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국적, 어디로 할까?
선박 국적, 어디로 할까?
  • 김엘진 기자
  • 승인 2022.04.1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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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치적 제도와 변화하는 세계 기국 지형
에이치라인해운이 발주한 ‘HL 그린호’는 파나마 국적이다.
에이치라인해운이 발주한 ‘HL 그린호’는 파나마 국적이다.

[현대해양] 우리나라의 초대형 선박은 대부분 국적선이 아니다. 지난해 3월 인도받은 HMM의 ‘에이치엠엠 누리호’의 선적국은 라이베리아다. 지난해 12월 세월호 참사 후 7년 8개월여 만에 인천과 제주를 잇다가 엔진 고장으로 운항 중단 상태인 카페리여객선 ‘비욘드트러스트호’의 국적은 파나마다.

이렇게 다른 국가에 선박을 등록하는 것을 영어로는 ‘FOC(Flag of Convenience:편의기)’나 ‘Open Registry(개방등록)’, IMO에서는 ‘Administration(행정부)’라고 표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일본식 표현법인 ‘편의치적(便宜置籍)’이라 부르고 있다.

최근 이러한 편의치적 기국(旗國)의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던 파나마를 2, 3위 기국들이 위협하고 있는 것.

 

로마제국 시대부터 있었던 편의치적

시작은 고대 로마제국 시대부터였다. 당시 로마 선주들이 선박을 그리스에 등록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16~17세기에는 영국 선주들이 어로 및 무역제한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페인이나 프랑스에 선박을 등록했으며, 나폴레옹 전쟁 중에는 영국 선주들이 프랑스 해상봉쇄장벽을 피하기 위해 독일에 선박을 등록하기도 했다.

실질적인 편의치적 제도의 시작은 미국 선대들이 파마나에 등록한 시대부터다. 1920년대 미 선주들은 주류판매 금지 조항을 피하기 위해 파나마로 선박을 등록했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자국 대외중립법(U.S. Neutrality Law) 저촉을 피하기 위해 소유선박을 파나마로 이적했다. 독일 선박들도 나포를 우려해 파나마로 이적했다. 그후 1946년 발표된 미국선박매각조례(U.S. Ship Sales Act)는 편의치적의 촉진제가 됐다. 이 조례에 따라 150척 이상의 선박이 파나마에 이적됐고, 1948년 파나마 선대는 515척으로 세계 선대의 3.4%에 달했다. 같은해 라이베리아 기국이 편의치적 시장에 등장했다.

 

왜 타국에 선박을 등록하는가

세계 해운 시장에서는 선박의 자국 등록보다는 편의치적을 택하는 비중이 점점 커졌다. 처음에는 온두라스, 산마리노, 바하마, 레바논, 아이티 등도 경쟁적으로 참여했으나 파나마나 라이베리아 등 몇몇 국가만 경제적 이득을 얻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5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30대 해운국의 외국적선 비율은 척수로는 59.6%, DWT(재화중량톤수) 기준으로는 75.8%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의 경우에도 외국적선 보유 비율이 척수로는 55.0%, DWT 기준 84.2%로 다른 국가들과 유사한 수준이다. 이에 따라 편의치적이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제도라는 것과, 초대형선박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 이토록 많은 선박이 편의치적 제도를 이용하는 걸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선주들은 제3의 국가에 선박을 등록함으로서 중립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를 통해 △전쟁위험(나포) 회피 △자유로운 무역활동 등이 가능해졌다. 또한 △선원고용에 대한 제한이 없고 △영업이익에 대한 각종 세금(소득세, 법인세 등)이 낮으며 △선박단위의 제한책임을 지고 △신축적인 선대운영이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다.

그러면 편의치적 제도의 국제적인 합의는 어떨까.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는 1986년 UN선박등록조건협약을 채택, 기국이 각종 국제안전규정을 시행할 책임과 권한을 갖는 해사기관을 설립하고 등록 선박이 안전상 기준미달선이 되지 않도록 통제할 것을 의무화했다. IMO는 모든 편의치적선에 대해 IMO에서 제시한 기준과 국제적으로 채택된 해양오염방지협약(MARPOL),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 등에 부합하도록 하고,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어떤 선박도 제재를 받지 않도록 했다.

