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60. 벌교갯벌, 세계유산으로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1)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60. 벌교갯벌, 세계유산으로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1)
  • 김준 박사
  • 승인 2023.02.1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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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 벌교
여자만으로 이어지는 벌교갯벌
여자만으로 이어지는 벌교갯벌

[현대해양] 부용산에서 내려와 벌교역 앞 식당에 들렀다. 짱뚱어탕이 생각나서다. 시장에서 먹었던 꼬막비빔밥도 좋지만 추울 땐 따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자리가 없다. 있어도 혼자 온 손님을 반겨 줄까. 언제쯤 나 홀로 여행에서 식당 주인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까. 설 연휴라서인지 가족 여행객들이 많다. 벌교에 오면 먹고 싶은 음식으로 꼬막 정식이나 짱뚱어탕을 첫째로 꼽는다.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태백산맥을 읽고 일부러 꼬막을 먹기 위해 벌교에 왔다는 대학생도 만났다.

여자만은 순천, 여수, 고흥, 보성으로 둘러싸인 내만이다. 이곳은 순천의 이사천과 동천, 벌교의 벌교천에서 유입되고, 외해에서 조류를 따라 들어온 미세한 흙이 항아리형의 내만에 쌓여 만들어진 펄갯벌이다. 여자만 전체 면적은 약 320여 평방킬로미터이며, 이중 갯벌 면적은 80여 평방킬로미터로 27% 정도에 이른다. 이중 순천만갯벌과 보성벌교갯벌은 지난 2021년 세계자연유산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의 유산구역이다.

 

보성벌교갯벌 세계유산에 등재 되다

꼬막을 채취하는 벌교지역 어민
꼬막을 채취하는 벌교지역 어민

우리나라 갯벌 정책은 새만금 전과 후로 구분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새만금 논란은 습지보전법을 낳았다. 그동안 이용만 했던 습지를 내륙습지와 연안습지로 구분하여 보호지역을 지정했다. 보성벌교갯벌은 무안갯벌에 이어 2003년 순천만갯벌과 함께 연안습지보호지역에 지정되었고, 2006년 람사르사이트가 되었다.

이후 습지보호지역을 확대해 세계유산등재를 준비하기도 했다. 이는 유네스코가 강조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오롯이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21년 ‘한국의 갯벌’은 2007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Jeju Volcanic Island and Lava Tubes)’의 등재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자연유산이 되었다. ‘한국의 갯벌’은 ‘희귀동식물의 서식처와 생물다양성(기준ⅹ)’으로 OUV로 인정받았다.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로(EAAF)’의 중간기착지로 멸종위기에 처한 물새종과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된 것이다.

가리맛조개를 채취하는 어민
가리맛조개를 채취하는 어민

‘한국의 갯벌’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 보성-순천갯벌에서는 저서규조류 188종, 대형저서동물 445종, 염생식물 24종, 해조류 23종이 확인되었다. 이곳에는 숭어, 짱뚱어, 농게, 칠게, 꼬막, 가리맛조개 등 400여 종의 저서생물이 서식한다. 덕분에 어민들은 꼬막, 가리맛, 망둑어, 숭어, 개소겡 등을 잡는다. 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황새, 저어새, 도랑부리백로, 큰고니, 흑두루미 등 40종이 확인되기도 했다. 보성-순천갯벌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이유다. 특히 흑두루미의 경우 최근 2~3년 사이 3,000여 개체가 보성-순천 갯벌을 찾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확인된 개체수의 21.4%에 이른다. 초기 개체수가 많지 않을 때는 순천만에 머물렀지만, 최근엔 벌교천 하구 ‘영등뜰’에서도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일본의 조류독감 여파라는 분석과 함께 흑두루미 분산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네스코가 요청하는 유산구역 확대의 필요성이 입증되는 셈이다. 여자만도 벌교갯벌과 순천만갯벌 외에 이웃한 고흥과 여수 갯벌 지역까지 유산구역을 확대되어야 한다.

 

중독성이 강한 ‘뻘맛’에 빠지다

벌교시장에서 만난 꼬막 삼총사(참꼬막, 새꼬막, 피꼬막)
벌교시장에서 만난 꼬막 삼총사(참꼬막, 새꼬막, 피꼬막)

