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바다의 로또? 해양 환경 지킴이?
고래, 바다의 로또? 해양 환경 지킴이?
  • 김엘진 기자
  • 승인 2023.05.12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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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 관점의 점진적 해결 방안 마련 필요해”
그물에 걸린 밍크고래
그물에 걸린 밍크고래

[현대해양] 유럽 의회는 고래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기로 했다. 2020년 2월 1일 발효된 금지령에 따르면 유럽 연합 내 모든 고래류의 수입·수출·운송이 금지됐다. 유럽 의회의 이러한 결정은 고래류 제품의 국제 거래 종식의 단계에 들어왔다는 사실과 고래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달 25일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해상에서 밍크고래 한 마리가 그물에 걸려있는 것을 어민이 발견했다. 해경은 ‘고래류 처리확인서’를 발급했고, 이 고래는 5,340만 원에 위판됐다. 올해 들어 속초해경 담당 구역에서 발급한 10번째 확인서였다.

‘고래 보호’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갈린다. 한쪽에서는 우리 고유의 식문화기에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고, 한쪽에서는 고래 보호는 이미 윤리적인 이유를 넘어선 환경적 이유를 지녔다고 말한다. 고래 관련 법령도 비슷하게 아이러니하다.

 

전 세계의 고래 사냥에 대한 인식

최근 몇 년 동안 고래의 복지와 해양 생태계에서의 역할이 주목받으며 많은 나라에서 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법과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가 상업적 포경을 전면 유기하기로 결정한 후, 많은 국가에서 포경 활동을 중단하거나 크게 줄였다.

이러한 전 세계인들의 인식 변화는 지난해 12월 세계적인 흥행을 불러온 영화 「아바타:물의 길」 에피소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고래를 닮은 생물 ‘툴쿤’을 사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냥에 사용된 작살에는 ‘일포(日浦)’라는 일본어가 적혀있었다. 일본은 2018년 IWC를 탈퇴하고 다시 식용 목적으로 고래를 포획하기 시작했다. 이에 많은 일본인은 “영화가 일본의 포경 문화를 비난했다”며 영화를 보이콧했다. 실제 일본에서의 흥행성적 3,250만 9,340달러는 우리나라의 1억 803만 9,830달러와 비교해 1/3도 채 되지 않았다.

또한, 일본은 영화 기자간담회에서 돌고래쇼를 선보였는데,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후에 “현장에 가서야 돌고래쇼가 있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났다”라며, “고래를 구하고, 동등하게 생명으로 대우하는 것이 우리 영화의 메시지 이고, 우리는 돌고래쇼에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해명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영화 「아바타:물의 길」에 등장한 고래를 닮은 생물 ‘툴쿤’
영화 「아바타:물의 길」에 등장한 고래를 닮은 생물 ‘툴쿤’

해양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고래

그런데 고래 포경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뭘까? 단지 고래가 지능이 뛰어난 포유류이기 때문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선 고래는 해양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고래는 더 작은 해양 동물을 섭취하는 먹이 사슬의 정점 포식자이다. 또한, 폐기물을 통해 영양분을 분배해 해양 먹이 그물의 핵심 구성 요소인 식물성 플랑크톤의 성장을 돕는다.

2011년 <Frontiers in Ecology and the Environ-ment> 저널에 실린 ‘해양 생태계에서 고래의 역할’ 논문에서 저자(James A. Estes)는 “고래는 먹이 사실에 대한 직접적 영향을 넘어 해양 생태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고래는 다량의 먹이를 소비하고, 식물 플랑크톤의 성장을 촉진하는 영양분을 배출함으로써 탄소 순환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고래는 해양생물 다양성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2008년 <Marine Ecology Progress Series> 저널에 발표된 ‘Sperm whales reduce squid availability in the Gulf of Alaska’에 따르면 향유고래는 심해 오징어 개체군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향유고래가 있는 해역에는 향유고래가 없는 해역에 비해 더 많은 오징어 생물량과 더 다양한 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2011년 <Frontiers in Ecology and the Environment> 저널에 실린 또 다른 리뷰는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해 “고래 개체수가 해양 생태계의 구조와 기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교적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고래는 대기에서 탄소를 포획하고 기후 변화의 영향을 완화하는 중요한 임무도 수행하고 있었다. 2015년 <Frontiers in Ecology and the Environment>에 소개된 ‘탄소 순환에서 해양 포유류의 역할’에 따르면 전 세계의 거대한 고래(혹등고래, 대왕고래, 참고래 포함)는 매년 약 17억 톤의 탄소를 포집한다. 우선 고래는 대기에서 흡수된 탄소를 포함하고 있는 크릴새우나 작은 물고기를 먹는다. 그리고 고래가 죽으면 바다로 가라앉으며 이 탄소를 심해에 저장하게 되는 것. 고래의 배설물에 함유된 영양분이 식물성 플랑크톤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 역시 대기의 탄소를 더 많이 포획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국내 고래 혼획량은?

