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50
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50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08.1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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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부산문단과 향파의 《문학시대》(4)
문학시대 표지
문학시대 표지

[현대해양] 《문학시대》 4호는 1966년 9월 10일 발행되었다. <학교 대항 릴레이> 작품은 계속되고 있으며, 소설교실에는 정비석이, 시작교실은 이번 호에는 장호가 맡아서 지상 강좌를 펼치고 있다. 특별 좌담으로 <학원과 문학 교육>이 펼쳐지고 있다. 소설로는 최인욱의 「1969년의 피서」, 승지행의 「이것이 수도 서울이라오」, 정을병의 「크산티페」, 최해군의 「불연속선」이 실려 있다.

그리고 시에는 신석정의 「슬프지도 않아」, 김용호의 「誤錄의 별」, 박남수의 「작품」, 박두진의 「패각」, 김현승의 「가을의 서시」, 이설주의 「독립문」, 이경순의 「열풍에 기를 달다」, 유경환의 「대장이의 노래」, 이성교의 「여름집」, 박재능의 「추억」, 이일기의 「바람 속의 비밀」, 김어수의 「산도라지」 등이 자리하고 있다. 평론으로는 김종출의 「우리 현대소설은 어디로 가는가」, 정재완의 「유치환의 시세계」가 잡지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 이에 좌담과 두 편의 평론을 중심으로 제4호 내용의 실체를 살펴보고자 한다.

학원과 문학교육>이란 주제로 펼쳐진 좌담은 구자학, 김원연, 박지홍, 박태신, 백순학, 이수봉, 이유식, 최계락, 최해갑, 하석우 등의 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현직 교원들과 《문학시대》 관련자인 추성구, 이주홍, 최해군, 박광호 씨가 함께 참여하여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 자리에서 논의된 주요 내용은 우선 학교에서의 문학교육의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집중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학교 문학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입시준비에 단어 풀이 정도에만 정신을 팔고 있는 문학교육의 현장에 대한 비판, 학교가 진정한 교육의 장이라기보다는 학원화되어 가고 있어 인간 교육이 결여되고 있는 점, 독서를 하고 싶어도 교과서에 정신을 쏟을 수밖에 없는 학교교육 현실, 도덕을 시험과목에 넣는 일의 필요성, 문학 작품을 문학 작품으로 가르칠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있는 학교문학 현실, 국어 교사들이 문학에 조예가 깊지 않은 현실적 문제, 문학교육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학 시험에 작문과목을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 등의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위에서 제기된 당시 학교 내의 문학교육의 문제점을 현재 학교에서의 문학 교육과 비교해 보면 진전된 사안들이 크게 없다는 점에서 학교문학 교육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함을 다시금 인식하게 된다.

평론에서 김종출은 「우리 현대소설은 어디로 가는가」를 통해 우리 소설의 현단계를 진단하고 있다. 그는 우선 신구세대 간의 불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기성작가들이 처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개관하고 있다. 그 첫째가 기성작가들과 더불어 늙어가는 독자가 없다는 점이며, 둘째는 그들의 대부분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로부터 시작하여 인사이더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순수소설을 읽는 40대 이상의 독자는 특수한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는 것. 그리고 현재의 순문예지 구독자들은 거개가 젊은 층이고, 그것도 국문학도나 작가지망의 특수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문학》 6월호에 발표한 이주홍의 「승자의 미소」는 소재가 유니크하고 퍽 잘 쓰여진 의미있는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소재가 유니크하다는 것은 스토리의 내용이 그 동안 소설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시체 염습에 관한 것이고, 소설이 퍽 잘 쓰여졌다는 것은 작가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즉 간간히 나타나는 까마귀의 울음소리로서 상징되는 죽음의 이미지와 그것을 넘어서고자 집념하는 인간의 이미지도 잘 부각되어 스토리를 절박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젊은 작가들의 경우를 살펴보고 있는데, 소재면이나 기교 또는 문체 등 전기한 기성들과는 판이한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것이 어떤 것엔 긍정보다는 불신이 앞선다고 비판하고 있다. 소재면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역시 2차대전 후 유행하여 50년대 중반기 이후 우리나라에 소개된 실존주의 소설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인간실존의 부조리, 개인의 소외의식 등을 나름대로의 이해와 인식을 바탕으로 작품 속에 나타낼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유행은 어디까지나 유행이기에 좀 더 시간을 두고 그 공과를 살펴야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테크닉이나 문체에서도 젊은 작가들은 새로운 모습을 내보인다고 평가하고 있다. 우선 기교면에서 본다면 분명히 <의식의 흐름>의 수법과 같은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수법은 외국에서 30여년 전에 시도되었던 것으로서 30여 년을 뒤쳐진 상태에서 새삼 도입되는 이 테크닉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아직은 아주 초보적인 단계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문체상으로는 현재 우리의 안목으로는 진귀한 것이 시도되고 있는데, 이는 소설 산문으로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생각되는 산문이 쓰여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어서 정재완은 「유치환의 시세계」에서 청마의 낭만주의적 시정신의 편력을 통해서 시의 내용과 형식면의 문학성을 살펴보고 있다. 그의 평가는 청마는 우선 한국시가사상 유일하고도 본격적인 의지와 사유의 시인이라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시가 감정과 언어 면만이 아니고 의지와 사유의 시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어 우리 시의 영토를 확장 심화한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 예술성 면에서는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그 이유를 정재완은 그가 시인이면서 사색인이었고, 사색인이면서 시인이었다는 점에서 찾고 있다. 또한 청마가 사유를 전개시키는 데 있어 느낌을 바탕으로 한 동양인의 직관에 의존하여 논리성이 결여, 모순된 점이 허다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어디까지나 사상가가 아니라 사상의 생활화, 개성화를 期한 시인이었기 때문으로 본다. 또한 그의 시에서는 의지의 이원화 모순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 역시 그가 사상 시인이 아니라 휴머니스트였다는 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휴머니스트는 항시 생동하는 체험 자체에 관심이 쏠리기 때문에 사상의 객관 면과 주관 면의 차별 즉 그 체계성은 예민하게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재완은 청마문학의 과제를 ‘예술성의 취약을 극복하면서 책임성과 존귀성의 당위적 생명의지로 인간의 부분(일체의 객관적 현실)에 보다 적극적으로 앙가주망하는 데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정재완의 청마론은 청마시의 세밀한 분석과 체계화를 통한 비평은 아니지만, 청마시가 지닌 사상성에 대한 문제점을 나름대로 지적해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어려운 출판 상황 속에서도 《문학시대》가 호를 이어나가면서 당대의 문학교육에 대한 문제 제기와 문인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적 평가를 담아낼 수 있었다는 점은 1960년대 부산 문단으로 보아서는 다행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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