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외교전 - 뛰는 일본, 손 놓은 한국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외교전 - 뛰는 일본, 손 놓은 한국
  • 신정훈 국회의원(농해수위)
  • 승인 2022.12.0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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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훈 국회의원(농해수위)
신정훈 국회의원(농해수위)

[현대해양] 일본 정부가 발표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시점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내년 봄 이후 정화작업을 거친 원전 오염수를 대량 방류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스케줄에 맞춰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조사 또한 신속하게 이뤄지는 모양새다. 11개국의 전문가로 구성된 IAEA 태스크포스는 지난주 후쿠시마 현장조사를 마무리했으며, 3개월 이내에 보고서를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IAEA의 조사결과가 일본 측 주장에 우호적으로 발표될 경우, 오염수 방류는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외교전

일본 정부는 그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쳐왔다. 미국과 IAEA를 상대로 親원전 성향의 전문가 집단을 동원해 오염수 처리과정의 안전성을 끊임없이 홍보하고, 인접국의 반발에 대응할 논리를 꾸준하게 개발했다.

지난해 4월 일본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를 공식 발표했을 때, 한국과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IAEA가 우호적인 반응을 보인 것 또한 물밑에서부터 치밀하게 전개되어온 일본 정부의 외교적 노력의 결과다.

일본 정부는 자국에 주재하는 외교사절 등을 상대로 후쿠시마 외교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과 후쿠시마현은 ‘후쿠시마현 부흥’을 올해 주일 외교단 지방 시찰 주제로 선정하고 원전 현장과 음식 등을 공개할 것이라고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관련하여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지지는 아니더라도 명시적 반대는 막겠다는 일본의 전략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수산물 대책 전무

당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놓고 한일 간의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우리 정부는 국내 언론을 향한 입장 발표 이외의 어떤 역할도 하고 있지 않다. 문재인 정부 임기중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개진하고 외교전을 펼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아예 정부 외교의 실종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관계 회복을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중 하나로 설정하고, 국제회의에서 기본적인 의전과 예우를 받지도 못하면서 일본 총리와의 정상외교에 매달리고 있으나 정작 한일 간 당면 현안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계획은 의제에서 빠져있다.

국제해양재판소를 통한 해결방법이 아직 남아 있지만 얼마 전 열린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법무장관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국제 해양재판소 잠정조치 청구를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지율 하락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네옴시티 등 ‘외교 밥상’에 올린 각종 의제들을 홍보하고 있지만, 정작 ‘국민 밥상’에 올라올 원전오염 수산물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다핵종설비 성능 의문

‘뛰는 일본’과 ‘손 놓은 한국’으로 요약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외교전의 최대 피해자는 우리 국민이다. 오염수 처리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오염 수산물에 노출될 가능성은 높아지고, 국내 수산업계의 타격 또한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오염수를 필터처럼 걸러내 정화한다는 다핵종설비(ALPS)의 성능에 대해 그린피스를 비롯한 국제 환경단체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정화하는 다핵종제거설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시기도 있었기 때문에 일부 오염수 보관 탱크는 법적 허용치의 5~100배 높은 농도의 핵종이 발견된 적도 있었다.

 

수산물이력제 표시물량 비중 낮아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과정의 완전성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부 대책은 소극적인 대응에 머물러 있다. 당장 내년 봄부터 오염수가 방류될 예정이지만 현재까지도 해양수산부는 유사시 오염수의 국내 바다 유입에 대한 시뮬레이션조차 끝내지 못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따라 수산물에 대한 국민의 불안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나 수산물 신뢰성을 높일 정책 또한 미진하다. 소비자가 수산물의 생산이력을 확인해서 안심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수산물이력제’가 시행중이지만, 국내 생산 수산물 중 수산물이력제 표시물량의 비중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0.16%에 머물렀다.

일본산 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의무 위반 사례 또한 5년새 4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가 안심하고 원산지와 생산·유통이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해두지 않으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한 ‘오염 수산물 공포’와 수산물 시장 위축은 불가피하다.

 

원전 오염수 방류 대책 우선돼야

정부의 가장 큰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국민의 밥상과 어민들의 생계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대책이야말로 정부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 치적 홍보용 외교정책을 넘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외교적 노력이 전개되어야 한다. 야당, 언론에 대한 정치보복과 감정싸움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위한 세련된 외교전이 필요하다.

국민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꼬리자르기식 수사’로 적당히 봉합하고 가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하고 신뢰성을 높이는 정부와 정부부처가 필요하다.

국정 책임자의 역할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판단에서 시작한다. 향후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대처 과정은 대통령이 국정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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