전 세계 선박의 등록 기국, 단위는 총톤수(GT)(출처_Clarksons Clarkson's World Fleet Register 2020)
전 세계 선박의 등록 기국, 단위는 총톤수(GT)(출처_Clarksons Clarkson's World Fleet Register 2020)

세계 Top3 기국

세계 3대 기국은 파나마, 라이베리아, 마샬아일랜드다. 세 기국에 등록된 선박의 총톤수는 무려 전 세계 선박의 40%에 달한다<표>.

파마나 기국이 16%, 라이베리아 기국이 13%, 마샬 아일랜드 기국이 11%를 차지한다. 세 기국의 설립에는 모두 미국의 개입이 있었다. 세 기국 중 라이베리아와 마샬의 경우, 선박 등록, 회사(SPC) 설립, 저당 등기 등 기국 업무를 전세계 각국 지사에서 처리하고 있다. 반면 파나마의 경우, 기국 업무를 각국의 대사관 또는 영사관에서 처리하고 있다. 또한 최근 몇 년간 국내 선사의 최근 기국 선택 고려 사항 중 하나는 바로 중국 입항세 감면 부분일 것이다. 중국과 해당 기국의 MOU 관계에 따라 중국 입항 시 28.4%의 입항세 감면 혜택을 받는 부분으로, 현재 라이베리아와 파나마 기국의 등록선에서만 해당된다.

 

가장 오랜 역사 ‘파나마 기국’

북아메리카 최남단 파나마 지협에 위치한 파나마 기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로 유명하다. 공용어는 영어와 스페인어다. 가장 역사가 오래된 파나마 기국은 올해로 105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파나마 기국 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3월 기준 파나마 기국에 등록한 선박은 2억 3,660만 GT로 확인됐다. 국내 선박의 경우에는 526척, 2,820 GT다.

파나마 기국의 경우 경쟁 기국인 라이베리아, 마샬 아일랜드와 달리 대사관에서 기국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기업 형태의 경쟁 기국에 비해 이용이 불편하고, 처리가 늦어진다는 평이 있었지만, 현 행정부 출범 이후 많은 투자를 통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파나마 기국 관계자는 “해양 처리 시스템 및 전자 선박 등록(REN)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 출시, E-Segumar(전자증서 발급시스템) 플랫폼 구성 추가, QR 코드를 사용한 전자 증서 검증 등에 투자하고 있다”며, “올해엔 새로운 플랫폼에 선박 서비스 및 감독, 검사, 선박장거리위치추적(LRIT), 위험 분석, 선박 억류 및 국적 등록에 관련된 내용을 추가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관련 증서의 디지털화도 추진하고 있다. 관계자는 “올해 말까지 모든 증서가 100% 전자증서로 발급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신조선 등록비 및 연차세금 △중고선 등록 시 등록비 △그룹 등록 △PSC 억류 이력이 없는 선박 연차세금 △로열티 △친환경선박 등의 등록비 면제 및 할인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나마 담당자는 “파나마는 2050년을 목표로 하는 해양산업 탄소 배출 제로 협약에 서명했다”라며, “우리 기국은 환경 문제로 인해 선주와 선단에 끼칠 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 선박 및 신조선에 특별 할인을 제공하며 저공해 선박 건조를 장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원스탑 전산시스템 ‘라이베리아 기국’

서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에 있는 공화국 라이베리아의 기국은 1948년 미국 국무장관을 지냈던 에드워드 스테티너스가 주축이 돼 설립했다. 공용어는 영어다. 라이베리아 기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등록선박은 2억 1,000만 GT로 이 중 지난해에 등록한 선박이 3만 4,000 GT에 달하며, 그 중 국내 선박은 330만 GT를 기록했다.

