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교육 및 해양문화 확산방안
해양교육 및 해양문화 확산방안
  • 윤명철 역사학박사·동국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9.15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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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본질 알고, 활용할 수 있는 전략 전술 있다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한국해양정책학회 부회장)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한국해양정책학회 부회장)

[현대해양] 우리 한국인들이 역사와 정체성에 대하여 몇 가지 오해를 하고 있는데, 해양과 연관하면 다음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는 해양활동이 발달하지 못했거나 아예 없었다고 믿는 일이다. 또 하나는 우리역사의 활동터가 ‘한반도’라는 오해이다. ‘반도(peninsula)’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육지 형태를 말한다. 그런데 반도국가들은 대부분 해양활동이 매우 활발했고, 해양정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위대한 문명, 강력한 국가, 엄청난 부를 획득했다. 역사상에서 나타났던 모든 강대국들의 존재가 그 평범한 진리를 입증한다.

미국의 강대국화, 초강대국화는 해양능력의 확장, 해양국가로서 변신한 결과이다. 19세기 중반에 남북전쟁이 끝나고, 대륙횡단 철도망의 안전망을 확보하고 서부 해안을 개척했다, 또 스페인이나 멕시코로부터 태평양 연안을 빼앗았다, 이어 하와이 왕국을 합병하면서 미국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운용할 수 있는 ‘양양(洋洋)국가’로 탄생한 것이다. 전형적인 내륙국가인 중국이 최근에 ‘일대일로(0ne belt, One road)’ 정책을 추진하면서 곳곳에서 해양영토 분쟁을 일으키면서 해양력을 강화시키는 것도 좋은 예이다.

그런데 해양국가로 변신한 일본은 우리 역사 활동의 터를 ‘조선반도’라고 규정하면서도, 왜곡된 반도사관을 적용하면서 정작 해양활동이 있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 즉 일반적으로 바다로 진출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 한반도를 바다에 포위됐고, 해양활동을 하지 못한 나라와 역사로 규정한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해외로 진출하지 못해서 고립됐고, 무역이 활발하지 못해서 가난했으며, 세계에서 고립된 채 쇄국정책을 고집하면서 중국의 주변부적인 존재로서 사대주의가 체질화됐다는 논리를 펴고, 그렇게 가르쳤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아주 오랫동안 그 통념을 그대로 용인해온 것이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해양활동이 선사시대부터 발달했고, 13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열도의 해양능력을 능가했다. 물론 일본학자들이 8, 9세기에 일본의 조선술과 항해술이 신라나 발해보다 뛰어났고, 당나라와 교류가 매우 활발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한국의 연구자들도 이 주장들을 수용하면서 교육시킨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사실을 정확하게 알려면 역사 활동의 무대, 즉 터, 공간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공간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이해를 해야 역사를 올바로 이해할 뿐 아니라 현재 또는 미래의 발전정책을 수립하는데도 훨씬 효율적이다.

고려가 건국하기 이전까지, 즉 발해가 멸망하기 전까지 우리민족의 활동무대는 소위 한반도와 만주 일대, 그리고 삼면 또는 사면의 바다를 포함했다. 때문에 필자는 이미 1993년부터 우리 민족이 활동한 무대를 ‘동아지중해(East-Asian Mediterranean Sea)라고 명명하고 이론을 전개해왔다.

동아시아는 단순한 육지공간이 아니라 만주 일대의 123만㎦, 한반도 22만㎦, 일본열도 37만㎦라는 육지 공간 외에 동해 107만㎦, 황해(서해, 발해포함) 48만㎦, 동중국해 75만㎦를 포함한 총 230만㎦에 해양공간이 포함한 넓은 해륙적 공간이다.

