원 때 치유 여행 이후 다시 10년이 지나서야 제주를 찾을 수 있었다. 2006년 학위를 마치고 외국에서 살 결심으로 2007년 1월 캐나다로 떠났다. 그런데 모든 일이 그렇듯 뜻대로 되지는 않았고, 나는 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운 좋게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조교수로 돌아왔으나, 정통 해양학과는 사뭇 거리가 먼 환경 화학 분야에서 일하게 됐다. 그래서 연구 대상 지역은 강이나 하구 정도로 국한됐다.

상황은 또 바뀌었다. 2012년 2월 고철환 교수님께서 정년퇴임을 하시고 나는 9월에 ‘해양저서생태학연구실’을 물려받게 됐다. 축소됐던 나의 탐구 공간은 다시 전국 바다로 펼쳐졌다. 이듬해부터 나는 고 교수님께서 강의했던 ‘생물해양학 및 실험’을 맡게 됐다. 지금의 내가 ‘생물해양학자’가 된 계기를 마련해준 과목이다. 나는 동경과 치유의 제주 바다를 이 과목의 첫 실습지로 잠깐 생각해봤다. 그래도 전통을 살려 실습 후보지를 강화, 대부, 천리포, 태안, 새만금 갯벌을 언급했고, 마지막으로 제주도 가능하다고 했다. 학생들은 모두 “제주”를 외쳤고, 덕분에 나도 그립던 제주 바다를 다시 보게 됐다.

2021년 해양학·생물해양학 리뷰(OMBAR)에 게재된 한국의 해양생물다양성 리뷰 논문 (남해와 제주 해역의 대형저서무척추동물의 종류와 분포 발췌)

제주 바다의 특성과 독보적 가치

내가 생각하는 해양학과 학부 커리큘럼의 꽃은 ‘현장실습’이다. 바다에서 몸소 땀을 흘리며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이론 강의보다 100배는 더 바다를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百聞不如一見/百見不如一行’이라 했던가! 듣기보다는 봐야 하고, 보기보다는 실행하는 것이 낫다는 옛말이 딱 적당한 설명일 것 같다. 딱딱한 이론 강의보다는 바다에 나가서 생물을 관찰하고, 직접 채집해서 동정, 해부, 분석해보면 자연스럽게 해양생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니 말이다.

제주는 해양학적으로도 특별한 바다다. 화산섬이란 지형적 특성, 아열대 기후대, 그리고 서쪽으로 얕은 수심, 동쪽으로 깊은 수심을 가져 주변 해역의 해류 순환이 다이나믹하다. 여름철 중국 양쯔강으로부터 유입되는 막대한 양의 토사, 쿠로시로 기원의 고온고염수, 대마난류수, 황해저층냉수 등 다양한 해류, 그리고 해류를 타고 유입되는 각종 물질과 생물 유생까지 제주 바다를 특별하게 만드는 환경요소 때문이다.

제주의 독특한 해양환경은 곧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서식처를 제공하게 됐다. 서식처 환경이 상이하다는 것은 곧 살아가는 생물의 종수가 많아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제주는 지리, 지형, 기후, 퇴적환경, 먹이생물까지 독특한 환경에 따라 해양생물다양성도 높아지게 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2021년 전국 연안(조간대+조하대)을 대상으로 ‘대형저서무척추동물’의 종류와 분포에 대한 리뷰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 작성에만 3년이 걸릴 정도로 방대한 생태, 분류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바다의 해양생물 다양성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밝히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낸 것 같다.

리뷰를 위해 구축한 메타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제주의 높은 해양생물다양성도 입증됐다. 제주 해역의 대형저서무척추동물 종수는 총 511종으로 남해안 일대 9개 단일 해역에서 확인된 평균 종수(136종)를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서식종의 분류군도 가장 다양했다. 제주의 깊은 바다에 풍성한 각종 어초도 한몫했음은 분명하다. 어초는 조하대 저서생물, 어류 등 다양한 해양생물의 보금자리이니 말이다.

제주는 문화서비스(관광·휴양, 경관·심미, 교육·유산·영감 등)뿐만 아니라 ‘지지서비스’(서식지, 생물다양성 등) 측면에서도 압도적 가치가 있음이 증명된 셈이다. 해마다 조사하는 여름휴가 여행지 만족도에서 제주가 지난 7년 1위를 굳건히 지켜온 이유로 충분할 것 같다.

2013년 생물해양학 및 실험 현장조사 '우도와 종달리 갯벌에서 채집한 해양생물'
2013년 생물해양학 및 실험 현장조사 '우도와 종달리 갯벌에서 채집한 해양생물'

2013-14, 제주탐험기!

