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혼자서는 바다를 구할 수 없다!
⑫ 혼자서는 바다를 구할 수 없다!
  • 김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 승인 2022.08.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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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우연히 시작한 <현대해양> 우리말 글쓰기가 이번 달로 1년이 된다. 매번 어렵고 부담됐지만, 한 편씩 끝날 때면 보람만큼은 커졌다. 가장 어려운 점은 주제를 정하는 것이었다. 작가, 시인, 기자도 아닌 내게 독자가 기대하는 유익한 글을 써야겠다는 압박감이 매번 컸던 게 사실이다. 늘 첫 번째 고민은 ‘소재’ 찾기에서 출발했고, 되도록 정확한 최신 정보와 자료 그리고 나의 주관적 생각을 객관화하여 기술하려 노력했다. 주변에서 격려와 응원도 보내줘서 감사했다. 그렇게 읽을만한 한 편의 글을 써보자는 생각으로 달려온 1년이었던 것 같다.

지난 1년간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우리 바다만의 특별한 가치였다. 주제가 대부분 나의 연구자료와 출판된 논문에 근거했기에 한계는 있지만 되도록 많은 분야를 다루려 노력했다. 사실 그간의 연구는 정말 많은 동료 연구자 그리고 학생들의 도움과 참여로 만들어진 공동의 결과물이었다. 나는 특별히 기록하는 것을 좋아해서 작은 메모부터, 실험 노트, 편지나 사진, 그리고 시료까지 모두 기록하고 보관하는 버릇이 있다. 그 기록이 지금의 주제나 소재 찾기에 큰 도움이 됐다. 이제, 1년을 마감하면서, 마지막 주제는 여러 ‘함께하기’ 기록 중 하나인 학생들과의 추억이 담긴 ‘썸머(윈터)스쿨’로 정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출처 불명의 ‘혼빨함멀’이란 말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홀로서기보다 중요한 ‘함께하기’

2018년 경기만 일대 공동조사
2018년 경기만 일대 공동조사

해양학은 필드 사이언스란 학문적 특성상 바다에 직접 나가서 관측하고 시료를 채취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연안해양학도는 늘 하구, 바닷가, 갯벌 등을 돌아다니고, 대양을 연구할 때는 가까운 바다든 먼 바다든 배를 타고 나가기가 일쑤다. 결론은 혼자서는 바다를 연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과 배경으로 학생들과 ‘함께하기’를 시작한 것이 바로 ‘썸머(윈터)스쿨’이다. 가까운 몇 개 대학 연구실 대학원생들이 방학 때마다 함께 모여 공부하고 교류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이었다.

첫 모임은 2018년 1월 제법 빡빡하게 진행한 6일간의 윈터스쿨이었다. 서울대, 안양대, 인하대, 충남대, 한국해양대 등 5개 연구실 석박사 과정 40여 명이 참여했고, 우리는 연구실별로 무슨 공부를 하는지 어떤 연구를 진행하는지 공유하고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의와 실습을 병행했고, 특별히 동일 분야 실험의 경우 연구방법론을 비교, 검토하고, 방법론을 표준화하는 노력도 했다. 학생들에게 실전에 도움이 되는 스킬과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값진 시간이었다. 학교도 전공도 달랐지만, 바다공부를 함께 한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학생들의 우애와 신뢰는 자연스럽게 싹트고 있었다.

이어 진행한 2018년 썸머스쿨의 진가는 기대 이상이었다. 나는 2017년부터 한국연구재단 지원으로 중견과제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연구과제명은 좀 거창하지만, ‘육상기원 유해물질의 화학역학적 거동 프로세스 규명을 통한 연안생태계의 자정능력 평가’였다. 2차년도인 2018년 우리는 바다의 자정능력 평가를 위한 대규모 현장 조사가 계획되었고, 몇 가지 이유에서 인천 앞바다인 경기만을 조사지역으로 정했다. 육상의 영향까지 고려해야 했기에 경기만 일대와 인근 내륙지역인 한강 하구(김포 일대), 인천 북항, 시화호가 모두 포함된 광범위한 조사를 계획했고 조사 정점은 100개를 상회했다.

