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눈으로 ‘해양’ 바라보기
문화의 눈으로 ‘해양’ 바라보기
  • 김태만 국립해양박물관장
  • 승인 2022.09.0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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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만 국립해양박물관장은 부산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베이징 대학원에서 중국현대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김 관장은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해양대 국제대학 학장 및 박물관장 등을 역임했다. 또 김 관장은 국립해양박물관 비상임이사를 비롯해 해수부 해양르네상스위원회, 부산문화예술위원회 등 해양문화 분야에서 활동했다.해양문화와 해양관광, 지역발전 등과 관련, 30여 편의 논문 발표하였고, 4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김태만 국립해양박물관장은 부산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베이징 대학원에서 중국현대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김 관장은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해양대 국제대학 학장 및 박물관장 등을 역임했다. 또 김 관장은 국립해양박물관 비상임이사를 비롯해 해수부 해양르네상스위원회, 부산문화예술위원회 등 해양문화 분야에서 활동했다.해양문화와 해양관광, 지역발전 등과 관련, 30여 편의 논문 발표하였고, 4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고래가 증명하는 것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막다른 선택의 기로나 위기의 순간, 머릿속에 시원하게 헤엄치는 고래의 형상과 함께 문제의 해결책이 떠오르는 장면이 매회 등장했다. 이런 미장센에 열광한 시청자들은 깨달음과 함께 고래가 등장하는 장면을 ‘유레카’와 ‘고래’를 합친 ‘고레카’라는 신조어로 부르기도 했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의 내면세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녀가 좋아하는 고래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고래’일까? 이에 대한 애청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아이들이 크고 힘이 센 공룡을 좋아하는 것처럼 바닷속 최강자인 고래를 통해 강해지고 싶은 욕구를 반영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다른 야생동물들과 달리 장애를 가진 동료를 끝까지 돌봐주는 고래의 이타적 습성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해양인의 관점으로 보자면 우리 민족에게 유구히 전해져온 고래친화성의 발현이라는 의견을 하나 보태고 싶다.

우리 민족사에 처음 고래가 등장한 것은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반구대 암각화에서다. 먼 옛날 울주 대곡천변 주변에 살았던 선사인들이 새긴 고래의 모습을 보면 그 정교함과 생생함에 실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암각화에 표현된 고래의 종류만 해도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 향고래, 들쇠고래, 범고래, 상괭이 등 최소 7종으로, 수시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그릴 수 없는 내용이기에 암각화의 의미는 더 각별하다. 7,000년 전부터 고래가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었으며, 고래 친화적인 해양 DNA를 보유한 한반도 주인들의 수준 높은 해양성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양성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의 해양성(海洋性)은 ‘바다의 성질, 또는 바다가 가지는 특별한 성질’을 의미하지만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보자면 해양성이란 대륙성과는 구분되는 해양에서 비롯된 기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양의 물성(物性)으로 유추할 수 있는 해양성이란 변화무쌍함에서 비롯된 다원성과 도전정신, 유동성에 따른 자유와 포용, 통합의 정신이자 미지에 대한 창조성과 혁신 정신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성질들은 모두 위태롭고 급격히 변화하는 지금 사회에 부합하는 정신이자 시대가 요구하는 자질이라 할 수 있다. 고착, 폐쇄, 권위, 질서, 규율을 원리로 하는 ‘육지적 사고’를 넘어선 유동, 열림, 자율, 창의, 창조적 파괴를 존중하는 ‘해양적 사고’로의 전환이야말로 국가 간 경쟁 심화, 자원 고갈, 기후 위기 등 현재 인류 앞에 거대한 벽처럼 자리한 난제를 극복해 나갈 또 다른 열쇠인 것이다.

대륙형 사고가 지배했던 19세기 식민지 쟁탈 침략 전쟁의 시기는 오래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륙형 사고의 연장이라 할 수 있는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친 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으로 나뉜 채 동서 냉전이 이어지고 거칠었던 20세기도 지났다. 이제는 신해양의 시대로 해양을 근간으로 한 자원, 관광, 레저, 문화 등 해양산업의 중요도가 점점 커질 것이고, 국가의 해양경영 역량에 따라 세계 질서가 재편될 것이다.

하지만 해양을 약탈적 차원에서만 바라본다면 해양자원과 환경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지지하지 못하고 신해양 시대는 이름만 거창한 허울만 남게 될 것이다. 이에 필자는 우리 역사 속 활발한 해양활동을 통해 우리 민족의 DNA 속에 내재된 해양역량을 발견하고 정립하여 21세기의 시대정신으로 확산해 나가기를 제안하고자 한다.

 

문화의 눈으로 ‘해양’ 바라보기

기후위기, 식량위기, 경제위기, 안보위기… 요즘 뉴스를 보면 온갖 위기와 난제들이 넘쳐난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또한 어느 하나 이렇다 할 해결책도 보이지 않고 있다.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대륙적 관점에서 해양적 관점으로의 전환, 약탈적·소모적 해양경영에서 문화적·가치적 해양경영으로 말이다.

돌고래 매개 치료(Dolphin Assisted Therapy)라는 치료법이 있다. 발달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물에서 돌고래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했더니 아이들의 행동, 감정, 언어발달 면에서 유효한 변화가 나타났다는 연구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돌고래 매개 치료의 효과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물 자체가 주는 치료 효과와 상처 입은 동료를 보호하는 돌고래의 습성이 아픈 사람을 알아보고 특별하게 대함으로써 맺는 관계에서 오는 치료 효과 두 가지를 주장한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이가 범고래와의 관계 맺음으로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실화 바탕의 영화 ‘범고래 등대’도 요즘 재조명되고 있다. 이는 결국 ‘해양성’의 본질인 치유와 재생, 화합에 대한 현대인의 간절한 욕구의 발현이라 생각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기준이나 가치에 부합하는 해양의 성질을 본받아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확산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해양에 대한 의식와 해양관념을 새로운 차원에서 모색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으며, 해양박물관과 같은 문화기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어렸을 때부터 친해성(親海性)을 함양하고 우리 고유의 해양의식을 정립하여 문화로써 확산해 나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해양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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