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52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52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10.19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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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부산문단과 향파의 《문학시대》(6)
문학시대 표지
문학시대 표지

《문학시대》 6호는 1967년 5월 15일 발행되었다. 표지에 <1967년 신록>이라고 표해 두고 있다. 5호가 1966년 10월 발행된 것을 감안하면 많은 시간이 지난 셈이다. 지난 호와 마찬가지로 첫 페이지를 열면 <작가 사진첩>으로 박영준 소설가가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소설, 시, 수필 장르가 중심 체제를 이루고 있으며, 고 유치환 시인의 죽음에 따른 기사가 실려있고. 양주동 선생의 <독서만록>이 게재되어 있다. 소설 작품으로는 박영준의 「어떤 화해」, 이종환의 「일진」, 박순녀의 「전시대적 이야기」, 현대문학신안상수상 작가인 최상규의 「시합」이 선보이고 있으며, 시에는 유치환의 유고시 「선한 나무」, 정공채의 「재벌」, 박경용의 「어진 설음」, 이탄의 「소등」, 금숙희의 「가을·콜 니드라이」, 최두석의 「항아리」, 윤채한의 「행선지」 등이 펼쳐저 있다. 그리고 정비석의 <소설 교실>과 장호의 <시작교실>은 여전히 연재되고 있고, 학생들의 <연재 릴레> 역시 부산고등학교의 박지열 작품 「저 하늘에 깃발을」이 계속되고 있다. 창간호에서 시작된 강은파의 신인 장편 연재인 강은파의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도 6회째 연재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해를 넘겨서 새롭게 발간된 잡지였기에 책 서두에 <질긴 나무의 합창>이란 속간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의 잡지 발간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속간사이기에 이를 먼저 소개해 본다.

나무는 꺾이워도 그 밑동에서 움이 돋는다. 나무에 따라서는 밑둥 아닌 그 동아리의 옆구리에서마저도 싹을 내뿜는 습관을 버리지 않는다. 우리의 <문학시대>가 지금 그런 처지에 놓여 있다. 일 년을 애쓰다가 쓰러지진 우리에게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기다리게 한 것은 바로 그 불사신인 생명의 불꽃이었다. 우리는 이 여름과 더불어 재기하는 기쁨을 다같이 나눠가지고 싶다. 일 년에 네 번도 좋고 다섯 번도 좋고 천후가 지켜주는 대로 월간이란 이름에 쫓기는 정기가 없이 몇 번이고 자유스레 꽃을 피워 나갈 결심이다. 돌이켜 본다면 우리는 너무나도 은혜로운 행운아였다. 그 동안 우리의 이 작은 잡지를 위해서 많은 중견작가들이 호응해 도와 주었다. 자랑스럽던 어제가 있었던 것도 그분들의 덕이었고, 약동하는 내일에의 기쁨을 붓안게 해준 것도 다른 이 아닌 그분들인 것이었다.

우리는 외롭지 않았다는 것을 복스럽게 생각한다. 그 위에 물적으로 우리의 뒤를 밀어주어서 이렇게 재출발을 할 수 있게 해준 많은 독지가들이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이 마음 든든해진다.

그러기에 때문에 우리는 맹세코 우리 문단의 대열 속에 끼어들어서 높으게 높으게 합창을 해나가게 되는 것을 끝없는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 동안 발간의 어려움을 전하고, 이제는 부정기 간행물이 될지라도 계속해서 잡지를 발간해 나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당시 부산지역에서의 잡지 발행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위의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새롭게 시작하면서 《문학시대》 제자도 바뀌었는데, 이 제자가 서예가 검여 류희강(劍如 柳熙綱) 선생의 글임을 밝히고 있다. 창간호부터는 향파 이주홍 선생의 제자였다. 이번 호에는 평론이 실리지 않은 대신 여류문사들의 좌담회가 마련되고 있다. 그 내용을 먼저 살펴본다. 이 좌담회에 참석한 자는 김남조, 이영도, 한말숙, 전병순, 김수오 등이다. 사회는 역시 이주홍 편집 주간이 맡았다. 이들이 벌인 좌담은 거창한 문학론이나 작품론이 아니라 여류작가의 일상적인 생활론이었다. 작품을 쓰는 시간, 주부와 글쓰기, 작품을 구상하는 장소와 시간, 영화 보는 이야기, 각자 문학에 입문하게 된 동기들, 문학 지망생들과의 만남, 작품 속에 반영하는 현실의 모습, 대중소설과 신문소설의 문제 등이 논의의 대상들이 되고 있다.