문제는 경기만이란 넓은 해역을 동일시기에 관측하면서 해수, 퇴적물, 그리고 생물체까지 모두 채집해야 하는 무지막지한 작업이었다. 당연히 한 연구실로 감당할 수 없는 대규모 필드였고, 나는 평소 공동과제를 진행해온 연합연구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안양대, 충남대, 한국해양대 등 3개 연구실에서 참여한 20여 명의 지원군 덕분에 우리는 ‘경기만 대첩’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2018년 윈터와 썸머스쿨에서 진행했던 실습 위주의 공동 교육과 훈련이 큰 힘이 됐고, 이후 우리는 각자 맡은 실험과 후속 연구로 공동 논문까지 작성하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이후, 방학이 되면 우리는 일단 모이게 됐고, 2019년 겨울에도 블루카본 1단계 연구과제에 참여하고 있던 서울대, 안양대, 고려대, 연세대, 충남대, 한국해양대 등 6개 대학 연구실의 30여 명의 대학원생이 한자리에 모였다. 2019년 윈터스쿨은 강화도 현장에서 진행했는데, 영하 10도 안팎의 폭설까지 내렸던 터라 현장실습이 녹록지 않았지만, 학생들의 열정과 파이팅은 추위도 잊게 했다. 특별히, 각 연구실 지도교수 없이 대학원생들끼리 진행했던 또 다른 첫 번째 경험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되돌아보면 대여섯 개 연구실이 참여한 세 번의 윈터·썸머스쿨은 어설펐지만, 우리 모두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소통과 공유란 중요한 가치를 인식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젊은 해양학도의 대잔치

2020년 썸머스쿨
2020년 썸머스쿨

2020년 어김없이 방학이 돌아왔고, 우리는 다시 뭉쳤다. 지난 세 차례의 모임 덕분에 학생들의 기대도 커지고 그만큼 행사 준비와 진행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그 사이 참여대학 연구실도 늘어 2020년 썸머스쿨에는 서울대, 안양대, 충남대, 한국해양대, 군산대, 인하대, 사스캐처원대 등 7개 대학 8개 연구실에서 5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여했다. 지난 세 차례 윈터·썸머스쿨이 현장 중심의 실질적 실험방법론을 익히고 배우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이번 썸머스쿨은 약간 원론적 측면에서 일반해양학부터 해양학 각론, 그리고 해양 정책까지 아우르는 기본소양을 익히는 시간으로 계획했다.

그야말로 무더위가 시작되는 7월이었기에 학생들은 현장보다는 시원한 강의실을 좋아했을지 모르겠다. 나는 딱딱한 강의실에서 약간 서먹서먹한 분위기도 전환할 겸 BENTHOS(저서생물)를 7행시로 풀어 개회사로 갈음했다. Benefit(자원), Enthusiasm(초심), Nature(실력), Time(시간), Health(체력), Opportunity(감사), Sustainability(끈기)란 7개 키워드가 ‘슬기로운 대학원 생활’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번 썸머스쿨에는 14인의 초호화 강사진이 출정했다. 군산대학교 이원호 명예교수를 비롯한 사스캐처원대학교 장갑수 교수, KMI 남정호 박사 등은 5일간의 열띤 릴레이 강의를 완주했다. 그렇게 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역대 최대 인원이 참석한 2020년 썸머스쿨도 무사히 막을 내렸다.

 

2021년 썸머스쿨 : 비판, 도전 그리고 크리에이티브니스

2021년 썸머스쿨
2021년 썸머스쿨

2021년 썸머스쿨은 여러 가지로 특별했다.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레 참여 인원도 늘어나서 총 9개 기관 70여 명의 학생과 강사진이 대거 참여했다. 코로나로 인해 대학별 참여 인원수를 제한해야 했던 점은 무척 아쉬웠지만, 그래도 강의실에는 40여 명의 대학원생이 자리했다. 초롱초롱한 대학원 신입생과 학부생까지 가세하여 기대감과 설렘으로 자리를 가득 메운 학생들을 보니 아쉬움은 금세 사라졌다.

2021년의 특별한 점은 주제(theme)를 정하고 이에 맞는 연사를 초청했다는 점이다. 주제는 좀 거창하지만 ‘비판, 도전, & 크리에이티브니스’로 했다. 다양한 분야의 대학원생들에게 비판적 식견이 꼭 필요했고, 글로벌 경쟁 우위를 위한 도전적 연구를 표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과 발명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의적 생각으로부터 출발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었다. 학생들도 처음 등장한 썸머스쿨의 부제목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전보다 토의와 대화의 시간이 자연스럽고 활발했다. 지금 학생들에게 가장 부족한 ‘질문하고 답하기’를 끌어내는데 절반 이상은 성공했던 것 같다.

