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51
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51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09.1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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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부산문단과 향파의 《문학시대》(5)

《문학시대》 5호는 1966년 10월 25일 10,11월 합본호로 발행됐다. 전체적 구성은 앞선 호와 큰 차이는 없다. 시, 소설 중심의 작품이 실리고 <청추8인 수필집>으로 수필이 자리하고 있다. 소설에는 이봉구의 「서글프던 시절」, 김성일의 「곡성」, 윤행묵의 「친구의 이야기」, 송원희의 「마음의 동반자」, 김성홍의 「腐溝」 등이, 시에서는 고두동의 「범종」, 김요섭의 「해시계」, 황금찬의 「귀항선」, 김지향의 「전전하는 胃 囊」, 구연식의 「감각(A)」, 이유경의 「향수에 찬 퇴근」, 신명석의 「곡예사 탈출자에게」, 김사림의 「밤 열두시<1>」, 장승재의 「무상」 등이 소개되고 있다. 전에 없던 <문학의 세계일주>란이 마련되어 김병규가 불란스 문학의 전반을 소개하고 있다. 여전히 <학교대항 연작 리레> 대전여고 김명아의 소설 「저 하늘에 깃발을」이 소개되고 있고, 장호의 <시작교실>과 정비석의 <소설 교실>이 이어지고 있다.

새롭게 기획된 <萬人臺>라는 가두평론란은 누구나 자유롭게 읽은 시, 소설, 평론 등에 대한 기탄없는 의견을 방담하는 광장이다. 19명에 달하는 다양한 문인들이 자신이 읽은 작품의 소회를 촌평형식으로 발표했다. 장만영이 「앙리 미쇼 시선」을 읽은 촌평을, 이상노의 이광수 작품 「윤광호」를 읽은 감상, 신동한의 유현종의 작품 「거인」에 대한 촌평, 이원수의 김윤식이 쓴 「순수논의를 위한 하나의 각서」를 읽은 느낌, 이수복의 황순원의 작품 「자연」에 대한 평가, 박홍근의 石坂洋次朗의 「물로 씌어진 이야기」에 대한 비판, 강금종의 「안네의 일기」에 대한 공감, 윤정규의 정을병 작품 「까토리의 자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권일송의 버질 작 「제2의 찬스」에 대한 호감, 예종숙의 신동집 시인의 시 「신록의 여신」에 대한 참신성, 김태홍의 김현승 시 「패각」에 대한 호평, 박철석의 김종길의 시론 「의미와 음악」에 대한 논의, 장윤우의 박남수 시인의 「작품」에 대한 완숙미, 김영송의 김승옥 작품 「서울 1964」에 대한 감상, 최계락의 박경용 작 「박경용 씨의 일련의 산문동시」에 대한 새로운 시도, 김종우의 김우종의 「향가와 토착어의 이미지」에 대한 촌평, 최해갑의 정을병 작품 「크산티페」에 대한 감상, 구연식의 김정한 작품 「모래톱 이야기」에 대한 소개, 그리고 학생인 박문욱의 김용성 작품 「象眼 밖으로」에 대한 비판적인 감상 등이 펼쳐져 있다. 이는 지상에 열린 비평의 광장을 연상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5호도 평론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김우종의 「추녀문학론」, 김상일의 「황순원과 까뮈」, 천이두의 「소설과 현실의 의미」, 김현의 「부재 위에 사물화한 언어」 등이 실려있다. 이를 중심으로 《문학시대》가 지향했던 문학의 방향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김우종은 「추녀문학론」에서 근대문학에 등장하는 못난 인물에 대한 의미를 조명하고 있다. 못난 인물의 못난 이야기, 딱한 인물의 딱한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그것이 소설로서 훌륭히 살아날 수 있다는 새로운 소설 미학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의 소설에선 영웅도 미인도 시라졌다는 것이다. 대신 아무리 못 생기고 가난하고 병신스러운 인물이라도 그것은 작가의 손에 의해서 얼마든지 매력있는 예술품으로 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상일은 「황순원과 까뮈」에서 서로 영향관계를 실증할 수는 없지만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와 까뮈의 「이방인」 그리고 황순원의 「인간접목」과 까뮈의 「페스트」 사이의 유사점을 찾아보고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등장인물과 대여성관계를 통해서 두 작품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후자의 작품에서는 기술태도와 작품에 나타나는 병원균의 동질성을 문제삼아 그 유사성을 논하고 있다. 그리고 근원적으로는 서구문학의 근저에는 그리스도교적인 원죄의식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데, 황순원의 작품에는 그러한 원죄의식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게 두 작가를 비교 검토한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나 비교문학적 연구 방법론의 치밀성이나 구체성에 한계를 내보이고 있다.