오래된 기억을 꺼내 당시를 회상해봤다. 화창한 봄날 우리는 3박 4일간의 제주행에 나섰다. 학생들과 대학원생, 연구생까지 20인 가까이 참여하는 초호화 대장정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찾은 제주 바다였기에 나 스스로 감회가 새로웠다. 마치 고향을 찾은 듯 반갑고 기뻤다. 제주 바다는 여전히 아름답고 푸르고 풍요로워 보였다. 우리는 산호백사장과 땅콩으로 유명한 ‘우도’ 해변을 즐겼고, 제주에서는 보기 드문 ‘종달리’ 해변 모래갯벌도 경험했다.

특히, 종달리 갯벌은 화산섬 제주에서 연성(뻘보다는 모래 우세) 저질이 발달한 보기 드문 조간대 특성을 보인다. 조차가 작은 제주 바다에서 조간대가 넓게 발달하긴 어렵기 때문에 제주에는 갯벌이라 할 만한 곳이 매우 드물다. 종달리 해변 한쪽으로 발달한 암반은 부착성 저서생물도 많이 살기에 생물다양성이 높은 특성을 갖게 했다. 부착성 해조류도 상당히 많아 전반적으로 해양생물다양성이 매우 높은 곳이라 하겠다.

실습의 시간은 호기심 발동과 채집 욕심까지 더해져 매우 알찼다. 학생들 모두 신나게 갯벌과 암반을 누비며 각종 해양생물을 채집했다. 잘 모르는 생물을 발견할 때면 만져보고 찔러보고 쓰다듬어도 보면서 신기해했다. 제주 바다, 자연 그 자체를 즐겼던 유쾌한 기억이 새삼 그립다. 이후 우리의 행적은 여기서 줄인다.

첫 제주 실습에 참여했던 지은, 도연, 영철, 호상, 보람, 호종, 은실, 희중, 경준, 정현과 함께 자료와 추억의 감상문까지 고이 담아 제작한 ‘제주탐험기 1탄’ 소책자는 이제 보물이 됐다. ‘제주탐험기 1탄’에는 그 외에도 섭지코지, 성산일출봉 등 놀이시간도 살짝 담아서 추억을 소환하기에 제격이다. 나도 가끔 다시 보곤 하는데 볼 때마다 새롭고 젊어지는 느낌이어서 참 고맙다.

이듬해인 2014년 생물해양학 및 실험 실습지로 우리는 주저 없이 제주행을 다시 택했다. 당시 제주행과 각축을 벌인 곳은 울릉도였다. 아마도 학생들은 날아가는 비행기를 미끄러지는 배보다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주희, 의준, 주원, 우현, 홍은, 성중, 지은, 호석, 지운, 정현과 우리 연구실 식구 모두의 기억과 추억은 고스란히 ‘제주탐험기 2탄’ 소책자로 남겼다.

 

2023, 현재, 소통의 제주!, 이제 제2의 고향

다시 10년이 훌쩍 지났고, 올해 비로소 학부 실습지로 다시 제주를 찾게 됐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최근만 보면 지난 몇 해 동안 코로나로 실습 자체가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제주 실습은 더욱 알찼고 감사했다. 특히 소수 정예 6인의 학생이 참여했기에 좀 더 많이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었다. 함께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선경, 다인, 준희, 도연, 대웅, 현아가 당분간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남은 대학 생활만큼은 더 활기차고 건강하게 마무리하기를 바란다.

바다를 업으로 사는 지금의 내게 제주와의 지난 30년 인연은 동경, 치유, 탐험, 소통으로 차근차근 진화해 온 것 같다. 2021년 시작된 ‘과학기술기반 해양환경영향평가 기술개발’ 연구단장을 맡으면서 최근 2년간 탐라·한림 해상풍력단지 인근 해역 조사를 위해 수십 차례 제주 바다를 찾다 보니 이제 제주가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진다.

돌아보니 나는 오래전부터 바다가 주는 문화서비스를 부지불식간 받아왔던 것 같다. 그 경제적 가치는 새삼스럽게도 최근 연구를 통해 깨닫게 됐지만 말이다. 지난 2017~2021년 진행됐던 ‘해양생태계서비스 가치평가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남정호 박사팀 주도로 평가된 우리나라 바다의 문화서비스 가치는 연간 1조 4천여억 원임이 밝혀졌다. 물론 연구는 계속되고 그 가치도 증가할 것임은 자명하다. 작금의 기후변화, 해양위기, 탄소중립 시대에 바다의 가치와 역할은 계속 커질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보기 드문 독보적 아름다움, 풍요로움, 경이로움을 지닌 사랑하는 우리 바다를 함께 잘 지키고 가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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