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노르웨이 선박관리회사 한국인 최초 여 선장, Captain Lee, 대천해수욕장을 보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지냈던 그녀에게 바다는 친숙한 대상이었다. 아버지의 권유로 해양대학에 문을 두드린 여린 소녀가 이젠 6만 톤급 선박의 선장이 되어 리더로서 거친 바다도 아랑곳 않고 선상생활을 하고 있다.
“제가 승선한 선박이 산으로 가지 않기 위해 저의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할 것입니다 From Captain Lee” 여성 해기사로서, 앞으로 아이를 둔 여성 선장으로서 그녀 행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선장의 인생 항해에 Bon Voyage를 기원한다.
첫 승선 때 선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선장으로서 첫 승선은 어땠는지?
기억해보면, 첫 승선 때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여성 일등 항해사도 굉장히 극소수였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선장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일등 항해사까지만 하자는 마음은 먹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승선하면서 직업적으로 자부심과 재미 그리고 성취감을 느꼈고, 그 시간이 저를 선장까지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선장으로 승선한 첫 선박은 ‘모닝 파일럿(6만 5,276톤, 선박길이 200미터, 선박 폭 35미터)’ 호였습니다. 이 선박은 2014년에 건조된 자동차 운반선으로 유럽-아시아 간 정기항로를 운항했습니다. 선장으로 승선할 때 긴장감과 설렘이 가득했던 순간이 꿈만 같았습니다. 선장으로서 첫 배, 약 6개월 반 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하선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승선했던 선원들 덕분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회사의 전폭적 지지에도 감사합니다.
여성 해기사를 위한 회사 정책이 궁금하다
윌헴슨쉽메니지먼트코리아(WSMK)에서 여성 해기사 수는 대략 20여 명 될 듯합니다. WSMK는 육아와 승선근무를 지속시키기 위한 지원체계 만들고 여성 해기사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현재 구체적인 내용은 준비 단계이나 WSMK는 여성 해기사를 위해 다방면으로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다만 육아와 출산이후 승선 근무 지속성을 위해서는 여성 해기사뿐만 아니라 남성 해기사에게도 동일하게 정책지원이 필요해 보입니다.
여성 해기사가 배출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여성 해기사가 해상 근무를 많이 하지 않는 이유로 △승선예비역 혜택 등 남성 해기사들에게 편중되어있는 해양대학 입학제도 △해운업계의 남성 중심 문화 △여성 해기사를 정착시키기 위한 각 회사의 시스템 미흡 등 여러 단·복합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아직은 현실적 개선까지 많은 시간과 지원이 필요해 보입니다.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승선중인 여성 선배 해기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승선 기회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앞으로 후배 여성해기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선상에서 예절준수, 공·사구분, 철저한 자기관리, 직무 관련 투철한 책임감 등 작은 것이라도 실천해 나감이 여성 해기사의 입지를 발전시키는 또 다른 한 걸음이 될 것입니다.
요즘 젋은 해기사들의 생각과 해기사 직업의 매력화 방안이 궁금하다
주니어 해기사와 대화해 보면 △6~7개월의 장기 승선기간 △공간의 제한 △다양한 경험 부재 △사생활 보호 미흡 △권위적·보수적 분위기 등등 여러 부정적 입장이 대다수 입니다. 특히 해기사들이 육상에서 격리된 시간동안 남들보다 뒤처지고,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받는다는 생각이 큽니다. 이런 부정적 요소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것이 직업의 매력화 방안이라고 봅니다.
해기사 직업은 매력 있습니다. 타 직업군 대비 상대적으로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진급 등에 있어 공정성도 확보되어 있습니다. 고소득군에 속하고, 특별한 경험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전문성을 인정합니다. 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에 따른 자율운항선박 건조가 되더라도 해기사를 바로 대체할 수 없고, 그 기술을 관리·감독할 새로운 직업으로 생성될 것입니다.
주니어 해기사에게 긍정적인 요소를 홍보하고 이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해양대를 졸업한 해기사들 사이에서는 승선을 2년 내 끝낸다고 ‘2년 시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정도 승선 경력으로 다른 곳에서 경력자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은데, 이 점이 안타깝습니다.
인생의 롤모델이 있다면?
인생의 롤모델을 따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성실하고 착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승선 중에는 저에게 질문을 많이 하신 선장님이 기억납니다. 그 선장님은 직접적으로 알려주기보다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가 깨닫고 공부하게 만드는 방식을 추구했습니다. 그 선장님 덕분에 당시 선박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그 선장 자리에 선 후, 그 선장님으로부터의 배움에서 조금 변형하여 해기사들과 함께 공부하는 기회를 많이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승선 중 존경하는 선장님, 기관장님 포함하여 여러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장점들을 보면서 닮아가려고 노력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간 만났던 모든 이들이 저의 롤모델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승선하면서 우여곡절이 있었을 텐데, 중도 포기하고 싶었을 때 어떻게 극복했나?
2011년 2월에 대학 졸업 후 현재까지 승선 중입니다. 중간에 대략 2년 정도 육상에서 다른 일을 했었는데, 그 기간을 제외하면 10년 째 승선하고 있습니다.
사실 견뎠다기보다 즐기면서, 감사하면서 승선해서인지 크게 어려웠던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고, 재미있는 일들을 하는 순간순간이 행복했습니다. 물론 힘든 경우도 있었지만, 제가 승선을 포기할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대형선박의 항해사 혹은 선장으로서 중책에 대한 책임 완수와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이들을 극복하게 했던 힘이 된 것 같습니다.
아주 위험했던 순간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모면했나?
2등 항해사 때 중국 상해를 기항했었습니다. 당시 본선은 엔진을 쓰지 않고 드리프팅(Drifting) 중이었고 태풍의 간접적 영향권에 있어 바람에 의한 풍압력이 본선에 영향을 주고 있을 때였습니다.
짧은 조선 경험에서 본선의 선회반경 등에 지식을 숙지하지 않은 가운데 무리한 대각도 조선으로 충돌사고가 발생할 뻔 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대각도 조종에 따른 선박의 급 횡경사로 인하여 선장이 급히 선교에 올라와서 다행히 주변 묘박 중이던 상대선과 1~2 케이블 거리로 충돌을 면했습니다. 지금도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마음처럼 조선이 되지 않아 애간장을 태웠던 감정이 새록새록 합니다. 이 사건 이후로 선장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순간엔 언제든 부르는 것이 익숙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선장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나와 배를 타는 것이 즐겁다고 느낄 정도로, Captain Lee가 있는 선박의 선내 분위기가 좋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준비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장기 계획을 잡는 편이 아니라, 속단할 수는 없지만 당분간은 승선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같은 회사 선장 출신인 (미래)남편과 내년에 결혼하고 출산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출산 이후에도 승선하려고 합니다. 남편이 육아도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