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장은 있는데 폐선장(廢船場)은 왜 없나?
폐차장은 있는데 폐선장(廢船場)은 왜 없나?
  • 김엘진 기자
  • 승인 2022.06.15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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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되는 선박 환경오염 유발… 관련법 제정 ‘시급’

[현대해양] 노후 차량은 폐차장으로 간다. 그럼 노후 선박은 어디로 갈까? 폐선장? 아니면 선박해체소? 그런 단어는 사실상 사용되지 않는다. ‘선박해체업’도 관련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는 노후 선박이 갈 곳이 없다. 그럼 노후 선박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탄소중립, 친환경 선박, 친환경 선박 연료, ESG 경영… 최근 몇 년처럼 친환경에 대한 이슈가 뜨거운 적이 없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선박의 최후는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았다.

방치된 선박들

해양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 9월까지 인천항 계류인정구역 내에서 방치된 선박으로부터 기름 유출사고가 33건 발생했다. 해경청은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장기계류선박(방치선박, 감수보존선박, 계선신고선박) 실태 조사를 실시했다. 담당자는 “올해 보고서는 아직 취합 전이지만, 지난해의 경우 364척 정도로 확인됐으며 매년 큰 차이는 없다”고 전했다. 이 실태조사는 해양오염예방 차원의 조사로 대부분 해안가에서 진행된다. 또한 오래 방치돼 운영이 불가능한 선박을 발견할 경우에는 선주에게 위험성을 알리고 ‘지도·계도’를 하지만, 강제성이 없기에 다음 조사 때 같은 선박을 다시 발견하는 경우도 많다.

부산항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지난해 북항 5부두 물양장에서 방치된 선박으로부터 12건의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했던 것. 남해해양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항 중소형 유조선 361척 중 270여 척이 장기간 운항하지 않았다.

문제는 방치된 선박이 해안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남동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 기술연구원장은 “2톤 이하 FRP선박 등은 숨기기가 쉽기 때문에 뭍이나 갈대밭 등에도 많이 버려져있다”고 전했다. 이연승 홍익대 교수(전 해양교통안전공단 이사장)도 “FRP는 폐기에 돈이 많이 드니까 그냥 방치하고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해체 선박 ‘통계’ 없어

해양수산부의 ‘선령별 선종별 등록선박현황(2021년 6월 기준)’에 따르면 여객선, 화물선, 유조선, 예선, 부선, 기타 선박이 총 8,786척, 이 중 20년 이상 된 노후 선박은 5,374척에 이른다. 또한 지난해 12월 기준의 ‘등록어선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등록된 어선은 6만 5744척, 이 중 21년 이상의 선박은 1만 9,841척으로 확인됐다. 또한 전체 선박의 96.3%인 6만 3,334척이 FRP 선박이었다. 이러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약 2만 5,000척의 노후 선박이 생기는 것이다.

노후 선박이라고 해도 바로 해체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5%로만 잡아도 해체할 선박이 1,000척을 훌쩍 넘는다.

그럼 실제로는 일 년에 몇 척의 선박이 해체될까? 폐차의 경우 ‘한국자동차해체재활용업협회’등에서 매달 지역별 폐차 통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선박 해체 통계는 찾을 수 없었다.

해양수산부의 통계시스템 페이지를 관리하는 정보화담당관은 “매년 해체하는 선박량의 통계는 없다”고 전했다. 해수부 해사안전정책과에서는 “해체 선박은 해양오염관리 예방을 위해 해양경찰청에 신고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해수부에서는 선박 말소 신고 통계만 관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양경찰청에서 관리하는 해체 선박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해체 작업 중 해양 오염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해체 작업 개시 7일 전까지 시행령에 따른 ‘해체작업계획신고’를 하게 돼 있을 뿐이다. ‘유조선 이외의 선박으로서 오염물질이 제거된 총톤수 100톤 미만의 선박을 육지에 올려놓고 해체하는 경우’는 신고하지 않는다.

해경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22척, 2020년 109척, 2021년 262척의 선박이 작업계획 승인을 받았으며 지난 5년 평균 약 148척 수준이었다. 해체작업계획 승인을 받은 후엔 선주가 해수부로 선박 등록 말소를 요청하게 된다. 해경청 관계자는 “소형 어선의 경우 대부분 육지에서 해체하기에 신고하지 않고 지자체에서 관리한다”고 말했다.

