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해양쓰레기와 ‘천사도’에서의 뜻깊었던 하루
⑮해양쓰레기와 ‘천사도’에서의 뜻깊었던 하루
  • 김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 승인 2022.11.1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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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서울대학교 교수
김종성 서울대학교 교수

[현대해양] 땅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한눈에 들어온다. 물론 멋지다. 반대로 먼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면 하늘과 바다 사이로 산과 들, 그리고 강까지 한데 어우러진 절경이 펼쳐진다. 그런데 그 경이로운 순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해안가에 널려 있는 쓰레기다. 스티로폼 부이, 폐어구, 각종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그리고 폐타이어까지 만물상이 따로 없다. 해양쓰레기 문제는 이제 글로벌 최대 화두인 기후변화만큼 심각해졌다.

 

해양쓰레기에 대한 전 세계 과학계의 엄중한 경고

나는 2020년 봄 부경대 김수암 명예교수님 제안으로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발의한 ‘해양환경보호 성명서’ 작성의 집필진으로 참여하게 됐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이윤호 박사와 심원준 박사, 그리고 국립수산과학원 강수경 박사까지 총 5인이 의기투합했다. 그러나 집필 과정은 예상처럼 쉽지는 않았다. 6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 영문성명서 초안을 완성했으나, 검토와 집필진을 확대하면서 국문성명서 추가 작성까지 또다시 6개월이 걸렸다.

마침내 2021년 6월 영문성명서는 세계 최대 과학기술 민간부문 국제기구인 ‘국제한림원연합회(IAP)’의 공식 성명서로 발표됐다. 한국이 제안하고 한국인이 직접 작성한 IAP 최초의 성명서로 의미가 컸고, 미국, 영국, 독일 등 75개 해외한림원도 참여기관으로 서명한 만큼 국내외적으로 파급효과도 컸다.

해양환경보호 성명서에는 바다의 온전성을 되찾기 위한 다섯 과제가 담겼다. ①해양 건강성 악화, ②서식지 파괴, ③환경오염물질(중금속, 플라스틱 폐기물 등), ④기후변화, 그리고 ⑤남획 등이다. 플라스틱 문제도 이슈화되어 다섯 과제 중 환경오염물질에 포함됐다. 우리는 해당 과제별로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대응책 등 권고사항을 담았다. 그리고 IAP 이름으로 각국 정부, 시민단체, 그리고 IAP 회원 아카데미에 7가지 사항을 요청했다.

한편, 앞서 지난 2017년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 회원국으로 하는 북서태평양보전실천계획(NOWPAP)에서도 5대 생태 이슈를 선정한 바 있고, 그중 하나가 해양쓰레기였다. 해양쓰레기는 이제 글로벌 화두로 각인됐고,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온 인류가 함께 풀어 가야 할 전 세계인의 숙제가 됐다.

해양쓰레기의 발생원인, 발생량, 그리고 종류

해양쓰레기 대부분은 육상으로부터 온다. 주로 연안 인접 지역과 도서에서 버려진 육상쓰레기가 바다로 유입된 것이다. 어업, 낚시, 항해 등 해상활동 중에 버려진 각종 물품과 폐어구도 꽤 차지한다. 해양쓰레기 중 가장 많은 것은 단연 ‘플라스틱’ 제품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플라스틱이 전체 해양쓰레기의 약 60%를 차지한다고 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 떠다니는 플라스틱의 양은 1억 5천만 톤에 이른다고 한다. 최근 몇 년간의 추이로 볼 때 앞으로도 플라스틱은 매년 천만 톤 이상 추가될 것이라 한다. 해양수산부 발표에 따르면 2014년 이후 누적 해양쓰레기 수거량은 약 68만 톤에 이른다. 이삿짐 5톤 트럭으로 13만 대 분량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한편, 해양쓰레기는 바다에 떠다니는 ‘부유’ 쓰레기, 바다에 가라앉은 ‘침적’ 쓰레기, 그리고 밀물과 썰물로 조간대에 쌓여서 갇혀있는 ‘해안’ 쓰레기 등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해안’ 쓰레기 양이 60% 이상으로 가장 많다고 한다.