지리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생태환경,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동아시아 세계는 육지환경과 해양환경이 유기적인 시스템을 이루고 있었다. 모든 교류는 정치, 외교, 무역, 문화를 불문하고, 심지어는 군사작전 등도 해양과 직결되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중요한 수도와 대도시들은 해양과 아주 가깝거나 바다와 물길로 연결된 장소에 있었다. 즉 ‘항구도시’들인 것이다. 원조선의 왕험(검?)성, 고구려의 국내성(집안시), 평양성(평양), 백제의 한성(서울 강동지역), 웅진성(공주),사비성(부여), 신라의 금성(경주), 금관가야의 김해지역, 대가야의 고령, 발해의 홀한성(상경성)과 동경성(훈춘), 후백제의 전주, 고려의 개경(개성), 조선의 한양(서울) 등이다. 중국은 낙양, 장안뿐만 아니라 남경, 양주, 항주 영파, 심지어는 운하도시인 베이찡, 개봉도 일종의 항구도시이다. 일본은 현재 후꾸오까에 해당하는 타자이후, 난파(오사카), 에도(동경)등이 항구도시이다.

高唐전쟁 해양 戰圖
高唐전쟁 해양 戰圖

우리 해양문화 특성

해양문화는 육지문화, 특히 농경문화와는 다른 몇 가지 특성들이 있었다. 첫째, 그들은 무정부성, 호족성을 띈다는 점이다. 내륙의 사람들, 세력과는 관계없이 살아갔다. 바닷가와 바다에서 어업, 멀리까지 상업을 벌이고, 심지어는 밀무역 등을 통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었다. 실제로 국가에 세금을 충실하게 내지 않아도 큰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적었다. 둘째, 이들은 공식, 비공식으로 외국인과 접촉하면서 다른 세계의 존재를 알았다. 당연히 그 신세계와 조선을 비교하면서 문제점을 인식했고, 결국은 사회변혁 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또 하나의 놀랄만한 특성이 있었다. 내륙에 있는 정치 사회의 주도 세력들은 이들 변방의 해양세력들을 정치적으로 간섭하거나 군사적으로 제압하는 데 힘이 들었다. 해양환경과 해양문화의 특성상 현지 해양세력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일은 힘들었다. 조선 초에 이종무는 대군을 거느리고 대마도의 왜구를 토벌한다고 갔다. 하지만 불과 100여 명 남짓의 사람만 죽였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있으므로 대부분의 중앙세력들은 지방의 해양세력이 성장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연약하고, 관념적이며, 세상정세와 국제관계의 실상을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은 두려움 때문에서라도 더더욱 해양문화를 억압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들은 국가 전체의 ‘부(WEALTH)’를 확장한다거나, 국가 존립을 목표로 군사력을 양성하는 일은 큰 관심이 없었다. ‘사대교린’이라는 기본 외교정책에서 보듯, 중국(명나라)의 보호를 받으면 국가는 물론 정체, 자신들의 안전은 보장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은 19세기에 들어와 세계가 해양력을 통해 ‘Great Game’을 벌이고, 일본이 근대 해양력을 강화시키면서 조선을 노리고 있음에도 속수무책으로 있었다.

 

해양이 만든 대한민국

현재 한국은 급속도로 성장하는 중이다. 국민총생산은 세계 5위권을 넘보고 있고, 기술력은 정상급 수준에 올라왔다. 정치력 또한 만만치 않고, 군사력은 공개하기를 꺼려하지만 막강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 60년 전 만 해도 세계최빈국이었던 한국이 이렇게 성공한 요인은 무엇일까? 알만하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요인들도 있지만, 아직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경시하는 요인들도 있다.

나는 실질적인 요인의 나라로 해양산업의 중시와 해양시스템의 적극적인 활용이라고 판단한다.

남북이 분단됐으므로 남한은 일종의 ‘섬(island)’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대륙과 연결이 안 돼 고립됐으며, 미국 등에 지나치게 의존한 해양 일변도의 사회라는 자존감을 깔고 하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러한 인식과 주장의 일부에는 동조한다. 동아지중해의 중핵이 되려면 해륙국가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해륙교통망(SEA LANE, TSR, TCR)이 원활하게 구축되고, 활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60여 년 동안 인식하든 하지 못하든 해양을 철저하게 활용했고, 그래서 적어도 외적으로는 성공한 것이다.

