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 대기자 남달성의 회상 5. 폭풍대 앞에서 왜소해지는 남북호
수산 대기자 남달성의 회상 5. 폭풍대 앞에서 왜소해지는 남북호
  • 남달성 대기자
  • 승인 2023.05.1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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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릴새우 잡이배, 자연과 싸우다
빙붕
빙붕

[현대해양] 우리나라로서는 유사이래 처음으로 남극해 항해에 도전한 선령 5년의 남북호. 선체 길이 110m에 5,700마력의 엔진 성능을 지닌 남북호는 안전항해를 위한 각종 계기를 갖춰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어선이다. 그러나 대양을 가로지르는 폭풍대와 대륙 연안 측의 빙붕(氷崩), 레이더에도 나타나지 않는 무수한 빙괴(氷塊),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시계(視界) 등 남극해의 대자연 앞에서는 일엽편주에 지나지 않았다. 선원들은 북양어장을 남극해와 비교해 ’문전옥답‘(門前沃畓)이라고 비유할 정도.

남북호가 항해 도중 첫 위기를 맞은 것은 폭풍대였다. 1979년 1월 5일 오후 5시 40분경 남위 43도 48분, 동경 108도 44분까지 진입했을 때였다. 조금 전까지 초속 14m이던 바람은 순식간에 18~20m로 강하게 불어댔다. 야간 항해는 고달프다. 배는 전속으로 어장을 향해 치닫는다. 롤링(배가 옆으로 흔들리는 것)이 심해 잠자리가 몹시 불편하다. 다음날 아침 현창을 통해 본 바다는 어제 저녁보다 상당히 거칠어져 있다. 배는 마치 장애물을 뛰어넘는 길 안 든 말처럼 뒤뚱뒤뚱 피칭(배가 앞뒤로 흔들리는 것)도 한다.

남북호
남북호

외마디 소리치는 60도

앞으로도 어장까지의 거리는 700해리(1해리는 1,852m). 조타실의 명령은 전속임에도 불구, 워낙 악천후여서 시간당 3.6노트를 항해했을 뿐이다. 방금 받아 쥔 팩시밀리 기상도는 기압 경도가 심해 황천항해(荒天航海)는 불을 보듯 빤한 일이었다. 이 같은 날씨가 계속되면 어장 도착까지는 10일 이상이 걸릴 것 같다. 파도는 더욱 뱃전을 두드린다. 지금 항해하는 이 해역은 연중 심한 저기압이 자리하는 폭풍대. 남위 30도 부근의 중위도 고기압과 남극대륙에 상존하는 고기압 사이의 40~60도를 훑는 이 저기압은 항해 선박들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다.

옛 탐험대들은 이 해역을 ‘포효하는 40도’, ‘미친 50도’, ‘외마디 소리치는 60도’라고 일컬어 왔다. 무모한 항로 도전을 했던 남북호는 어쩔 수 없이 선수(船首)를 돌려 옛 탐험대들의 전초 기지였던 프랑스령 케르겔른(남위 50도 동경 70도 35분) 동남쪽 500해리까지 서진, 등압선을 가로질러 어장을 향했다. 윌크스에서 며칠간 조업을 끝내고 엔더비 연안에서 대어군을 발견, 한참 조업을 할 무렵 또 한 차례 저기압과 싸워야만 했다. 1979년 1월29일, 남북호는 남위 66도 2분, 동경 58도 32분의 엔더비 연안에 도착, 하루 50~60톤씩 잡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30일 오후 8시경 풍속은 초속 18~20m, 5~6m이던 파고는 더욱 높고 거칠어졌다. 구름은 온통 하늘을 뒤덮고 눈보라까지 뿌리고 있었다. 조업은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바람이 초속 24m까지 불어댔다. 드디어 피항 길에 올랐다. 선수 쪽엔 대륙 연안에서 길게 뻗은 빙붕이 깔렸고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 수많은 빙괴가 파도더미에 휩쓸려 눈으로 찾기엔 거의 어려웠다. 배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피항한다. 날이 밝았다. 아침 7시 30분경 바람은 순간 최대 풍속(초당) 43m를 기록했다. 배는 반쯤 가라앉은 상태에서 전진했다.

너무나 세찬 바람 때문에 배는 키 조작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선수가 우현(右舷) 35도로 팩 돌아간다. 인위적으로 다시 되돌릴 수가 없다. 시계는 불과 30~50m, 기압은 948밀리바(mb). 지난 1961년 남해안을 강타한 사라 태풍의 중심기압 960밀리바 보다 더 무섭다. 남북호는 하는 수 없이 바람을 등지고 저기압 중심을 향해 달아날 수밖에 없다. 저기압 중심대에는 무서운 삼각파도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하늘이 보살폈는지 용케 화를 면했다.

