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여행 58] ‘어업권자가 수산업법 위반한 때’란?
[해양수산법 판례여행 58] ‘어업권자가 수산업법 위반한 때’란?
  • 강선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승인 2022.03.1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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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오징어채낚기 사건
강선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강선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쉰여덟 번째 여행의 시작> 

우리 헌법에 따르면, 국민이 위임한 통치권은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삼권분립됩니다. 그리고 그 중 입법권은 국회에 부여되어 헌법 바로 아래에 있는 법률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에 따라 행정권을 부여받은 대통령와 행정부는 각각 대통령령(시행령)과 부령(시행규칙)을 만들게 됩니다. 

결국 법은 하나의 피라미드처럼 헌법-법률-시행령-시행규칙의 계층을 이루게 되고, 상위법은 하위법의 존재가 정당하다는 근거가 됩니다. 

이러한 구조라면, 법이 만들어지는 시간 순서 역시 상위법이 만들어진 후 하위법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하위법이 만들어지고 그 근거를 위해 상위법을 만드는 것은 위와 같은 구조와 논리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항상 논리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법령의 제정이라는 중대한 일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는데, 특히 수산업법과 같이 복잡한 내용을 담고 오래된 법률의 경우 일반적인 법령 구조에 맞지 않는 일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그런 경우 사법권을 부여받은 법원에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서 법령을 무효화시키면 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원의 입장에서는 특정한 잘못, 가령 절차적 문제에 관하여는 가능한 한 행정부의 입장을 감안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법령이 만들어지는 시간 순서에 반하여 하위 법령이 먼저 만들어지고 이후에 상위 법령이 만들어질 경우 어떻게 판단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건에서, A는 2002. 8. 16.경 본인 소유의 어선을 출어등록을 하지 아니하고 조업자제해역에 출어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A는 어선단에서 무단으로 이탈하였고, 동해 조업자제선을 월선하여 러시아의 허가 없이 북위 39도 45분, 동경 133도 35분인 경북 울릉군 북동방 180마일 해상 러시아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오징어채낚기 조업을 하면서 어업무선국에는 허위로 위치보고를 하였습니다.

이런 사실이 적발되자, 경상북도지사는 A가 구 선박안전조업규칙 제14조, 제15조, 제18조, 제21조를 각 위반함으로써, ‘어업권자가 이 법에 위반한 때’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수산업법령에 따라 어업정지 60일에 갈음하는 과징금 300만 원을 부과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하급심 법원은, 경상북도지사의 처분이 타당하다고 하여 A에게 패소판결을 선고하였고, 이에 A는 대법원에 상고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A는 승소할 수 있었을까요?

 

<쟁점>

어업 면허나 허가를 받은 자가 선박안전조업규칙에서 정한 어업제한사항 등을 위반한 경우, 구 수산업법 제34조 제1항 제6호에 정한 ‘어업권자가 이 법에 위반한 때’에 해당할까요?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2009. 2. 26. 선고 2006두3599 판결>

구 수산업법 제34조 제1항 제5호의2는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이 면허한 어업을 제한 또는 정지하거나 어선의 계류 또는 출항·입항의 제한을 할 수 있는 여러 사유 중의 하나로 “어업활동상 안전사고 예방 등을 위하여 필요한 때”를 규정하고 있고, 법 제34조 제3항은 ‘제1항 제5호의2의 규정에 의한 어업의 제한 등에 관한 사항’을 국방부·행정자치부 및 해양수산부의 공동부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제34조 제3항의 신설 경위와 목적 및 관계 법령의 내용과 체제 등에 비추어 볼 때, 법 제34조 제3항은 같은 조 제1항에 의하여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이 같은 항 제5호의2에서 정한 “어업활동상 안전사고예방 등을 위하여 필요한 때”의 사유를 들어 어업의 제한 등을 하는 경우, 그에 해당하는 개별적·구체적 사유의 내용이나 기준·절차 등에 관하여 세부적으로 필요한 사항을 정하거나, 위 제5호의2에서 정한 “어업활동상 안전사고예방 등을 위하여 필요한 때”에 면허어업권자 또는 허가어업권자에게 가해질 수 있는 어업의 제한 등 필요한 규제내용을 일반적으로 규율하기 위하여, 그에 관한 사항을 국방부·행정자치부 및 해양수산부의 공동부령으로 위임하여 정하도록 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선박안전조업규칙이 1982. 3. 17. 전문 개정되어 2000. 8. 9. 국방부·행정자치부 및 해양수산부의 공동부령에 의하여 최종 개정될 때까지는 그 위임의 근거가 되는 법률규정이 불명확하였다 하더라도, 2001. 1. 29. 법 제34조 제3항이 신설된 후부터는 위 조항이 일반적인 어업제한사항 등을 정한 선박안전조업규칙의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2002. 8. 16. 경에 이루어진 이 사건 위반행위에 대하여 적용된 선박안전조업규칙은 법률의 위임을 받아 유효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어업 면허나 허가를 받은 자가 선박안전조업규칙에서 정한 어업제한사항 등을 위반한 때에는 법 제34조 제1항제6호호에 정한 ‘어업권자가 이 법에 위반한 때’에 해당한다.

 

<판결의 의의>

위 판결은 일견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결론적으로는 시행규칙인 선박안전조업규칙이 2001. 1. 29. 까지는 상위 법령의 근거 없이 시행되었다가 구 수산업법 제34조 제3항이 신설된 이후부터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유효하다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런 경우는 시행규칙이 먼저 생긴 이후에 법률이 생긴 경우로서 법령의 시간 순서에는 맞지 않는 면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법적 근거가 마련된 이후에는 그 전에 근거 없이 시행된 시행규칙도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쉰여덟 번째 여행을 마치며>

일반적인 법령의 시간 순서에 따르지 않더라도 현행 법률에 그 근거가 있다면 이미 법 시행 전에 존재하였던 그 아래의 시행령, 시행규칙 역시 유효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와 달리 이전에 법률에 근거 없이 시행령, 시행규칙이 제정되었다고 하여 무조건 무효라고 판단하지 말고 신중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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