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동아시아-대양주의 철새 기착지, K-갯벌
19. 동아시아-대양주의 철새 기착지, K-갯벌
  • 김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 승인 2023.03.1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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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서울대학교 교수
김종성 서울대학교 교수

[현대해양] 재작년 한국 갯벌의 세계자연유산 등재는 해양인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큰 기쁨을 준 국가적 경사였다. 지난 반세기 간척, 해양오염, 기후변화 등으로 몸살을 앓아왔던 K-갯벌이지만, 그 특유의 자생력과 끈기로 세계자연유산 반열에 올랐다. 당시 유네스코는 K-갯벌의 아름다운 경관과 생태적 가치를 선정 이유로 밝혔다.

갯벌의 생태적 가치는 우수한 해양생물다양성에 근간한다. 특히, K-갯벌은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기착지로서 그 역할이 국제적으로도 중요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겨울 철새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면서 새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그만큼 커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이야기 주인공은 ‘철새’로 선정했다.

멸종 위기에 처한 K-철새의 비상

철새를 포함한 조류는 생태계 상위 포식자로서, 해당 생태계의 건강성을 대표하는 매우 중요한 지표종이다. 우리나라에 기록된 500여 종의 조류 중 80% 이상이 철새일 정도로 철새는 조류의 생물다양성에서 절대적 위치에 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구상 현존하는 조류종의 절반 가까이가 개체군 감소로 멸종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철새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철새에 대한 전국 조사는 1990년대 말 시작됐다고 한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에서 1999년부터 월동기간에 일정한 날을 정해 전국 주요 서식지에서 겨울 철새의 종류와 규모, 그리고 환경을 조사했고, 2008년부터는 국립생물자원에서 체계적인 조사를 이어오고 있다. 2008년 140여 곳 조사를 시작으로 현재는 해안, 호수, 저수지, 강, 평야 등 전국 200여 곳에서 해마다 일정 기간에 조사하고 있다. 아시아 물새 센서스에서 권장하고 있는 1월 조사를 포함 겨울철 몇 달간 조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발간한다. 2019년에는 국가철새연구센터가 개소되어 철새 이동 연구 및 모니터링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고 있어 국내 철새 연구자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제공하는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 통계를 잠깐 살펴봤다. 통계는 최근 5년간 전국 200곳에서 관찰된 500여 종에 대한 조류의 개체수와 종수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꾸준히 관찰되는 종은 대략 260여 종으로 확인됐다. 지난 5년 평균 약 150만 개체의 철새가 우리나라를 찾았는데, 최근 5년 중에는 2023년에 가장 적은 수의 철새가 관찰됐다. 주로 오리, 기러기, 까마귀, 갈매기 등 우리에게 익숙한 철새들이 상위에 분포되어 있었다. 

반면, 멸종위기 조류인 두루미를 포함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두루미과(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조류가 해를 거듭하면서 증가세를 보인 점이 눈에 띄었다. 현재 멸종위기 조류는 총 61종으로 14종이 1급으로 지정돼 있다. 멸종위기 1급에 속하는 종 중에서 가장 눈에 띄게 개체수가 증가한 조류는 반갑게도 천연기념물 202호로 지정된 두루미로 지난 5년간 꾸준히 증가, 2023년에는 2,113개체가 발견됐다. 두루미과에 속하는 재두루미(천연기념물 203호), 흑두루미(천연기념물 228호) 역시 꾸준히 증가해 2023년에는 각각 9,249, 5,091개체가 발견됐다. 한편 검은목두루미(천연기념물 451호)는 지난 5년간 전국에서 십여 개체 수준으로 발견되고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국립생물자원관 통계, 그래프 참조).

최근 5년간 연간 철새 개체수 변화 그래프
최근 5년간 연간 철새 개체수 변화 그래프

철원에서 만난 사랑스런 두루미 가족 

나는 운 좋게도 지난겨울 두루미의 낙원이라 불리는 철원을 방문했다. ‘환경운동연합의’ 김춘이 사무총장의 초청으로 20여 명의 일행과 함께 철원 MDZ 내 두루미 서식지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익숙한 연안 습지(갯벌)의 바닷새가 아니라 다소 생소했지만, 논에서 우아하게 노닐며 멋지게 비상하는 두루미 떼의 거침없는 날갯짓에 금세 친숙해졌다. 사진(영상)으로만 봐왔던 단정한 학, 두루미, 그 화려한 군무에 정신을 놓고 한참을 바라봤고, 짝을 짓고 평생을 배우자와 가족만을 위해 함께 살아가는 두루미의 생태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명받았다. 

당일 안내를 해준 ‘철원두루미협의체’ 최종수 사무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철원에서 확인된 두루미과 조류는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검은목두루미, 시베리아흰두루미, 쇠재두루미, 캐나다두루미 등 7종이라고 한다. 지난 20년간 찾아오는 두루미는 꾸준히 증가해 왔고, 점차 그 분포면적도 넓어졌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약 3,000개체에 불과한 두루미의 약 60%가 철원을 찾아오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사람의 출입이 제한된 DMZ 내 논 습지가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철새 서식지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다. 건강하고 안정된 서식지가 철새에게 안락한 월동지가 된다는 당연한 이유다.

