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51 세월호 그후 8년, “잊지 않겠습니다”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51 세월호 그후 8년, “잊지 않겠습니다”
  • 김준 박사
  • 승인 2022.05.1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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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군 팽목항(진도항)
팽목항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노란 유채꽃밭
팽목항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노란 유채꽃밭

[현대해양] 팽목항으로 가는 길 양쪽에 유채꽃이 노랗다. 노란 리본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포구로 가는 시간도 일부러 아침을 피해 늦은 시간을 택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정치인들이 조화를 두고 머리를 숙이는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팽목항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이해는 하지만 아쉬웠다.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망각이라던가. 생각해보면 최악의 선물도 망각일 것이다. 잊혀진 기억을 들추며 ‘세월호 팽목 기억관’으로 들어섰다. 방명록에 한결같이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이 새겨져 있었다. 그 밑에 한 줄 더했다. 잊지 않겠습니다.

희생자 사진을 보며 넋을 잃은 학생(세월호 팽목 기억관)
희생자 사진을 보며 넋을 잃은 학생(세월호 팽목 기억관)

바뀔 것이라 믿었다

팽목항 등대로 향했다. 붉은 등대다. 여느 등대와 다를 바 없는 등대였지만 이젠 ‘4·16 세월호’의 상징이 되었다. 탑승 인원 476명 중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바다는 갈 수도 가기도 어려운 곳이다. 그때도 이곳 팽목항에서 침몰하는 세월호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것을 안방에서 TV로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해놓고, 속옷 차림으로 침몰하는 배에서 빠져나오는 선장도 지켜봤다. 그 선장이 나였고, 기성세대의 상징으로 투영되었다.

그래서 부끄러웠던 어른들과 그 친구가 자신일 수 있다는 청소년들이 촛불을 들고 나섰다. 그렇게 정권이 바뀌었다.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이라고 믿었다. 8년이 흘렀다. 변한 것이 없다. 아니 변한 것이 있다. 표를 사고 배를 탈 때, 신분증을 확인하는 것, 차를 가지고 들어갈 때 고박을 하는 것이 침몰 후 바뀐 대책이다. 배가 바뀌고 운항방식이 바뀐 것이 아니라 승객이나 주민들이 섬을 오갈 때 번거로움만 늘었다. 결항 횟수도 더 많아졌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 주의보가 내리지 않더라도, 과거에는 다녔던 기상상태에도 선장은 결항을 결정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 몫이다. 그렇게 참아왔지만 세월호 침몰의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간에 했던 일은 선장을 처벌하고 해양경찰 해체(실제로는 해양경비안전본부로 바뀜)가 전부였다. 그 원인을 밝혀내지 않으면 또 다른 세월호가 발생할 수 있다.

세월호 침몰의 상징이 되어버린 팽목항 등대
세월호 침몰의 상징이 되어버린 팽목항 등대

미안하다. 아이들아

바다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매년 정월 정성을 다해 용왕님께 두 손을 모았고, 바다의 작은 미물과도 음식을 나누는 갯제를 지냈다. 그렇게 겸허하게 자연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풍어와 안전을 기원했다. 그렇다고 어민들이 신에게만 의지했던 것은 아니다. 고기잡이를 나서기 전 배를 점검하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 경험과 오감을 동원했다. 여러 해 동안 별과 달의 움직임과 모양새를 보고, 새와 개미 등 작은 생물의 움직임도 관찰했다. 훌륭한 선장은 고기를 잘 잡는 것은 물론 사흘 날씨는 내다볼 수 있어야 했다. 그들은 과학보다는 풍부한 경험을 믿었다.

휴대전화 하나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줄 믿었는데, 세월호는 그 믿음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과학이 발달한 세상에서 경험을 논하는 것이 부질없는 짓일까. 아이의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받고도 부모는 답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슬프다.

세월호 침몰 일 년 전, 비슷한 시기에 맹골수도를 지났다. 이름도 심상치 않은 바다다. 맹수의 울부짖음처럼 거친 물길이다. 그 바다에서 만난 주민과 낚시꾼은 일 년 뒤의 상황은 전혀 알 리 없고, 미역을 채취하느라 분주했다. 갯바위에 올라 손맛을 즐기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맹골군도는 맹골도·죽도·곽도 등 세 개의 유인도와 명도·몽덕도 등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군도와 마주한 거차군도는 동거차도·서거차도·상죽도·하죽도 등 네 개의 유인도와 송도·항도·북도 등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두 무리의 섬 사이로 흐르는 바다를 ‘맹골수도’라 부른다. 울돌목과 장죽수도(팽목항과 조도 사이의 바다) 등과 함께 전국에서 손꼽히는 험한 바다다. 거칠고 험한 물길이라 이름도 ‘맹골’이나 ‘거차’라 불렀다. 거친 바다, 맹수가 포효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니 오죽하겠는가. 물살이 거칠고 암초가 많다 보니, 최근 일 년에 평균 4건의 해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팽목항에서 기도하며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들(2014.4.18.)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팽목항에서 기도하며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들(2014.4.18.)

