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바다가 숨 못 쉬는 이유
⑦ 바다가 숨 못 쉬는 이유
  • 김종성 서울대학교 교수
  • 승인 2022.03.10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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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서울대학교 교수
김종성 서울대학교 교수

[현대해양] 약 25년 전 대학원 시절, 화성 갯벌 조사 때 일이다. 당시 내 임무는 갯벌 1㎥ 내에 사는 가리맛조개를 모두 잡는 것이었다. 허리까지 빠지는 찐득찐득한 뻘 갯벌과의 치열한 사투였다. 3시간 넘도록 뻘흙을 파헤치고 뒤집고 만지작거리며 마침내 1㎥ 안에 있는 가리맛조개를 모두 잡아냈다. 뻘로 온 몸이 뒤덮였지만, 그 순간 너무나 기뻤고, 고생한 보람도 컸다. 가리맛조개를 갯벌 표면 위에 펼쳐서 계수해 보니 무려 200마리가 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03년 화성호 방조제가 완공되고 갯벌이 말라가면서 가리맛조개는 떼죽음을 당했다. 방조제 완공 후 수질 악화에 따른 산소 부족과 육상으로부터 유입된 오염물질이 정화되지 않고 퇴적층에 지속해서 쌓이면서 갯벌은 가리맛조개의 무덤이 된 것이다. 

 

바다와 해양생태계의 위협

실상 바다와 해양생태계를 위협하는 압력요인은 무수히 많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 바다를 괴롭혀온 주범은 연안 간척과 육상의 4대강 사업과 같은 대규모 개발사업이었다. 연안과 육상에서 자행되는 각종 개발사업은 수질 악화의 주범이며, 궁극적으로 바다의 부영양화를 초래하고 적조까지 유발한다. 여름철 주로 발생하는 적조는 고수온과 함께 해양생태계뿐만 아니라 양식장에 큰 피해를 줘 골칫덩어리기도 하다.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해양 유류사고도 늘 바다를 위협하는 단골 불청객이다. 지난 2007년 태안 앞바다를 검게 물들인 허베이스피리트 유류사고로 인근 바다생물은 몰살당했고,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봤다. 특히 다환방향족탄화수소와 같은 유류 성분은 발암성이 있고, 바다생물에게 갖가지 독성을 유발한다. 잔류성유기오염물질의 하나로 생물농축과 먹이그물을 통한 생물확대✽로 해양생태계 전반에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파괴력이 매우 크다. 다행히 직격탄을 맞은 태안 앞바다와 해양생태계가 15년이 지난 지금 잊혀질 만큼 회복됐지만, 그간 잃어버린 생태계서비스 가치는 실로 컸고 언제라도 다시 발생할 수 있어 그 위협은 늘 도사리고 있다.

 

해양오염의 주된 원인, ‘잔류성유기오염물질’

앞서 언급한 유류성분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도 잔류성유기오염물질의 하나다. 산업생산 공정, 폐기물 소각, 유류, 농약, 의약품, 그리고 일상 생활용품으로부터 배출되는 각종 화학물질이 대거 포함된다. 이들 오염물질은 반감기가 길어 환경에 노출되면 수십 년 이상 잔류하고, 각종 독성을 일으키며, 아주 먼 거리까지 이동하는 특성을 보인다. 그래서 한번 바다로 유입되면 그 피해는 거의 반영구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여 년 전 12개 대표물질에 대한 국제 규제를 시작한 스톡홀름 컨벤션은 그간 규제물질을 추가해서 현재 30여 개 물질군에 대한 생산과 사용을 금하고 있다. 

일찍이 레이첼 카슨은 1962년 출판한 ‘침묵의 봄’을 통해 인간의 화학물질 남용이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의 건강까지 해칠 것이라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각종 잔류성유기오염물질로 파괴되어 가는 바다와 신음하는 바다생물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가 원시시대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이들 오염물질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 모든 오염물질에 대한 규제는 불가능하기에 바다로 유입되는 잔류성유기오염물질에 의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몫일 것이다. 