천이두는 「소설과 현실의 의미」에서 소설 속 현실의 진정한 의미와 그 구체적 실천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모색하고 있다. 1920년대의 염상섭의 과부족 없이 정확한 묘사문학, 1930년대의 유진오, 박태원 등의 市井的 인정세태를 철저한 객관적 자세로써 그려낸 일련의 세태소설 등에서 한국사실주의 문학의 한 전형적인 스타일을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주의가 보다 차원높은 비전을 빚어내지 못하고 실상 상식적 일상현실의 재현에 그치고 말았다고 본다. 한편 이태준, 이효석, 김유정, 김동리, 황순원 등 이른바 순수주의를 지향한 작가들의 작품에서 풍부한 한국적 감성은 찾을 수 있지만, 1930년대 및 1940년대의 구체적인 한국 현실을 등진 회고적 토속적인 한국적 이미지의 세계로 작가의 시선을 돌림으로써 소설 안에 정당히 살고 있어야 할 현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김현은 「부재 위에 사물화한 언어」에서 이상의 시 「오감도」를 분석하고 있다. 이 분석을 통해서 이상이 펼쳐놓은 다양한 스캔들을 해명해보려고 한다. 김현은 이상의 시 「오감도」를 분석하기 위해서 이상 시를 보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언어를 말한다. 이상의 시에는 대상이 없고 언어가 대상이 되어 얼어붙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상 시의 언어는 사물이라고 본다. 그것은 우리 앞에 웅크리고 개시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의식의 때가 없이 발가벗고 발정한 여체처럼 우리 앞에 있다고 본다. 누군가 와서 만져주기를, 그리고 의식의 때가 끼도록 언어는 얼어붙어 있다고 본다. 씨니피앙쎈스와 네임은 혼동된 채로 반죽이 되어 굳어 있다는 것이다. 이상은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심미적 거리를 가지고 언어를 내동댕이치고 있다는 것이다. 실패는 그를 형성의 세계에서 항상 존재의 세계로 되돌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이상 시에 접근하는데 꼭 그것을 끄집어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언어의 추상화 때문이라고 본다. 시제 1호의 ‘13’이라는 수효가 그러하다고 본다. 모두들 거기에 ‘언어적 실체’를 부여했다. 13=A, 13=B라는 실체를 평론가마다 절대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김현은 이는 그들이 13이라는 수를 ‘실용적 언어’로, 도구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3개의 사과를 앞에 놓고 즉 대상이 있을 때, ‘13’이라는 수는 도구이다. 그래서 그것은 본질을 개시한다고 본다.

그래서 김현은 이상 시 「오감도」는 부재 위에 허공 위에 유일한 사물로서 다가온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항상 다시 달려가지만, 항상 좌절한다고 말한다. 본질은 영원히 폐쇄되고 사물화된 언어는 말할 듯 말할 듯 우리 눈앞에서 몸을 도사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상처럼 대상을 상실하고 본질을 보지 못하고 영원히 변두리만을 돌며 좌절한다고 본다.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의 혼동, 주체와 容体의 혼동, 이리하여 우리는 기교 때문에 다시 절망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의 비평을 《문학시대》가 실어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향파 선생이 지닌 폭넓은 문단의 인맥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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