거친 바다를 헤맸던 사람들, 표류인

진도는 조선시대에는 오키나와(硫球國 유구국)인, 중국인들이 많이 표류해왔다. 쿠로시오 난류가 이곳에 이르러 황해와 남해로 갈라지니 남쪽의 표류인들이 진도에 자주 표착했던 것이다. 「선조실록」에는 1589년(선조 22년) 7월 23일 유구국 상인 30여 명이 진도 해역에 표류해와 명나라 동지사편을 통해 돌려보내기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조도 사람들도 유구, 대만, 일본으로 표류를 했다. 「비변사등록」에는 1716년(숙종 42년) 조도 사람 9명이 유구국에 표착했다가 귀국했다는 기록이 있다. 가장 많이 표착한 곳은 나가사키 서쪽 고도(五島), 그리고 쓰시마(對馬島), 미기(壹岐島), 히라도(平戶島) 순이다. 해방 후에도 해난 사고는 자주 발생했다. 조문을 다녀오다, 나무를 하고 돌아오다, 운동회를 마치고 돌아가다 많은 목숨을 잃었던 곳이다. 바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갑작스런 파도가 원인인 경우도 있지만 과적도 빠뜨릴 수 없는 이유였다. 가장 큰 사고는 1973년 1월 목포와 조도를 오가는 정기여객선 한성호가 주민 109명을 태우고 팽목항을 향하다 지산면 세포리 앞에서 돌풍과 높은 파도에 휘말려 침몰해 61명이 사망한 사고였다.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섬, 병풍도, 그래서 더 슬프다

세월호 침몰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섬은 병풍도다. 병풍도는 맹골수로 남쪽에 있는 무인도다. 섬의 폭이 좁고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다. 해안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지만 섬 상층부에는 후박나무를 비롯한 각종 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또 칼새, 괭이갈매기, 매, 가마우지, 동박새 등 희귀조류 10여 종이 서식하고 있다. 환경부는 섬의 생태적 가치가 높아 특정 도서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또 해양 경관이 뛰어나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조도지구로 지정·관리하고 있기도 하다. 처음부터 무인도는 아니었다. 이곳에 할머니 한 분이 살았다. 식량이 떨어지면 봉화를 올려 식량을 공급받았다. 또 병풍도는 산림이 울창해 땔감이 귀하던 시절에 동거차도와 서거차도 섬사람들에게 땔감을 공급해주던 섬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역밭이 좋아 지금도 섬 왼쪽은 서거차도 주민들이 오른쪽은 동거차도 주민들이 돌미역을 채취하고 있다.

맹골수도나 거차수로는 위험한 바다이지만 진도곽이라는 명품미역을 자라게 하는 곳이다. 그뿐만 아니다. 암초가 많고 해초가 잘 자라니 물고기들에게 이보다 좋은 산란장이 어디 있겠는가. 낚시꾼들이 끊이질 않는 것도 거친 바다와 무관하지 않다. 이 바다에 채 피지 못한 꽃들이 잠들었다. 바다를 잘 알지 못하고,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민과 어업의 소중함을 모르고, 오직 과학과 개발이라는 잣대로 바다와 섬을 이용 수단으로만 접근해온 결과다.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사죄한다.

팽목항 등대 아래에 노오란 천 위에 이름을 적었다. 아이도, 학생도, 어른도 이름을 적었다. 절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이름은 노래가 되어 바람이 되어 붉은 팽목항 등대를 맴돈다. 행여나 잊혀질세라.

“기억은 저항이다. 침묵의 저항이다.”

팽목항 기억관에서 본 글귀가 가슴을 짓누른다. 잊고 있었다. 이제 잊지 않겠다. 노란 천에 이름을 적는다. 마음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4월에는 노란 리본을 들고 당신을 기억할께요. 작은 몸짓으로 함께 할께요. 미안하다. 애들아. 

팽목항 추모 행사와 공연 모습
팽목항 추모 행사와 공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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