2021년 썸머스쿨은 학생보다는 강사진에게 부담되는 시간이었을지 모르겠다. 전공 분야의 이론 강의나 연구 분야에 대한 주제발표가 아닌 ‘비판, 도전, & 크리에이티브니스’란 주제에 맞는 새로운 강의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도 이러한 기회를 통해 해양학뿐만 아니라 ‘과학하기’란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전의 강의보다 서로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해양연구의 이유, 해양학자의 글쓰기, PhD, 과학하기, 과학과 정책의 만남, 분류 이야기, 남극 탐험, 해양과학자가 되는 방법 등 평소와는 사뭇 다른 주제와 내용이 두루 포함됐다. 몇몇 초청 강사진을 비롯한 각 대학의 지도교수들은 젊은 해양학도들과 지금까지와는 다른 주제와 방식으로 소통하려 노력했고 제법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우리에게도 학생에게도 모두 새로운 경험이었고, 유익했고, 특별한 재미도 있었던 썸머스쿨로 기억된다.

 

도약의 2022년 썸머스쿨 : 드넓은 바닷속으로!

2022년 썸머스쿨
2022년 썸머스쿨

바야흐로 올해 여름은 여섯 번째 썸머스쿨을 맞이했다. 바로 지난 7월 짙푸른 제주에서 개최한 2022년 썸머스쿨은 내게는 가장 아쉬운, 그렇지만 학생에게는 최고의 썸머스쿨로 기억될 것 같다. 나는 7월 초 ‘한국·캐나다 과학기술대회’ 참석을 위해 캐나다로 출발했고, 학회 참석 후 예정된 2022년 썸머스쿨에 곧바로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귀국 직전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온라인 참여로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기에 본의아니게 두고두고 잊지 못할 썸머스쿨이 되버렸다.

올해 썸머스쿨도 해마다 커져 온 학생들의 기대와 희망에 부응하기 위해 또 다른 ‘새로움’이 필요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실험과 연구를 위해 찾아갔던 바다 대신에 놀이와 재미를 위한 바다 백배 즐기기에 초점을 맞춰봤다. 2022년 썸머스쿨 주제는 그래서 ‘Under the Sea’가 당첨됐다. 바닷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우리가 공부하는 바다생물을 마음껏 보고 살짝 만져도 보고 또 맛도 보는 그런 1석 3조의 바다와 함께 ‘숨쉬기’가 콘셉트였다.

코로나가 살짝 누그러진 틈을 타서 총 9개 대학의 약 80여 명의 대원이 스쿠버 명소인 제주바다목장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학부생들부터 대학원생, 그리고 지도교수와 초청 강사진 모두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춘 후, 바닷속 대탐험은 시작되었다. 이미 베테랑 다이버가 절반 가량 있었기에 바닷속 기행은 안전하고 알차게 차분히 진행될 수 있었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바닷속 생물을 처음 접한 학생들의 기쁨과 환호, 그리고 즐거움은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함께 해냈다는 성취감과 바다와 함께 숨 쉬면서 공고해진 동료애는 덤이었다.

여기까지만 있었다면, 그야말로 재미 정도로 끝났을 아쉬운 썸머스쿨로 기억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특별한 강연은 올해도 계속됐고, 오히려 더 새로웠다. 총 12인의 화려한 강사진을 모시고, 우리는 그동안 강의실이나 학회장에서는 들기 어려운 선배들의 개인적 삶과 철학을 담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해양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여러 전문가의 강의가 이어졌고, 우리 학생들의 시각과 가치관을 넓힐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순수물리학, 생물학, 수산학, 경제학, 해양 정책, 사회과학, 역사, 문화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에 관한 지식인의 생각과 경험을 전할 수 있었고, 우리도 함께 배우고 토론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또 우리는 내년의 또 다른 특별한 썸머스쿨을 기약하며 돌아섰다. 김자영 KBS 작가의 썸머스쿨 기록 영상은 아직도 우리 모두 가슴 속에 잔잔한 감동과 여운으로 남아있어 특별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연재 1년을 마감하면서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인 융합해양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할만한 ‘함께하기’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봤다. 이 ‘함께하기’는 나를 비롯한 기성 해양학자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겠지만, 우리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해양학도에게는 더욱 절실한 철학임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해양과 환경 분야의 국가적 난제와 글로벌 해양위기 상황에서의 해양학의 위상과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이제 기초과학으로서의 해양학 그 이상이 요구되며, 그 답은 융합해양학의 리더쉽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소 개인적인 몇몇 연구실 행사로 시작했던 썸머스쿨이었다. 그러나 기대와 소망도 크다. 점차 학계 전반으로 퍼져서 해양학을 공부하는 더 많은 젊은이가 함께 배우고, 느끼고, 실천할 수 있는 전 해양인의 썸머스쿨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꿈꿔본다. 각계각층의 해양인의 적잖은 노력과 보이지 않는 실천도 꾸준히 이어진다면 ‘해양과학 대중화’를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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