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㊿ 봄 마중을 떠나자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㊿ 봄 마중을 떠나자
  • 김준 박사
  • 승인 2022.05.09 2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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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군 접도
접도항공사진, 접도와 금갑마을은 다리로 연결되고 너머로 난바다로 이어진다.
접도항공사진, 접도와 금갑마을은 다리로 연결되고 너머로 난바다로 이어진다.

[현대해양] 봄이 그리울 때면 찾아가는 섬이 있다. 매화가 그리워 통영 좌도를 다녀오고 난 후 다투어 진도 접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 섬길에선 다른 곳보다 일찍 겨울을 털고 기지개를 켜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금갑도로 불렸던 섬이다. 진도 본도에 딸린 작은 섬으로 원다리, 황모리, 수품리 등 세 마을에 160여 가구 4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접도대교를 지나면 만나는 첫 마을이 유배인이 머물렀다는 원다리, 재를 넘으면 어촌체험마을이며 갯벌이 발달한 황모리, 그리고 다시 언덕을 지나면 국가어항인 수품항을 품은 수품리로 이루어져 있다. 접도 남서쪽으로는 수심이 깊은 난바다와 접해 추자도와 제주 바다로 이어지고 동북쪽으로는 모세의 기적의 유명한 모도와 울돌목으로 이어져 갯벌이 발달했다. 서북쪽으로는 조도군도를 지나 신안 다도해로 연결된다. 난바다와 접한 해안은 해식애와 해식동 등 기암절벽이 아름답고, 진도와 접한 곳은 갯벌이 발달했다. 산은 겹산으로 깊고 난대림이 울창하다. 조류는 남해와 서해가 만나며, 조류가 소통이 좋아 사철 바닷물고기가 풍성하며, 김, 톳, 미역 등 해조류 양식이 활발한 곳이다.

금갑진성에서 본 접도대교와 접도
금갑진성에서 본 접도대교와 접도

봄꽃으로 가득한 ‘웰빙길’

현호색
현호색

가장 높은 봉우리인 남망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네 명의 캠핑족을 만났다. 말똥바위에서 캠핑을 하고 오는 길인 듯 했다. 한 명이 숲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여기 원추리 정말 많다. 연할 때 데쳐 먹으면 정말 맛있는데’라고 말했다. 앞서가던 일행도 멈추고 ‘원추리 무침, 정말 맛있는데’라며 맞장구를 쳤다. 웰빙 등산로를 만들면서 제일 우려한 것이다. 방문객들이 산나물이나 야생화를 채취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심지어 자랑하듯 개인 SNS에 동영상으로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비가 온 뒤라서 길섶에 춘란이 꽃대를 올리고, 노루귀, 산자고, 현호색 등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붉은 동백은 낙엽 사이에 떨어져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매년 접도로 봄마중을 나오는 이유다.

접도 섬길은 ‘웰빙길’이라 부른다. 접도는 작은 섬이지만 다섯 시간 이상 걸을 수 있는 산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솔섬바위
솔섬바위

높지 않아서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걸을 수 있고, 숲과 바다를 반복하며 걸으며, 음이온과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접도가 고향인 장재호(전남문화관광해설사) 회장의 열정으로 2005년 11월 만들어진 길이다. 이름을 웰빙길이라 붙이고, 여기저기 알렸다.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이 만들어지기 전이다. 2018년에는 산림청 주최 ‘아름다운 숲 경진대회’에서 공존상을 받기도 했다. 쥐바위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가장 높은 봉우리 남망산(164미터)까지 10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그곳에서 남쪽으로 추자도와 제주도 한라산, 서쪽으로 조도군도, 동쪽으로는 완도 보길도를 볼 수 있다.

남망산 정상
남망산 정상

남망산에서부터는 능선을 타고 솔섬바위까지 오르내리는 길이 반복된다. 그 사이에 거북바위, 사랑굴, 병풍바위, 열두지지목, 연리지, 여성목, 남성목 등 심심할 수 없는 풍광들이 펼쳐진다. 여기에 봉우리마다 다도해 풍경을 볼 수 있고 파도소리가 들린다. 나무꾼이 사랑을 나누었다는 사랑굴을 돌아 솔섬으로 가는 능선으로 오르니 양지바른 곳에 붉은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봄꽃에 눈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솔섬바위에 이른다. 바위에 오르면 너른 바다가 펼쳐진다. 온통 김 양식장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너른 김 양식장이다. 여기서 채취한 김은 수품항에서 경매되어 서해안과 남해안 곳곳에 있는 김 양식장으로 보내진다. 다른 지역이 3월이면 김 양식장이 끝나지만 접도바다 김 양식은 5월까지도 이어진다. 수심이 깊도 수온이 적당하며 조류소통이 좋은 탓이다.

