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대기자 남달성의 회상2. 첫 해외 어장개척에 나서다
수산대기자 남달성의 회상2. 첫 해외 어장개척에 나서다
  • 남달성 대기자
  • 승인 2023.02.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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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이판 상어잡이

[현대해양] 흔히 인간은 3대 욕구를 갖는다고 한다. 소유와 향락 그리고 창조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창조가 가장 값지다. 왕성한 지식욕, 부단한 향상의 정신, 강렬한 성취욕, 진취적 기상, 이 모두가 창조 욕구의 다른 표현이다. 특히 미지에의 동경은 해양탐험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제임스 쿡’ 선장은 영국 왕립학회의 요청에 따라 8년 반 동안 인류 최초로 남위 60도까지 진출했으나 끝내 남극대륙을 발견하지 못한 채 하와이 원주민에 의해 살해됐다.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효시였던 1백 톤에 불과한 ‘지남 호’ 역시 8~10미터 높이의 파도를 뚫고 적도를 넘어 낯선 땅 사모아에 터를 잡고 참치 잡이에 나섰다.

이것 또한 생명을 담보로 한 진취적 기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렇듯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떠나 저 너머에 있을 미지의 세계로 가 보고 싶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천사들만이 춤추는 아름다움과 아귀다툼이 없는 평화로움만으로 채색돼 있을 듯한 생각이 뇌리에 가득 차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영국의 시인 ‘스티븐 스펜더’는 파도 위를 나비가 날다 익사하는 풍경을 그림처럼 묘사한 ‘바다의 풍경’이란 시를 왜 읊었을까. 그러나 바다의 현실은 이와 사뭇 다르다. 흔히 시와 소설의 주제가 되는 그런 낭만적인 곳은 아니다. 세찬 격랑과 맞싸워 시련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지 않으면 꿈을 키우지 못한다.

 

미크로네시아 상어어장 조사

기자는 난생 처음으로 1975년 4월 19일 ‘수산진흥원’ 소속 시험조사선 ‘태백산 호’(309톤 선장 ‘이득태’)를 타고 부산 남항을 떠나 ‘미크로네시아’ 상어어장 조사에 나섰다. 중서부 태평양에 광활하게 펼쳐져있는 ‘미크로네시아’는 유인도 96개와 무인도 2,004개로 형성돼 있다. 이 가운데 ‘태백산 호’가 들른 섬은 ‘미크로네시아’ 행정 중심도시 ‘사이판 섬’을 비롯, ‘괌 섬’에서 북쪽으로 16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으나 ‘사이판 섬’에선 8킬로미터 거리 밖에 안 되는 ‘티니언 섬’, 그리고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바다 밑 환초(環礁)와 수령 4~5년에 불과한 ‘맹그로브’가 바닷속에서 밀림을 이루는 ‘팔라우 섬’ 등 모두 3곳.

‘팔라우 섬’은 최근 들어 ‘신들의 바다정원’으로 불려 세계적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또 ‘미크로네시아’ 섬들 가운데 가장 어업이 발달해 어업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다. 취재 당시 이들 섬은 유엔 신탁통치령에 따라 관리됐지만 지금은 대부분 자치령이 되거나 독립국가가 돼있다. 팔라우는 대표적 독립국가다. 이윽고 “ 야! 상어다”라는 소리가 선내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온다. 상갑판 위에서 오랫동안 망을 보던 ‘오희국 단장’(37, ‘수산과학원’ 연구관)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었다. 상어의 몸부림으로 메인 로프에 달린 가짓줄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사이판 근해에서 잡은 길이 3.8m, anrp 1.2 t짜리 편두상어
사이판 근해에서 잡은 길이 3.8m, anrp 1.2 t짜리 편두상어

데크(갑판) 위의 라인홀러(양승기 줄을 끌어 올리는 기계)가 감기면서 상어는 서서히 선박 우현 쪽으로 끌려온다. 드디어 회색 등이 수면위로 드러냈을 땐 선원들은 저마다 감탄의 소리를 질렀다. 상어 몸뚱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보통 200~600 킬로그램이라면 그대로 끌어 올려도 되겠지만 이 상어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창지기 ‘김영승 기사’(29)가 연신 상어 등에 창을 꽂았다. 하나, 둘, 셋, 창을 찌를 때마다 상어는 최후의 발악으로 몸을 뒤틀었다. 마치 옹달샘에서
샘물이 솟는 것처럼 창이 꽂힌 상어 몸뚱이에서 연신 검붉은 피가 치솟았다.