양주동 선생의 <독서만록>은 본인이 문인으로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으나 소설은 제대로 한 편도 쓰지 못했을 고백하고 그 연유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그가 대작을 작정하고 소설을 쓰려고 준비하였지만 결국 허망하게 끝나버린 이야기를 漫錄으로 풀어내고 있다. 자신이 구상하는 이 한 편의 대작의 첫 문장을 쓰기 위해 동서양의 소위 대작들의 첫 문장을 두루 섭렵하고, 그들이 지닌 문제점들을 풀어내는 글쓰기는 그의 고전에 대한 박식함과 혜안을 느끼게 한다.

《문학시대》 6호에 실린 내용 중 문학사적인 의미가 있는 부분은 <청마유치환 시인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남기면서, 유고시 「선한 나무」를 싣고 있다는 점이다.

일찍부터 의지의 시인, 민중의 시인이란 이름으로 불리워지던 우리 시단의 중진 청마 유치환 씨가 지난 2월 14일 밤 예총의 회합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급서를 하게 되었던 일은 우리나라 문단을 위해서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한창 원숙기에 들어 지금부터 더욱 큰 일을 할 것으로 기대해 나오던 터라 그의 죽음은 문단 이외의 여러 방면으로부터서도 크게 애석해함을 받았다. 우리 《문학시대》를 위해서도 언제나 걱정해 주시던 터라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죽음을 전후한 몇 가지의 기록을 남겨 놓는다. 유치환 씨는 1908년 7월 15일 경남 통영에서 출생, 1927년 동래고보를 졸업한 뒤 연희전문 문과에 적을 두고 있다가, 일제 때엔 만주 땅을 방랑하기도 했고, 해방 후엔 경주고교, 대구여고 등의 교장직을 거쳐 1965년 4월 부터는 부산남여상고의 교장으로 재직 중에 있었던 것이었다. 문화관계 활동으로는 문협 부산지부장, 예총 부산지부장으로 일하는 한편 1939년에 출판한 시집 『청마시초』를 위시해서 시집, 수상집 등 총 13권의 책을 내었고, 수상도 한국문협 시인상, 예술원상, 부산시문화상 등 여섯 차례나 걸쳐서 받은 바 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권재순 여사와 출가한 따님 세 분이 있는데, 문협지부, 예총지부, 남여상고 합동으로 베풀어진 고인의 영결식은 2월 17일 상오 10시 부산남여상고의 교정에서 있었다. 시인 조순 씨의 사회로 문협본부에서 내려온 상임이사 이종환 씨의 개식사, 이주홍 씨의 고인 약력소개, 이정호 씨의 고인의 유작 낭독, 김정한 문협대표, 오복근 교육감 등의 조사에 뒤이어 고두동, 장하보 씨 등의 조시 낭독과 조가합창 분향 헌화 등이 있은 다음 고인의 죽음을 아끼는 장례의 행렬은 장장 광복동의 끝까지 이었다가 장지인 부산 하단의 동편산으로 가서, 하오 1시경 하관, 안장했다.

《문학시대》 6호의 내용 중 또 하나의 문학사적 기록은 당시 활동 중이던 동인지를 발굴해서 소개한 것이다. 《문학시대》에 두 번째로 소개된 동인지는 『현대시』이다. 현대시 동인의 한 사람이었던 이유경 시인이 『현대시』 동인들이 지향하는 시의 세계를 ①시는 언어이다. ②시의 엘렉트론이 형성되는 근거는 경험의 축적, 변형, 조화라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그 표출은 이미지와 기교의 극명한 방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③리리시즘은 모든 예술의 원천이며 시의 발생근거이다. 우리는 현대시에 그 변형적 조형을 실험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동인 구성은 김규태, 김영태, 박의상, 이수익, 이승훈, 이유경, 이해영, 정진규, 주문돈, 황운헌 등이었다.

이렇게 《문학시대》 6호는 당시의 젊은 시인들의 활동을 소개함으로써 문학 매체로서의 역할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향파 선생의 남다른 수고와 문학에 대한 열정을 편집 후기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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