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성 IPCC 의장, “기후변화, 기술보다 사회적 임계점이 중요”
이회성 IPCC 의장, “기후변화, 기술보다 사회적 임계점이 중요”
  • 박종면 기자, 김엘진 기자
  • 승인 2023.07.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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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정보와 기술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이회성 회장
이회성 IPCC 의장. 사진_박종면 기자

[현대해양] 기후변화가 전 세계인의 핫 이슈로 떠오르며 주목받고 있는 국제기구가 있다. 바로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다. IPCC는 1988년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 설립한 국제기구로 인간 활동에 대한 기후변화의 위험을 평가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전 세계 과학자가 참여·발간하는 IPCC 평가보고서는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와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정부 간 협상의 근거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구의 의장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이회성 IPCC 의장은 1945년 충남 출신으로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을 거쳐 에너지경제연구원 초대 원장을 역임했으며, 계명대와 고려대의 교수직을 맡기도 했다. 그는 2015년 10월 6일부터 제6대 IPCC 의장으로 활동했으며 이달 말 공식적으로 임기가 종료된다.

임기 종료 후에는 기후변화 문제의 본질에 대해 더 생각할 시간을 가질 계획이라는 이 의장은 “IPCC 한국 담당부처인 기상청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은 IPCC뿐 아니라 기후 관련 국제 논의에서 그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라며, “차기 의장 역시 IPCC의 공정성을 더욱 잘 지켜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2022년 6월 9일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회성 의장
2022년 6월 9일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회성 의장

IPCC의 역할과 국제적 위상은?

IPCC를 일종의 연구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꽤 많습니다. 물론 우리는 보고서를 발표하지만, 이는 우리가 연구한 단독 보고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나와 있는 여러 연구 자료 논문을 평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논문을 읽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고,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나누는 것이 IPCC의 역할입니다.

IPCC 평가보고서에 대한 믿음은 이미 전 세계에서 확고합니다. 따라서 IPCC 보고서는 전 세계 각국의 기후 정책 방향을 잡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IPCC는 기술과 에너지원에 관한 중립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큰 특징입니다. 어떤 특정 기술을 선호하거나 매도하지 않으며, 특정 에너지를 선호하거나 불호하지도 않습니다.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 참가한 이회성 의장(왼쪽)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 참가한 이회성 의장(왼쪽)

어떻게 IPCC와 인연이 됐는지, IPCC 의장으로서의 성과도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IPCC와의 인연이 35년이나 됐네요. IPCC 내에서도 저만큼 오랜 경험을 지닌 사람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저는 당시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원장직을 맡고 있었고, 워킹그룹에서 공동의장직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지구온난화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건 에너지 문제’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IPCC가 만들어지고, IPCC에 들어오면서 에너지 측면에서 기후변화를 제대로 보게 된 것이죠.

성과라고 하면 2018년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IPCC 총회에서 승인된 ‘1.5도 특별 보고서’ 발표로 탄소 중립의 당위성을 제공한 부분을 들 수 있겠네요. 이로 인해 전 세계 지도자들이 탄소 중립 선언을 하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난 3월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종합보고서를 발표한 후 세계 정상들이 기후 정상화 행동을 강화하게 됐습니다.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Patricia Espinosa UNFCCC 사무총장, Abdulla Shahid UN 총회 의장, Carolina Schmidt 전 칠레 교육장관과 함께한 이회성 의장(왼쪽부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Patricia Espinosa UNFCCC 사무총장, Abdulla Shahid UN 총회 의장, Carolina Schmidt 전 칠레 교육장관과 함께한 이회성 의장(왼쪽부터)

IPCC 종합보고서의 방향성은 어떻게 잡는가?

가장 최근에 나온 게 6차 보고서인데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 쓴 보고서는 2차 보고서였어요. 당시 보고서부터 지금까지 일맥상통하는 한 가지 방향성이 있었어요.

바로 목표를 세울 때 현시점에서 앞으로 100년 동안의 베스트 솔루션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항상 현시점에서 가장 합당한 조합을 찾지만, 이 조합 역시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정보가 등장하면 계속해서 변화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방향성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문제를 접할 때 ‘가장 최적의 장기적 방안’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렇지만 장기적 방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도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있을 때 우리나라 장기 에너지 대책 등에 깊이 관여했는데, 막상 장기 에너지 대책이라는 것도 장기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발전소가 하나 들어서면 향후 30~40년간 가는 방향이 이미 정해져 있는 거죠.

 

2050 탄소 중립을 이루지 못한다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현재 지구 온도가 1.1도가 올라간 상태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미 파키스탄의 1/3이 물에 잠기는 사태가 발생했고, 미 서부 지역의 가뭄이 심각해 물 배급 이야기까지 나온 상황이죠. 전 세계적으로 산불도 더 자주 심하게 발생하고 있고요.

