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다시 1.한국 바다시를 찾아서(1)
한국 바다시 1.한국 바다시를 찾아서(1)
  •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2.1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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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져 있다. 바다가 새로운 삶의 공간으로 바뀐 현재 바다를 삶의 공간으로 노래하고 형상화한 문학 작품들이 중요한 한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의 문학사 속에서 바다는 어떻게 노래 되고 있을까? 고전문학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바다를 노래한 시들을 찾아 그 모습을 그려보고자 한다. 한국 바다시 여행의 안내는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가 맡아주었다. <편집자주>

 

삼면이 바다였던 한반도지만, 역사 속에서 바다를 노래하거나 다루고 있는 고전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우리의 선조들은 바다 지향의 삶보다는 육지를 소중한 삶의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장 일반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바다를 다루고 있는 기록이나 작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삼국유사』에는 「탈해왕 설화」, 「만파식적 설화」, 「처용 설화」, 「거타지 설화」, 「연오랑세오녀 설화」가 있고, 향가 「보현십원가」나 고려속요 「청산별곡」에도 바다가 등장한다. 가사나 소설, 한시에서도 바다가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여러 고전 작품 중에서도 바다가 주제이거나 중요하게 등장하는 대표적 작품은 「어부가」, 「표해록」, 「어로요」 등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중 「표해록」은 ‘바다문학’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대상이 되고 있다. 「표해록」에는 배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풍랑을 만나 표류하면서 겪는 구사일생의 삶이 사실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부의 「표해록」, 장한철의 「표해록」, 문순득의 「표해록」, 이지항의 「표주록」, 최두찬의 「승사록」 등이 속한다. 풍랑으로 표류하며 죽음에 가까이 다가섰던 무서운 바다의 경험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에서 산문이 지닌 구체성이 돋보이는 기록들이다.

그런데 이 표해록은 산문으로서는 바다문학이라 할 수 있지만, ‘바다시’와는 그 양식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본고에서는 논외의 대상이다. 그렇기에 한국 바다시의 뿌리를 찾는 작업은 자연스럽게 어부가나 어로요에서 시작된다. 우선 ‘어부가’를 중심으로 한국 바다시의 모습을 찾아보자.

한국 고전문학에서 한국 바다시란 일반적으로 『악장가사』에 나타나는 「어부가」(漁父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혜심(慧諶)(1178-1234)의 「어부사」(漁父詞)가 발견되면서 바다를 노래한 가장 오래된 작품을 혜심의 「어부사」로 보아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그런데 혜심의 「어부사」는 『악장가사』 「어부가」나 그 이후의 어부가들처럼 국문시가의 영역에 넣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는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어부가라면 바다시의 범주에서 제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악장가사』 「어부가」의 생성에 중국 문학의 영향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혜심의 「어부사」가 중국 송대에 유행한 사(詞)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고전에 나타나는 바다시들이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자료로서도 의미가 있다.

그럼 우선 『진각국사어록』(眞覺國師語錄) <보유편>에 전하는 혜심의 어부사 일부를 살펴보자.

 

一葉片舟一竿竹 한 척의 조각배 낚싯대 하나

一蓑一笛外無畜 도룡이와 피리밖에 아무것도 없네

直下垂綸鉤不曲 곧바로 늘인 줄 바늘은 굽지 않았으니

何撈摝 무엇을 잡으려나

但看負命魚相觸 분수없는 고기나 걸려들겠지


海上煙岑翠簇簇 바다 위 연기 속 푸른 빛만 우거지고

洲邊霜橘香馥馥 바다 위 연기 속 푸른 빛만 우거지고

醉月酣雲飽心腹 술 취한 달과 그름, 배부른 마음

知自足 스스로 족함을 아니

何曾夢見閑榮辱 어찌 꿈에라도 영욕을 보겠는가


脫略塵綠與繩墨 속세의 인연이나 규범을 벗어났으니

騰騰兀兀度朝夕 떳떳한 마음 기상으로 하루를 보낸다

獨是一身無四壁 오로지 한 몸 사방의 벽도 없으니

隨所適 가는 대로 두어라

自西自東自南北 서쪽 동쪽 남쪽 북쪽으로


落落晴天蕩空寂 아득히 맑은 하늘 빈 듯이 고요하고

茫茫煙水漾虛碧 끝없이 아슴푸레한 물 푸르름 일렁인다

天水混然成一色 하늘과 물 혼연히 한 빛이니

望何極 어느 끝 바라보랴

更兼秋月蘆花白 가을 달에 갈대꽃 흰빛만 더한다

 

 

진각국사어록
진각국사어록

이 노래에서 시적 자아는 한 척의 배에 낚싯대 하나, 도룡이 한 벌에 피리 하나만을 가지고 있다. 그나마도 바늘이 곧은 낚시를 드리우고 있으니, 그런 낚시 도구는 고기잡이와는 거리가 멀다. 결국 혜심은 이 노래를 통해 결국 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삶의 실체를 시적 자아가 투명한 물을 들여다보듯이 보고 있다. 그런 곧은 바늘에도 인연이 지워진 녀석이 와서 부딪는 것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는 시적 자아의 태도에서 인간사를 보는 고승의 깨달음을 읽어낼 수 있다.

이렇게 혜심의 어부사에 등장하는 어부는 외형만 어부로 나타나지 실제 어로를 가업으로 하는 어부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어부의 등장을 가어옹(假漁翁)으로 명명하여 고전에 나타나는 어부가에 나타난 어부를 칭하기도 한다. 여기서도 혜심은 가어옹을 등장시켜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곧은 바늘의 낚싯줄을 드리우며 고기잡이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어부의 모습을 내비치고 있다.

그런데 위 시는 송사(宋詞)의 하나인 어가오(漁家傲)조의 노랫말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부사의 중국 영향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된다. 어가오는 7.7.7.3.7자로 1결로 하여 전·후결 쌍조를 이루는 전후결(前後闋) 각 5구, 측운(仄韻)으로 된 사패(詞牌) 명칭이다. 고려조의 고승 진각국사 혜심이 송사의 사패의 하나인 어가오조의 노랫말 형태를 취하여 어부사를 지은 것이다. 혜심이 왜 「어부사」를 지었을까? 한 점도 풀어가야 할 문제이지만, 그의 창작 욕구를 자극한 것은 중국의 어부사였을 것으로 짐작해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고려조에 중국의 다양한 어부사가 전해졌을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혜심의 어거오조는 보통 쌍조로 창작되는데 위의 작품은 그 두 배인 4조로 늘려져 있다. 이는 중국의 것을 받아들이되 자기 나름의 새로운 형태를 지향한 결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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