6.25 이후 북한보다 모든 면에서 열세에 놓였던 우리는 과감하게 새로운 세상을 선택했다. 자원이 없고, 산업시설이 전혀 없었으므로 무역정책을 선택했고, 북한처럼 수출할 수 있는 광물조차 없었으므로 보세가공무역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9세기의 장보고 대사가 운영한 청해진 체제처럼 창원 등 바닷가 마을에 공장을 짓고, 물건들을 생산했다. 일종의 ‘경제특구’를 설치한 것이다. 그리고 보세품들은 현장에서 배에 실려 수출했다. 그러다 보니 조선업의 필요성이 생겼고, 결국은 1970년대 초에 현대조선이 미포에서 출발한 것이다. 현재 한국이 조선 강국임을 부정할 지구인은 없다. 그리고 정유공장, 제철소 등도 바닷가에 건설했다. 그 때문에 과거처럼 울산, 포항, 창원, 광양 등의 항구산업도시들이 탄생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에서 선두그룹에 속하는 무역국가이다. 알 길도, 확인할 길도 없다. 그렇지만 그 시대의 인물들은 본의 아니게 해양을 최대한 활용해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다.

장보고항로도
장보고항로도

해양세력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세계는 다시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세력이 패권을 다투는 ‘냉전(COLD WAR)’시대에 돌입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냉전을 이데올르기의 대립으로 보았고, 소련의 패배는 공산주의 체제가 운영하는 경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세계사라는 거시적인 시각에서 판단하면 패권 쟁탈전은 말 그대로 ‘POWER GAME’이고, ‘POWER SHIFT’의 위치와 역할을 설정하는 것이다.

관념은 어떤 것이든 명분이고, 형식일 뿐이지 실질적인 역할은 미약하다. 이러한 논리라면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국의 냉전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지속된 영국과 러시아의 ‘GREAT GAME’과 동일하며, 그 연장인 셈이다. 그렇다면 승리는 기본적으로 ‘해양세력(MARINE ORDER)’에게 돌아갈 확률이 높았다. 미국은 이미 러일전쟁을 전후한 시기부터 이 게임의 본질을 간파했고, 그래서 그 때도 승리했고, 영국의 바통을 받아 더 큰 해양세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적도도 16세기 이후에 ‘지구’라는 유기적인 경제권, 시장권이 생성한 이후에는 해양세력이 경쟁에서 헐씬 유리하다. 마찬가지로 한국이 수출입주도 정책을 선택하고, 해양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부터 이미 남북 대결에서 남한이 승리할 확률이 높았다. 더군다나 북한은 폐쇄적인 소련과 중공이라는 ‘대륙세력(CONTINENTAL ORDER)’을 선택했고, 우리는 미국과 일본이라는 ‘해양세력’을 파트너로서 선택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성공은 원래 주어진 지정학적인 운명, 즉 동아지중해 중핵조정역할을 미흡하나마 수행한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할 일이 너무나 많다. 한민족의 운명이 미래에도 밝고 희망찬 것만은 아니다. 내부적으로는 한국의 경제적인 성장에 회의감이 들게 할 정도로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되면서 사회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긴장을 멈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한국을 성공모델(그 가운데에는 새마을 운동과 함께 해양의 중시, 특히 등소평이 열정적으로 실시한 ‘경제특구’ 등이 있다.)로 활용하여 급속도로 성공했다. 지금은 미국이 주도했던 태평양세력권에 도전하면서 한민족을 위협하는 신중화제국주의의 행태를 보인다. 그리고 미약하지만 아직도 여러 가지 면에서 갈등과 경쟁 등을 멈추지 않는 일본이 있다, 또 예상을 뒤엎고 서진을 하면서 우크라이나를 공격함으로써 나토 및 미국과 물리적인 충돌을 서슴지 않는 러시아가 동진할 우려도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영원한 숙제인 북한의 문제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양문화의 발전과 해양력의 강화, 국제질서에 대한 정확한 판단 등은 매우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해양의 본질을 알고, 활용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계발해야 한다.

