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순도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월동연구대장,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에 다녀온 한국인
허순도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월동연구대장,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에 다녀온 한국인
  • 김엘진 기자
  • 승인 2022.05.09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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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들어낸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보스토크 기지의 3,769m에서 시추된 빙하코어를 들고 있는 허순도 대장. 이 빙하코어가 현재 가장 깊은 곳에서 시추된 빙하코어다.
보스토크 기지의 3,769m에서 시추된 빙하코어를 들고 있는 허순도 대장. 이 빙하코어가 현재 가장 깊은 곳에서 시추된 빙하코어다.

[현대해양] ‘기후 변화’는 최근 전 세계의 메인 이슈 중 하나다. 전 세계 극지 연구팀은 지금까지 알려진 80만 년 전까지의 기록(남극 돔C 빙하코어)보다 더 오래된 100만 년 전의 기후 기록을 복원하기 위해 경주하고 있다. 그 이전에도 이상 기후 현상이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 허순도 극지연구소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월동연구대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한-러 공동연구로 남극 보스토크(Vostok) 기지에서 심부빙하시추에 참여한 유일한 한국인이다.

허순도 대장은 서울대 지질과학과를 졸업, 동대학원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98년 한국해양연구소에 들어와 지금까지 빙하를 연구했다. 그는 2008년 국내 최초의 빙하시추 프로젝트 ‘몽골 고산빙하 시추’를 주도하기도 했으며, 2013년 남극 세종과학기지 제27차 월동대 대장을 거쳐 지난해 12월 지구에서 가장 추운 남극 보스토크 기지의 심부빙하시추에 참여했다. 그리고 오는 10월부터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의 10차 대장으로 선발됐다.

 

극지 연구원으로서의 주업무를 소개한다면?

빙하코어(Ice Core) 연구를 통한 기온변화 추적입니다. 빙하코어는 빙상이나 높은 산 빙하에서 제거되는 코어 샘플을 의미합니다. 극지 내륙은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고 쌓이는데, 이것이 60m 정도가 되면 밀도가 0.3에서 0.8 정도가 돼(물의 밀도는 1) 단단해지죠. 이 얼어붙은 눈 사이에는 공기가 갇혀있고, 여기에 당시 대기환경의 시그널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얼음의 두께는 강설량에 따라 다른데, 1cm의 얼음이 100년 치의 정보를 담고 있는 경우도 있고, 10년 치의 정보를 담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강설량이 높은 지역의 얼음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에 ‘해상도가 높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북극이 남극보다 훨씬 따뜻하기 때문에 북극에서는 10만 년 전까지, 남극에서는 현재 80만 년 전의 기록까지 확인됐습니다. 특히, 장보고 기지에서는 최근 2,000년 내(인류가 등장한 이후)의 기후변화 예측을 주로 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해상도가 높은 빙하코어가 필요하므로 남극에서도 강설량이 높은 지역에서 주로 시료(Sample)를 수집합니다.

 

빙하코어만으로 어떻게 대기 상태를 예측하는지?

핵심은 동위원소에 있습니다. 동위원소는 원자 번호가 같지만 질량수가 다른 원소를 의미합니다. 예를들어 산소의 안정 동위원소는 16, 17, 18 등인데, 이 숫자는 질량을 의미하고, 질량을 결정하는 것은 온도와 강수량 등입니다. 대기의 물은 날씨가 더우면 증발하게 됩니다. 근데 온도가 높을 때는 많은 양이 증발하기 때문에 질량이 큰 ‘18’도 증발하고, 온도가 낮을 때는 증발하는 동위원소가 ‘16’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대기에 포함된 산소의 동위원소를 분석해 당시 기온을 추정하는 것이죠. 기온에 따라 계절 변화와 연도 측정도 가능하고요. 얼음이 지닌 원소 정보의 양은 적지만, 분석에 따라 알아낼 수 있는 부분은 무궁무진합니다.

 

현재 한국의 극지연구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라고 들었다. 초기 멤버였던 허 박사의 역할도 컸다고…

저는 따라가느라 바빴던 것 같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빙하를 연구하는 사람이 저 포함 두 명이었으니까요. 인프라가 너무나 부족했기에 프랑스 등 선진국처럼 인프라를 갖추고 싶다고 생각했고, 연구실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얼음분석시설은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현장의 연구자로서 최근 이상기후 현상에 대한 의견은?

남극에서도 최근 큰 기후 변화가 포착됐습니다. 서남극에 위치한 세종기지에서는 겨울에 눈 대신 비가 오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엔 서남극보다 더 추운 내륙지방인 동남극에서도 이상고온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3월 중순 동남극 기후가 영하 17.7℃를 기록했는데요, 이는 1958년에 기지를 세우고, 인간이 관측을 해온 이래 최고기온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추적한 이상 기후 현상의 원인은 대부분 자연현상에서 비롯됐습니다. 운석충돌이나 화산 등의 단기적 이벤트, 그리고 10만 년 주기의 지구 자전축과 공전궤도의 변화 사이클 등이 그것이지요. 또한 지구 내부는 변화가 있을 때마다 해수 순환 등으로 기후를 조절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기후 변화는 인간으로 인한 것이라는 게 불안한 부분입니다. 문제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위기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초유의 사태이기 때문에 연구자들도 아직 앞으로를 예상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지구 역사상 지금처럼 온실가스 농도가 높던 시기가 없었다는 의미인가?

