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56 국토최남단, 어떻게 여행하나요?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56 국토최남단, 어떻게 여행하나요?
  • 김준 박사
  • 승인 2022.10.17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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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마라도 2

[현대해양] 마라도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아주 느긋하게 짜장면 한 그릇 먹고 마을 주변을 배회하는 먹방형, 선착장부터 열심히 걸으며 사진을 찍는 경보선수형, 마지막은 실시간 중계방송을 하는 유튜버형이다. 첫 번째 부류를 제외하고는 어느 쪽이든 시간에 쫓긴다. 여행객들이 섬여행에서 자연경관 다음으로 보고 싶은 것이 섬살이다. 섬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마을을 둘러싼 인문경관을 보고 싶어 한다. 큰 섬은 그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작은 섬은 이를 잘 살필 수 있다. 궁금하면 다시 한 바퀴 돌아도 좋다. 집, 돌담, 골목, 학교, 할망당, 성당, 교회, 절, 가게, 편의점, 식당 등. 육지에서 평범한 것도 섬에서는 비범한 것이 되는 마력이 있다. 한반도 최남단에 있는 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뭘 더하겠는가.

마을공동목장이 있었던 자리를 가로질러 마을로 가는 여행객들
마을공동목장이 있었던 자리를 가로질러 마을로 가는 여행객들

어디서 사진을 찍을까

마라도에서 여행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대한민국최남단비’와 마라도등대다. 두 상징물은 서로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대한민국최남단비’는 1985년 12월, 당시 남제주군이 군자치 실시 24주년을 기념해 세웠다. 그 뒤에는 주민들이 마라도 수호신이라 믿는 장군바위가 있다. 뒤따라오던 사내가 최남단비를 성큼성큼 지나 바위 위로 올라가 두 팔을 번쩍 들고 사진을 찍는다. 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 많이 올라온 마라도 사진이다. 주민들이 보았다면 눈살을 찌푸렸을 모습이다. 장군바위에 올라가면 큰바람이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파도에도 비슷한 속설이 있다. 마라도 사람들에게 바람은 두려움이다. 장군바위를 ‘신선하르방’으로 모시며 ‘큰 바름 막아 줍서’라고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한 달에 10여 일 뱃길이 끊기는 것도 바람 탓이다. 마라도등대는 1915년 붉을 밝혔다. 동중국해와 제주도 남부해역을 오가는 선박들이 처음 맞는 표지로 우리나라 ‘희망봉’이라도 부른다. 1987년 지금 모습의 등대로 바꾸었다. 마라도 분교가 설립(1962)되기 전에 등대의 기름창고를 공부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폐교가 되었지만 1960년대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 학생 수가 30여 명이나 되었다. 등대 옆에 있는 성당은 전복껍질 모양으로 지붕을 올린 독특한 건축물이다. 사제는 상주하지 않지만, 예약하고 미사를 올릴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기도를 드릴 수도 있다.

마라도등대와 성당
마라도등대와 성당
마라도 마을
마라도 마을

 

마라도 미역이 최고다

말이 놀던 켓밭(공동마을목장)을 가로지르는 길을 여행객이 따라 걸어간다. 한때 골프장에서 보던 전동차가 다니던 길이었다. 그 갓길에 마라도 미역이 마르고 있다. 마라도는 배를 두고 어장을 할 수 없는 섬이다. 마땅한 선착장이 없는 탓이다. 따라서 주민들이 물고기보다는 물질이 먼저였다. 마라도 주변에 제주도 바닷물고기를 대표하는 자리돔과 방어 어장이 있지만 모슬포 어부들 차지였다. 제주도 해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라도 어머니들도 물질을 해서 미역으로 먹고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기장과 완도에 미역양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다. 그 당시 제주 잠녀들은 완도 청산도, 부산 영도 심지어 신안 가거도와 울릉도와 독도까지 미역과 우뭇가사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출가해 물질을 했다. 그때 해녀들은 미역 중에 마라도 미역이 최고라고 손을 꼽았다. ‘마라도 향약’(1965)을 보면, 미역・김・톳의 채취관행을 엄격하게 정해 운영했다. 섬에 1년 이상 거주하고 미역 100근을 추렴해야 입어권을 얻을 수 있었다. 바다가 아니면 섬살이가 어려운 공무원에게도 권리를 주었다. 물질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정한 바닷가에서 해조류를 채취해 같이 나누었다. 또 몰래 채취한 자는 생산수단인 수경과 태왁을 압수하고 벌금(500원)을 부과했다. 미역만 아니라 마을자산인 공동우마장을 이용해 마소를 키우려고 할 때도 마을회의에서 동의를 얻어야 했다. 이렇게 바다밭이나 켓밭의 이용 및 관리를 마을회의에서 결정했다. 당시 켓밭에 소를 키운 이유 중 하나는 땔감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풀만 먹고 자란 소가 배설한 똥은 섬유질이 많아 떡처럼 모양을 내서 말려 놓았다가 땔감으로 이용했다. 아이들은 소똥을 줍기 위해 서로 경쟁을 했고, 새벽에 일어나 소똥을 찾는 일도 벌어졌다. 그리고 민가 주변에 개간한 밭에는 바닷풀인 몸(모자반)을 넣어 거름으로 삼았다. 마라도 미역을 뜯기 위해 제주도 본섬에서 해녀들이 오갔던 그 길은 이제 여행객들이 오가는 뱃길이 되었다.

