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와 일본의 재무장, 그리고 독도
우크라이나 사태와 일본의 재무장, 그리고 독도
  •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한국해양정책학회 부회장)
  • 승인 2022.04.08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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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한국해양정책학회 부회장)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한국해양정책학회 부회장)

[현대해양] 우크라이나 사태가 처음 발생했을 때 국제질서의 재편(POWER SHIFT), 즉 ‘New Great game’이 시작된다는 글을 발표했다. 러시아가 미·중 간의 갈등이 증폭되는 틈 속에서 은밀하게 힘을 키운 후에 지정학적인 판단의 굴레에서 못 벗어나 ‘3극체제’의 진입을 시도한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일본, 중국, 그리고 한민족에게 분명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물론 아직은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에 벌어졌던 그레이트 게임과 러시아의 지정학적인 숙명을 보면 우리의 미래와 독도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성이 있다.

 

대륙질서 vs 해양질서

러시아는 17세기 중반부터 극동아시아에 진출하여 1711년 8월에 쿠릴열도의 최북단에 상륙했고, 이어 1738년에는 혼슈 지역까지 측량을 감행했다. 이 무렵부터 서양 선박들이 동해에 출몰하기 시작하고, 프랑스는 울릉도를 세계에 알렸다. 러시아는 1792년에 홋카이도에 도착하여 일본에게 통상을 요구했고, 이에 놀란 에도 막부는 홋카이도 동부와 쿠릴열도 등을 탐사한 후에 직할령으로 지정했다. 이 무렵 러시아는 흑해 및 우크라이나 일대, 발칸반도를 놓고 오스만투르크와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러시아를 맹주로 하는 ‘대륙질서(Continental Order)’와 영국이 리더인 ‘해양질서(Marine Order)’ 간의 Great Game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러시아의 지정학적인 입장은 유라시아 대륙국가를 완성시키는 한편 유럽세력 및 미국 등의 해양세력과 대응하기 위해 생존을 걸고 해양으로 진출해야 한다.

결국 1854년에 해양세력인 영국은 프랑스와 오스만투르크를 부추겨 대륙세력인 러시아와 흑해 및 우크라인 일대에서 크림전쟁을 일으켰다. 이 때 영국과 프랑스 군함들이 동해에 나타났고, 오호츠크해로 들어와 캄차카반도의 남단에 육전대를 상륙시켰다. 다음 해에도 러시아의 시설물들을 공격했다. ‘그레이트 게임’을 시작한 영국 등은 러시아의 군사력을 분산시킬 목적으로 전장을 극동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동해 북부는 대륙세력의 출구이면서 해양세력의 대륙진출의 가장 적절한 입구로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조우하는 현장으로 변했다. 때문에 서양 선박이 자주 출몰하였다. 독도는 이 무렵인 1854년 4월에 러시아 군함인 올리브챠호가 발견했고, 1855(철종 6년)년에는 영국 군함인 호넷함이 발견했다. 이어 1857년에는 미국 포경선인 플로리다호도 발견했다. 이렇게 그레이트 게임의 진행 과정에서 역사에 등장한 독도는 숙명적으로 세계질서와 연관한 동해의 전략적 요충지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러시아는 1855년 2월 7일, 일본과 ‘일러화친조약’을 맺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계속해서 사할린의 영유권을 주장해 ‘사할린· 쿠릴열도 교환조약’을 1875년 8월 22일에 맺었다. 그리고 극동 지역에 투입할 군사적인 부담을 덜고, 제 5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877~1878)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일본과 러시아의 충돌

결국 19세기 들어와 일본과 러시아는 조선에 대한 영향권과 자원확보 및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놓고 본격적으로 충돌을 시작했다. 러시아는 만주 내부에 철도건설을 추진하면서 두만강, 압록강, 울릉도 등의 목재 채벌권을 획득했다. 또 압록강 하구의 용암포를 조차하고, 망루와 포대를 건설하면서 일본과 충돌했다. 한편 서쪽에서는 흑해 일대뿐 아니라 페르시아만과 인도양으로 진출을 열정적으로 시도하였다. 당연히 해양세력인 영국은 러시아의 병력과 국력을 동쪽으로 분산시킬 필요가 강해졌고, 이는 일본의 이익과 일치하였다. 즉 러시아의 동해를 통한 태평양 진출 전략과 일본의 북상 및 영국의 러시아 방어전략이 충돌하면서 1904년에 러일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은 일본의 군사기지 역할을 담당했고, 일본에게 ‘외교권’과 ‘국권’을 상실하면서 독도는 일본의 영토로 편입됐다.

 

동해 해양전략 거점, 독도

현재 진행되는 세계질서의 재편은 과학과 기술력의 발달 등과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복잡한 양상을 띄우고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 태평양, 나아가서는 세계질서의 헤게모니를 놓고 중국과 갈등이 심화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을 축으로 호주 등 몇 몇 국가들을 활용한 신동아시아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해양대국의 부활을 외치면서 해양진출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신대륙주의’와 연관하여 필자는 태평양에서는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하는 ‘신해양주의’가 등장하고 있다고 본 바 있다. 이러한 구도와 지정학적인 숙명 속에서 당연히 동유럽의 우크라이나 사태와 흑해 갈등은 과거의 그레이트 게임, 러일전쟁처럼 극동에 영향력을 끼칠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국 등은 태평양 세력으로 러시아가 부활하는 일을 막기 위하여 일본을 극동의 ‘헌병’이 아닌, ‘QUAD(4자 안보대화)’를 넘어서는 본격적인 동맹군으로 격상시킬 수 있다.

일본도 러시아의 군사적인 위협을 과장하고, 자위적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재무장을 시도할 것이다. 군수산업과 연관된 산업구조의 개편 등을 시도하면서 숙원이었던 ‘보통국가론’을 실현하고, ‘일본 부활’의 호기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동해의 해양전략거점이며, 다양한 가치를 지닌 독도는 다시 한번 국제질서의 무대에 등장할 수밖에 없고, 일본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독도 문제를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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