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보조금, 면세유를 지키려면
수산보조금, 면세유를 지키려면
  • 정상원 기자
  • 승인 2022.08.0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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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차 WTO 수산보조금 협상이 의미하는 것

[현대해양] 지난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12일부터 17일까지 6일간 개최된 제12차 WTO(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에서 21년 동안 이어진 수산보조금 협상이 타결됐다. 결과적으로 수산보조금 협정상 금지되는 보조금은 불법어업(IUU), 남획된 어종 어획에 대한 보조금으로 합의됐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면세유, 원양보조금, 개도국 특혜 등 주요 조항을 삭제하고 합의됐다.

우리나라 수산업에 중요한 항목인 면세유 조항이 삭제된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등 정부 관계 부처는 “이번 협상은 면세유, 원양어업 보조금을 비롯한 우리 수산업 제도에는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어업인은 면세유 폐지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6월 14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2차 WTO 각료회의의 수산보조금 협상에 참석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6월 14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2차 WTO 각료회의의 수산보조금 협상에 참석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면세유, 작년 대비 두 배 넘게 올라

우리나라의 최대 관심사는 어선 등에 사용하는 유류비 보조금, 즉 어업용 면세유이다. 어선어업의 경우, 전체 출어경비 중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면세유 가격으로 어업인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수협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어업인들이 사용한 어업용 면세유 총 비용(경유 기준)은 3,799억 원으로 작년 동기(2,204억 원) 대비 72%가 증가했다. 작년 대비 총 1,595억 원이 더 늘어난 셈이다. 이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 중단 등 세계 석유 공급망이 불안정해지자 면세유값의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석유제품가격이 오른 탓으로 면세유 가격도 덩달아 치솟게 됐다. 이번 달에 적용된 어업인 면세유 가격은 리터당 1,471원으로 지난해 7월 619원에 비해 두 배 넘게 올랐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리터당 1,155원으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던 면세유 가격 기록이 경신된 것이다.

때문에 출어를 포기하는 어선이 늘어나 부두에는 수많은 어선들이 정박해있는 상황이다. 김대성 전국연안어업인연합회장은 “지금 어업인들은 ‘축소조업’을 하고 있다. 하루 조업시간이 24시간이었다고 치면 지금은 12시간 정도만 바다에 나간다”고 설명했다. 또 김 회장은 “어업경비 대비 어가를 봤을 때 지금 조업을 나가면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 기름값이 오른다고 고기값이 오르는 것도 아니지 않나. 지금은 소비가 안 되고 고기가 잘 팔리지도 않는다. 기름값과 비교했을 때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이형석 사량수협 조합장은 “난개발로 바다 환경이 바뀌고, 수산 자원도 사라지는데 유류비까지 치솟고 있어 어업인들은 고기를 잡고 싶어도 출어할 수가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치솟는 면세유 가격에 대한 어업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난달 수협중앙회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정부의 유류 보조금과는 별도로 자체 예산을 마련해 100억 원의 유류비를 현금으로 지원하는 2022년도 추경 예산안건을 의결한 것이다. 임준택 수협중앙회장은 “출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업인들에 대해 유류비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추경을 편성했다”면서 “해양수산부와 수협의 유류비 보조금으로는 면세유 가격이 크게 올라 어업인의 고통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며 정부와 국회차원의 어업인 유류비 추가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식량안보 지켜야” vs “바다환경 보호해야”

그런데 이 면세유를 두고 말이 많다. 수산업을 식량문제와 직결되는 국가안보로 보고 면세유를 필수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바다 환경을 해치는 면세유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등 국내 일부 시민단체들은 면세유를 ‘나쁜 수산보조금’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많은 수산보조금이 어획 과정에서 소모되는 경비를 줄이고, 어획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급되고 있어 남획을 조장한다는 것. 이들은 대표적인 나쁜 보조금의 예로 면세유를 들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면세유는 어선 운항과 어업장비구동을 위한 연료비 부담이 줄어들게 해 더 많은 거리를 이동하고, 더 많은 어획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연료비 부담이 크다면 어업활동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WTO 수산보조금 협정서 ‘면세유’ 항목 삭제

그렇다면 국제사회는 면세유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6월 도출된 제12차 WTO 수산보조금 협상에 면세유 항목이 삭제돼 주목받고 있다. 6월 12일부터 17일까지 6일간 개최된 12차 WTO 각료회의에서는 21년 만에 수산보조금 협상이 타결됐다. 결과적으로 WTO 수산보조금 협정은 IUU 어업 및 남획된 어종의 어획에 대한 보조금만 규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면세유, 원양보조금, 개도국 특혜 등 주요 주항을 삭제하고 합의한 것이다. 면세유와 같은 비특정적 유류보조금은 관련 조항이 삭제됐다. 다만 WTO는 이번 수산보조금 협정 발효 후 4년 내에 삭제된 쟁점 합의에 실패할 경우 WTO 수산보조금 협정 전체가 효력을 상실(일몰조항)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이 수산보조금 관련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이 수산보조금 관련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수산자원관리 노력 입증해야

이번 협상에 대해 남종오 부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면세유 자체를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면세유를 사용해서 남획을 한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면세유가 폐지될 소지가 분명이 있다”고 강조했다. WTO는 남획된 어종을 어획에 대한 보조금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면세유를 사용해서 남획을 했다는 사례가 생긴다면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의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가입 추진과 관련해서도 수산자원관리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CPTPP는 일본 주도의 초대형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국의 CPTPP 가입 관련해 면세유와 같은 수산보조금은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는데, CPTPP 협정문 환경 챕터에는 남획과 과잉생산에 기여하는 수산보조금 지급을 규제하는 방안이 담겨있다. 특히 CPTPP는 WTO 수산보조금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과잉어획 보조금과 수산자원관리의 연계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협정문은 ‘과잉어획 및 과잉어획능력을 예방하고, 과잉어획된 어족 자원의 회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수산자원관리제도 운영을 도모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수산자원관리를 기본 전제로 하기 때문에 협정문에서는 과잉어획 보조금에서 ‘과잉어획 상태’를 ‘최대지속가능생산량(MSY)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어획량을 제한해야 하는 어종’으로 정의한다.

남 교수는 “우리나라가 면세유 폐지를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은 효과적인 수산자원관리를 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MSY 어획량 이하로 어획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면세유 폐지를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김봉태 부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수산자원관리를 위해 시행 중인 TAC, 수산물 어획 체장 제한 등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로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수산자원 관리 노력은 어업용 면세유 등의 폐지를 외치고 있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을 잠재우는 데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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