여기에 철원 농민들의 두루미 서식지 보호를 위한 노력이 가미되면서 철원을 찾아오는 두루미가 안정적으로 증가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최 사무국장은 여러 농민이 논의 일부에 두루미가 서식할 수 있게 물을 대고, 벼를 베고 남은 볏짚의 벼 낟알을 두루미 먹이로 제공하는 등 추가적 노력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특별히, ‘철원두루미협의체’에서 준비한 우렁이 먹이를 우리 일행은 모두 기쁜 마음으로 논에 뿌리면서 두루미가 고단백질 먹이를 먹고 더욱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값진 시간도 가졌다. 최근 지자체와 정부 지원이 함께하면서 철원이 명실공히 두루미 서식지 메카가 됐고, 많은 이가 찾는 관광 명소로 거듭나고 있어 더욱 많은 두루미가 이곳을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철원과 연천에 이어 최근에는 강화 갯벌까지 두루미 서식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2012년 강화 갯벌을 찾은 두루미는 29개체에 불과했지만, 2023년 최근 조사에 따르면 63개체의 두루미가 강화 갯벌을 찾았다고 한다. 향후, 두루미가 내륙부터 연안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분포하게 돼서, 전국 어디서나 두루미의 화려한 비상과 멋진 군무를 감상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2년 11월에 진행한 첫 번째 두루미 탐조
2022년 11월에 진행한 첫 번째 두루미 탐조

두루미의 비밀과 애틋한 러브스토리 

이번, 두루미 탐조 여행을 통해 두루미의 생태에 관한 재미있는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두루미의 긴 목, 긴 부리, 긴 다리, 긴 발가락이 모두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두루미가 주로 습지에 서식하기 때문에 식물의 뿌리나 저서생물을 먹이로 취하기 위해 가늘고 긴 부리를 갖게 됐고, 습지에 발달한 식물 사이로 천적을 경계하기 위해 긴 목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또 습지나 얕은 물을 건너기 위해서는 긴 다리가 필요했고, 습지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가늘고 긴 발가락을 갖게 됐으니, 두루미의 형태 그 자체가 고상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두루미에게 정이 더욱더 가게 된 점은 두루미가 가족생활을 하고 평생을 배우자만을 위해 살아간다는 점이다. 재두루미인 ‘철원이’와 ‘사랑이’ 이야기는 매우 감명 깊은 한 편의 애틋한 러브스토리였다. 2005년 날개를 다쳐 날 수 없게 된 사랑이가 두루미 쉼터에서 보호받으며 지냈는데, 2018년 철원이가 동상을 입어 두루미 쉼터에서 지내다가 짝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날 수 있는 철원이는 2020년 봄에 사랑이를 기다리다 중국으로 날아갔지만, 다시 이듬해 겨울 사랑이를 찾아왔고, 그 이후로는 떠나지 않고 함께 지낸다는 믿기 어려운 러브스토리다. 그 뒤로 철원이와 사랑이의 새 가족의 탄생은 해마다 관심거리가 됐다고 하는데,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란다.

 

다시 찾은 철원과 연천, 그리고 두루미 생각

지난달 다시 철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연천도 방문했다. 아무래도 두루미 사랑이 시작된 것 같다. 지난해 11월 첫 두루미 탐조 이후 머릿속에 온통 두루미가 가득 차 있었다. 이번 탐조 일행은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여서 더욱 즐거웠다. 북한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태풍전망대도 들러 임진강 두루미 서식지도 멀리서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연천 임진강 유네스코 생물권보호지역-임진강 권역으로 시민들이 스스로 조성한 두루미 서식지로 유명해졌다. 두루미가 ‘율무 낙곡’을 먹으며 월동한다고 해서 이곳 두루미는 율무 두루미란 별칭도 있다. 연천에 날아오는 두루미 숫자는 철원보다 적었지만 충분한 먹이와 안전한 두루미 서식지 확보를 위해 애쓰는 지역 농민의 열정은 철원 못지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2023년 2월에 진행한 두 번째 두루미 탐조
2023년 2월에 진행한 두 번째 두루미 탐조

 

연천을 둘러본 후에 철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시 찾은 철원 DMZ 내에는 옹기종기 평온한 두루미 가족들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왔다. 첫 탐조 때보다는 두루미가 눈에 더 잘 들어왔다. 하지만 저번처럼 대규모 무리를 관찰하기는 어려웠다. 

다시 찾은 철원 오대벼 채종단지의 서경원 회장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고 따뜻한 밥상까지 준비해 주었다. 직접 만든 두부와 바비큐는 오대 막걸리와 찰떡궁합이었다. 철원 DMZ 내 두루미 서식지가 지금처럼 안정화되는데 서 회장을 비롯한 지역 농민의 기여는 상상 이상이었다. 오대벼 채종단지 7만여 평에 물을 대고 두루미에게 우렁이나 볏짚 먹이를 꾸준히 주면서 돌봐준 덕분에 철원 두루미가 다시 살아나게 됐기 때문이다. 지역 농민의 자발적 참여로 자연과 생명이 되살아남에 다시 한번 머리가 절로 숙어졌다. 

이번 탐조 여행을 다녀오면서 두루미 생태에 더욱 관심이 커졌다. 최근 강화 갯벌까지 확장한 두루미의 분포와 개체군 이동 특성에 대해 문득 궁금해졌다. 내륙과 연안습지는 분명 서로 다른 환경 특성을 가질터인데, 먹이활동, 성장, 분포(이동) 특성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한번 연구해보고 싶다. 연안습지(갯벌)를 찾는 다양한 바닷새 역시 연안과 내륙을 오고 가며 다양한 먹이원을 섭취하고 체내의 염분을 조절한다고 한다. 갯벌에서 철새는 최상위 포식자로서 생태계를 안정화하는데도 기여하는 만큼, 향후 바닷새 연구는 갯벌 생태를 더욱 잘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할 것 같다. 

엊그제 뉴스를 보니 겨울 철새가 북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동안 두루미가 또 생각나겠지만, 올해 겨울까지 참아야겠다. 올해 겨울에는 더 많은 두루미가 우리나라를 찾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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