특히, 잔류성유기오염물질은 미량에서도 독성을 나타내고, 만성독성을 보이는 물질이 많아 그 피해가 가시화되고 인지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대처하기가 매우 어렵기도 하다. 잔류성유기오염물질 관리가 어려운 다른 이유는 유입경로에 있다. 육상 점오염원(하·폐수처리장 배출구 등) 및 비점오염원(도로먼지, 대기 등), 선박이나 해양 시설, 그리고 불법 배출 등 바다로의 유입경로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므로 오염원에 대한 파악이 어려워 규제가 만만치 않다. 결국 오염물질에 의한 해양생태계 피해와 이로 인한 생태계서비스 저하는 피할 수 없음이다. 

화학물질의 과도한 사용을 막고, 특별히 독성이 강한 오염물질에 대해서는 그 생산과 사용을 철저히 금지해야 한다. 화학물질의 불법 사용과 임의 배출 또한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 나아가 기존 오염물질에 대한 장기모니터링, 오염원 추적, 육상-해양 통합관리체계 고도화, 신규 오염물질에 대한 예측과 통제 등 다방면에서의 노력과 전략이 필요하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 최선인 것이다.

해양오염퇴적물과 해양보호구역의 관리 현황

해양수산부는 해양오염 방지와 바다생태계 보호를 위한 일환으로 환경관리해역을 지정, 관리하고 있다. 일찍이 1995년 해양오염방지법이 개정되면서 해양환경보전종합대책 수립 및 특별관리해역 지정에 관한 조항이 신설됐다. 즉, 해역별 해양환경기준의 유지가 곤란하고, 해양환경보전에 현저한 장애가 있거나 장애를 미칠 우려가 있는 지역을 ‘특별관리해역’으로 지정해서 관리하는 것이다. 2001년 시화호·인천연안을 필두로, 2004년 마산만, 2005년 광양만, 2008년 울산연안, 2009년 부산연안까지 5개 지역이 특별관리해역으로 지정됐다. 이들 지역 모두 잔류성유기오염물질에 의한 해양오염이 가장 심각했던 지역에 해당한다. 특별관리해역은 연안오염총량관리 규제 덕에 과거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수질과 퇴적물 건강성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지만, 폐쇄성 해역의 특성상 목표수질 관리가 쉽지 않다.

해양수산부는 2004년부터 오염퇴적물 분포현황을 조사하고, 전국 45개 조사해역 중 정화·복원이 필요한 해역을 35개소(1,500만㎥)로 추산한 바 있다. 지난 10여 년간 120만㎥에 달하는 지역에 대해 퇴적물 정화사업을 진행해온 노력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본 사업은 유해화학물질과 부영양화 항목에 대한 화학농도 중심의 평가란 점이 한계로 지적돼왔다. 즉, 생물 중심의 생태적 영향평가가 반영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연평균 250억 원 규모의 정화·복원 비용이 소요됨에도 오염원이나 오염원 인자가 규명되지 않은 점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한편, 우리나라 바다는 크게 8개 카테고리의 50여 개 지역(구역)이 해양환경·생태계 보전 및 보호란 명목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특화된 목적에 따른 차별화된 특정 구역의 지정과 관리는 물론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현 관리체제는 제도·행정적 측면에서 분명 한계가 있어 개선이 요구된다. 생태적, 통합적, 실효적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한국 갯벌이 5개 지자체에 걸쳐 4개 지역만 포함돼있음과 일맥상통한다. 유럽 와덴해 전체 갯벌에 대한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3국 공동관리와 같이 생태계 연속성이 고려된 통합적, 효율적 관리체계 도입을 고려해 볼 때다. 

해양·육상 기인 오염원 유입경로
해양·육상 기인 오염원 유입경로

해양저서퇴적물 오염평가 연구의 발자취

잔류성유기오염물질로부터 바다와 해양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퇴적물 오염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1990년 캐나다 학자 피터 채프만은 퇴적물 오염(건강성)에 대한 통합평가방법으로 ‘삼중접근법’을 제안한 바 있다. 말 그대로 3가지를 동시에 고려한 접근법으로, 퇴적물 오염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1) 화학물질 농도 측정, 2) 생물독성 테스트, 3) 저서군집 분석을 동시 수행하는 방법이다. 과거 화학물질 농도에만 의존한 퇴적물 오염평가 방법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최근까지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평가법이면서 관련 방법론이 꾸준히 발전돼왔다. 