김정식 라이베리아 기국 한국등록처 법인 대표는“최근 기국 중 가장 성장세가 빠른 상황”이라며, “몇 년 내 세계 기국 순위 1위에 오를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라이베리아는 1949년 IMO 창립 멤버로 참여했고, 다양한 주요 국제해사규정 제·개정에 관여해 왔다”며 “IMO 규정에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심을 보였다. 라이베리아 기국은 기국 중 최초로 2007년 IMO의 승인을 받아 선박에 필요한 모든 서류들에 대해 전자증서를 도입해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해 오고 있다고.

라이베리아 기국은 △기술 △안전 △보안 △선박 검사 △선박 장거리 위치추적 시스템 △항해 통신 장비 △선박 증서 △해기사 △회사 등록 △선박 등록 △저당 등기 등의 담당 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김 대표는 “특히 전세계에 분포된 많은 라이베리아 기국의 지사들 중에 어느 곳이라도 접촉하면, SPV 설립과 저당등기를 포함해 선박등록 및 선박운영(증서 발급/갱신 등)에 관한 안내와 함께 일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절차가 쉽고 빠르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또한, “금융기관들이 라이베리아 기국의 SPV 또는 저당등기 방식을 선호하고 있으며, 선박등록 당일 저당등기 설정과 함께 관련증서발급이 가능한 점이 대출 기관에도 큰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산시스템을 통해 선원면허 및 증서들의 신속 발급도 가능하며, 코로나 시대를 감안해 온라인 교육과 자격시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선박의 순톤수(Net Tonnage)를 기준으로, 정해진 산출식을 통해 선박등록세와 연간유지비만을 부과하고 있으며, 해운운임 소득에 대한 세금은 따로 부과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3월 15일 ‘HMM 누리호’가 라이베리아 등록을 마친 후. 사진은 HMM 배재훈 당시 대표(왼쪽)와 김정식 라이베리아 기국 한국등록처 법인 대표
지난해 3월 15일 ‘HMM 누리호’가 라이베리아 등록을 마친 후. 사진은 HMM 배재훈 당시 대표(왼쪽)와 김정식 라이베리아 기국 한국등록처 법인 대표

품질 자부심 ‘마샬 아일랜드 기국’

마샬 아일랜드 공화국은 남태평양,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공용어는 영어다. 마샬 기국이 편의치적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1988년이었다. 마샬 기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등록 선박은 5,158척, 약 1억 9,119만 GT이다. 등록 선박의 평균 연령은 약 9.9년 수준.

마샬 기국 역시 세계 주요 도시에서 등록 업무를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의 등록 업무는 서울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사무소에서 수행하고 있다.

김영민 한국사무소 대표는 “마샬 기국은 특히, 아시아 각국의 네트워크를 확립해 등록 편의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신속한 서비스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한 “품질로 승부하고 있는 우리 기국은, No.1 퀄리티 기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는 선박안전항해를 최우선 목표로 하며, 세계 전역 PSC(Port State Control:항만국통제) 검사에서 ‘낮은 억류비중’을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 주요 MOU(국가별 지역협력체제)와 ‘QUALSHIP 21’에 화이트리스트 명단에 올라와 있는 점으로 입증된다”고 전했다.

참고로 ‘QUALSHIP 21’은 미국 해역을 운항하는 선박의 품질과 안전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 해안 경비대가 우수한 선박 운영자에게 보상하기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으로, 마샬 기국은 17년 연속 화이트리스트에 올랐다.

한국사무소에서는 △선박의 국적등록 및 관련 증서 발급 △선박의 국적말소 및 관련 증서 발급 △선원 가면허 발급 △저당권 등기 및 관련 증서 발급 △저당권 해지 및 관련 증서 발급 등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선박과 선박 관리사가 있는 부산에 위치한 기술관련 사무소에서는 △선박의 안전 관리 및 안전 운항 신속 지원 △필요 업무 협의 △선급들(KR 및 IACS 회원사)과 신속한 대면 협의 등이 가능하다.

김 대표는 “마샬 기국은 가장 많은 가스운반선(226척/약 1,700만 톤)의 보유 기국으로 가스운반팀을 별도로 운영하며 기술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영민 마샬 아일랜드 기국 한국사무소 대표가 기국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영민 마샬 아일랜드 기국 한국사무소 대표가 기국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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