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K-갯벌 슈퍼스타가 되기까지 BENTHOS人 40년 여정
16. K-갯벌 슈퍼스타가 되기까지 BENTHOS人 40년 여정
  • 김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 승인 2022.12.1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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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올해는 희로애락이 큰 해였다. 갯벌 공부를 25년째 하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주목받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한국 서·남해 갯벌에 서식하는 1,000종에 달하는 해양저서무척추동물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해양생물다양성으로 유명해졌고, 18조 원에 육박하는 경제적 가치를 품은 바다의 스타가 됐다.

최근 이집트에서 개최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이하 COP27)에서 한국의 갯벌이 기후위기의 새로운 해결사로 주목받기도 했다. 2022년 뜨겁고 치열했던 한해를 마감하며, ‘K-갯벌’과 함께했던 그간의 지난한 여정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한국 갯벌의 시련과 재조명된 놀라운 가치

갯벌의 가치를 잘 몰랐던 1970~1980년대, 갯벌은 버려도 되는 ‘쓸모없는 땅’이란 인식 덕에 대규모 간척사업의 최대 희생양이었다. 지난 40년간 현재 남아있는 갯벌(약 2,500km²)에 버금가는 면적의 자연 갯벌이 간척과 매립으로 모두 소실됐다. 제주도보다 더 큰, 서울시 면적의 4배에 달하는 바다의 땅이 부지불식간 사라진 것이다. 시화호(180km²), 새만금(400km²)과 같은 대규모 간척을 포함하여 수많은 자연 갯벌이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고, 갯벌을 터전으로 하는 모든 저서생물은 무덤 속에 묻혔다.

아름답고 풍요로움을 간직했던 복잡한 해안선이 일품인 우리나라 서해안은 긴 콘크리트 방조제 도로가 들어섰고, 그 처참한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내부에 갇힌 물은 썩었고 빈산소와 오염으로 신음하던 대부분의 저서생물은 표층으로 기어 나와 개흙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우리 연구진은 2018년 간척으로 사라진 갯벌의 유무형의 경제적 손실액이 연 8조 원에 이른다는 연구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한국 갯벌의 경제적 가치 18조 원을 고려할 때, 그 손실 추정액은 더 커질 것이 자명하다.

 

갯벌 연구의 선구자, 고철환 교수

갯벌 생태연구의 역사는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은사님인 고철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독일에서 해양생물학 학위를 받고 1981년 서울대 해양학과로 부임하면서 소위 ‘학문적’ 관점에서 갯벌이 소개됐고, 생태연구가 시작됐다. 1970년대 간척사업이 국토개발사업으로 시작될 때는 전 국민이 갯벌과 갯벌의 가치에 대해 무지했다. 사실 갯벌 연구 역사는 유럽에서 이미 100년 이상 지났지만, 뒤늦게라도 1980년대 초에 갯벌이 국내에 소개되고 학문적 연구가 시작된 것은 다행이다.

고 교수님은 서울대 해양저서생태학 연구실(이하 BENTHOS)을 이끌며 재직기간 30년 넘게 갯벌 생태연구를 주도하셨다. ‘마른 땅’이란 뜻을 가진 일제 강점기 용어인 ‘간석지’ 대신 ‘넓은 들’을 뜻하는 순우리말 ‘갯벌(Getbol)’ 사용을 주창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세계 유수의 저널에 갯벌 생태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한국 갯벌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쉽게 알리고자 ‘세계 5대 갯벌’이란 말도 만들어냈다.