국내 퇴적물 오염평가는 나의 은사님인 고철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199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98년 대학원에 입학한 나는 연구실에서 한창 진행 중이던 국내 퇴적물 건강성평가 연구에 즉각 투입됐다. 전국 바다를 돌며 우리는 1,000여 개가 넘는 연안역 저서퇴적물을 채취했다. 앞서 언급한 특별관리해역 5곳을 포함 전국의 오염된 곳은 거의 다 찾아갔던 것 같다. 우리는 채취한 퇴적물 내 중금속과 유기화합물의 농도를 분석하고, 벌크 퇴적물이나 퇴적물 추출액을 이용해서 생물독성평가를 수행했다. 해양저서생태학 연구실에서 처음 다뤄보는 주제였고, 분석기기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에 과제수행에 어려움이 컸던 게 사실이다. 

우리는 돌파구가 필요했고, 과제에 참여한 대학원생 모두 외국대학에 방문하여 단기간에 최신의 실험방법을 익히고 돌아왔다. 내가 방문했던 곳은 환경독성학 분야 세계 석학인 미시간주립대 동물학과 존 기지 교수님의 수생독성학연구실이었다. 그런데 기지 교수의 수생독성학연구실은 놀랍게도 화학, 독성학, 그리고 생태학 연구를 모두 하고 있었고, 나는 여러번의 방문을 통해 최신 기기분석과 세포독성실험을 충분히 익히고 돌아올 수 있었다.

사실 낯선 미국 실험실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친절하고 따뜻하게 맞아주고 실험을 가르쳐준 칸난 박사와 댄이란 친구 덕이 컸다. 그들은 내게 직접 실험을 가르쳐줬고, 매일 읽을 논문을 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들이 진행하고 있는 퇴적물 오염평가 신규방법론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우리는 몇 달간 수많은 반복 실험과 시행착오 끝에 생물독성을 일으키는 유해물질을 퇴적물로부터 분리해내는 이른바 ‘독성동정평가법’이란 신규방법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독성동정평가법의 핵심은 퇴적물 내 잔류하는 화학물질의 세포독성 유무와 기여도 분석을 통해 퇴적물 내 특정 유기분액에 있는 오염물질을 정성·정량적으로 찾아내는 것이다. 나는 이 독성동정평가법을 적용, 국내 연안역에서 채취한 해양저서퇴적물의 오염평가 결과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우리 실험실로 무사히 복귀한 나는 미국에서 개발한 신규방법에 우리 실험실의 주 연구 분야였던 대형저서동물 군집분석을 결합시켜 채프만이 제안했던 ‘삼중접근법’을 시도했다. 삼중접근법은 기존 화학물질의 농도 측정에 기반한 오염평가나 독성동정평가법에 더해 생물영향이란 생태적 함의를 준다는 점에서 중요했고, 우리는 국내 최초로 이 방법으로 전국 연안의 퇴적물 오염평가 자료를 생산할 수 있었다.

2012년 고 교수님 후임으로 서울대에 부임한 나는 우리 연구실이 2000년대 국내 정착시킨 삼중접근법을 좀 더 발전시키는 데 주력했다. 우선, 독성평가를 위한 대상생물(분류군)을 세포뿐만 아니라, 미생물(발광박테리아), 부유생물(식물플랑크톤), 저서생물(단각류, 이매패류, 불가사리 등), 그리고 유영생물(어류)로 폭넓게 확장했다. 또한 저서군집 분석에 있어, 기존 대형저서동물 군집분석뿐만 아니라 미생물, 저서미세조류, 중형저서동물 등 더 많은 저서생물 분류군에 대한 군집분석을 추가하여 생태계 변동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이른바 ‘다중증거법’ 개념을 차용, 기존 삼중접근법이 가진 종 특이적 반응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고 생태계 종합평가에 대한 신뢰성을 높였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우리는 미지물질에 대한 잠재독성과 저서생태 군집(+기능) 영향을 찾아내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수많은 오염물질이 축적된 해양저서퇴적물 내에는 아직도 우리가 분석할 수 없는 미지물질이 수없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퇴적물 시료의 다중독성평가와 고급 기기분석을 반복 수행하고 그 결과를 비교 검토하면서 독성을 일으키는 미지의 화학물질을 찾아내고자 했다. 이른바 ‘생물영향동정평가법’이다. 우리 연구실은 최근까지 이 방법으로 약 30여 종의 신규 독성원인물질을 찾아서 세계 학회에 보고했고, 이 중에는 요즘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미세플라스틱도 일부 포함돼있다.