5분쯤 지났을까, 기진맥진한 상어는 호이스트(무거운 화물을 끌어올리는 기계)에 감겨 데크 위에 나동그라졌다.

몸길이 3.8미터, 무게 1.2톤짜리 편두상어였다. 국내에선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대형 상어다, 그해 4월 28일 첫 시험조업에 나선 이날 모두 5.5톤을 어획했다. 참치 조획률 1.0~1.05퍼센트에 비해 5배나 되고 상어 조획률 5퍼센트를 훨씬 상회
했다는 것. “와! 이게 뭐야” 데크 위에서 상어 내장을 처리하던 선원들이 일제히 고함을 질렀다. 대형 상어 내장 속에서 몸길이 50센티미터짜리 3년생 거북 한 마리와 새끼상어 3마리가 소화되지 않은 채 나왔기 때문.

더욱 놀라운 사실은 상어 뱃속에서 맥주 깡통 2개가 나오고 2년 전 다른 어선에서 어획한 상어에서 여자 상체가 나와 선원 모두가 혼비백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상어육질은 먹지 않는다. 또 상어들이 연안 깊숙이 들어와 수영객들을 해치고 5~10월에 이곳 연안으로 몰려오는 가다랑어를 잡아먹기 때문에 이의 자원보호를 위해 반드시 상어를 잡아야 한다고 우리 배에 탔던 ‘리몬 라이체베이’ 수산관(25)은 강한 어조로 말한다. 특이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상어를 식용으로 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비롯, 일본과 노르웨이 등 세 개 국가뿐이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가 대체로 골고루 먹는 편이다. 특히 경북지방에선 상어를 ‘톰박이’ 또는 ‘돔배기’로 부르기도 하고 이를 제사상에 반드시 올린다. ‘톰박이’란 말은 상어를 통째로 팔지 않고 1~2킬로그램씩 잘라 4각형태의 토막으로 판매하면서 경북지방의 방언으로 통용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소시지를 만들 때 주원료의 50~60퍼센트를 상어고기로 공급한다는 것이다.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선 상어만 잡는 ‘상어유망수협’이 있었다. 또 조합원만도 50~60명이나 될 뿐 아니라 관련 어선이 많을 땐 1백 척이 넘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호도가 낮아 사양화로 치닫고 있다.

 

관광지가 된 섬

‘사이판 섬’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남태평양 여러 섬 가운데 가장 치열한 전쟁을 치른 곳이었다. 때문에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여러 격전지가 섬 곳곳에 남아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이 자살절벽. 섬에 상륙한 미군에 쫓긴 5,000여 명의 일본 군인이 섬 북쪽 끝에 있는 자살절벽에 이르러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되자 250미터 높이의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옥쇄한 것이다. 이 절벽 아래쪽에는 만세절벽이 있는데 끝까지 항쟁하던 일본군이 마지막 만세를 부르며 숨져간 곳이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나가면 일본군이 최후로 진을 쳤던 사령부 터가 남아있다.

사이판 티니안 얍등 미이크로네시아 주민들이 바닷가에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고 있다.
사이판 티니안 얍등 미이크로네시아 주민들이 바닷가에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고 있다.

취재 당시 30년이 지난 그때까지 녹슨 기관포가 들판에 있고 바닷가에는 녹슨 탱크가 물에 반쯤 잠겨있었다. 또 사령관이 머물렀다는 동굴이 있는데 이것이 오늘날 ‘미크로네시아’의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사이판 섬’과 가까운 ‘티니언 섬’은 제2차 세계대전 때 7,000여 명의 한국인이 징용으로 끌려와 곤욕을 치렀던 곳이다. 대전 중 미군이 이 섬을 점령한 후 비행장으로 썼다. 놀라운 사실은 1945년 8월 9일과 11일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했던 원자폭탄을 이 곳에 숨겨 놓았다가 실어 갔다는 사실이다. 당시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인 ‘에놀라 게이(Enola Gay)’가 바로 이곳에 숨겨놓은 원자폭탄을 싣고 이륙했다.