우리나라 역시 IWC의 회원국이다. 우리는 1978년 IWC에 가입했고 그때부터 고래류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1985년 11월 상업적 목적의 포경이 금지됐다. 그러나 혼획(어업 활동 중 우연한 포획)은 금지대상이 아니다. 2011년 1월 「고래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가 제정된 이후 우리나라는 비로소 혼획되는 개체뿐만 아니라 좌초나 표류 돼 폐기되는 개체까지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 고시에 따르면 △누구든지 고래류를 포획해서는 안되며 △해양수산부장관은 혼획이 완화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하고 △불법포획 고래류로 확인된 경우 경찰관은 제12조의2에 따라 폐기해야 하며 △혼획된 고래는 ‘고래류 처리확인서’가 발급된 경우에 한해 위판가능하다.

「고래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 전후 우리나라의 고래 혼획 현황은 어떨까?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현 고래연구센터)의 2013년 논문 ‘한국 연안 고래류의 혼획 현황’에 따르면 2011년 1,047마리, 2012년 2,548마리의 고래가 혼획으로 잡혔다.

[표1] 고래 혼획 개체 수
[표1] 고래 혼획 개체 수

고래연구센터 담당자는 “2011년 이전 고래 포획량 자료에는 신뢰도가 없다”며, “당시에는 중구난방으로 기재해서 확인이 어렵다”고 전했다.

고래류 처리확인서를 발급하는 기관인 해양경찰청은 “고래 혼획 현황 자료는 최근 5년치만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표2] 고래류 처리확인서 발급현황 (제공 : 해양경찰청)
[표2] 고래류 처리확인서 발급현황 (제공 : 해양경찰청)

해양경찰청의 최근 5년간 혼획 현황은 <표1> 괄호 안 숫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표2>는 최근의 고래류 처리확인서 발급현황이다. 2011년 혼획에 대한 고시가 제정되기 이전의 정보는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최근에도 국내에서 꽤 많은 고래가 혼획되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숫자에 대해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의 조약골 공동대표는 “IWC에 가입한 다른 나라의 경우 한 해 10마리 미만의 고래가 혼획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혼획되는 고래가 무려 10배나 많다”라며, “해수부는 우리나라에서 혼획 고래 개체 수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대답하고 있지만, 그 이유가 전부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만큼 기형적으로 숫자가 크다”라고 덧붙였다.

IWC에서 탈퇴하고 연안 해역과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상업적 포경을 재개한 일본은 어떨까. 일본 수산청이 공개한 포획량에 따르면 2021년 상업 포경 시즌 할당량이 밍크고래 383마리, 브라이드고래 187마리, 세이고래 25마리로 총 595마리였다.

 

고래고기 식당의 고래는 어디에서 왔을까?

한 마리만 잡아도 고기와 실용적으로 쓸만한 부산물이 대량으로 나왔기에 고래는 선사시대부터 해안가에 정착한 인류의 주요 사냥 대상 중 하나였다. 한때는 고래기름을 산업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1985년 11월 1일 포경이 금지된 이후, 혼획된 고래는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조 대표는 “해수부가 2021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울산, 포항, 부산을 중심으로 고래고기 식당 약 120곳이 영업을 하고 있다”라며, “이 중 장사가 잘되는 20~30곳은 매년 5~6마리의 밍크고래를 소비한다고 증언했으며, 그렇지 않은 곳도 매년 1~2마리의 고래를 소비한다고 대답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120개 식당에서 1년간 소비하는 밍크고래가 200마리는 될 것 같은데, 해경에서 합법적으로 발급하는 고래류 처리확인서는 1년에 약 50~80건을 넘지 못한다”라며 “그렇다면 남은 고래는 어디서 왔을까”라고 반문했다.

조 대표는 “고래고기를 얻는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는 불법 포획이고, 또 하나는 밀수다”라며, “결국 우리나라 고래고기의 2/3는 불법인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여기에서 고래 관련 법령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고래의 포획을 금지했으나 혼획은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고시에 따르면 혼획을 줄일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고래고기는 매우 비싼 가격으로 소비되고 있다.

