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55 대한민국 국토 끝섬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55 대한민국 국토 끝섬
  • 김준 박사
  • 승인 2022.09.1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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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마라도 1
바다에서 본 마라도

[현대해양] 여행객이 많을수록 외로운 곳이 제주도다.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면 허탈하다. 이러한 일상의 반복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한반도 국토 끝섬 마라도다. 제주를 찾는 여행객들은 여름철 애월해변이나 동쪽 월정해변을 많이 찾는다. 보드를 타거나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뿐 아니라 시원한 경치를 찾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에 맞춰 금능해변이나 김녕해변에서는 축제나 이벤트도 마련한다. 겨울철을 제외한다면 국토끝섬 마라도를 찾는 사람들이 가장 적을 때가 폭서기인 여름일 것이다. 반대로 여름철이 가장 한가로운 마라도 여행철인 셈이다. 생각만 바꾸면 여행은 즐거워진다.

목장(켓밭)이었던 바라도 북쪽 초지를 걷는 여행객
목장(켓밭)이었던 바라도 북쪽 초지를 걷는 여행객
국토최남단비
국토최남단비

 

마라도는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에 속한 섬이다.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해 기점도서이기도 하다. 모슬포에서 11㎞, 가파도로부터 5.5㎞ 위치에 있다. 가파리에 속했던 섬은 1981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마라리로 분리되었다. 마라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계미년 1883년이다. 주민 ‘김창화’이 기록한 ‘가파도・마라도연혁’(「마라도의 역사와 민속」. 한그루, 2017)에는 1883년 고부 이씨, 진주 강씨, 황보 황씨, 김해 김씨 등 11명의 개경자 명단이 소개되어 있다. 1842년 입경한 가파도보다 40여 년 늦게 입도한 셈이다. 또 다른 자료에는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대정골 김씨가 고을원님에게 마라도 개척을 건의해 가족과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마라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다.

 

짜장면 먹기도 바쁘다

“나오는 00시 배를 타세요.” “한 시간 반이면 섬을 돌아보는데 충분해요? 짜장면도 먹어야 하는데요.” “충분해요.”

마라도나 가파도를 가는 배표를 구입할 때 직원과 나눈 대화다. 다음 배를 타도 되느냐고 몇 차례 물어보니 미리 직원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모슬포나 송악산에서 출발한 유람선은 반시간이면 마라도에 닿는다. 제주도 본섬은 동서로 긴 타원형이지만 마라도는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다. 섬 동남 절벽과 접해 등대가 도드라져 있다. 섬을 한 바퀴 돌아보고 짜장면도 먹고 해산물에 막걸리라도 한 잔 하려면 선사가 알려준 시간으로는 빠듯하다. 짜장면을 먹기 위해서 마라도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시간이 아쉽다. 짜장면과 짬뽕이 마라도 향토음식을 밀어내고 대표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톳과 미역과 소라 등 해산물을 더해 마라도 짜장면을 내세운다. 많은 사람이 찾는 탓에 짜장면을 파는 가게만 10여 집이었지만 지금은 예닐곱 집이 영업 중이다. 여행객의 동선도 짜장면을 먹고 섬을 도느냐, 돌아보고 먹느냐를 결정할 만큼 중요해졌다.

유람선에서 내린 여행객들은 세 갈래로 나누어졌다. 마을로 향하는 섬 중앙에 있는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는 사람들과 좌·우 둘레 길을 걷는 사람들로다. 중앙으로 가는 사람들은 먼저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고 나서 국토끝섬기념비와 마라도 등대를 돌아보고 배를 타는 곳으로 이동한다. 해안길을 택한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섬을 돌아보고 마을에 들려 짜장면을 먹으려는 사람들이다. 또, 짜장면은 포기하고 느긋하게 걷는 것을 택한 사람들도 있다. 딸과 함께 마라도를 찾은 필자도 이 길을 선택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많은 사람들이 배타는 시간이 다가오면 뛰기 시작한다.

물질을 해서 채취한 톳을 건조하는 모습
물질을 해서 채취한 톳을 건조하는 모습

 

끝에 있는 섬, ‘말에섬’

왜 마라도일까. 말(馬)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말이 누운 모습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마라도는 끝을 의미하는 말(末)로 지명을 풀었다. 제주사람들은 ‘말에섬’이라 한단다. 끝에 있는 섬이라는 의미다. 이를 한자를 차용해 마라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체로 섬 이름은 모양이나 위치(육지를 기준으로)를 한자로 바꾼 경우가 많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마라도(麽羅島), <탐라지>와 <남환박물>은 마라도(摩蘿島), <증보탐라지>는 마라도(馬羅島)라 기록했다. 일제강점기에 출간한 ‘한국수산지’ 3권 (1910)에는 마라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마라도는 가파도에서 남쪽으로 약 3해리 떨어져 있으며, 둘레가 10리가 되지 않으며 평평하고 낮은 섬이다. 선박을 계박하기 편리한 항만이 없고 또한 식수가 없다. 근해에는 작은 상어가 많아서 자망으로 이를 활발하게 어획한다. 그 밖에 삼치·전복·미역이 난다.

