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해양개척과 생물 멸종의 잔혹사
인류의 해양개척과 생물 멸종의 잔혹사
  • 박진순 한국해양대 해양환경학과 교수
  • 승인 2023.06.1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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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순 한국해양대 해양환경학과 교수
박진순 한국해양대 해양환경학과 교수

[현대해양] 선사시대 인류의 해양개척

인류가 해양을 개척한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가장 오래된 물적 증거는 무려 13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에서 2009년 사이에 걸쳐 크레타 남부에서 이루어진 고고학적 조사에서 중석기시대에 해당하는 다양한 석기류들이 발견되었다. 크레타섬은 최소 50만 년 이상 그리스 본토와 분리되어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해당 발견은 어떠한 형태로든 원양에서의 항해가 이루어졌으리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배를 이용하였을 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알려진 가장 오래된 배의 기록들은 고대의 암각화에서 찾을 수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고대 유적지에서는 23명을 태운 갈대배를 묘사한 것 같은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추정되는 연대는 약 1만 년 전이다. 또한 이집트 아스완 근처, 6,000년 이상 오래된 유적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된 선박의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선원들 개인마다 노를 젓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학자들에 따르면 선박의 형태와 노의 존재를 고려해 볼 때 자력으로 항해할 수 있었을 것이라 한다.

 

위대한 항해민족, 섬 정복자

흔히 ‘바다의 정복자’라고 하면 유럽의 바이킹 또는 대항해시대의 유명한 탐험가들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뛰어난 항해술로 그들보다 훨씬 먼저 대양을 누볐던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태평양 여러 섬의 원주민들이다.

영어로 통상 ‘Pacific Islander’라고도 하며, 인류학적 구분으로는 오스트로네시안이라 일컫는다. 이들은 오스트로네시아어계 언어를 모어로 하며, 마이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등의 오세아니아 지역 뿐 아니라 마다가스카르, 인도네시아 및 필리핀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에 분포해 있다.

이들은 근대적인 항해 도구 없이 섬과 섬 사이를 옮겨 다니는 신기에 가까운 항해술을 가졌는데, 약 300km 떨어진 거리에서 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영화 ‘모아나’에서 주인공의 항해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원래 거주하던 어떤 섬을 떠나왔다는 전설들이 태평양 여러 섬들에 전해져 온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이들이 원래 거주하던 곳은 하와이키(Hawaiki)라는 섬이었는데, 전쟁과 기근으로 인해 배를 타고 새로운 섬을 찾아 나선 부족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하와이(Hawai) 역시 같은 의미의 단어로 알려져 있다. 최근의 인류학 및 언어학 발전에 따른 유력한 가설은 오스트로네시안이 BC 3,000년경 대만으로부터 기원하였으며, BC 1,500년경까지 대규모의 이주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하와이키/하와이’는 고향, 영혼, 서쪽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니 어떤 의미에서는 ‘하와이’라는 이름은 대만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도 있겠다.

 

위대한 여정, 잔인한 멸종

대중의 인식 속에서 자연의 무분별한 파괴와 생물의 멸종은 식민지 개척과 근대적 산업화 등 소위 서구인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에 반해 원주민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존재로서, 생물의 멸종과는 별 관련이 없을 것으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최소한 태평양 여러 섬들에서 일어난 일들은 그렇지 않았다.

오스트로네시안들 중 태평양의 가장 먼 섬을 정복한 것은 폴리네시안이었다. 이들은 정착에 필요한 여러 작물과 가축을 카누에 실어 새로운 섬을 찾아 나섰는데, 섬의 입장에서 이들 작물과 가축들은 외래종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고유종들이 멸종의 길을 걸었는데,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예로 ‘모아’를 들 수 있다.

지상 최대의 조류로서, 가장 큰 종인 자이언트 모아의 경우 키 3.6m에 몸무게 230kg의 거구를 자랑하였다. 이들은 13세기 초 마오리족이 뉴질랜드에 처음 발을 들인 이후 삼림 감소와 남획 등으로 급속히 그 숫자가 줄어들어 불과 수백 년 만에 멸종하고 만다.

모아를 주 먹이로 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거대 독수리인 하스트 수리 역시 모아의 멸종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하와이의 경우 여러 고유종의 새들이 멸종하였으며, 이스터 섬의 경우에는 고유종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

 

대항해 시대, 계속되는 멸종

대항해시대의 탐험가들은 폴리네시아 원주민들과 달리 거대한 범선과 다양한 항해 장비를 활용하여 보다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항해를 했다. 그러나 빨라진 것은 항해의 속도와 무역만은 아니었다. 어떤 생물에게는 그만큼 더 멸종의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대항해시대 초기의 희생자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예가 1507년에 최초로 발견된 도도(Dodo)새이다. 모리셔스 섬에 서식했던 날지 못했던 새 도도새는 칠면조보다 더 컸다. 고기나 모피 등의 수요로 인해 남획되었던 다른 생물과는 달리 도도새는 맛이 없기로 유명했으며, 그 숫자가 격감한 이유 중 하나는 선원들이 이들을 재미로 죽였다는 것이다. 이후 도도새는 쥐, 돼지, 고양이 등의 외래 포유류들이 유입되면서 1681년을 마지막으로 멸종하고 만다.

해양포유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북태평양 베링해에 서식하던 스텔라 바다소(Steller’s Sea Cow)는 여러 면에서 매우 안타까운 멸종동물이다. 듀공 및 매너티의 근연종이면서 그 몸길이가 9m, 몸무게가 8~10톤에 이르는 거구로서 일반적인 시내버스 정도의 덩치를 갖고 있었다. 너무나 순한 성격에다가 고급 소고기에 비견될만한 고기 맛으로 인해 남획되었으며, 이로 인해 최초 발견 후 고작 27년 후인 1768년에 멸종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인류는 해양을 개척하고 이용하면서 수많은 생물을 희생시켰다. 근대적 기술의 발달 이전부터 그러하였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생물 멸종의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더 늦기 전,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에 대한 행동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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