문득 의아한 점이 있다. 우리는 평소 일상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바다에는 쓰레기가 넘쳐난다. 왜 그럴까? 실상 가정에서 분리된 쓰레기는 수거, 처리 등 여러 후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섞이거나 유실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종류가 다양하고 재활용 처리 공정이 복잡해서 회수 후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은 채 3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즉, 70% 이상의 플라스틱 쓰레기는 폐기되어 매립되거나 수거되지 못한 채 바다로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다.

해양쓰레기의 피해와 심각성

해양쓰레기의 1차 피해는 고스란히 해양생물의 몫이다. 폐어망이나 낚싯줄에 감겨 죽은 바다거북과 물개, 코에 박힌 빨대로 숨을 못 쉬어 죽은 바다거북 등 그 피해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또한 해양으로 유입되는 플라스틱은 물리적, 화학적 분해 과정을 거쳐 작은 조각의 미세플라스틱으로 재탄생한다. 미세플라스틱은 보통 5mm 미만의 플라스틱 조각을 말한다. 수많은 해양생물은 이 작은 미세플라스틱 조각을 먹이로 오인하여 섭취하고 축적한다. 크건 작건 플라스틱을 섭취한 해양생물은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농축된 플라스틱은 각종 독성을 유발하여 해양생물에게 2차 피해를 주기도 한다. 미세플라스틱에 흡착된 화학물질과 병원균도 해양생물에게 피해를 준다는 보고가 있다. 생물농축과 생물확대(먹이사슬을 통한 상위 영양단계로의 물질 축적)가 계속되면 결국 수산물 섭취를 통해 인간에게도 다량의 미세플라스틱이 노출되게 된다. 우리는 지금 매일 쓰레기를 먹고 있는 셈이다.

2019년 보고된 세계자연기금의 충격적 연구 결과는 해양쓰레기 심각성에 경종을 울렸다. 1인당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의 양이 무려 2,000개에 이르고 이는 무게로 환산 시 약 5g 정도로 신용카드 한 장에 해당한다. 지금처럼 쓰레기가 버려지고 회수량이 급격히 많아지지 않는 한 우리 자식들은 1년에 신용카드 2,500장을 섭취하게 된다고 한다.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수치다. 일반적으로 플라스틱의 잔류기간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백 년이 걸리므로 그 피해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생산량과 배출량을 줄이거나 회수량을 늘리지 않는 한 해양쓰레기를 해결할 뾰족한 수는 없는 셈이다.

 

바다 한 가운데 쓰레기 섬을 아시나요?

버려진 해양쓰레기가 수거되지 않는다면 생분해되기까지 수백 년 이상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특히 ‘부유’ 쓰레기는 해류를 타고 근해를 벗어나 대양으로 이동하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게 된다. 이렇게 떠다니는 ‘부유’ 쓰레기의 종착역은 바로 환류 지역이다. 환류란 전 지구적 큰바람인 무역풍과 편서풍에 의해 생기는 원형 형태의 해류 순환을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큰 환류 지역은 5개 정도가 있다. 북반구에 북태평양 환류와 북대서양 환류가 있고 남반구에는 인도양, 남태평양, 남대서양에 존재한다. 그런데 환류 지역의 양 끝단은 해류의 방향이 바뀌면서 속도가 늦어져서 물의 흐름이 거의 없어지는 구간이 있다. 바로 이 브레이크 구간에 쓰레기가 모이고 점차 많아져서 섬과 같이 보여 이를 쓰레기 섬이라고 부르게 됐다. 가장 큰 쓰레기 섬은 북태평양에 있는데 현재 한반도 8배 크기로 알려져 있다. 이 거대한 쓰레기 섬은 우리가 살아가는 한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거나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에코 예능 ‘천사도’ 출연과 촬영 뒷이야기

지난 8월 초 ‘천사도’란 환경 예능 프로그램을 계획 중인 작가로부터 문의가 왔다. 해양쓰레기와 연안 환경을 주제로 연예인과 아티스트들이 함께 섬에서 개최하는 작은 전시회에 참여해달라는 것이었다. 그간 과학적 연구성과를 알리고 이를 일반 국민에게 쉽게 소개하는 기고나 연재는 열심히 해왔지만, 예능 방송 출연은 전혀 생각지 못한 터였다. 출연자와 시청자들이 ‘중요하지만 막연하게만’ 느끼는 바다의 오염과 해양쓰레기 문제의 현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실질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작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어 용기를 냈다.