마라도에는 없는 것이 있다. 용천수가 없고 나무가 없었다. 일부 숲은 나중에 조성한 것이다. 120여 년 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농사를 짓기 위해 불을 질렀다. 식수는 해수담수화시설로 해결하고 빗물을 받아 허드렛물로 사용한다. 빠삐용절벽이라 이름이 붙을 만큼 절벽의 해식애가 발달해 배를 정박할 수 있는 선착장은 없다.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파항이 있지만 또 다른 집이 있는 모슬포항을 이용한다. 많은 주민들이 출퇴근하며 관광객을 대상을 장사를 하며, 노인들이나 일부 주민만 섬에 머문다. 삼치, 전복, 미역은 지금도 여전히 어민들이 해녀들의 연안에서 채취하거나 잡는 해조류와 어류이다. 최근에는 짜장면과 해물짬뽕에 넣는 톳이나 미역이나 소라 등을 많이 채취한다. 마라도 주변에서는 봄에는 삼치를 여름에는 자리돔을 겨울에는 방어를 많이 잡는다. 다른 지역에서 잡는 것보다 씨알이 굵다. 아쉽다면 마라도 주변에 고급어류들은 섬 주민들 몫이 아니라는 점이다.

할망당
할망당

 

갯밭과 불맞춤

물이 귀하고 나무도 없고 농사지을 땅마저 턱없이 부족한 섬을 지키며 살아내야 하는 주민들에게 섬살이는 생태순환의 삶일 수 밖에 없었다. 땅 농사는 부족하지만 바다 농사는 풍족했다. 조류와 바람에 따라 옮겨 다니며 물질을 했다. 마을은 서남쪽에 자리하고 배가 닿는 ‘살레덕’을 비롯해 장시덕, 부군덕, 올한덕, 알남덕, 지라덕, 치권이덕 등 ‘덕’이 붙은 지명이 많다. 융기해안에 용암이 굳어 형성된 해식애로 발달한 탓이다. 이곳은 마라도 해녀들이 미역, 소라(구젱이), 전복(빗), 우뭇가사리(우미), 톳, 성게(구살), 문어(뭉게), 모자반(몸) 등을 채취하는 ‘갯밭’이다. 해조류는 짜장면이나 짬뽕을 조리할 때 넣기도 하고 말려서 팔기도 한다. 소라나 문어나 성게는 여행객들을 유혹하는 술안주가 된다. 조류가 세고 바위가 거칠어 물질하기 험한 갯밭은 젊은 사람이 톳을 채취하는 ‘젊은 바다’, 거친 곳은 할망해녀들이 물질하는 ‘할머니바다’로 구분하기도 했다. 또 돈이 되었던 미역밭은 ‘마라도향약(1965.2)’에 채취기간, 채취자격 등을 규정하고, 총무를 두어 엄격하게 관리했다. 마라도 행정을 맡아 보는 반장에게는 일정한 지역의 미역밭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를 ‘반장통’ 혹은 ‘반장바당’이라 불렀다.

갯밭에서 물질을 하고 채취한 것들을 끌어 올리는 일이 고단하고 위험했다. 바위에 미끄러지고 물질을 하다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이럴 때면 이웃섬 가파도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 이때 이용한 것이 연기나 불을 피워 알리는 방법이었다. 집안마다 불을 피우는 자리가 있었다. 사망했을 때는 세 개의 불을 피우고, 위급하면 두 개, 사고는 한 개의 횃불로 상황을 전달했다. 이를 불맞춤이라 한다. 땔감이 부족해 소똥을 말려 사용했다. 마라도 북쪽 초지가 조성된 곳이 나무를 베어내고 목장을 만들었던 곳이다. 그곳에 소가 목을 축이던 작은 연못이 남아 있다. 남쪽에 자리한 마을 옆에 밭을 일구었다. 그리고 할망당 아래 갯밭에 우물(섬비물)도 찾았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식수 때문에 빗물을 받아서 먹어야 했다. 나무가 없었던 탓에 소똥을 말려 땔감으로 사용했다. 지금은 해수를 담수화하고 태양광으로 대신하고 있다.

성게알을 채취하는 모습
성게알을 채취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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