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해양학적 난제 연구·도전, 다시 남극에서!
⑬ 해양학적 난제 연구·도전, 다시 남극에서!
  • 김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 승인 2022.09.12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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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서울대학교 교수
김종성 서울대학교 교수

[현대해양] 지구 땅끝 극지가 정복된 지 110여 년이 훌쩍 지났다. 두 극점을 최초 정복한 위대한 탐험가 아문센, 그리고 그의 전후 기록된 수많은 탐험과 과학을 위한 도전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남극에는 30여 개국 80여 개 과학기지가 있고, 북극에도 40여 개 과학기지가 운영 중이다.

 

머나먼 땅끝에 펼쳐진 동경의 남극해

극지는 꽤 흥미롭고 매력적인 탐구 장소다. 수십만 년 전의 빙하에 기록된 지구 역사와 생명 진화 흔적은 수많은 과학자를 극지로 이끌어왔다. 혹독한 추위를 버텨온 극한의 기후·해양환경을 탐구하고 원초적 지구생태계 변화와 생명현상의 비밀을 풀기 위한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그래서 해양학자라면 누구나 동경하고 도전하고 싶은 대상임이 분명하다. 내가 해양학을 공부한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도 ‘남극’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다. 초호화 극지 여행 상품은 최근 일이고, 대부분 소수 탐험가나 과학자에게만 출입이 허락된다. 기회가 오더라도 기나긴 여정과 방해 요소가 많다. 대륙으로 둘러싸인 북극은 그나마 접근하기 쉽다. 그러나 남극에 가려면 비행기, 헬기, 보트, 쇄빙선을 이용해야만 한다. 한국에서 남극 끝자락 서남극 반도까지만도 비행기를 4번 갈아타야 한다. 한마디로 극한의 기후와 극야, 가뭄과 같은 혹독한 환경을 뚫어야만 밟을 수 있는 특별한 땅이다.

멀고 험한 여정이 필수지만,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세계열강과 많은 국가가 극지 연구에 앞다투어 왔다. 우리나라도 ‘극지연구소’를 필두로 세계적 과학연구에 동참한 지 오래다. 1988년 남극 세종과학기지를 시작으로, 2002년 북극 다산과학기지, 2014년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에서 극지 연구가 한창이다.

남극은 표면의 98%가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장소다. 실제 남극의 기온이 지난 30년간 세계 평균의 3배 이상 빠르게 상승했다고 한다. 2018년 서울 면적의 10배에 달하는 라센C 빙붕(약 5,800㎢)이 붕괴됐고, 올해 3월에는 불과 2주 만에 로마 면적에 달하는 콩거 빙붕(약 1,200㎢)도 무너졌다. 지난여름 우리나라에 쏟아진 100년 만의 폭우, 유럽의 40℃를 웃도는 기록적 폭염은 기후변화 가속화를 실감케 한다. 글로벌 기후변화 최전선에 있는 남극 연구가 더욱 중요해졌다.

2017년 극지 하계 연구캠프 출정식
2017년 극지 하계 연구캠프 출정식

험난한 남극 조사 끝에 쥐어진 값진 자료

2017년 우리 연구진에게도 남극의 문이 열렸다. 한평생 극지 연구에 매진해온 극지연구소의 안인영 박사의 제안으로 남극 저서생태계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예전부터 남극에 관한 관심과 동경이 있었기에 나 자신의 기대도 컸고, 연구진의 호응도 남달랐다. 우리 연구진은 2017년부터 약 3년간 세종과학기지 2회, 아라온 쇄빙연구선 조사연구 1회 등 총 3회의 남극 탐험을 수행했다. 아쉽게도 나는 남극을 직접 밟지 못했지만, 송성준 박사, 배한나, 김동우, 김호상 등 연구진은 평생 잊지 못할 남극 탐험에 동참했다. 나는 그들과 연구 결과를 분석하고 논문을 작성하는 것으로 동경했던 남극 연구를 맛볼 수 있었다.