그날따라 2,531킬로미터의 안개 낀 하늘을 3시간여 비행, 투하한 것이다. 세계 최초의 핵 공격이었다. 기자는 1975년 4월 어느 날 원자폭탄을 감춰 놓았던 깊이 10미터, 직경 1미터가 채 안 되는 웅덩이를 직접 확인하고 주위를 살펴봤다. 아직도 8개의 활주로와 원폭장치장 등 그때의 형체가 빛바랜 채 그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제1차 강제징용 때 동료 150명과 함께 끌려왔다는 ‘김육곤 씨’(취재 당시 80)는 “징용으로 끌려와 지금까지 살아남은 동료는 겨우 4명 뿐”이라고 말했다. 38년 전 (취재 당시) 일본의 한 무역회사 사원으로 이곳으로 온 ‘전경식 씨’(61)는 오랜 고생 끝에 ‘티니언 섬’에서도 가장 좋은 땅 10헥타르를 지닌 농장주인으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징용으로 끌려온 한국인들은 부두축조와 비행장 기초시설공사 등 힘든 일을 감당하지 못했거나 일본인들의 채찍질에 견디지 못해 숨져갔다. 그들은 그럴 때마다 ‘아이고 죽겠다’를 되뇌이고 기쁠 때나 슬플 때엔 선창가에서 ‘아리랑’과 ‘도라지’를 불렀다고 현지 주민들은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사이판 섬’은 1520년 ‘마젤란’ 일행에 의해 발견된 뒤 스페인, 독일, 일본에 차례로 예속되는 불운을 겪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6년 동안의 미군정을 거쳐 1962년 유엔 신탁통치령이 있기까지 험난한 역사를 거치면서 원주민 ‘차모로인’의 피는 거의 이국인들과 섞이고 말았다.

 

상어 득실거리는 바다

마리아나구의 경우 인구 2만 명 가운데 어민은 겨우 79명. 그나마 보트를 타고 나가 참치와 가다랑어 아니면 리프피시를 낚거나 연안 물고기를 창질 또는 그물질로 잡는 게 고작이다. 특히 가장 큰 어선은 39톤짜리. 그것도 사들인지가 3개월 밖에 안 된 것이어서 이곳 어업규모를 대략 짐작하게 한다. 너무나 풍부한 자원 탓으로 이곳 어민들은 한 달 동안 겨우 보름정도만 일할 뿐이다. 하루 저녁 스피드 보트를 타고 나가면 200 달러어치의 고기를 낚을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놀고서도 생활의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 같은 현상으로 “수산업 진흥은 오히려 어렵다”고 ‘팔라우’의 수산관 ‘아나타시오 프로배송’씨(33)는 불평을 털어놓는다.

‘사이판 섬’에는 택시가 없는 게 특색. 먼 거리까지 가려면 지나는 짐차 등을 손짓으로 불러 타야 한다. 별로 바쁘지 않은 차들은 대부분 친절히 베풀어 준다. 우리 일행도 한번 신세를 지고 운전사에게 상어잡이 미끼로 가져간 고등어 한 상자를 답례로 주었더니 무척 좋아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크로네시아 당국은 연근해 어업을 육성하기 위해 1973년 「수산진흥법」을 법제화하고 6개 구마다 수산과를 두었다. 또 어업협동조합도 어로자금을 신용 대출하도록 하고 영해 안에서 조업하는 모든 외국어선에 대해 현지주민들을 절반이상 승선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가다랑어, 참치, 리프 피시 등 연안해역의 인기 어종에 대한 어로조건은 꽤 까다롭다. 다만 상어잡이만은 어지간히 봐주고 있는 셈이다. ‘태백산 호’는 이번 시험어장 조사에서 모두 14차례의 시험조업 끝에 모두 28톤의 상어를 잡았다. 전체 조획률은 8.1퍼센트로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어느 해역엘 가나 ‘편두상어’, ‘귀상어’, ‘뱀상어’, ‘청상어’ 등 갖가지 상어가 득실거렸다. 겨우 250개의 낚시를 드리운 것만으로 2톤 정도를 어획했다. 조사단은 이번 상어 시험조업에서 전망이 밝은 것으로 결론 내렸다. 현지 주민들은 하루 빨리 한국 상어잡이 어선이 이 곳에 와 조업해 줄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다양한 상어.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귀상어, 뱀상어, 참상어, 청상어
다양한 상어.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귀상어, 뱀상어, 참상어, 청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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