1.5도가 올라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바다를 예로 들어보죠. 산호초는 굉장히 온도에 취약합니다. 이미 상당부분 백화현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도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1.5도가 올라가면 산호초가 사라지는데, 이 산호초는 해양생물의 아파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을 잃은 해양생물들이 사라지면 먹이사슬이 파괴되고,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의 식량안보에도 문제가 생기는 거죠. 또한, 바다의 산성도가 높아지면 새우나 조개 등 딱딱한 껍질을 가지고 있는 생물에 문제가 생깁니다.

육지 생활에도 직접적 관계가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건축할 때는 100년에 한 번 발생할 수 있는 큰 홍수를 이겨낼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건물을 설계하게 됩니다. 그러나 온난화가 심화하면 이 큰 홍수의 빈도수가 30년에 한 번, 10년에 한 번으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죠. 물론 강도도 강해지고요. 실제 그런 홍수나 가뭄이 등장하면 인간은 문자 그대로 생존이 위협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회성 IPCC 의장

온난화 현상이 서서히 진행되면 그 변화에 적응할 가능성은 없을까?

분명 적응하는 생물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변화를 기후변화의 속도와 생태계 적응 속도의 전쟁이라고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IPCC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전쟁에서는 기후변화가 훨씬 더 앞서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점이 심각한 문제죠.

사실 변화하는 온도의 폭이 그리 커 보이지 않잖아요. 기껏해야 1도, 2도 올라간다고 그러니까요. 그런데 지금 전 세계 과학자들이 이렇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이유는 바로 1.1도가 올라가는 데 걸린 시간이 겨우 150년이라는 데 있습니다. 1.1도가 올라갔다는 기준은 바로 1850년대, 산업혁명 시점에 비해서입니다. 인간이 역사를 기록한 이후 처음 있는 큰 변화입니다. 또한, 지금 우리의 온도는 빙하기보다 5도 오른 상태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1~2도 차이가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입니다.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기술개발도 시급할 것 같은데…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기술에 관한 연구 개발은 지금도 많은 곳에서 열심히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지하 저장소에 영구저장을 한다거나,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지하 저장소에 묻거나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기술도 있고요. 또한, 암모니아 등을 활용한 일종의 에너지 저장 기술도 개발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기술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기술이 필요한 그 시점에 사회적으로 허용이 될지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허용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많은 것이 변합니다. 기존에 있던 부의 배분에 차이가 발생하고, 새로운 승자와 패자가 만들어지고, 이로 인해 갈등이 생기죠. 이는 과학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며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승자와 패자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면 기후문제 해결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기후변화 문제의 경우에도 CO2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은 새로울지언정 이에 따른 해결과 노력 부분에서는 지금까지 발생했던 모든 문제와 같습니다. 기술은 해결될 거고, 5년 뒤 어떤 새로운 기술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로 당장 특정 기술을 선정해 집중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IPCC 보고서는 어떤 노력을 해도 앞으로 20~30년 동안은 지구 온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봅니다. 20년 정도 후엔 1.5도까지는 올라가겠죠. 다만 그 이후의 상황은 현재 우리의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그건 현재 배출되는 탄소가 온도 변화까지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시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당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기술을 투입해야 합니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한데 경제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기술과 경제성에는 문제가 없는데 사회적인 수용성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사회적 수용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저는 이 사회적 수용성 부분을 임계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20대 튀니지 상인의 분신이 아랍의 봄을 촉발한 것처럼 사회에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 사회적 임계점이 있습니다. 기후변화 문제에서도 이러한 사회적 임계점이 발생해야 전 세계의 기후변화 행동이 커질 것이라고 봅니다.

예전에 프레온 가스의 오존층 파괴 여부와 피해에 대한 논란을 기억하십니까? 그런 주장이 나온 초반에는 프레온 가스 관련 회사들의 저항도 심했고 사람들의 반응도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오존층에 구멍이 나고, 오존층 파괴가 피부암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입증한 뉴스가 등장했습니다. 성층권의 문제가 개인의 건강의 문제가 되어버린거죠. 그게 사회적 임계점이었고, 결국 프레온 가스는 사용이 금지됐죠.

기술은 언제든 대체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임계점과 사회적 수용성입니다.

 

갯벌을 비롯한 신규 탄소흡수원이 국제인증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최근 블루카본이 강조되고 있는데 새로운 기술을 찾는 일은 긍정적인 일이라고 봅니다. 이제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표준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겠죠. 블루카본에 해당하는 식물별 흡수력을 검증하고, 이를 표준화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과정이 남아있겠습니다.

모든 게 속도가 관건입니다. 우리는 지금 기후가 변화하는 속도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빨리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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