인천시 해양항공국 수산과 담당자는 “어선 해체 숫자는 알 수 없고, 말소등록은 어선의 선적항을 관리하는 군·구청에서 진행하고 있다”며, “해체 통계는 해수부나 해양교통안전공단에서도 관리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수부 어선안전정책과 담당자는 “우리는 표준어선, 선박 설계·보급 쪽으로(집중하고 있고), 해체 쪽은 관리하지 않는다”며 “어선 건조도 꽤 열악한 시장이다. 해체쪽은 더 돈이 되지 않고, 공식적 폐선소도 없고, 전문 업체도 없으니, 더 열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해체 중인 근해어선 (출처_경남도)
해체 중인 근해어선 (출처_경남도)

선박 해체, 법적 사각지대

진송한 중소조선연구원 친환경선박연구센터장은 “선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FRP의 경우 고열 소각이 가능한 전문 업체가 없고, 비용도 높아 해체 대신 방치되는 선박들이 부지기수”라며 “법적으로도 폐선 처리 부분에 대해서는 완전한 방치 상태라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선박 해체 관련해서는 국내에서 연구를 하는 곳도 없고, 관련 규정이나 정리된 자료도 없는 사각지대”라며, “어선 허가, 말소 등록, 선박 척수, 사고 건수 등은 관리하는데 막상 헌 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대해서는 어떠한 법적인 제재도 없으며, 현황 조사도 되어있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배철남 전 한국조선공업협동조합 전무 역시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폐선만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는 거의 없고, 수리조선소에서 해체까지 하는 경우는 한 손에 꼽힐 정도”라고 말했다.

남동 원장의 의견도 비슷했다. 그는 “국내에는 사실 선박 해체 공간이 없다고 봐야한다”며 “대형 철선 등은 전문 브로커에 의해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인도, 스리랑카 등으로 팔려가 재활용하는 반면 폐 FRP 선박은 그냥 쓰레기이기에 고가의 쓰레기 처리 비용을 내야 하는 선주들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특히 2톤 이하의 작은 배들은 어딘가에 방치했다가 관리 대상이 되면 ‘계속 쓸 계획이다’라고만 대답해도 방법이 없는데, 이런 경우 자외선에 삭아서 2차 오염문제까지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통영에서 30여 년간 선박해체업을 하고 있다는 이재성 신옥기업 대표는 “폐선박이 장기정박하고 있어 항구도 부족하고, 10~20년 방치되는 경우도 많으며, 혹 강제집행을 하려고 해도 해체 장소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환경오염, 민원, 경제성, 안정성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조선소는 해체를 거부하고, 해체 업자도 부족하다”며 “우리는 1년에 50척 정도를 해체하고 있는데, 앞으로 100년간 해체할 배가 밀려있다고 해도 될 정도”라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가 국내 곳곳 적당한 해체 장소만 지원을 해줘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남 목포시에 위치한 철거 전문회사 대표 역시 해체 장소가 부족한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그는 “조선이 20년 정도 호황이었고, 신조선들이 이제 노후 선박이 됐다”며 “해체할 선박은 많은데 지역적으로 멀리 있는 경우 처리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장기계류선박 해양오염 사고현장 (출처_해양경찰청)
장기계류선박 해양오염 사고현장 (출처_해양경찰청)

정부가 나설 때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경제성의 문제, 환경 오염, 안전 문제 등으로 민간 기업이 나서지 않는다면 정부가 나서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연승 교수는 “FRP는 섬유강화 플라스틱으로 유리섬유(Fiberglass)와 복합체가 결합한 것인데 유리섬유 같은 경우에는 고열의 장비가 아니면 타지도 않고, 접착제 역할을 하는 복합체는 소각 시 이산화탄소를 다량으로 뿜어내기에 2차 처리시설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화재에 강하고 값싼 소재라며 FRP를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환경문제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며 “외국에서는 유리섬유 관련 규제도 많고, 연구도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는 폐선 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법 조항도 없다”고 꼬집었다.

진 센터장 역시 “해수부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관리하는 과조차 없다”며, “우리 연구원도 FRP의 전주기와 재활용 관련 연구를 계속 제안하고 있지만 채택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건조와 운영 시의 친환경도 중요하지만, 최후 처리까지 친환경적이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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