빙산은 눈 또는 레이더로 직접 확인할 수 있지만 빙괴는 그렇지 않다. 수면 위로 나타나는 것은 얼마 안 되지만 수면 아래쪽은 5배 이상이나 크다. 그래서 항해는 더욱 아슬아슬했다. 피항길 20시간이 지난 오후 4시경 기압은 서서히 오르고 저기압 중심은 선수 우현 60해리를 두고 관측됐다. 다음날(2월 1일) 아침이 됐다. ‘찌르륵 찌르륵’ 어군탐지기는 다시 작동한다. “난생 처음 겪는 파도”라고 한 노수부가 말했다. 선내에는 다시 웃음꽃이 핀다. 그러나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얼마 안가서 바다는 또 한 번 뒤집히고 말았다.

선미에서 그물을 끌며 크릴 어로에 여념없는 남북호. 배 뒤로 빙산이 보인다.
선미에서 그물을 끌며 크릴 어로에 여념없는 남북호. 배 뒤로 빙산이 보인다.

저기압 하루 400해리 이동

2월 9일. 이날도 여느 때와 같이 작업은 계속됐다. 오전 11시 남아프리카 프레도리아에서 발신하는 기상도를 받았다. 이 기상대는 위성중계로 각 지역의 자료를 받기 때문에 대체로 정확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 기상도에 그려진 저기압 중심기압은 960~965밀리바였다. 그 기압은 동경 27~60도의 광활한 해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배는 저기압 중심대로부터 320해리 정도 떨어져 있었으나 이 기압의 이동 속력은 하루 300~400해리로 추정된다. 남극해의 한여름철 저기압 이동속력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다.

또 늦여름(2월)에는 약 700해리, 한겨울에는 최고 1,000해리까지 이동한다는 얘기다. 갖가지 방법으로 이 저기압을 분석한 결과 전번 것에 비하면 초대형급이었다. 지금 당장 피하지 않으면 하루가 지나기 전에 남북호는 저기압 권내에 들어간다. 낮 12시, 파도는 점점 높아진다. 특히 이번 저기압은 대륙 연안과 폭 10~20해리 간격을 두고 동진하기 때문에 현 위치에서 잘못 피항하다간 연안쪽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그곳에는 무수한 빙붕이 대륙 연안을 따라 줄을 잇고 있다. 결국 센바람이 불기 전 동북 방향으로 피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결론이다.

“그물을 걷어 올려라” 황급한 어로장의 목소리가 선내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졌다. 파도는 조금 전보다 더 세게 휘몰아쳤다. 저기압이 점점 남북호를 앞질러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다음날 아침 기상도에는 바로 전날 어장이 정확히 저기압 중심대임을 나타냈다. 남북호가 마지막 육지를 본 것은 작년 12월 29일. 인도네시아 코코스지방 동북쪽으로 530해리 떨어진 호주 크리스머스 섬(남위 10도 36분 동경 105도 4분)이었다. 선수 좌현 약 5해리까지 접근된 이 섬은 3시간 항해 후 거의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가물거렸다.

이때 눈앞에 다섯 마리의 알바트로스가 나타났다. 우리나라 연안 갈매기보다 훨씬 커 날개 길이만도 큰 놈은 2.4m나 된다. 부리는 진노랑색, 배 밑부분과 윗 날개에 흰 반점을 띤 이 갈매기는 길손을 환송하듯 긴 날개를 너울거린다. 남극해의 대표적 빙괴는 탁상빙산을 비롯, 빙하빙산 그리고 노빙산들이다. 이들은 수온이 영하 1도 이상(영하 1.9도에서 언다) 높아지는 여름철이 되면 해류를 따라 대륙쪽에서 북으로 이동한다. 얼음으로 뒤덮인 남극대륙 주변에는 해빙역이 있다. 여름철엔 약 500만 제곱킬로미터, 겨울철엔 약 2,000만 제곱킬로미터로 불어난다.

