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62. 태백산맥 문학길을 걷다(3)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62. 태백산맥 문학길을 걷다(3)
  • 김준 박사
  • 승인 2023.04.13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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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 벌교(3)
채동선 생가
채동선 생가

[현대해양] 한때 소설 「태백산맥」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벌교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예전만 못하지만, 태백산맥은 여전히 벌교를 상징한다. 그 세대는 결혼 후, 아이의 손을 잡고 오기도 한다. 세대가 해결하지 못한 아픔을 다음 세대가 그 다음 세대와 골목을 걷는다. 아직도 아픔은 가시지 않았지만, 상처는 조금씩 아물고 또 잊힌다. 역사공간과 소설공간이 겹쳐 돌아보는 맛이 쏠쏠하다. 덕분에 엄마는 아이에게 할 말이 많다. 그래서 벌교를 찾는 사람들은 중년층이 많다.

부용산에 안장된 채동선 부부
부용산에 안장된 채동선 부부

「태백산맥」의 중심은 벌교지만 이야기는 만주, 서울, 부산, 강원 등으로 펼쳐진다. 게다가 주인공이 60여 명, 등장인물은 300명에 이른다. 그만큼 다양한 개인사와 시대사가 벌교라는 공간에서 압축적으로 펼쳐진다. 염상진, 염상구 형제, 하대치, 김범우, 무당 소화, 정하섭, 서민영, 외서댁 등이 펼치는 서사만 아니라 뱉어내는 육담과 전라도 말은 전라도 음식만큼이나 찰지고 재미가 있다. 소설을 따라가 보자.

 

태백산맥, 벌교의 상징이 되다

‘태백산맥문학기행길’에서 꼭 들러야 할 세 곳으로 태백산맥문학관, 남도여관, 금융조합을 추천한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벌교천, 벌교시장, 벌교역을 지난다. 태백산맥은 1945년 해방부터 1953년 휴전협정까지 벌교읍을 무대로 한국 근현대사를 대하드라마로 펼친 소설이다. 작가 조정래는 현대사의 나머지 이야기는 태백산맥에 담지 못하고 한강으로 풀어냈다. 벌교포구에서 근현대사를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은 여자만을 둘러싸고 여수와 순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소설의 여정은 문학관에서 만날 수 있다. 벌교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공간과 장소가 오롯이 남아 있다. 벌교가 태백산맥문학관인 셈이다. 문학관은 벌교여행의 출발점이며, 한국 근현대사를 읽는 텍스트이다.

부지런히 걸어 반나절이면 4년간의 준비와 6년 동안의 집필이 담아낸 현장을 살펴볼 수 있다. 꼼꼼하게 살펴보고 싶으면 하룻밤 숙박을 하면 더욱 좋다.

현부자집 내부
현부자집 내부

태백산맥문학관에서 시작해 소화의 집, 현부자의 집, 화정리교회, 소화다리, 김범우의 집, 홍교, 자애병원, 부용산, 청년단, 경찰서, 금융조합, 보성여관, 술도가, 솥공장, 철다리, 중도의 집, 중도방죽 등 23곳에 이른다. 이중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태백산맥문학관, 현부자의 집, 소화다리, 홍교, 금융조합, 보성여관, 중도방죽 등이다.

남도여관 내부
남도여관 내부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

조정래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로, 문학관 입구에 적혀있다. 문학관에서 멀지 않는 곳에 현부자의 집이 있다. 중도방죽이 보이는 제석산 자락에 한옥을 기본으로 일본식이 더해진 독특한 양식이다. 소설 첫 대목에 나오는 집이다. 양조장집 아들 정하섭이 비밀조직원으로 벌교로 들어와 소화의 집에 은신하면서 애틋한 사랑을 나누던 곳이다.