 

해양사(海洋史) 교육 필요

필자는 장구한 우리 역사에서 해양을 활용한 국가정책을 규명하면서 나라별, 시대별로 분석하여 몇 가지 집행의 ‘틀(frame)’을 만들었다. 첫째는 국가정책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운영하는 방식이다. 처음부터 해륙을 유기적으로 파악하는 해륙정책을 사용하고, 궁극적으로는 해륙국가의 실현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둘째는 수도를 비롯한 대도시들의 항구도시적인 성격을 분명히 하고, 거기에 적합하게 개조(Re build)해야 한다. 또한 신도시들을 건설할 때에도 해륙교통이 원활하게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당진항, 평택항처럼 시대상황에 적합한 항구는 꾸준히 계발해야 한다.

셋째는 인식과 홍보의 문제이다. 서양의 역사, 특히 지중해문명의 다양한 장르에서 확인이 가능하지만, 해양의 필요성을 자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득시킬 필요가 있다. 현재 한민족이 당면한 현실은 해양과 밀접함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과 문화 속에서는 해양이 반영되거나 활용되는 점이 미약하다. 해양레포츠, 해양탐험도 필요하고, 확산시켜 청소년들이 해양문화에 익숙하고 해양적인 세계관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

종교와 민속에 남겨진 해양적인 요소들을 부각하고,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또한 문학,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등의 예술과 비롯한 관념적인 문화에도 해양을 소재와 주제로 삼은 작품들이 창작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양사 전공자로서 해양교육과 연관하여 몇 가지 제언을 한다. 결국 인간이 중요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근본적인 방식은 교육이기 때문이다. 우선 학문적인 연구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 최근에 들어서 해양문화, 해양사 연구가 늘어나고 있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해양은 육지와 메카니즘이 다른 점이 많다. 따라서 해양의 관점과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면서 연구를 진행하면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오류를 줄일 수 있다.

또한 학자들이 목적의식과 시대정신을 자각하면서 연구를 진행하길 바란다. 해양관련 학문은 육지영역과 달리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이지 않다. 주체자들도 권력의 향방과 직결된 지배계급만이 아니다. 또한 공간이나 시간, 자연환경에 대한 해석이 틀이 육지사관과는 다르다. 따라서 자연과학을 비롯한 다른 학문과 철저하고 과학적인 학제 간의 연구가 필요하다.

 

해양의 위상·역할 복원해야

이렇듯 학문의 연구가 부족하고, 아직은 수준이 낮은 단계에 있으므로 일선의 대학 및 청소년 교육에도 차질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 일단 ‘해양사’라는 독립된 과목이 없다. 대학에서도 해양사라는 독립된 강좌가 개설된 학교가 거의 없다. 당연히 초중고교에서도 학생들에게 해양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들이 부족하다. 십여 년 전에 검인정 국사 교과서들을 분석하고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 때 몇 가지 놀라운 사실들을 확인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해양과 연관하여 서술한 비중이 지극히 미미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오류가 너무 많았다.

역사라는 학문은 지나간 사실을 규명하고, 동시대인들에게 과거의 사실들뿐 아니라, 종족적으로 간직한 생물학적 기억, 잠재의식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역사에서 확인하듯이 우리는 항상 미래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민족의 미래에 대해서 각별한 감정과 함께 사명감을 가져야하고, 또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동안 잃어버렸고, 망각했던 우리 역사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해양의 위상과 역할을 떠올리고, 일부라도 복원시키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해양문화는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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