촬영을 결정한 후 작가들과 미팅하면서 바다의 가치와 해양쓰레기 문제 등을 심도 있게 토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얼마 후 대본을 받고 깜짝 놀랐다. 대본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박진희, 홍석천, 김기혁, 모나 등 연예인의 이름이 내 이름과 함께 출연자로 적혀있었다. 14쪽에 이르는 대본에는 내가 참여할 씬과 출연자의 대본이 적혀있었는데, 나의 대사 부분은 평소 대중강연에서 말하던 내용이라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나는 9월 어느 날 1박 2일 일정으로 신안으로 향했다.

신안 임자도에서의 하루는 빡빡했다. 12시 무렵 시작한 촬영은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먼저 하우리 항에서 배를 타고 신안 임자도 앞바다를 돌아보며 바다의 가치와 해양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출연자들과 퀴즈를 풀면서 답을 찾고 해석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 친밀해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후 에코 지니 박진희 배우와 함께 전시장을 찾아 작품을 만들고 있는 여러 작가와 만나 해양쓰레기를 이용해서 만든 작품에 관해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전시장 바깥에는 폐어구로 대형 고래 조형을 만든 조선대학교 박아론 교수와 현대조형미디어전공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시회장에 들어서면서 유명작가들과의 만남이 이어졌다. 직접 카약을 타고 해양쓰레기를 수거하고 그 쓰레기를 뚫고 잉태한 생명을 필름에 담은 사진작가 김정대, 아이의 시선으로 해양생태계 오염을 디지털 만화로 표현한 일러스트레이터 김기범, 폐어구와 부이 등으로 해양 환경 회복 염원을 표출한 정크아티스트 양쿠라, 마지막으로 해안가에서 수거한 플라스틱병으로 대형 낙타 조형물을 창작한 회화작가 윤송아까지 특별한 만남이었다. 해양쓰레기를 이용해 재탄생한 놀랍고 멋진 작품들을 충분히 실컷 감상했고, 모두 진심으로 바다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도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저녁에는 신안 임자도 인근에서 구한 꽃게와 새우로 홍석천 셰프가 만든 태국식 푸팟통커리를 맛보는 훈훈한 ‘먹방’ 시간도 가졌다. 갓 잡아 온 해산물로 만든 요리라 맛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해양쓰레기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면 이러한 해산물도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공감 시간이었다. 이어 마지막 씬인 전야제가 진행됐고, 연예인과 작가가 모두 함께 작품 제작 영상을 감상하고 친환경 밸런스 게임까지 마쳤다. 길고도 짧은 하루였고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환경과 예능을 넘나들며 모두 한마음으로 바다를 이야기하는 바다의 고마움을 공감하는 값진 시간이었다.

우리 바다를 지켜야 하는 이유, 그리고 나부터 해야 할 일

해양쓰레기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학자로서 명쾌한 답을 하기가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개인의 노력과 국가 차원의 노력 모두 필요하고 절실하기 때문이다. 해양쓰레기의 많은 부분이 무분별하게 버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쓰레기 배출 방식이나 재활용 여부를 떠나 국가 차원에서 해양쓰레기 배출 저감과 관리 정책을 잘 실행하는 일이 중요할 것 같다.

모든 사회적 문제의 해결에 있어 국민적 참여의식과 실천이 필수적인 만큼 앞으로 해양쓰레기의 심각성과 대응책에 대한 적극적 교육과 홍보도 시급하다. 조각 얼음 위의 북극곰 사진은 기후변화 심각성의 대명사가 됐다. 스티로폼을 토양 삼아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는 해안 사초가 어쩌면 해양쓰레기의 심각성을 단편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촬영이 끝날 무렵 해양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각자의 노력에 대해 모두 한마디씩 하는 시간도 가졌다. 나는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플라스틱류 실험 용기를 가능하면 유리로 대체해서 최대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했다. 어렵겠지만 모두가 조금씩 변화한다면 해양쓰레기 문제도 지금보다는 더 악화되지 않으리란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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