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환경에서의 생물 생존법
극한 환경에서의 생물 생존법
  • 배한나 ㈜지오시스템리서치 박사
  • 승인 2023.04.0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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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나 ㈜지오시스템리서치 박사
배한나 ㈜지오시스템리서치 박사

[현대해양] 극한 환경서 살아온 생물에 주목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저명하다고 평가되는 영국의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 2001년 저널에 ‘극한 환경의 생명(life in extreme environments)’이라는 논문이 게재되었다. 논문의 첫 문장은 ‘평범한 것은 구식이고, 극한은 시크하다(normal is passé, extreme is chic)’로 시작한다.

극한 환경에서 사는 생물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대중에게도 연구자에게도 그렇다. 생명체가 살기 어려워 보이는 곳에서 발견된 자연의 경이로운 생명력은 많은 이들의 호기심과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킨다.

먼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극한 환경’은 현재를 살아가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 표현일 수 있다. 지구의 현재 조건(온도, 산화환원 상태, 대기 성분 등)은 역사상의 모든 생명체가 존재해온 시간에 비해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Knoll, 2015). 그렇다면 오히려 극한 환경에서 살아온 생물의 삶이 지구 생명체의 보편적 역사를 만들어 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극한 환경 내 서식 생물들이 매력적인 이유

그럼에도 우리는 극한 조건을 지닌 생태계에 열광한다. 비단 대중의 관심뿐만이 아니라 과학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극한 환경에서도 서식할 수 있는 생물을 익스트리모화일(extremophile)이라고 하는데, 연구자들은 이러한 생물을 연구함으로써 많은 것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단순하게는 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의 경계를 예측할 수 있다. 또한 극한 환경 서식 생물의 내성 범위를 연구함으로써, 오늘날 급변하는 지구 환경으로 인해 기존 생물들이 어떻게 사라지고, 어떠한 생물들이 새롭게 정착하게 될지도 예측해볼 수 있다. 우리가 각 생물이 극한 환경에서 정량적으로 얼마만큼의 범위까지 내성을 나타내는지 알게 된다면 말이다.

또한 극한 환경에 새롭게 정착하는 생물들을 연구함으로써 생물들이 각기 가진 역할과 적응 방식을 엿볼 수도 있다.

 

고염 환경의 생물들

염분은 해양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환경요인 중 하나이다. 특히 생물의 생명유지에도 필수적 요소이다. 하지만 몸이 다 쪼그라들 것 같은 아주 짠물에서도 살 수 있는 생물이 있을까? 이를 확인하고자 염전을 찾아갔다.

한국식 염전은 염판에서 증발을 이용해 바닷물을 농축하여 소금을 얻는다. 해수가 저장된 저수지에서부터 증발지와 결정지를 거쳐 염분은 점점 높아져 결정지 인근에서는 300psu(practical salinity unit, 실용염분단위. 천분율인 퍼밀(‰)과 같은 개념)를 훌쩍 넘는다. 때문에 염전은 생물의 염분 서식 범위를 확인할 수 있는 거대한 천연 메조코즘 시설이나 마찬가지다.

24psu에서 324psu에 이르는 염분 구배를 따라 표층 퇴적물을 분석하였더니 놀랍게도 일반적인 해수 염분의 6배 이상인 205psu에서 살아 움직이는 규조류를 발견했다. 이로써 규조류가 극한의 고염 환경에서도 살아있다는 증거를 논문으로 보고할 수 있었다(Bae et al., 2020).

물론 염분이 높아짐에 따라 전반적으로 생물다양성은 떨어졌지만, 분명히 고염 환경을 선호하는 특별한 규조류 종이 존재했다. 극한의 염분 환경에서 해양생물이 서식하는 범위와 방식을 연구함으로써 염분이 해양생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남극, 기후변화 최전선의 생물들

여름의 남극에서는 주기적으로 굉음이 울린다. 바로 빙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이다. 기후변화의 가속화로 남극 세종기지 주변 마리안 소만의 빙벽은 더욱 빠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는 보통 사라져가는 생물들의 비극을 생각한다. 하지만 지구의 생명력은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빙벽이 가장 최근에 무너져 내린 자리에 생물이 비집고 들어가 살기 시작한 것이다.

30~40㎛ 크기의 작은 규조류들이 사슬형태로 띠를 만들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 풍부했다. 인간의 눈에는 황량하고 위험한 환경에 보란 듯 정착한 것이다. 규조류 같은 먹이생물이 풍부하다는 것은 다른 생물들도 서식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그러했다. 남극 생태계에서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생물이 가장 먼저 혹독한 환경에 깃발을 꽂고, 이들의 에너지가 중형저서동물, 대형저서동물로 전달되는 먹이망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다만 이것이 기후위기 앞의 긍정적 신호라고 볼 순 없다. 급변하는 환경에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물들이 적응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 생물들은 적응한다. 사람들이 코앞에 들이닥친 기후위기 앞에서 혼란을 겪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야 기후위기 ‘적응(adaptation)’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과 달리 생물은 아주 오래전부터 환경에 가장 빠르게 적응해왔다.

 

작고도 강력한 생물 연구

누가 극한 환경에 살고 있었나? 자연 생태계를 호령하는 커다란 포식자들? 그렇지 않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크기를 가졌거나 인간이 ‘하등 생물’로 분류한 생물들이었다. 과학이 발전하는 동안 연구자들은 생물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 범위가 예측했던 것보다 더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구자들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재정립하고 확장하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다. 극한 환경에서 사는 생물을 연구한다는 것은 이 목적에 매우 충실하다. 급변하는 지구 환경에서 작고도 강력한 생물을 꾸준히 연구하며 다가올 내일을 좀 더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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