바로 그것을 찾기 위해 현재 전 세계의 극지 연구가 100만 년 전의 빙하코어 시추에 힘쓰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참여했던 보스토크 기지의 시추도 동일한 목적의 프로젝트였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최근에는 10만 년 주기의 기후 변화 사이클이 관측되는데, 100만 년 전의 사이클은 4만 년 주기였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해양퇴적물의 시그널 연구인데, 이에 따르면 100만 년 전 기온이 지금처럼 높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해양퇴적물 연구는 해상도가 굉장히 낮아서 더 자세한 연구는 어려우며, 당시 온실가스 농도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보스토크 기지는 어땠는지, 그리고 극지의 연구 환경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보트토크에선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교대로 업무가 진행됐습니다. 저는 오전 8시에서 오후 4시까지 시추 작업을 했습니다.

보스토크 기지 일대는 지구상 가장 추운 곳입니다. 겨울 평균 기온은 영하 66℃ 정도였고, 제가 방문했던 여름의 평균 기온이 영하 30℃ 정도였는데, 따뜻한 물을 공중에 뿌리면 공중에서 어는걸 볼 수 있습니다. 고도가 높고 기압이 낮아 조금만 움직여도 호흡이 가빠지고, 깊이 잠들기도 어렵습니다. 두통, 귀 통증, 경련, 구토, 체중감소, 근육통, 손발 동상의 증세도 나타나죠. 또한 보스토크 기지는 현재 운영 중인 남극 기지 중 가장 오래된 기지라 시설도 열악했습니다. 기지 내에 25명이 화장실 두 칸을 이용했고, 물은 눈을 녹여 사용해야 했기에 수요일과 토요일에만 씻을 수 있었어요.

보스토크기지에서 두 번째 심부시추가 이뤄졌던 2G 시추공 앞에 선 허순도 대장(왼쪽)
보스토크기지에서 두 번째 심부시추가 이뤄졌던 2G 시추공 앞에 선 허순도 대장(왼쪽)

 

시추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

시추는 일반적으로 밤에 합니다. 낮에는 얼음이 조금씩 녹아 시추기와의 마찰이 커지고, 시추 장비가 햇빛에 너무 노출돼 뜨거워지기 때문이죠. 낮에는 시추 후보지를 정해 아이스 레이더 탐사를 실시해 얼음의 두께, 밀도, 뒤틀림 상태, 크레바스 유무 등을 확인합니다.

시추기를 통해 한 번에 빙하코어 1.5m~2m 정도를 추출합니다. 하나의 빙하코어를 추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5시간입니다. 시추된 빙하코어는 채취환경과 유사한 상태(일반적으로 영하 20℃)로 연구실 냉동보관고까지 옮깁니다. 빙하코어는 나중을 위해 세로로 반을 남겨두고 남은 반을 가지고 어떤 연구를 할지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빙하코어가 처음 들어오면 기본적으로 물 동위원소로 온도와 연대를 측정하고, 주요 성분과 미량원소를 분석합니다. 최근에는 서울대 교수님과 빙하가스도 분석하고 있으며, 미생물 연구원분이 들어와 미생물의 종과 DNA 분석도 하고 있습니다.

 

시추 이후 빙하코어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스토크 기지의 빙하코어 연구 결과도 나왔는지 궁금하다.

연대측정을 완료하는 데 보통 3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고해상도 코어의 경우 2~3cm로 잘라 분석기에 넣는데, 이 분석기를 쉬지 않고 1년 동안 작동한다고 해도 100m 남짓의 빙하코어 분석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한 번 분석으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그간 쌓인 데이터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검증을 위한 재분석을 진행합니다. 아주 미세한 분석 상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 남겨둔 빙하코어는 이후 비교분석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빙하코어 연구란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른 프로젝트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엔 장보고 기지 주변에서 2020년 초에 시추했던 시료를 연구할 계획입니다.

극지연구소 연구팀과 회의 중인 허순도 대장(오른쪽)
극지연구소 연구팀과 회의 중인 허순도 대장(오른쪽)

중장기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나, 연구 시의 다른 어려움이 있다면?

신속하게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부분이죠. 극지로 가서 시추를 하는 3개월 가량이 지난 후 남은 기간은 내내 연구실에서 시료를 검사하지만, 검사를 시작해도 몇 년 후에나 결과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최근 논문들의 경우 평균 4~5년 전 시추한 시료에서 얻은 결과이며, 심지어 1980년대의 시료에서도 지금까지 새로운 논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최근 세계적으로 극지 연구를 하려는 연구원들이 줄고 있다는 부분도 우려스럽습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는 부분입니다. 과학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실제 우리가 아는 것들은 굉장히 적습니다. 심지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도 연구하면 알 수 없는 부분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1940~1950년대 소련의 핵실험 상황이 북극 빙하코어에서 확인됐는데, 어떠한 과정으로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열악한 환경, 오랜 기간 집을 떠나야 하는 불편함, 반복되는 연구 등 어려움에도 오랜기간 이 일을 하고 있는 데는 극지 연구만의 매력이 있어서인가?

사실 그런 질문을 많이 들어요. ‘왜 그렇게 추운데서 일해’ 라고 묻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럴 때 전 항상 ‘내 일이니까’라고 대답합니다. 대학에서 우연히 선배의 소개로 극지연구를 시작하게 됐지만, 한 번도 그만둘까 고민한 적은 없습니다.

사명감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냥 제가 단순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이 맘에 들고, 어떤 부분이 맘에 들지 않는 지도 딱히 따져보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연구자로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에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데이터를 보고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보거나, 상상을 해본 후 실제 그 상황에 맞는 데이터가 있는 지 찾아보는 것인데요, 이렇게 상상한 것이 실제 데이터로 드러나는 순간이 연구자로서 짜릿한 순간이죠.

그리고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부분 역시, 어려움인 동시에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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