우리의 소중한 남극 탐험은 사진과 일기, 그리고 논문으로 기록됐다. 첫 번째 탐험은 2017년 세종과학기지 방문이었다. 중간 기착지인 칠레의 끄트머리,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하는 데만 40시간이 걸렸고, 남극을 코앞에 두고 기상악화로 사흘간 발이 묶였다고 한다. 어렵사리 도착한 세종과학기지에서도 새롭고 어려운 첫 경험은 계속됐다. 그렇게 동경했던 남극 조사인데 번번이 기상악화와 강풍으로 연구선 출항은 늦어지기 일쑤였고, 그나마 출항해도 돌풍과 빙하가 무너져 내리면서 수면을 가득 메운 얼음은 걸림돌이었다. 실제 일주일 기준으로 조사는 하루, 이틀 정도 했다고 하니 연구진의 허탈감과 압박감을 상상할 수 있었다.

2018년 두 번째 세종과학기지 방문 연구도 돌발상황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방심한 순간 해저탐사 장비인 무인잠수정(ROV)이 타이태닉인 양 유빙에 부딪혀 침수되기도 하고, 마리안 소만 빙벽 근처에서의 조사는 수시로 무너지는 빙벽과 유빙에 속수무책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만만한 조간대 조사도 추위와 강풍, 안개, 비, 눈, 펭귄의 지독한 배설물 냄새까지 연구진을 시종일관 괴롭혔다고 하니 그들의 노고에 새삼 고개가 숙여졌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한번 남극의 쓴맛을 봐야 했다.

마지막 세 번째 남극 탐험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항해로 이루어졌다. 2018년 4월, 남극에서의 겨울이 시작될 무렵 남극해를 항해한 아라온호는 한층 거칠어진 바다와 싸워야 했다. 1달 이상의 조사 동안 눈과 비바람, 그리고 성난 파도와 싸우면서 우리 연구진은 값진 연구자료를 얻었다. 그렇게 세 번째 남극 탐험은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끝나게 됐다.

세 차례 남극 조사를 통해 우리는 매우 값진 시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총 1,500여 점의 생물 표본과 1,000여 개의 저서 이미지, 그리고 수백 개의 수심별 퇴적물 시료를 획득했다. 연구 목적인 남극 빙하의 후퇴가 저서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에 충분한 시료를 확보한 것이다. 특히, 킹조지섬의 마리안 소만에서는 만의 입구부터 가장 안쪽에 있는 빙벽까지 전 수심에 대한 해저 조사를 통해 저서생태계 군집의 분포 특성과 공간적 천이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빙하 후퇴에도 끄떡없는 남극의 저서생물

