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다시 2.한국 바다시를 찾아서(2)
한국 바다시 2.한국 바다시를 찾아서(2)
  •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3.17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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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장가사 소재 어부가의 성격

[현대해양] 현전하는 최고의 어부사는 혜심의 작품이지만, 온전히 중국의 어부가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모방의 수준이었다. 이에 비해 7언 4구의 집구(集句)로 된 한시에 우리말 토를 달고, 거기에다 어부사 특유의 조흥구(배가 나아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것과 노 젓는 소리의 의성어로 구성된 후렴구)를 더한 악장가사 소재 어부가는 혜심의 어부가를 넘어선다. 비록 이 어부가도 중국의 시를 많이 집구한 것이긴 하나 어느 정도는 우리의 것으로 거듭 태어난 모습을 엿보게 하기 때문이다. 악장가사 소재 어부가는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몇 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악장가사 소재 어부가가 보이듯이 위 시는 7언 4구의 한시부와 우리말 여음부의 이중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는 한자로 표기된 집구(集句)의 고급문학에서 온 것이고, 후자는 우리말로 표기된 기층문학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악장가사 소재 어부가는 양자가 결합되어 탄생한 새로운 문학으로서 이 두 계층의 성격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악장가사 소재 어부가의 원천과 영향에 대한 논의들이 많았다. 그 중 대표적인 논의가 집구된 한시 부분이다. 이 부분은 중국의 영향이란 것이다. 백거이의 「어부」와 장지화의 「어부」 작품의 영향이다. 박해남은 어부가의 구조를 보면, 전체의 처음 시작 부분과 끝 부분이 백거이의 「어부」로 각 작품의 처음을 구성하면서 시상의 순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백거이의 영향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원래의 어부가는 백거이의 「어부」를 모본으로 하여 4개의 장으로 구성된 것이 원형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도 한다. 시간이 지나며 여기에 다른 작품들이 더해지면서 악장가사에 실린 모습으로 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백거이의 작품이 악장가사에 실린 어부가의 기본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백거이 자신이 젊어서부터 줄곧 전원생활을 염원하였지만 모친상과 병가로 인한 피치 못할 귀전(歸田) 외에 장장 40년 동안 말단관직에서 고위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끝내 관직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작품의 상당수가 한적(閑寂)의 세계를 추구하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본다. 일상생활의 한적한 정취, 인생의 세사에 대한 감회, 낙천지명(樂天之命)과 안분지족의 인생철학을 노래한 백거이의 시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싶었던 공통적인 소망이었기에 쉽게 공감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백거이의 시는 일찍부터 우리나라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송정숙은 그 영향을, 중국에서 유래한 어부가를 지은 장지화(張志和)에게서 찾고 있다. 장지화는 강호에 살면서 스스로 연파조도(煙波釣徒)라고 불렀는데, 늘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으나 미끼를 달지 아니하였으니, 뜻이 고기잡이에 있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그 무엇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구가한 것이다. 그는 어부가를 지어 연파조도(煙波釣徒)의 생활을 묘사하고, 은둔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장지화의 「어부」에 나타나는 서정적 자아인 어부는 장지화의 실재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서색산(西塞山) 앞을 청약립(靑箬笠)과 녹사의(綠簑衣)를 두르고 오가는 어부, 갓옷을 입고 노를 놓고 물결에 내맡겨 두고 있는 어부, 작은 배를 집 삼아 동서로 오가는 삽계만의 어부, 우스꽝스러운 연잎 옷을 입고도 궁함을 한탄하지 않는 어부, 송강(松江)의 게딱지같은 집에서 줄풀밥 순채국을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어부, 풍파에 낙을 두어 신선 부럽지 않은 모습을 내보이는 이가 장지화 자신에 다름 아닌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런데 악장가사 소재 어부사의 한시부 가운데 장지화의 어부가 5수 가운데 첫째 수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 있기에 장지화의 어부가가 악장가사 소재 어부가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다. 장지화의 어부가는 노래를 부를 때부터 직업적인 어부의 노래가 아니라 가어옹(假漁翁)의 노래였는데, 이러한 노래의 성격도 한국의 어부가계(漁父歌系) 시가에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즉 악장가사에 실린 어부가는 생활 현장에서 불리운 「뱃노래」나 실제의 「어부노래」 류의 노동요와는 형성배경에서부터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형태의 영향으로 형성된 악장가사에 실린 어부가는 고려 무신란 이후 암울한 시대상황에서 감돌았던 장자적 분위기에서 자연문학이 등장하였고, 그러한 가운데 어부가계(漁父歌系) 한시(漢詩)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어부가의 내용은 봉건사대부계급이 가지고 있던 낭만적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정치계를 떠난 강호에 은거한 사대부의 모습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어부가에 나타나는 어부의 모습은 본래부터 세상과 절연된 상태이고, 집구된 한시들은 중국의 것이었기에 어부가의 내용 역시 이국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어부가 속에 나타난 강과 호수와 산은 조선의 모습과는 먼 거리가 있는데, 이는 이국적 풍경과도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부가에 나타난 세계가 조선을 멀리 떠나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중국 어딘가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어부가가 지닌 내용의 낭만성은 형식상 제어되는 모습을 보인다. 시 내용은 멀리 떠남과 결부된 여러 가지 자유를 지향하지만, 형식은 그 반대로 철저하게 고정되는 모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후렴구가 중간 중간에 들어가 있는지, 왜 배를 타고 떠나는 데서 시작해서 돌아와 배를 매는 일련의 과정에 의해 작품이 배열되어 있는지 하는 것들을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중요한 점은 이런 어부가의 형식은 기본적으로 당시 국가가 사대부계급을 지배하던 형식과 닮아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렇게 형식에 의해 제어된 내용은 내용 자체의 전범성에 의해서도 제어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부의 모습은 당시(唐詩)를 통해 사대부가 추구하던 대표적인 형상 중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배를 타고 고기를 낚는 어부의 모습은 드러나지만, 그 어부가 고기잡이가 직업이 아닌 사대부들이란 점에서 작품 속 어촌의 현실은 여전히 비현실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악장가사에 실린 어부가는 궁정의 연회에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사대부들의 음풍농월에서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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