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다시 3. 농암 이현보의 「어부가」와 「어부단가」
한국 바다시 3. 농암 이현보의 「어부가」와 「어부단가」
  •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4.18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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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 이현보는 영남가단의 영수로 불릴 만큼 가창 문학의 대가였다. 농암은 문집에 우리말 노래를 한글로 표기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의 『농암집』에는 「어부가」 9장, 「어부단가」 5결, 가사 3수가 수록되어 있다. 「어부가」와 「어부단가」는 농암이 83세이던 1549년에 전래하던 노랫말을 수정하여 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어부가」를 살펴본다.

악장가사에 실린 「어부가」는 12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중복된 부분이 많다. 농암의 「어부가」는 출항부터 귀항까지의 과정을 따라 악장가사 「어부사」의 12장을 9장으로 정리하였으나, 집구시에 여음을 붙이는 구성방식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에 개작을 시도한 자가 농암 이현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는 「어부가서」에서 ‘第以語多不倫惑重疊’이라 하여 악장가사의 「원어부가」 12장을 9장으로 개작한 이유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개작의 내용을 살펴보면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원어부가」의 장 전체를 그대로 인용한 경우, 둘째는 일부가 삭제되거나 첨가된 경우, 셋째는 자리를 바꾼 경우, 넷째는 완전히 삭제한 경우이다. 첫째 장 전체를 그대로 인용한 경우는 농암의 「어부가」 5장의 경우로 악장가사의 제 5장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일부의 삭제와 첨가가 나타난 경우는 농암 「어부가」 1장이다. 농암 어부가의 1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농암은 왜 ‘一竿明月이 亦君恩이샷다’라는 구절을 삭제하고, ‘倚船漁父이 一肩이 高로다’라는 새로운 구절을 첨가했을까? 삭제한 구절은 전형적인 사대부들의 강호생활을 상징하는 부분이다. 一竿明月이 자연물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君恩이라는 관념의 매개물로 자리하고 있다. 농암은 「어부가」 서에서 자신이 부르는 노래의 대의는 塵外之意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塵外之意는 노래하는 사람이 자연과 완전한 교감이 이루어질 때 실현된다. 그런데 자연물이 자연물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관념의 매개물로서 존재함은 자신이 생각하는 塵外之意에서 멀기에 이를 삭제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에 반해 ‘倚船漁父이 一肩이 高로다’를 첨가한 것은 배에 기대어 있는 어옹의 한 어깨가 비스듬히 올라가 있음으로써 파도의 자연스런 흐름과 연관되어 자연과의 공감이 이루어진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자리바꿈을 한 대표적인 구절은 악장가사의 4장 4행인 ‘帆急하니 前山이 忽後山이로다’ 부분이다. 이를 자리바꿈한 것은 不倫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의 3장에서는 종일 낚시를 한 연후에 귀가하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盡日泛舟煙裏去 有時搖棹하야 月中還하놋다). 이 때 낚시를 하러 떠나는 ‘帆急하니 前山이 忽後山이로다’ 라는 표현은 낚시를 끝내고 돌아오는 상황과는 맞지 않다. 즉 노래의 전체 구성으로 보아 낚시를 떠났다가 돌아오는 구성으로 짜여져야 하는데, 이 부분이 여기에 들어앉아 있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농암은 이 구절을 자리바꿈하여 낚시를 끝내는 새로운 구절(山雨溪風捲釣絲)을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어부단가 5결
어부단가 5결

마지막으로 농암은 『악장가사』의 「어부사」를 개작하면서 7장과 11장을 완전히 삭제하였다. 그러면 왜 농암은 이런 개작 작업을 했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논의가 가능하지만, 그가 관심을 가졌던 시조문학으로의 진전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의 「어부가」 9장, 「어부단가」 5결, 가사 3수는 수량이나 질적인 면에서 높이 평가할 수는 없으나, 시조의 형성과정을 명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그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부가」 9장에서 엇시조, 「어부단가」 5결에서는 연시조의 원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고, 가사 3수에서는 평시조의 전형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학 장르상의 문제는 이 정도 해두고 농암이 지은 「어부단가」 5결을 살펴보자.

이렇게 「어부단가」 5결을 읽어보면, 농암의 「어부가」 9장은 한시라는 테두리를 벗어나기 어려운 장가이지만 「어부단가」는 우리의 언어 가사에 우리의 곡조를 붙여 이루어진 정형화된 단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내용상으로 보면, 「어부단가」는 어촌 또는 강호에서의 유유자적한 삶(1,2장)과 거기서 얻는 맑은 깨달음(3장), 또는 자연과의 합일(4장), 연군우국의 심정(5장)을 4음보 3행으로 그려내고 있다. 강호에 은일하는 즐거움과 함께 강호에서도 여전히 임금을 그리고 나라를 걱정하는 유학자의 세상에 대한 우려가 나타난다. 다른 어부가들이 집권 사대부층의 현실긍정과 낙관주의가 바탕이 되어있어 강호 생활의 풍성한 즐거움만 노래될 뿐 세속세계에 대한 혐오와 단절감은 없으나, 농암의 「어부가」와 「어부단가」에는 강호 자연과 세속 현실의 대립과 단절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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