말똥바위
말똥바위

솔섬바위에서 계단을 따라 곧바로 해안으로 내려서면 작은여미에 이른다. 너른 바위해안과 수직 솔섬바위가 어우러진 서해안에서 보기 드문 해안경관이다.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말똥바위로 가는 길에 동백숲이 있다. 그 주변에는 숯을 구웠던 ‘숯가마’ 터가 10여 개 남아 있다. 소중한 산림문화유산이다. 동백나무로 만든 숯은 ‘백탄’으로 고급숯이었다. 말똥바위는 캠핑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전망대 주변은 온통 산자기 꽃으로 가득하다. 그 중에는 밟혀 부러진 꽃들도 많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풀밭으로 생각할 수 있다. 특히 봄철에 접도 산길을 걸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키 큰 참나무들이 잎을 피우기 전에 꽃을 피우려는 봄꽃들이 낙엽과 마른 풀 아래서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거친 바다가 키운 멸치

접도에서 제주해역 물이 바로 들어온다. 갯벌도 좋고, 암초도 발달했다. 여름에 시작한 멸치잡이는 찬바람이 일 때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겨울부터 봄까지 김 양식장이 이어진다. 보통 진도 조도등대를 기점으로 서해와 남해를 나눈다. 그 경계에 있는 접도바다에선 서해와 남해의 바닷물고기를 모두 만날 수 있다. 서해와 남해의 물길이 합해지고 나누어지는 곳이다. 봄철인 4월부터 6월까지는 갑오징어를 잡는다. 오징어는 사철 잡기 때문에 제철을 잃은 지 오래다. 여행객들이 피서지를 찾기 시작할 무렵이면 구좌도 밖 바다에서는 낭장망(경기도 시흥시의 해역 일대에서 행해지던 어법 중의 하나. 양쪽에 날개그물이 달린 자루 형태의 그물을 고정시켜 물고기를 잡는 어법 또는 어구)에 멸치가 들기 시작한다. 멸치잡이는 겨울에 들어설 무렵까지 이어진다. 수심도 깊고 수온도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에도 쉬지 않는다. 김 양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낙으로 간재미를 잡는다.

수온이 높고 플랑크톤이 풍성한 바다에는 숭어와 간재미는 흔하고 갑오징어는 물론, 귀하다는 흰꼴뚜기(천중어)까지 들어온다. 어민들에게는 김 양식과 함께 낭장망으로 잡은 멸치가 제일 큰 소득원이다. 접도 낭장망 멸치는 남해 죽방렴 못지않게 인기가 높다. 보통 낭장망 멸치는 그물을 털어 섬이나 뭍으로 가져와 삶지만, 접도에서는 배 위에서 바로 삶는다. 통영이나 거제에서 권현망으로 멸치를 잡아 가공선에서 바로 삶는 것과 같은 원리다. 권현망은 멸치어군을 찾아 대형 자루그물을 양쪽에서 배로 끌어서 잡지만, 낭장망은 빠른 조류를 타고 들어오는 멸치를 기다려서 잡는다. 여러 개의 낭장망 그물을 설치해 조류에 맞춰 돌아가면서 그물을 털어 곧바로 삶아 낸다. 권현망으로 잡은 멸치는 말할 것도 없고 남해 정치망이나 죽방렴보다 신선도가 높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조류가 빠르고 거칠다는 진도 바다로 찾아온 멸치들이다. 육질의 탄력은 얼마나 좋겠는가. 이렇게 삶은 멸치는 접도로 이동해 가공시설에 말리고 햇볕으로 마무리한다.

국가어항 수품항의 김 위판 모습
국가어항 수품항의 김 위판 모습

적을 막고 죄인을 가두었던 섬

접도는 조선시대에 갑도, 금갑도라 했다. 수군만호 금갑진 앞에 있는 섬이었기 때문이다. 진도 남쪽 끝자락 금갑마을에서 다리를 건너야 도착하는 섬 안에 섬이었다. 최근 금갑마을을 둘러싸고 금갑진성이 복원되었다. 성벽은 금갑마을을 관통해 바다와 접도로 열려 있다. 마을에 수군만호 비석 세 기가 남아 있다. 금갑진성은 1485년에서 1499년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시대 서해와 남해를 잇는 주요 해상교통로에 위치해 왜구를 막기 위해 요충지에 설치한 수군만호다. 접도 최고봉 남망산이나 망대라는 이름의 봉우리들도 관방시설과 관련이 있다. 남해에서 서해로 올라가려면 울돌목을 통하거나 접도를 지나 장죽수도를 거쳐야 한다. 모두 거친 바다다. 요충지라 울돌목에는 전라우수영을 설치했고, 맞은편에는 금갑진성이 설치되었다. 접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진도 금갑진성이 ‘석축으로 둘레 1,153자, 높이 8자, 샘 1이다’라고 했다. 또 <만기요람>에는 금갑도진성 석축 둘레가 1,050척이라 했다. 이 외에도 진도에는 읍성, 고진도성, 남도진성 등이 있다. ‘세종실록’(세종 28년 병인 1월 23 신묘)에는 금갑도 만호가 여귀산 일부 목장 감목을 맡기도 했다고 기록했다. 금갑진지도에 성문, 객사, 아사, 내아 등의 시설들이 그려져 있다. 당시 금갑도는 유배인들 정배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구한말 전라남도 감영의 업무기록인 <全南隨錄>(1902)의 全羅南道各郡流配案에는 정만조, 최영화, 강인필, 이승린, 장윤선 등이 금갑도로 유배된 것으로 기록했다. 1791년 편찬한 ‘진도군읍지’에는 노수신, 이경여, 김수항, 조태채 등 진도 유배인을 봉향한 봉암서원이 있어 60여명의 원생이 있다고 했다.

접도 최고봉 남망산에서 본 마을
접도 최고봉 남망산에서 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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