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47
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47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05.1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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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부산문단과 향파의 《문학 시대》 (1)
『문학시대』 표지
『문학시대』 표지

[현대해양] 1960년대 한국문단에서 발간되는 문예잡지는 《현대문학》과 《자유문학》이었다. 종합지로 《새벽》, 《사상계》, 《세대》가 발행되고 있어 그나마 문인들의 작품이 실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부산지역의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제대로 된 정기간행물이 부재했다. 이런 문화적 상황에서 새롭게 등장한 문학 잡지가 《문학 시대》였다. 《문학 시대》는 1963년 3월 1일에 창간호를 발행했다. 발행인은 당시 부산의 유수한 태화출판사 사장인 秋盛龜씨가 맡았고, 주간은 이주홍 선생, 편집장은 최해군 작가, 그리고 편집을 도운 또 한 사람은 김영이었다. 창간호의 분량은 166쪽이기는 하지만, 창간호에 실린 내용을 살펴보면 기획특집이나 그 구성내용이 만만치는 않다. 우선 <새벽의 기적>이란 제목의 창간사의 일부를 살펴보자.

“文學의 목적은 人間을 구원하는 데 있다. 人間의 정신적인 破綻과 虛脫과 絶望에 대한 모든 病根을 찾아내고 그래서 그 治愈에 정확하고 신뢰할만한 방법을 써가는 것이 文學의 사명인 것이라고 본다면 人間은 누구나가 다 처음부터 患者인 것을 면할 도리가 없다. 그러면서도 다행이 우리는 역사상에 많은 名醫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醫徒의 한 從卒이 되고자 길을 떠난다. 탄탄한 서울의 大道가 아닌 釜山의 바닷길이란 점에서 이 旅路는 우리에게 많은 試鍊을 부담지우고 있다. 그러나 짙은 새벽 안개가 스무겹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배는 기적을 울리면서 밀고 나아가 신뢰할만한 執刀者가 못될 땐 차라리 孤獨 속에서 내일을 懷疑하고 있는 患者들의 상냥한 이야기상대가 되어주는 것으로서도 우리는 우리의 보람을 믿어 흔들리지 않을 생각이다.”

창간사에서 유독 무겁게 다가서는 장면이 ‘文學의 목적은 人間을 구원하는 데 있다.’는 문구다. 문학이 과연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우리는 쉽게 정답을 낼 수는 없다. 그런데도 《문학시대》는 이 엄청난 과제를 화두로 삼은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이 이유를 따져보는 것은 문예지가 없던 시절, 부산에서 정기간행물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문화적 사건 이상으로 더 깊은 의미를 지니는 본질적인 문제로 보인다. 한 마디로 말하면 정신적 차원에서 인간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이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기에 근원적으로 모든 인간은 환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인식이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문학의 효용론적 측면에서는 인간을 구원하는 문학으로서의 문학론이 공론화될 수밖에 없는 담론이다.

문제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문학주의자들의 문학에 대한 효용가치를 왜 1960년대에 그 시대의 중심적인 화두로 삼았는가 하는 점이다. 1960년대 초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 최악의 상태였고, 경제적으로도 전쟁을 치룬 1950년대의 휴유증을 완전히 걷어내지 못한 힘든 시절이었다. 그러므로 1960년대를 살아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정신상태는 모두가 병든 영혼의 주체가 되어 있었다. 이런 동시대 사람들에 대한 정신적 치유를 문학이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각이 창간사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를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소명과 일치시키고 있다. 그러나 문학인들이 제대로 된 의사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그래서 힘든 부산 지역의 문화적 현실 속에서 《문학시대》를 출범하고 있다. 출발지점에서 내보이는 그 각오는 ‘짙은 새벽 안개가 스무겹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배는 기적을 울리면서 밀고 나아가겠다’는 단단함을 보이기도 하지만, ‘신뢰할만한 執刀者가 못될 땐 차라리 孤獨 속에서 내일을 懷疑하고 있는 患者들의 상냥한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는 것으로서도 우리는 우리의 보람을 믿어 흔들리지 않을 생각이다.’라는 소박한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러한 각오와 꿈을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가? 창간호의 메뉴들을 한번 살펴보자. 《문학시대》는 소위 종합문예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창작소설로서 손동인의 「동심의 축제」, 오유근의 「머슴」, 윤정규의 「타계의 음향」, 실렸고. 특별히 장호의 시극 「오징어가 된 사나이」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평론에는 백철의 「현대문학을 위한 서론」, 이원수의 「아동문학의 문제점」, 이호우의 「시조단의 제초작업」이 무게를 더하고 있다. 여기에다 특집을 기획해서 싣고 있다는 점은 문예지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제대로 구비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창간호의 특집은 「한국의 소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로 잡았고, 이 특집은 정태용의 「원형의 전설론」, 신동한의 「한국소설의 방향」, 김태홍의 「시에 접근한 소설의 두 가지 전형」이란 세 편의 원고로 구성되어 있다. 세 편의 문제제기로 한국 소설의 방향을 완벽하게 제시해주고 있는 상황은 못 되지만,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기획의도만은 살만하다.

시에는 유치환의 「대화」, 장만영의 「꽃・독초」, 김수돈의 「태양이 외로이 있으면서」, 최계락의 「寒日」 등 오직 4명의 시인 작품만이 보인다. 산문에 비해 시가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런데 묘하게 <새밭에서>라는 란을 두어 백일장에서 입선한 일반부와 학생들의 시 작품을 과감하게 편집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이석호의 「길」, 이상익의 「불꽃」, 김수남의 「써크스단의 나팔」, 하영주의 「도서관」, 이운원의 「그림자」, 변영대의 「바람」, 김종철의 「종이」, 박갑수의 「방문」, 최선경의 「힘」, 윤인숙의 「계절의 의미」, 그리고 소설로는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회주최 전국고교문예콩쿨 소설부 당선작인 정종명의 「도주」가 실렸다. 여기에다 <학교대항연작소설>란을 두어 「저 하늘에 기빨을」을 제목으로 보성여고편으로 허선의 작품이 게재되고 있다. 이는 기성문인들의 문예지에 공식 등단을 거치지 않은 예비 문인들에게도 문호를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무명 학생들의 작품과 함께 <엣세이> 란에는 조연현의 「교직의 감상」, 정비석의 「나의 출세작・성황당 시절 」과 같은 당시 비중있는 문인들의 글도 함께 자리하고 있는 문예지였다.

또 따로 수필 코너를 마련하여 이상로의 「분별・무분별」, 이가원의 「벽촌 서실」, 이영도의 「군자란이 피는데」 등 12명의 수필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다 <무엇을 읽을 것인가>을 통해서는 현대편은 구우학, 고전편은 박지홍이 맡아 지상 연재강좌를, 그리고 강은파의 소설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의 연재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에서 서울에서 발행되고 있던 문예지에 맞먹는 필진들을 동원해서 《문학시대》 창간호를 출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오직 향파 선생의 역량이 발휘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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