고 교수님의 갯벌 사랑과 해양학에 대한 열정은 정년 후에도 식지 않았다. 2014년 제자들과 함께 해양정책 분야의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한국의 갯벌’ 특별호를 발표하는 투혼을 보여주셨다. 이를 계기로 한국 갯벌의 가치가 다시 대중 속으로 인식되는 계기를 마련했고, 갯벌 생태와 복원의 중요성이 재조명됐다. 본 한국의 갯벌 특별호에는 총설 논문을 포함하여 총 19편의 논문이 게재됐는데, 지난 30년간 갯벌 생태연구를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1세대 해양학자의 대표적인 성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갯벌의 해양과학적 연구 결과뿐만 아니라 해양생태계 보존, 해양보호구역, 갯벌 생태복원 등 관련 정책과 사회과학적 측면의 논문도 다수 게재됨으로써 갯벌과 관련한 국내 해양보호정책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이렇듯, 고 교수님을 중심으로 한 BENTHOS의 갯벌 생태연구는 최근 한국 갯벌의 ‘세계자연유산’ 등재와 ‘갯벌 및 그 주변지역의 지속가능한 관리와 복원에 관한 법률(갯벌법)’ 제정의 학문적 근간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ENTHOS 입문과 내가 갯벌을 공부하는 이유

나에게 어릴 적 갯벌은 ‘놀이’ 공간이었지만, 해양학과에 입학하고 고철환 교수님의 ‘생물해양학’을 수강하면서 어느새 ‘탐구’ 대상으로 바뀌었다. 천리포 실습을 계기로 생물해양학에 관심을 갖게 된 나는 학부 3학년 때 BENTHOS 인턴을 시작했다. 이때 고 교수님의 새만금 갯벌 TV 촬영을 따라간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프로그램명은 ‘환경탐사 그린맨을 찾아라’였다. 1996년 당시 새만금은 방조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고 교수님은 새만금 반대를 주장하는 대표학자였다. 나는 현재 안양대 교수로 있는 류종성 선배, 그리고 몇 명의 다른 학부생과 함께 엑스트라로 참여했다. 오후 내내 계속된 촬영 동안 우리는 갯벌에 빠지고 뒹굴면서 쉴 새 없이 개흙을 파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자 소쿠리에 조개가 가득 쌓였다. 한바탕 ‘뻘짓’에 지칠 대로 지쳤지만, 의외로 재미가 있었고 묘한 짜릿함마저 느꼈다. 나는 그때 교수님에게 갯벌의 중요성과 간척의 폐해에 대해 질문을 했다.

촬영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후일담이지만, 류종성 선배는 새만금을 공부하고자 국외 유학을 포기하고 BENTHOS에서 박사학위를 한 것을 늘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지금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위원장으로 현장에서 늘 실천하는 학자로서의 모범을 보여줌에 감사하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때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것 같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지난 20여 년 갯벌 공부를 계속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갯벌의 절대적 보존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과학적 연구 결과가 아직 충분치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새만금 갯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새만금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1980~90년대 BENTHOS, 기억과 추억

고철환 교수님의 갯벌 생태연구 시작을 1980년대 초로 볼 때, 우리 BENTHOS는 2대에 걸쳐 대략 40여 년 동안 우리나라 갯벌과 저서생물을 연구하고 차례차례 기록해왔다. 갯벌 연구의 어려움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질퍽한 뻘에 들어가서 찐득찐득한 퇴적물 안에 숨어 사는 저서생물을 눈이 빠지도록 찾고 잡아낸다. 소팅하고 동정하는 지루한 작업 끝에 우리는 소위 군집자료를 얻어낼 수 있다.

고 교수님의 첫 제자인 최진우 박사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채집 도구(삽, 그랩 등)는 버스나 택시에 싣고 다니면서 전국 바다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에는 조하대나 동해 대륙붕 조사도 시작했는데 배를 타고 나가 사람 몸집만 한 그랩을 2~3명이 낑낑대며 내리고 올리며 저서퇴적물을 채취했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갯벌 생태연구와 더불어 저서 환경오염 연구가 활발해졌다. 내가 학부 인턴, 대학원 석사 시기를 거친 시기인데,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연구비를 수주한 고 교수님께서 갯벌 생태연구에서 저서퇴적물 오염연구로 확장했던 시기다. 학생들도 더 바빠졌다. 예전의 저서생태 군집 연구는 기본, 저서퇴적물 내 오염물질 화학분석과 생물 영향평가까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편 새로운 실험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는 행운도 따랐다. 나는 미국 미시간주립대 동물학과의 Giesy 교수 연구실로 실험 연수를 갔고, 그곳에서 화학분석과 생물검정법을 배울 수 있었다. 내 인생 두 번째 터닝포인트였다.