 

그들은 저승에서 연을 맺었을까

문학관을 나오면 ‘현부자 집’과 ‘소화네 집’으로 연결된다. 소설 첫머리에 산에서 내려온 정하섭은 소화네 집을 찾는다. 쿵큼한 술냄새와 어머니의 냄새를 떠올리지만, 감시의 눈을 피해 사람들의 관심이 덜한 무당집을 택해 찾아든 것이다. 물론 소화도 생각났을 것이다.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무당집을 거쳐 내려오면 벌교천이 맞이한다. 낙안벌을 적시고 여자만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그곳에 홍교, 소화교, 철교 등이 있다. 현부자 집은 벌교 밀양박씨 문중이었다. 집구조가 한옥과 일본식이 섞인 독특한 양식이다. 소설에서 현지주는 문간채 2층 누각에서 중도들과 소작인을 살피며 기생을 불러 놀았다. 소화네 집은 소설 첫머리에 정하섭과 소화가 놀람과 설렘으로 만나는 장면이 그려지는 곳이다.

철교 근천 벌교와 여자만을 잇는 도선장
철교 근천 벌교와 여자만을 잇는 도선장

소화네 집을 지나 벌교천에 이르면 세 개의 다리가 있다. 가장 위로는 낙안읍성과 연결되는 홍교, 중간에는 부용교(일제강점기에 소화다리라 불렀다), 벌교 갯벌과 맞닿는 철교이다. 지금은 이들 다리 사이로 몇 개가 더 만들어졌다. 홍교는 벌교 지명유래와 관련된 다리다. 철교는 벌교역을 사이에 두고 목포, 광주, 부산으로 이어지는 수탈의 통로이기도 했다. 지금도 기차가 오가는 길이다. 염상구과 벌교주먹 왕초 땡벌이 달려오는 기차를 보며 철교 위에서 버티는 담력시험을 했던 곳이다. 소화다리 밑은 때로는 좌익들의, 때로는 군경토벌대들의 시체가 ‘질펀허니 널렸다’는 곳이다. ‘태백산맥’에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소화다리 아래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시체가 질펀허니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혀서 더 못 보겠구만이라.”

다리를 건너면 벌교장으로 이어진다. 지금도 여자만과 득량만 등 벌교는 물론 보성과 고흥의 여자만과 득량만 갯벌에서 얻은 수산물이 모이는 곳이다. 벌교시장에서 꼬막을 사서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삶아주는 집이 있다. 막걸리도 한잔할 수 있다. 꼬막을 먹다 남으면 비벼 먹겠다고 주인에게 이야기하면 상차림을 해준다. 단출하지만 ‘꼬막비빔밥 정식’보다 낫다. 배를 채웠으면 벌교역도 살펴보자. 1930년대 벌교를 상업과 교통의 중심으로 만들었던 일등공신이다. 덕분에 일제의 수탈이 더해지기도 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미움을 넘어 증오까지 했던 형님의 목이 벌교역 앞마당에 걸리자 빨갱이를 잡던 청년단을 이끌고 나타난 염상구가 경찰을 향해 소리쳤다.

“요런 개좆 겉은 새끼덜아, 살아서나 빨갱이제 죽어서도 빨갱이여! 당장에 못 띠내리겄어!”

소설 태백산맥 마지막 대목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염상진은 율어로 가는 어느 길목 산자락에 묻혔다.

중도방죽을 지나 갈대밭에서 김성춘 시인이 부용산과 고향을 불러주었다.
중도방죽을 지나 갈대밭에서 김성춘 시인이 부용산과 고향을 불러주었다.

오성급호텔이 있었다고?

벌교역과 함께 일제강점기 흔적이 잘 남아 있는 곳은 보성여관과 벌교금융조합이다. 보성여관은 남도여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남도여관은 소설에서 보성여관으로 토벌대가 머물렀던 장소다. 일제강점기에 문을 열었던 지금의 5성급에 해당하는 숙소였다. 일본식 숙박시설로 영화 서편제·태백산맥·장군의 아들 모두 보성여관에서 촬영했다. 해방 후에도 숙박시설로 이용되다가 7080 역사 속에 사라졌다. 그리고 2004년 등록문화재로 132호 지정돼 2008년 문화재청이 매입하고, 2012년 중건해서 개관했다. 이런 여관이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벌교가 목포와 광주에 이은 전라남도의 3대 도시에 해당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벌교역과 이어지는 중심에 있었다. 지금은 카페, 숙소, 공연장, 전시장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남도여관 앞에는 정하섭 아버지가 운영하는 ‘도가집’이 있다.

