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뱃길, 백년 선박 우리나라는?
천년 뱃길, 백년 선박 우리나라는?
  • 김현식 유도선안전협회 부회장
  • 승인 2023.07.0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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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유도선안전협회 부회장
김현식 유도선안전협회 부회장

[현대해양] 가평군은 오는 9월부터 ‘북한강 천년뱃길사업(이하 천년뱃길사업)’을 시작한다. 유도선으로 북한강 수계 최초의 댐인 ‘청평댐’부터 자연경관이 빼어난 ‘자라섬’까지 연결하여 지역주민의 교통편의 제공과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함이다.

지난 4월에는 이 사업의 성공적 운영과 해외 유수 사례를 배우고자 가평군수 및 관계 대표자들과 다뉴브강을 접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를 시찰했다. 다뉴브강은 우리나라 북한강처럼 선박이 운항하는 강이다. 이 강은 총 10개 국가와 접해 있는데, 특히 방문한 3개 국가는 문화, 예술, 환경, 역사를 바탕으로 유도선 사업과 관련 부수 산업이 세계적으로 활발하고 발달된 곳이다.

헝가리에서 ‘Europa Rendezveny Iroda Kft.’ 및 ‘Panorama-Deck Kft.’ 등 이벤트 기획 및 유람선을 운영하고 있는 선사를 방문했고, 이 회사대표(A 씨)와 유도선 사업 얘기를 나눴다. A씨는 부친 사업을 물려받았는데 100년이 넘은 선령의 증기선을 포함하여 총 8척의 선박과 3개의 부두를 이용하며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와 식음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체 다뉴브강 중 28km에 달하는 부다페스트 구간에만 100여 개의 유사 유람선사가 운영 중이었다. 부다페스트 구간과 비슷한 규모의 국내 구간에서는 겨우 3~4개 유람선사가 운영되고 있는 점에서 유도선사업 활성화에 관한 확연한 차이를 실감했다. 한편 얘기 도중 그는 사업의 고충도 토로했다. △정부의 규제 △숙련 인력의 부족 △엄격한 선박검사 △타 선사와의 경쟁 등 신기하게도 국내 유도선사업자의 고민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에 A씨에게 최근 우리나라 유도선사업자들의 큰 고민인 선박의 선령제한 제도가 헝가리에도 있는지 물었다. 2019년 헝가리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사고 시 사고선박은 1949년 건조되어 선령이 70년 된 선박이었고 당시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연일 선령 때문에 사고 난 것으로 보도됐기 때문이다. A씨는 해당 사고는 선령과 무관하고 헝가리에서는 운항선박의 선령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헝가리에서는 유람선사 자체적으로 엄격한 선박관리를 하거니와 정부의 까다로운 선박 검사를 통과해야 운항할 수 있다고 한다. A씨로부터 들은 헝가리 정부의 유도선 검사는 우리나라의 선박검사 기준과 큰 차이가 없었다.

A씨의 안내로 선령 100년 선박에 승선할 수 있었다. 예스러운 풍취와 자태에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릴 수 없었다. 실내는 오랜 시간동안 많은 이들을 포용했던 것만큼 아늑함이 느껴졌다. 선령 100년이라는 불안감은 다뉴브강 주변의 고(古) 성당, 궁전, 성곽 등과 어울려지며 잊혀졌다.

이탈리아에서는 북한강과 유사한 유도선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코모호(Lago di Como)를 방문하였다. 코모호는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호수로, 한해 5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이탈리아 대표 호반 관광지였다. 코모호에 가까워질수록 수려한 산세와 고풍스러운 가옥, 청아한 호수까지 일생에 한 번은 이 호수에 몸을 맡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코모호는 헝가리 다뉴브강과 달리 유도선 사업을 이탈리아 정부(Ministero delle Infrastrutture e dei Trasporti) 산하 공기관(Gestione navigazione laghi Maggiore, di Garda e di Como)에서 도로, 철도, 항만 등 다양한 교통수단과 교통정책을 통합 운영·관리하고 있었다.

헝가리 다뉴브강에서 유도선 사업은 유람관광이 주였다면, 이탈리아 코모호는 일부 유람관광을 제외하고 선박을 통한 교통수단의 목적이 컸다. 이탈리아 공기관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주요 경유지와 운항시간은 물론 열차 및 버스 등 타 교통수단과의 연계 스케줄이 일목요연하게 안내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자체 정비창 및 상가(Docking)시설까지 갖추고, 운항 선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본인들의 업무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탈리아 공기관 관계자들에게도 한국의 운항선박의 선령제한 제도를 설명하며. 이탈리아의 관련 제도를 문의했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선령제한제도를 의아해하며 이탈리아에는 관련 제도나 기준은 없다며, 오히려 이탈리아 국경에 접한 스위스를 오가는 증기기관 열차가 오면 100년 가까이 된 증기선박과 연계하여 관광요소를 더하고 있다고 회답했다. 우리는 곧이어 1926년에 건조된 증기선박을 둘러봤다. 선장실 내 오래된 구식 조타기와 기관실과 소통하기 위해 연결된 파이프, 선박 좌·우현 변속기 등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옛 선박 장비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관실 증기기관은 녹 하나 없이 잘 관리되고 있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혹시 현재 선박관리나 운항관리 시스템에 문제는 없을까 해서 공기관 관계자에게 과거와 달라진 강화된 현재 관리규정 등의 준수를 물었다. 관계자는 선장실에 있는 레이더, 무선통신장비, 지피에스(GPS) 항법장비 등을 보여주며 “선박은 비록 오래됐지만, 선박 내 장비 및 설비들은 현재 규정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헝가리와 이탈리아를 들리면서 북한강 천년뱃길사업과 우리나라에서는 선령 100년 된 선박이 운항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1위 조선(造船)국가이고, 친환경 선박 건조에서 세계 1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든 선박을 스스로 믿지 못하는 형상인 셈이다.

우리나라 여객운송용 선박의 선령제한은 강선을 기준으로 20년이다. 이를 초과할 경우 5년 동안 매년 강화된 검사를 받아야 하고, 이후 5년은 매년 관리평가를 통과해야 운항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운항하더라도 최대 운항 가능한 선령은 30년이다.

그동안 선령으로 인한 선박사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국내외 대형 여객선 사고를 살펴보면 타이타닉호, 남영호, 서해훼리호 등 모두 선령 3년 이내였다.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사고 통계를 보더라도 선박사고 원인의 80% 이상이 인적 과실이었다.

선박운항의 가부를 단순히 선령의 잣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선박운항을 선령 20년이나 30년까지 막연하게 보장해서도 안 된다. 선진 유도선 국가를 방문하며 선령이 선박운항의 주 기준이 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 선령에 따른 검사기준을 차별화하고 선령에 따른 검사의 강도를 조정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선박은 선령과 무관하게 운항하지 못하도록 조치돼야 한다.

선주 입장에서 잘 관리해 왔던 선박이 선령제한이라는 이유만으로 운항하지 못해 강제적으로 폐선처리 되어야 한다면 선령제한 제도는 선주의 적극적인 선박관리를 오히려 반(反)하게 하는 정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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