한때 제주도 최고 미역으로 꼽았던 마라도 돌미역
한때 제주도 최고 미역으로 꼽았던 마라도 돌미역

울다 돌이 된 ‘검은 여자’

시인 김병심은 마라도 할망당을 ‘검은 여자’라 했다. 아이를 데리고 들어온 젊은 새댁이 할망당으로 들어간다. 주머니에 담아온 사탕도 놓고 과자도 놓는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 엄마를 따라온 아이도 주머니에서 초코파이를 놓는다. 드물게 보는 모습이다. 시인은 “살결 짜디짠 마라도, 무색천의 관 속에 / 바다는 뿌리내려 검은 여자를 낳았지”라고 했다. 마라도를 제주바다가 낳은 막내로 생각했을까. ‘울다 지쳐 돌이 된 여자’가 마라도일까 할망일까. 제주도 큰 섬처럼 심방을 불러 굿을 하지 않는다. 해녀들이 주민들이 오고가다 들려가는 곳이다.

마라도 입경 전에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섬이라 전복과 구젱기(소라)가 지천이었다. 마라도보다 일찍 입경을 한 가파도 해녀들이 자주 들어왔고, 모슬포에서도 건너왔다. 당시 해녀들은 물질을 할 때 아이를 돌보는 어린해녀(비바리)를 데리고 다녔다. 이 비바리를 ‘애기업개’라고 한다. 그런데 마라도에 도착했지만 파도가 높고 날씨가 좋지 않아 여러 날 물질을 하지 못하고 가지고 간 먹을 것도 떨어졌다. 돌아가려고 해도 바닷길이 험해 배를 띄울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상군해녀의 꿈에 애기업개를 두고 가지 않으면 바다에서 파가 부서지고 모두 죽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날 날씨가 좋아지자 애기업개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그 사이 해녀들은 배를 타고 마라도를 떠났다. 애기업개는 울다 지쳐 쓰려졌다. 그리고 다시 봄이 와 해녀들이 마라도를 다시 찾았을 때 애기업개는 뼈만 남아 있었다. 그 자리에 신당을 만들고 애기업개를 위로하고 있다. 매월 초이레, 열이레, 스무이레 제를 지낸다고 해서 ‘이뤠본향’이라 한다. 또 애기업개를 기린다고 해서 ‘처녀본향당’ 또는 ‘애기업개당’이라고도 한다. 마라도에 00명의 해녀가 물질을 했다. 지금은 2, 3명이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낚시여행객과 어민
낚시여행객과 어민

마라도에 바란다

마라도에는 짜장면 가게가 예닐곱 집 있다. 이제 마라도를 대표하는 음식을 물으면 짜장면이라고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마라도에서 진짜 맛보아야 할 음식은 짜장면보다 자리돔이다. 흔히 자리를 보목자리, 모슬포자리, 관탈자리 등으로 구분한다. 모슬포자리는 모슬포와 마라도 사이에서 잡은 자리다. 여름이 제철이고, 찬바람이 나면 방어를 낚는 미끼로 사용한다. 거친 바닷속 돌이 있는 미역밭이나 감태밭을 좋아한다. 자리를 잡는 배는 큰 배 한 척과 작은 배 두 척이 어우러져야 하기에 정박시설이 좋지않은 마라도에서 배를 운영하기 쉽지 않다. 소라를 채취하고 톳과 미역을 뜯는 해녀도 몇 명 남지 않았다. 짜장면을 대신하는 마라도 음식을 찾아내는 것도 섬의 생태와 문화 지속이라는 측면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정말 제대로 마라도를 느끼려면 하룻밤을 머물러야 한다. 수없이 제주도를 갔지만 마라도에서 머문 것은 딱 하룻밤뿐이다. 마지막 배가 떠나고 나면 마라도에 남는 것은 바람소리와 파도뿐이다. 그제야 비로소 마라도를 느낄 수 있다. 요즘 젊은 여행객들은 ‘뷰맛집’을 좋아한다. 건축물이나 상징물을 배경을 삼기보다는 바다, 밭, 논, 초지 등 자연자원을 배경으로 한다. 입맛이 부족해도 ‘뷰맛’이 좋다면 기꺼이 비싼 값을 내고 들어간다. 마라도는 어디나 뷰맛으로 부족함이 없다. 기왕에 생길 카페이고 식당이라면 마라도의 바다와 섬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식음료를 풀밭과 바닷가에 앉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가게마다 짜장면 경쟁으로는 지속 가능한 섬으로 자리 잡기 어렵다. 

마라도 둘레길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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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대표식물, 문주란 군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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