남도여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벌교금융조합이 있다. 1919년 건립된 르네상스식 바탕에 양식건물로 붉은 벽돌과 돌로 지은 건물이다. 내부는 전형적인 일제강점기 관공서 건물이다. 소설에서 조합장은 송기묵은 치부에 능해 고리대금업으로 치부하고 딸을 이화여대로 유학시킨다. 그리고 좌익에게 잡혀 죽고 만다. 한때 농민상담소로 활용했지만 ‘보성 구 벌교금융조합’라는 명칭으로 등록문화재(2005.12.9.)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금융조합의 역사와 한국 화폐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남도여관같은 적극적인 활용이 아쉬운 공간이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벌교금융조합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벌교금융조합

금융조합에서 나와 고개를 들면 마주하는 언덕 같은 나지막한 산이 부용산이다. 벌교의 안산이며 벌교 사람들이 산책하듯 오르내리는 ‘부용산 오리길’이다. 박기동 시인이 여동생을 묻고 내려오면서 쓴 부용산은 빨치산이 고향을 그리는 노래가 되면서 고초를 겪어야 했다. 부용산은 한 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산책길이다. 그 길에 ‘고향’과 ‘그리워’로 널리 알려진 민족음악가 채동선 생가와 귀향봉안비를 만날 수 있다. 벌교에는 채동선음악당과 채동선합창단이 있다. 언제가 벌교여행을 왔다가 김성춘(벌교, 시인)의 안내를 받아 중도 방죽을 돌아본 적이 있었다. 그는 갈대숲에서 직접 부용산과 그리워 등 가곡을 불러주었다. 사각사각 갈대 바람 소리와 함께 들었던 노래를 잊을 수 없다. 그 외에 벌교 출신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에 큰 역할을 한 인물로는 민족종교 대종교의 ‘홍남 나철’, 아카이브의 정수 ‘뿌리 깊은 나무’의 한창기 등이 있다.

벌교시장
벌교시장

벌교의 매시라운 맛

벌교 사람들은 일제의 수탈과 흉년을 꼬막과 게를 잡아 이겨냈다. 참꼬막은 진달래와 벚꽃이 피고 질 때 제일 맛있다. 제일 비쌀 때는 설명절부터 정월 보름 사이다. 겨울이 제철이 된 것도 수요가 가장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례를 중시했던 것이 제철이 된 셈이다. 그때가 산란을 앞두거나 살이 오를 때이기도 하지만 인간들이 가장 허기질 때다. 이런 것을 보면 자연은 참으로 조화롭다. 다만 그 생태계가 지속할 때 가능한 일이다.

꼬막은 뜨거울 때 먹어야 맛이 좋다. 특히 갯벌에서 막 건져온 꼬막이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삶아서 양념을 올리거나, 전을 부치거나, 회무침으로 먹는다. 꼬막 된장국도 좋다. 소화의 어머니 월녀가 딸이 꼬막을 무쳐내는 것을 보고 한 말이다.

벌교백반 상차림
벌교백반 상차림
벌교시장에서 직접 삶아주는 벌교꼬막
벌교시장에서 직접 삶아주는 벌교꼬막
벌교 짱뚱어탕
벌교 짱뚱어탕

“워매 내 새끼 꼬막 무치는 솜씨 잠 보소. 저 반달 겉은 인물에 손끝 여렵허기는 요리 매시라운 니는 천상 타고난 여잔디. 금메. 그 솜씨 아까워 어쩔끄나 와.”

무녀의 딸로 태어난 소화를 보고 안타까워 에미가 뱉은 말이다. ‘매시랍다’는 말은 ‘손끝이 야무지고 하는 일이 깔끔하다’는 전라도 말이다. 음식이 정갈하고 간이 잘 맞는다는 표현이다. 꼬막만 아니다. 벌교 음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짱뚱어탕이다. 여자만 갯벌에서 ‘훌치기 낚시’로 잡은 짱뚱어로 끓인다. 겨울철에는 꼬막만 아니라 새조개도 나온다. 조개 중에 귀족으로 꼽는 조개다. 봄에는 가리맛조개가 달콤하다. 오랜만에 태백산맥 다시 읽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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