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58. 가장 아름다운 바다는 자연을 닮은 당신의 마음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58. 가장 아름다운 바다는 자연을 닮은 당신의 마음
  • 김준 박사
  • 승인 2022.12.19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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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한 사내가 제주도에 살겠다고 강화도에서 짐을 싸 들고 내려왔다. 제주도 한 달 살기, 일 년 살기 하는 사람이 많으니 이상할 것 없다. 그런데 이 사내의 목적지는 제주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비양도라는 작은 섬이다. 가져온 짐은 새, 해양생물의 사진과 그림이 잔뜩 붙은 교육자료였다. 그런데 첫날부터 말썽이 생겼다. 한림항 근처 도선장에 도착했는데 풍랑주의보로 배가 뜨지 않았다. 그는 짐을 내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임시숙소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그렇게 그와 헤어져 일 년이 지났다. 다시 그를 만나러 비양도로 향했다. 막배 시간에 맞추기 위해 부리나케 달렸다. 그러나 도선장에 도착하니 이미 배가 포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코끼리바위와 노을
코끼리바위와 노을

그는 비양도 해설사가 되었다

비양도가 사선이라도 타고 들어올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어 다행이었다. 일 년 전 만나기로 한 세 사람이 만났다. 강화도에서 해양생태교육을 하다가 이제 비양도 주민이 된 여상경 물새알 대표, 진안에서 마을사업을 하던 활동가 신경철(고래), 그리고 필자까지 세 명이다. 동네 마실 가는 차림으로 마중 나온 여 대표는 영락없는 비양도 사람이다. 붙임성이 좋고, 손재주 좋고, 애주가이니 작은 섬에 그의 존재를 알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머무는 ‘비양도해양문화교육관’에 짐을 풀었다. 빈집을 리모델링해서 사무실, 안내센터, 교육관, 사랑방 등으로 이용하는 공간이었다. 강화도에서 주민 사업을 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탐조네트워크와 지인을 통해 미역과 톳을 판매했다. 해양환경공단의 지원을 받아 주민교육과 에코드로잉 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주민들이 월 1회씩 실시하는 해양쓰레기 청소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물론 여행객에게 비양도에서 볼 수 있는 새와 식물을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덕분에 선생님, 박사님, 관장님, 소장님 등 주민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이 다양하다.

비양도 주민들이 참여한 해양 쓰레기청소 (사진 제공_여상경 대표)
비양도 주민들이 참여한 해양 쓰레기청소 (사진 제공_여상경 대표)

우리는 가장 먼저 해녀 삼촌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느긋하게 섬을 한 바퀴 돌아보고 술집에 자리를 잡았다. 여 대표는 비양도에서 유명인사(?)가 돼 있었다. 그날 자리한 술집 안주인이 따뜻하게 반겨주고 훌륭한 저녁 만찬을 내준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리는 이튿날 아침 다른 손님 밥 준비할 때 덤으로 차릴 테니 아침을 먹으러 오라는 인사도 받았다.

금능에서 본 비양도
금능에서 본 비양도

작은 섬에 머물다

섬에서 그것도 작은 섬에서 하룻밤을 묵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이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꼭 권한다. 저녁도 좋지만 이른 아침 산책 삼아 섬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작은 섬에 머무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해 질 무렵 돌고, 이른 아침에 돌고, 또 낮에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다. 이번에는 자전거를 탔다. 언제 나왔는지 물질을 하는 해녀 삼촌들이 첫눈에 들어왔다. 배물질이다. 멀리 존재감을 드러내는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열댓 명의 해녀들이 소라를 줍는 중이다. 잠시 후 배가 다가오더니 해녀들이 하나둘 테왁과 망사리를 밀며 모여들었다. 멀리서 봐도 소라가 가득하다. 몇 시에 나온 것일까. 뒤늦게 나온 해녀 한 분이 해안에서 물질을 준비하는 중이다. 파도가 바위를 세차게 두들겨도 그녀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쑥을 뜯어 물안경을 쓱쓱 문지르고 채비를 끝냈다. 그리고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익숙하게 파도를 타고 들어갔다. 무애자애한 선승의 모습도 보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애기업개바위와 노을(사진 제공_여상경 대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애기업개바위와 노을(사진 제공_여상경 대표)

