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여행 77] 유죄가 확정된 후에도 다시 다툴 수 있을까?
[해양수산법 판례여행 77] 유죄가 확정된 후에도 다시 다툴 수 있을까?
  • 한수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 승인 2022.12.0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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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업법 재심사건
한수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한수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여행의 시작>

물리법칙 중에는 우리가 지금까지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고 합니다. 사람의 일을 규율하는 사법 절차 중 가장 엄격하다는 형사절차에서도 위증과 강요 등으로 인해 진실과는 다른 판결이 나기도 합니다. 수천 년의 실무가 쌓여온 결과 법은 이런 오류들을 충분히 인지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우리 형사소송법에도 해결책이 존재합니다. 즉, 형사소송법 제420조에서는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어 더 이상 다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원판결의 증거가 위조되거나 변조된 것임이 확정판결로 증명’되거나, ‘수사에 관여한 사람들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지은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 등의 경우에는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재심’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재심을 받으려면, 원판결의 증거가 위조되었다는 확정판결을 받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억울한 점을 밝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확정판결까지 받는 것 또한 실무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법은 이런 점 역시 이미 예상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형사소송법 제422조는 증거 관련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그 사실을 증명하여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A는 어로 저지선을 월선하거나 휴전선 이북으로 탈출하여 어로작업을 하면 위법이라는 점을 알면서 1971. 5. 13. 13:00경 어선을 타고 멸치어로작업차 속초시에 있는 동명부두를 출항하여 시속 약 6마일 속도로 정동방으로 약 3시간 항해한 다음 그물을 놓은 채 약 9시간 조류에 따라 북상한 끝에 5. 14. 01:00경 그물을 걷었으나 멸치가 잡히지 아니하자 다시 약 7시간 조류를 따라 북상하여 어로한계선을 넘고 다시 군사분계선을 넘어 반국가단체의 지역인 북위 38도38분40초 동경 128도45분 해점에 탈출하였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및 수산업법 위반으로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에 공소제기 되었습니다.

법원은 1972. 8. 17. A에 대한 공소사실 중 반국가단체 찬양, 고무 또는 이에 대한 동조로 인한 반공법 위반의 점 및 금품 수수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의 점에 관해 형법 제12조의 강요된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를 들어 무죄로, 나머지 반공법 위반의 점 및 수산업법 위반의 점은 유죄로 각 판단하여 A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 및 몰수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재심대상판결, 위 법원 1972. 8. 17. 선고 72고단168 판결).

이에 검사가 A에 대한 재심대상판결에 대해서 사실오인, 법리오해 및 양형부당을 이유로 춘천지방법원에 항소하였으나, 항소심 법원이 1972. 12. 14.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상고기간이 경과함으로써, 1972. 12. 22. A에 대한 재심대상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무려 50년이 흐른 뒤 진실이 밝혀져, 검사는 A를 위해 2022. 3. 23.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 2022재고단18호로 위 재심대상판결에 관하여 재심을 청구하였습니다.

그러자 법원은 2022. 5. 19. ‘재심대상판결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들이 그 직무에 관해 형법 제124조의 직권남용에 의한 체포·감금죄를 범한 사실이 증명되었으나, 위 직무 관련 범죄의 공소시효가 이미 경과하여 그에 관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재심대상판결에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재심개시결정을 하면서 드디어 A에 대한 재판이 다시 열리게 되었습니다.

과연 A는 억울함을 풀 수 있었을까요?

 

<쟁점>

유죄 확정 판결 후에도 다시 다툴 수 있을까요?

 

<법원의 판단>

1)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은 검사에게 증명 책임이 있다. 그러나 검사는 재심개시결정 이후 공소사실을 증명할 증거를 전혀 제출하지 아니하였고, 법원은 A에 대해 무죄를 구형하였다.

검사가 무죄 구형의 이유로 든 사정은 다음과 같다. A는 재심대상판결의 기초가 된 수사를 받을 당시 불법 구금상태에서 조사를 받았으므로 수사기관에서 A가 한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고, A가 법정에서 한 진술 역시 신빙성이 없으며, A와 함께 재판을 받은 B 등에 대해서 이미 재심이 개시되어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으므로 A가 무죄라는 것이다.

3) 재심개시결정의 기초가 된 자료를 포함하여 이 법원에 제출된 기록에 의하면 검사의 주장처럼 A 및 B 등에 대해 불법 구금상태에서 수사가 이루어진 사실이 인정되고, 그와 같이 부당한 신체구속이 장기화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A 및 B 등의 법정진술 역시 임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므로, 설령 검사가 공소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A 및 B 등의 진술 등을 증거로 제출하였더라도 대체로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거나 일부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였을 것이라 봄이 상당하다.

4) 결국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형사소송법 제440조 본문에 의하여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 2022. 8. 31. 선고 2022재고단18 판결).

 

<판결의 의의>

A는 50여 년 전인 1972. 12. 22. 휴전선 이북에서 멸치를 잡았다는 이유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그 형이 확정되었습니다. 그 당시 A가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을 찬양, 고무 또는 이에 동조하였다는 반공법 위반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강요된 행위, 즉 수사기관의 불법감금 등으로 인한 것으로 보아 무죄가 선고되었다. 하지만 휴전선 이북에서 멸치를 잡은 수산업법 위반 등은 유죄 판결이 났습니다. 그런데 50여 년이 지나 결국 휴전선 이북에서 멸치를 잡았다는 점까지 재심을 통해 무죄가 된 것입니다.

 

<여행을 마치며>

과거에 여러 가지 이유로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분들이 있고, 특히 어업인의 경우 A와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지고, 제도가 바뀌면서 A와 같이 평생의 한을 가지신 분들을 위한 재심이라는 제도가 존재한다는 점, 잊지 마세요!

그동안 ‘해양수산법 판례여행’ 코너를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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