1990년대 실험실 맏형이었던 현재 해양과학기술원에 재직 중인 강성길 박사는 당시를 ‘좌충우돌’ 시기라 회고했다. 나와 많은 선후배는 외국에서 다양한 선진 방법론을 배웠고, 실험실로 돌아와 우리만의 실험방법을 정착시켰다.

서울대 해양저서생태학 연구실(BENTHOS)을 이끈 고철환 교수와 제자들의 발자취(1981년~2000년대)
서울대 해양저서생태학 연구실(BENTHOS)을 이끈 고철환 교수와 제자들의 발자취(1981년~2000년대)

2000년대 이후 BENTHOS, 그리고 현재

2000년대에도 갯벌 생태연구는 계속됐다. 오염연구로 잠깐 주춤했던 생태연구가 2000년대 초반 활기를 되찾았다. 나는 박사 초반까지 진행했던 저서퇴적물 오염연구를 마무리하면서 2002년부터 갯벌 미세조류 생태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저서미세조류 연구팀은 지금의 안양대 류종성 교수가 저서생태 군집, 한국해양대 박진순 교수가 규조류 분류, 내가 미세조류·퇴적물 재부유, 군산대 권봉오 교수가 일차생산을 맡아 함께 진행했다.

나는 권 교수를 도와 저서미세조류 생산력을 측정하게 됐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난관에 부딪혔다. 거금 400만 원을 들여 구매한 산소 미세전극 센서 2개를 개봉 후 2시간 만에 나와 권 교수가 하나씩 깨뜨리고 만 것이다. 센서 끝부분이 10마이크로미터 크기로 매우 미세한데, 이를 퇴적물 표층에 꽂으면서 센서가 깨져 망가진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우리는 센서를 직접 제작해야 했고, 비록 나는 박사학위를 마치면서 마무리를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권 교수는 그 이후로도 몇 년간 고생해서 마침내 우리만의 산소 미세전극 센서를 만들어냈다.

2009년 고려대에서 교편을 잡고 2012년 BENTHOS로 돌아오기까지 나는 연안 생태연구와 오염연구를 이어갔다. 지난 15년간 지속해온 황해 생태계 연구나, 2017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한 해양생태계서비스와 블루카본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갯벌의 다양한 기능과 가치에 관해 연구 결과를 발표해왔다. 최근 새롭게 시작한 ‘해양환경영향평가연구단’과 ‘블루카본사업단’도 그 연장선에 있다.

BENTHOS 연구성과보고회, 2014년 공식적으로 시작하여 매년 개최, 현재 8개 연구실 참여
BENTHOS 연구성과보고회, 2014년 공식적으로 시작하여 매년 개최, 현재 8개 연구실 참여

2022년을 마무리하며, 각오와 다짐

이맘쯤이면 누구나 한 해를 되돌아본다. 우리 BENTHOS도 12월 중순 무렵 해마다 연구성과보고회란 이름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함께 계획해왔다.

그 어느 해보다 바쁘고 정신없던 한해였지만 올해는 특히 의미가 크다. 고 교수님으로부터 시작된 BENTHOS가 이제 40년을 지나고 있다. 그동안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그만큼 성과와 보람도 커져 왔다. 그간 연구논문 작성에만 매진했던 내가 언론을 통한 홍보와 인터뷰, 기고, 그리고 대중강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우려했던 것보다 이득이 많았음에 감사하다.

최근 이집트에서 개최된 COP27에 다녀오면서 다시 깨닫게 됐다. 국제사회에 한국의 갯벌과 갯벌 블루카본의 가능성을 홍보하고 피력하는 것이 어쩌면 한 편의 논문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새로운 자연 기반 해법으로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블루카본에 ‘갯벌’이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더 많은 연구성과와 홍보, 그리고 정치·외교적 노력이 함께 했으면 한다.

과학, 정책, 언론의 삼박자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국제사회에서 갯벌 블루카본이 인정받는 시기는 그 노력과 하모니만큼 앞당겨질 것이란 점에 확신이 생겼다. 벌써 내년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릴 COP28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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