높이도 1년에 1.5m 가량씩 커지고 해류와 바람의 영향으로 이동하는 얼음의 속도는 시속 3~4노트(1노트 1,609m). 이동범위도 넓어 1894년 3월 30일에는 남위 26도 30분, 서경 25도 40분까지 떠내려 간 적이 있고 1927년 1월 7일 영국 포경선 오터1호가 발견한 길이 185km(100해리가 넘는다), 높이 43m의 탁상 빙산이 지구 생성이후 가장 큰 것으로 보고돼 있다. 그러나 이 빙산도 최근 들어 사람을 위한 이용물질로 등장하고 있다. 아랍 공화국 같은 데선 실질적으로 사막의 농업용수로 활용할 연구가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남극해 포경어업이 1920년경까지 흰수염고래 등 약 50~60만 마리가 바다생물의 왕초 노릇을 해 왔으나 이들 자원의 급격한 감소로 쇠퇴일로에 놓여있다. “고래 있는 곳에 크릴 있고 크릴 있는 곳에 고래가 있다”는 말을 유추하더라도 이들의 상관관계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크릴’이란 이름도 노르웨이인들이 ‘고래의 먹이’란 뜻으로 명명한 것이다. 남북호가 윌크스 연안에서 엔더비로 이동하면서 본 고래들도 대부분 흰수여고래와 긴수염고래들이었다. 지금도 500~600톤급 소련 포경선들이 남극해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고기잡이가 그리 쉽습니까. 육지의 높은 사람들은 배만 띄우면 만선을 당연시합니다만 고기가 잡히지 않을 땐 선장들은 침실 문을 잠그고 눈물짓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선미 쪽에서 엔진소리만 은은히 들릴 뿐 정적이 흐르는 선실에서 이문기 선장은 말한다. “흔히들 어선과 상선을 비교해 상선 우위를 얘기하는데 정말 바다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들이 어선 선원들보다 나은 보수를 받고 항구를 두루 다니며 관광을 겸해 즐기는 것은 훨씬 낫지요. 그러나 어선들은 황파와 싸우면서도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존재 의의를 찾을 수 있지요”

남십자성과 북두칠성이 서로 비슷한 고도로 각각 반대편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총총한 은하수가 남십자성에서 오리온좌를 엇비슷이 지나 북으로 길게 흐르는 대양의 달밤. “그래도 고생 끝에 선수가 바닷속으로 푹 박힌 채 만선이 돼 입항하는 날이면 지난 일을 모두 잊고 뿌듯한 기분이 듭니다. 뱃사람 아니면 그 기분은 아무도 모르지요.” 사실 그렇다. 1년이래야 고작 한 달 정도를 뭍에서 생활하다 다시 바다로 뛰쳐나와야 하는 뱃사람들의 고충을 누가 속속들이 알겠는가. 때론 남극해에도 고요하고 바람 한 점 없는 무풍지대가 이어진다.

크릴 어획물 양망 모습
크릴 어획물 양망 모습

험난한 남극해

사람이 사는 지구 한쪽, 문명세계와 동떨어져 생활하는 선원들의 즐거움은 그런대로 고향에서 보내는 전보와 식사뿐이다. 어선은 보통 하루에 네 끼 식사를 한다. 처음에는 좀 빠른 듯 했지만 며칠 익숙해지다 보니 오히려 건강 유지에도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식사시간이 배생활의 한 때입니다. 그래도 속상하지 않고 웃으며 시간 보낼 수 있으니까요.” 꼭 5년간 이 배를 탔다는 어느 처리원의 얘기다. 태풍을 맞받은 남북호는 2월 9일 피항길에 올랐다. 3일간의 피항 끝에 더 이상 어장까지 갈 수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아쉽지만 선수를 북으로 돌린 것이다.

조업을 마치고 회항하는 길에 남북호 선내 식당에서는 크릴 요리 시식회가 열렸다. 식탁 위에는 처음 보는 크릴튀김과 장조림 빈대떡 부침 말린 크릴 등이 마련돼 군침이 돌았다. 양파 호박 등 채소와 섞어 만든 빈대떡은 막걸리 안주로 제격이다. 양념 없이 바싹 말린 크릴은 제대로의 새우맛을 내 맥주 안주감으로 좋다. “부산시 남포동 같은 데서 요리한 것과 전혀 차이가 없어요. 맛도 있고 영양가도 높으니까 시판하면 꽤 잘 팔릴 겁니다” 한 손에 집게를 든 채 지글지글 굽히는 빈대떡을 뒤엎던 조리장 김현곤 씨(29)는 요리사다운 품평을 내린다.

이번 남북호의 남극해 진출의 뜻은 깊다. 200해리 경제수역 선포로 위축일로를 걷던 원양어업의 활로를 트고 국민 단백질 공급원을 새로 확보할 수 있었다는 데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남북호의 총어획량은 510톤. 목표 어획량 1,500톤에 크게 미달된 것이 옥의 티라고 말한다. 굳이 설명하자면 실조업 일수가 17일 밖에 안 될뿐더러 폭풍과 저기압에 쫓겨 다니느라 큰 힘을 소진한 것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것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남북호가 크릴 어획실적을 FAO(세계 식량기구)에 보고함으로써 1980년 11월 그토록 들어가기 힘든 남극 해양생물자원 보존에 관한 협약에 가입한 것이다.

이어 1988년 2월에는 킹 조지아 섬에 세종기를 세웠고, 2014년 2월엔 세계 열강들이 활약하는 남극대륙의 테라노바만에 장보고기지를 설립했다. 이에 앞서 2002년 4월에는 북극에 있는 노르웨이령 스피커 베르겐섬에 다산기지를 세웠다. 이같은 실적이라면 남북호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 험난한 남극해에서 크릴을 잡았고 대과 없이 돌아왔다.”

허종수 단장의 힘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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