어제 노을에 코끼리바위에 자리를 잡았던 왜가리 가마우지들이 머물렀던 코끼리바위도 아침 햇살을 받느라 분주하다. 한반도가 수십억 년 전에 형성되었고, 제주도는 수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 비양도는 2억 7,000년 전에 형성된 섬으로 알려져 있다. 비양도 북쪽에는 ‘애기업은 돌’이라 부르는 호니토(hornito)를 비롯해 화산탄, 스코리아, 집괴암 등이 남아 있다. 특히 가스가 분출하면서 내부에 굴뚝 모양을 이루는 호니토는 비양도에서만 볼 수 있는 천연기념물이다. 호니토 외에 쐐기풀과 낙엽관목의 비양나무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비양도 중앙에 두 분화구 중 북쪽에 있는 분화구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비양나무 자생지는 우리나라에서 비양도 분화구가 유일하다. 할망당이 있는 팔랑못에는 물새들이 자리를 잡고 먹이를 찾는 중이다. 아침 물때는 해녀나 백로나 먹을 것을 구하는 시간이다. 그물을 털고 오는 배도 만났다. 아침 햇살에 배는 온통 황금빛이다. 북쪽 바다에는 갈치와 한치를 잡는 배들이 아쉬움을 달래며 집어등으로 수평선을 밝히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양나무(사진 제공_여상경 대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양나무(사진 제공_여상경 대표)

제주도에서 처음이라고, ‘비양도탐조대회’

아침에 중년여성 두 분이 비양도해양문화교육관을 찾았다. 어제 식당에서 만난 일행들이다. 우연히 말을 섞었고, 교육관에서 비양도 새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말에 찾아온 것이다. 여상경 대표는 익숙하게 그렇지만 편안하게 비양도 새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새와 주민과 섬 이야기를 함께 풀어내는 귀한 이야기였다. 일 년 만에 비양도 해설사가 된 그는 ‘비양도탐조대회’를 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조용하게 진행하려던 행사였는데, 서울과 순천의 탐조인들과 제주도 습지연구회 등이 관심을 보여 70여 명이 참석하는 행사가 되었다. 물새들이 많지 않은 시기임에도 비양도에서 21종이 관찰됐다.

지난 10월에는 ‘비양도의 새’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했다. 여 대표가 4월부터 10월까지 비양도에서 관찰한 새는 모두 66종이다. 그 중 흰뺨검둥오리, 흑로, 섬휘파람새, 꿩, 매, 흑로 등 10 종은 섬에서 번식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비양도는 제주도 본섬과 마찬가지로 한반도로 들어오는 이동 철새들이 처음 만나는 섬이다.

흑로(사진 제공_여상경 대표)
흑로(사진 제공_여상경 대표)
바다직박구리
바다직박구리

왜 그는 비양도에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이 기록을 통해 비양도의 생태적 가치와 고유성과 정체성을 유지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섬은 늘 주민들보다 이방인이 그 가치에 주목하게 된다. 주민들도 비양도에 이렇게 많은 새가 있냐며 놀랍다는 반응이다. 해녀 삼촌 중 누군가가 무리에 떨어져 헤매는 흰뺨검둥오리 새끼를 발견해 알려주기도 했다. 그전 같으면 무심코 지나갈 일이지만 이제 주민들에게도 비양도 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겨울철에는 비양도 안에 있는 몇 개의 카페에서 사진전을 이어갈 생각이다. 또 이장님이 연결해준 한림읍사무소에서도 전시할 계획이다. 비양도를 찾은 탐조인들에게 비양도지역화폐를 발행해 섬 식당에서 식사하고 필요한 것을 구매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새를 보기 위해서 모여든 사람들이지만 이들에게 새만 보이겠는가. 섬의 모습도 섬사람들의 살림살이도 보일 것이다. 따뜻한 시선도 차가운 시선도 있을 것이다. 이들 중에는 다시 비양도를 찾아 하루를 머무는 사람도 생겨날 것이다. 섬이 무인도가 된다고 야단이다. 섬을 활성화하겠다고 난리다. 그리고 온갖 시설이 생겨나고 있다. 결국, 사람이다.

여 대표는 내년 사업을 고민 중이다. 주민교육을 위해 예산확보를 위해 공모사업을 준비해야 한다. 일 년 만에 소문이 나면서 금 년에 했던 주민교육, 탐조대회는 반드시 이어가야 할 것 같다. 최근 주민들 생일을 모두 기념일로 표시한 생일 달력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에코드로잉을 통해 한 번도 함께 모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생겼다. 낯선 사람이 작은 섬 비양도에 들어와 따뜻한 봄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비양도해양문화관 벽에 적힌 ‘세상 가장 아름다운 바다는 자연을 닮은 당신의 마음’이라는 글귀가 빛난다. 

탐조대회에서 비양도이야기를 전하는 여상경 대표(사진 제공_여상경 대표)
탐조대회에서 비양도이야기를 전하는 여상경 대표(사진 제공_여상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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