겨울에 벌교갯벌에서 나는 것 중 꼬막을 덮을 것이 없다. 꼬막은 벌교의 상징이 되었다. 여기에는 태백산맥이 큰 역할을 했다. 꼬막은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피조개)으로 나뉜다. 가격 차이가 크다. 1kg을 기준으로 피꼬막이 5,000원, 새꼬막은 1만 원, 참꼬막은 2만 원에 이른다. 가장 맛이 좋고 인기도 높은 꼬막은 참꼬막이다. 벌교갯벌을 상징하는 수산물이다. 참꼬막은 수산물 중 지리적표시제 1호로 지정되었으며, 참꼬막 채취 때 사용하는 널배(뻘배)를 사용하는 어업은 국가중요어업유산 2호로 지정되었다. 참꼬막은 제물로 올라가는 꼬막이라 ‘제사꼬막’이라 부르기도 한다. 반대로 새꼬막은 참꼬막에 밀려나 제물에 올라가는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지금은 참꼬막 채취량이 적고 값이 비싸 새꼬막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동안 똥꼬막이라며 설움을 받았지만 이제 참꼬막 자리를 꿰찼다. 참꼬막이 사라지면 가장 큰 변화를 감당해야할 이들은 어민들이다. 개인 어가 경영과 마을경영에서 꼬막밭이 차지한 역할은 컸다. 그뿐일까. 벌교시장은 물론 지역관광까지 그 역할이 대단했다. 벌교갯벌에서 참꼬막이 나오지 않으니 이웃 고흥갯벌에서 가져와야 할 것이며, 부족하면 다른 지역에서 채워야 한다. 참꼬막 대신 새꼬막으로 대신해야 할 일도 늘어날 것이다. 참꼬막이 벌교갯벌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어촌공동체의 위기이자 지역사회의 위협요인이기도 하다.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

벌교갯벌에 꼬막만 있는 것은 아니다. 봄과 여름에는 가리맛조개가 소득원이다. 참꼬막 채취량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가리맛조개가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가리맛조개 채취는 참꼬막처럼 뻘배를 타고 펄갯벌 가운데로 이동해 얼굴이 갯벌에 닿을 만큼 팔을 집어넣는 극한노동이다. 한 개 두 개 뽑아낼 때마다 입안에서 단내가 난다. 그래서인지 가리맛조개 맛은 짭조름한 꼬막 맛과 달리 달짝지근하다. 겨울의 맛과 여름의 맛이 대비된다. 자연이 주는 오묘한 미각이다. 이 외에도 벌교 뻘맛으로 짱뚱어탕과 망둑어회, 벌교시장 마른 터줏대감 개소겡과 싱싱한 숭어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개소겡은 국제슬로푸드가 추진하고 있는 사라질 위기에 있는 식재료를 지정해 보호하는 ‘맛의 방주’로 지정되었다. 망둑어는 간식이 아니라 귀한 먹을거리로 주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뻘배를 이용해 꼬막을 채취하는 어민
뻘배를 이용해 꼬막을 채취하는 어민

여자만, 세계유산으로 거듭나야 한다

대포리나 장좌리 등은 벌교의 바닷가 마을은 풍어제나 당산제를 지낼 때 갯벌 뭇 생명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기도 했다. 주민들은 일찍부터 정월에는 자연을 배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이것이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이 지향해야 할 가치이며 갯벌문화다. 인간은 자연을, 자연은 인간을 배려할 때 그 감동은 지속되며, 그 선한 영향이 인간에게 다가온다. 이를 치유라 한다. 자연은 늘 인간을 배려했지만, 인간은 그 배려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무시했다. 심지어 폭력으로 배려에 답하기도 했다. 자연의 배려를 오롯이 즐기고, 다시 인간이 자연에 그 배려를 되돌려 줘야 한다.
최근 연안습지는 국제사회에서 블루카본의 역할을 인정받았다. 국내에서는 갯벌도 블루카본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갯벌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멸종위기종의 서식지와 생물 다양성의 가치만 아니라 탄소 절감의 가치도 갖게 되는 것이다. 기존의 수산물 공급, 수질 정화, 해안선 후퇴 방지, 심미적 기능 등 이미 알려진 가치 외에 주목해야 할 부분이 늘어나고 있다. 벌교갯벌을 소재로 진행해온 꼬막축제나 뻘배타기 등도 이제 세계자연유산과 블루카본이라는 가치에 맞게 도시민과 세계인이 공감하는 프로그램을 발전시켜야 할 때다. 보성벌교갯벌은 ‘한국의 갯벌’ 중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상징적인 갯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갯벌의 가치들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우리 세대가 알지 못한 가치가 미래세대에 또 밝혀질 수 있다. 보성벌교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인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갯벌’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유네스코 권고한 유산구역의 확대도 같은 맥락이리라. 다행스럽게 이웃한 고흥갯벌은 지난해 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맞은 편 여수갯벌도 올해에 습지보호지역 지정을 준비 중이다. 여자만이 오롯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생태관광과 지역발전의 초석이 되길 기원한다.

벌교읍과 벌교천
벌교읍과 벌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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