우리는 남극 빙하 후퇴가 저서생태계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했다. 첫 번째 대상은 저서미세조류였다. 흔히 저서미세조류는 갯벌과 같은 조간대 환경에서 흔히 관찰되는 종으로 바다에서 일차생산을 담당하는 중요한 먹이원이다. 남극에도 조간대 환경에서는 저서미세조류가 많고, 조하대에도 군체를 이루며 발달하는 것이 보고된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안 소만에서 빙벽으로부터 거리에 따라 조간대와 조하대 여러 수심에서 저서미세조류를 직접 채취하여 종조성과 공간 분포 특성을 살펴봤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뜻밖에도 최근 빙하가 후퇴한 지점, 즉 빙벽과 거리가 가까워 담수 유입으로 인한 환경변화가 큰 지역에서 사슬형의 군체를 이루며 발달하는 저서미세조류를 다량 관찰하게 됐다. 그리고 빙벽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저서미세조류 생물상이 단조로워지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는 빙하가 녹으면서 얼음 속에 살던 유빙조류가 유입됐음을 확인했고, 담수와 함께 유입된 미량원소가 저서미세조류의 성장과 천이를 유발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연구로 남극에서의 빙하 후퇴가 저서미세조류 군집 천이를 야기해 궁극적으로 중대형 저서생물의 종조성과 분포 특성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첫 번째 연구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빙하 후퇴가 조하대 저서생물의 분포에도 영향을 주는지 자연스럽게 의문을 품게 됐다. 마리안 소만 저서생물 중 우점하는 멍게를 대상 생물로 선정하고, 이들의 군집 변화를 살펴봤다. 멍게는 부착성 생물이기 때문에 저서환경 변화에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점에서 모니터링 종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다. 조사 결과는 역시 뜻밖이었다. 멍게는 저서미세조류와 달리 빙벽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질수록 다양한 군집구조를 보였다. 하지만 멍게의 서식밀도는 저서미세조류와 마찬가지로 빙벽 인근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경향성은 특히 수심 30~50m에서 두드러졌다. 해당 수심은 빙하 후퇴에 의한 환경 교란이 적고, 저서미세조류나 해조류와 같은 일차생산자가 다양한 환경이란 점에서 멍게에게는 최적의 서식처가 된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빙하 후퇴에 따라 성장이 재빠른 일부 개척종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다양성(종수)은 낮은 대신 생물량(서식밀도)은 높아지는 군집 특성을 나타나게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번 남극 연구를 통해 한가지 확실히 알게 된 점은 빙하 후퇴로 인해 해양환경이 급변하고, 이에 대응해서 저서생태계도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적응해나간다는 사실이다. 특히, 저서미세조류, 중형저서동물, 대형저서동물로 이어지는 남극 저서생태계 먹이망 구조가 빙하 후퇴에 따라 시·공간적 천이 특성으로 나타났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것이 중요한 대목이다. 이는 기후변화란 혹독한 환경변화에 극지 생태계가 민감하고 빠르게 반응하면서도 생태계 측면에서 경쟁 배타의 원리에 맞게 균형과 안정화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적응하고 공존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궁극적으로 저서생태계에 득이 된다고 과감하게 해석하는 것은 아직 무리가 있다.

2018년 남극 마리안소만 조간대 및 조하대 조사 현장
2018년 남극 마리안소만 조간대 및 조하대 조사 현장

기후변화 연구의 시작, 남극에서 찾자!

이제 기후변화에 따른 해양 위기는 체감 그 이상이 돼버렸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해결책의 하나로 바다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인 ‘블루카본’이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블루카본에 관한 연구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갯벌, 해조류, 굴밭, 대륙붕 퇴적물 등 신규 블루카본 후보군에 관한 연구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남극의 블루카본 연구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몇몇 학자들이 남극 저서생물의 탄소저장 능력에 대해 보고했을 뿐이다. 빙하 후퇴로 드러난 조간대와 조하대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저서미세조류와 해조류 등 식물생태계를 대상으로 하는 블루카본 연구도 시도해볼 만하다.

나아가, 남극 저서동물 역시 새롭게 노출된 저서환경에서 빠르게 정착하고 번성해나간다는 점에서 블루카본 후보군으로 연구가 필요한 대상이다. 남극의 생물은 수명이 긴데, 대표 저서생물인 큰띠조개는 수십 년 이상 살고, 일부 유리해면은 1만 5,000년 이상 살 수 있다고 한다. 즉, 저서생물이 그만큼 오랜 기간 탄소를 저장해 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기후변화 가속화가 더 심각해진 지금, 남극과 남극의 저서생태계에 대한 새로운 도전적 연구가 탄력받기를 기대해본다.

우리나라는 남극에 연구원이 상주하는 두 개의 과학연구기지가 있고, 쇄빙연구선을 보유한 극지 연구의 강국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해양학적 난제에 관한 연구와 도전이 다시 한번 남극에서 시작될 것을 기대해본다.

남극 마리안 소만에서 빙하 후퇴에 따른 저서생태계 군집 변화 연구 결과
남극 마리안 소만에서 빙하 후퇴에 따른 저서생태계 군집 변화 연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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