고래고기 문화의 중심은 울산이다. 울산광역시와 장생포는 지금도 고래를 관광상품으로 홍보하며 ‘울산고래축제’를 매년 개최한다. 울산고래축제 홈페이지에서는 “울산은 수천 년 전 선사인들이 바위에 고래를 새겨 놓은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와 근대 포경산업의 중심지였던 장생포의 역사가 어우러진 우리나라 대표 고래도시”라며 “이러한 고래문화를 계승하고 보존하기 위해 ‘울산고래축제’가 시작, 올해 27회째를 맞이한다”고 고래축제를 소개한다. 현재는 환경단체 등의 반발로 인해 중단됐지만 2016년까지는 행사장에서 고래고기를 판매·시식하기까지 했다.

한 시민은 “지금도 여전히 고래축제를 보고 나오면 주변에 있는 고래고기 음식점으로 가 고래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많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식문화다”라고 말한다.

 

우연한 혼획, 바다의 로또?

어부들은 고래를 ‘바다의 로또’라고 부른다. 포경은 금지지만 혼획과 좌초된 고래고기를 발견만 하면 합법적인 경로로 몇 천 만 원에서 1억 원까지 벌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포항시에서 혼획된 밍크고래는 포항수협 위판장에서 1억 1,520만 원에 거래됐다. 밍크고래는 3,000만 원에서 최고 1억 원을 호가한다. 그야말로 바다의 로또다.

혹시 이 바다의 로또에 몇 번씩 당첨된 사람들은 없을까? 해양경찰청은 불법 포획의 재범률을 묻자 “그런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윤미향 무소속 의원실에서 낸 자료는 “2018년 1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고래의 불법 포획·유통으로 형이 선고된 120명 중 52.5%인 63명이 재범이었다”라고 전한다.

그런데 의도적인 혼획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

 

혼획을 줄이기 위한 방법 강구는?

독일의 연구소 ‘ITAW(육상 및 수생 야생동물 연구소)’는 2000년대 초 ‘Safety Cone(안전 콘)’이라는 고래 보호 시스템을 개발했고, 이 시스템은 지금도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세이프티 콘은 크고 밝은 색상의 플라스틱 원뿔을 어망에 부착해, 고래가 그물에 접근하는 것을 방지한다.

고래 혼획을 줄이기 위해 LED 조명을 사용하는 방법에 관해서도 여러 연구 결과가 있다.

2018년 미국 듀크대학이 NOAA(국립해양대기청), 태평양어업관리협의회(Pacific Fishery Management Council)과 협력해 수행한 연구를 <Fisheries Research>에서 소개했다.

연구에 따르면 그물에 LED 조명을 사용하면 조명이 없는 그물에 비해 향유고래의 혼획률이 65% 감소효과를 보였다. 그 외에도 비슷한 연구는 세계 여러 곳에서 진행됐으며 실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고래 혼획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까? 해양수산부 해양생태과 담당자는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고래 관련 문의는 고래연구센터로 해야한다”고 대답했다. 고래연구센터 담당자는 ‘안강망 상괭이 탈출장치’를 소개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혼획되는 고래가 상괭이며, 상괭이는 서해안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서해에서 가장 많은 혼획이 되는 어구가 안강망이기에 이러한 장치를 개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래고기로 소비하고 있는 밍크고래에 대해서는 “작년인지 재작년부터 고래 혼획을 감소시키는 어구를 개발하기 시작한 단계라고는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혼획을 줄일 방법에 대한 부분은 연구센터의 업무가 아니며, 해수부에서 답변할 수 있을지 여부도 알 수 없다”고 대답했다.

해수부의 ‘상괭이 탈출장치’
해수부의 ‘상괭이 탈출장치’

모두가 상생할 방법은 없나

조 대표는 “우리는 몇 년째 꾸준히 해수부에 가장 문제가 된다고 느껴지는 의도적 혼획을 줄일 여러 가지 방책을 제언했으나, 고래고기 업자들의 생존권 문제가 걸렸기에 쉽게 결정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혼획된 고래의 위판비용을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할 것 △특정 선박이나 특정인이 혼획 신고를 반복하지 못하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것 △‘고래류 처리확인서’ 발급에 제한을 두고, 점차적으로 줄여나갈 것 등 의도된 혼획을 줄일 방법을 소개했다.

조 대표는 “특히 지금처럼 고래 위판비를 개인에게 줄 것이 아니라 고래고기 업자들이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사용하거나, 혼획으로 망가진 어구 등을 수리하는 비용 등으로 돌려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 우리나라의 정책은 포획은 안 되지만 우연히 걸린 고래는 먹을 수 있다는 정책으로, 이것은 장기적인 정책 방향과는 맞지 않는다”라며, “개체를 보호하는 행위와 먹는 행위는 양립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고래고기를 먹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어민에게 걸리기만 하면 1억 가까이 벌 기회를 외면하라고 주장할 수도 없으며, 고래고기로 생을 유지하는 이들을 비난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처럼 IWC의 탈퇴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면, 장기적 관점의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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