 

독성 오염물질, 이제는 사전 예측해야

인류와 바다를 위협하는 신규물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생산되고 유통되고 있다. 이제, 환경사고가 발생한 후 원인물질을 찾고 관리방안을 만드는 것은 후진적 발상이다. 신생물질의 잠재독성을 사전에 평가하고 예측해서 환경에 노출되기 전에 알 수 있다면 선제적 관리가 가능하다. 기존의 ‘선 노출 후 독성확인’ 방법은 환경 리스크가 크고 그만큼 환경 회복에 대한 사회·경제적 비용도 커진다. 오염물질 독성에 대해 빠르고 정확한 사전 예측이 더욱 절실해졌다.

물질(분자)의 특성에 기반하여 독성을 예측하는 기술은 그동안 약학 및 독성학 분야에서 꾸준히 개발돼왔다. 하지만, 수많은 오염물질의 구조적 유사성으로 인해 정밀하고 정확한 예측은 늘 한계로 지적돼왔다. 우리는 2017년 물질의 구조적 유사성을 구분하면서 독성 유무와 수준을 판별할 수 있는 ‘생·물리 연계 독성예측모델’에 본격 착수했다. 비록 다환방향족탄화수소(유류성분)를 비롯한 몇 가지 특정물질(군)을 대상으로 했지만, 물질의 독성반응 기작 특성을 반영한 물리·화학적 방향성 반응인자(DRF)를 검증하고, 물질과 세포 내 수용체 사이의 역학 관계를 함수화해서, 대상물질의 미시거동 프로세스를 예측하는데 성공했다. 

 

학제간 연구의 중요성, 위기를 기회로…

우리 연구실이 10여 년 넘게 진행해온 독성예측모델 개발 연구의 시작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사학위를 마친 이듬해 나는 캐나다 사스캐처원대학 연구원으로 첫 직장을 시작했다. 대학원 때 인연을 맺었던 기지 교수님이 2008년 캐나다 사스캐처원대학 독성센터의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나를 독성센터 매니저로 스카웃한 것이다. 새로운 랩 세팅에 나날이 분주하던 어느 날 사무실 전화벨이 따르릉 울렸고, 나는 물리학과에 재직 중인 한국인 과학자 장갑수 교수님을 만나게 됐다. 

고체물리학자인 장 교수는 첫 만남에 내게 뜬금없는 그러나 매우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독성센터? 독성이 뭐예요? 왜 나타나지? 이유가 뭔가요? 왜 물질마다 독성이 다르지요?”라는 끊이지 않는 촌철살인과 같은 연쇄 질문에 나는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정답도 해답도 몰랐던 나는 함께 찾아보자고 제안했고, 장 교수는 흔쾌히 “Sure”라 대답해줬다. 서로 반신반의하면서도 우리는 기회를 만들고 의기투합하게 됐다. 

꽤 오랫동안 이 연구에 매달려왔다. 나도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실마리는 어느 정도 풀었고, 이제 자신감도 조금 붙었다. 서로 전혀 다른 분야를 공부해왔기에 언어도 사고방식도 달랐다. 그러나 하나둘 배우고 알아가는 재미와 그간 쌓여온 우정과 믿음 덕에 여기까지 겨우 온 것 같다. 방학마다 그리고 연구년 때면 되도록 함께 만나 이 연구에 시간을 쓰곤 해왔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도 의견이 맞지 않으면 서로 투덜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더 재미있고 설렌다. 벌써 여름방학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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