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동경 128도 오징어 게임
기후변화와 동경 128도 오징어 게임
  • 정석근 국립제주대 해양생명과학과 교수
  • 승인 2022.03.10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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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퇴 새 어장 개척 필요
정석근 제주대 해양과학대학 교수
정석근
제주대 해양과학대학 교수

[현대해양] 기후변화로 우리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어종과 주어장이 크게 요동치고 있는데 낡은 수산 정책과 어업규제는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연안 어업을 보호하려고 설정한 동경 128도 이동 트롤조업금지구역은 10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21세기 대한민국 수산업에 족쇄가 되어 잡는 어업 자체를 공멸시키려하고 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살면 된다는 ‘오징어 게임’이 지금 동해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수산업법에서 해양수산부령 ‘어업의 허가 및 신고 등에 관한 규칙’을 보면 “대형트롤어업은 동경 128도 이동수역에서 조업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되어 있고, 대형기선저인망어업도 동경 128도를 조업한계선으로 정하고 있다(그림 1). 우리나라 일부에서는 1965년 체결된 한·일어업협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 동경 128도 이동 대형트롤과 대형기선저인망 조업금지 유래는 일본 연안 어업을 보호하기 위해 1912년에 실행된 일본 국내 트롤어업 기업허가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00년 전 일본이 만든 대형트롤어업금지선
20세기 들어서면서 일본 큐슈를 중심으로 영국인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Thomas Blake Glover, 1838년 6월 6일~1911년 12월 13일) 아들인 쿠라바 토미사부로가 1908년 영국에서 터빈을 갖춘 강선(鋼船) 트롤 어선을 도입해서 시험조업을 시작했다. 글로버가 살았던 구라바엔(グラバー園, Glover Garden)은 지금 나가사키 관광명소로 한국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곧 트롤선 2척이 끄는 쌍끌이 트롤도 조업을 시작하는데, 일본에서는 이를 저예망어업(底曳網漁業)이라고 한다. 일본 트롤어선은 1910~1911년에 새 어장을 계속 개척하면서 풍어가 계속되었고, 그 크기가 200~250톤으로 조업일수는 10일까지 늘어나 남획, 어장 파괴, 해저 전선 파괴와 같은 피해가 속출하자 일본 정부에서는 1912년(타이쇼 大正 원년) 트롤어업에 기업허가제를 적용하면서 동경 130도(지금은 128도 30분) 서쪽에서만 조업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내주게 된다<그림 2>.


1912~1913년에는 조선총독부에서는 조선에 있는 일본, 조선 어업을 일본 트롤어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한반도 연근해 둘레를 따라 트롤금지구역을 설정하였다<그림 2>. 1차세계대전 동안 한 때 7척까지 줄어들었던 일본 트롤어선 수는 그 뒤 점점 늘어 1922년에는 500척 가까이 되자 영세했던 기존 연안 어업과 점점 더 충돌하게 되고, 결국 1924년(타이쇼 13년) 시행된 「기선저예망어업 단속규칙」(機船底曳網漁業取締規則)으로 동경 130도를 기준으로 터빈을 갖춘 대형동력선은 그 서쪽 동중국해와 황해에서만 조업하게 하고, 그 동쪽에서는 조업을 못하게 했다.
1928년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어업령을 제정하면서 기존 동경 130도까지 트롤 금지구역을 동경 130도 52분 울릉도까지 확대하였는데, 이 때 정한 대형트롤어업금지 기준선이 10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수산자원보호령 제4조 ‘별표 2’로 그대로 남아있다<그림 1>. (참고: http://www.city.nagasaki.lg.jp/nagazine/column/201706/index.htm; 김병호, 2004. ‘근해저인망류어업에 있어서 업종별 경합관계 형성에 관한 사적고찰’. 수산경영론집 35, 23~56; http://www.ipc.shimane-u.ac.jp/fishery/kataoka2013.pdf; http://www.hdh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135).
100년 전 일본 어업 상황에서 유래한 이 어업구역 규제를 대한민국에서 아직 우리 바다에서, 그것도 거꾸로 적용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동경 128도를 기준으로 연안어업을 보호하려면, 일본 연안은 그 동쪽에 있기 때문에 그 이동(以東)수역 트롤조업 금지가 맞지만, 우리나라 연안은 그 서쪽에 있기 때문에 그 이서(以西)수역 트롤조업 금지가 맞다. 그런데 우리나라 다른 많은 수산 관련 규제들이 그렇듯이 이 동경 128도선도 거꾸로 적용하여 일본과 똑 같이 트롤 이동조업을 금지하고 있다, 이 코미디 같은 동경 128도 이동 트롤 조업 금지구역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지역간, 업종간 이해 충돌로 한 치도 못 바꾸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어장변화 근본 문제 해결해야
일제강점기인 1917~1919년에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했던 터빈을 갖춘 기선저인망어선은 1940년 초반에 한 때 200척이 넘기도 했으나, 해방이 되자 일본 사람들이 철수하면서 거의 없어져버렸다. 그러나 1949년부터 대한민국 정부는 외국 원조를 통해 트롤과 기선저인망 어선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1965년 한일어업협정이 타결되고 경제발전으로 1970년대부터는 동력을 쓰는 어선들 세력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남해에서는 부산에 근거를 둔 트롤어선들이 말쥐치를, 동해에서는 명태를 많이 잡아 수익을 크게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1988~1989년에 북태평양 전체에 걸쳐서 일어난 기후체제 변동으로 우리나라 바다에서 저어류인 말쥐치와 명태는 갑자기 사라지게 되고, 대신 부어류인 오징어와 저어류인 대구, 청어가 많이 잡히게 된다(http://www.hdh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345). 1990년대 들어서 더 이상 말쥐치가 안 잡혀 망하기 직전 부산 트롤 어선들은 불법이지만 생존을 위해 동경 128도선을 넘어 동해로 들어가 동해 근해채낚기와 공조조업으로 오징어를 본격 잡기 시작한다(박성쾌, 2004. ‘동경 128도 이동 오징어 공조조업에 관한 정치경제학적 연구’. 수산경영론집 35, 91~115).
이 1990년대에 시작된 동경 128도 이동 오징어 ‘불법’ 공조조업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경직된 수산업 관련 규제들이 현실에서는 변화하는 어업환경을 따라가지 못해 그 정당성을 이미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악법도 법’이라고 하지만 이 법을 따르다가는 생존 잔체가 힘들어진 어업인들에게 합법이니 불법이니 논쟁은 이미 무의미하다. 해양수산부에서도 이 현실을 잘 아는지 적극적으로 이 공조조업을 단속하지 않다가 정치적으로 필요하면 갑자기 단속을 해서 운 없이 걸려든 선장과 선주들을 처벌했다면서 보도자료를 내는 일을 지난 30년 동안 반복해오고 있다. 근본 문제 해결 없이 임기응변으로 30년을 끌어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근본대책 절실
그 동안 불필요한 규제와 지역·업종간 어업권 갈등으로 어업 경영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어온 우리나라 오징어 어업은 최근 기후변화로 더욱더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여 곧 오징어 어업 자체가 소멸할지도 모른다. 흔히 오징어라고 하는 살오징어(Todarodes pacificus)는 남중국해, 동중국해, 황해, 동해, 일본 태평양쪽 연안, 오호츠크해, 베링해, 알래스카 연안까지 분포하는 회유성 어종이다<그림 3>.

(그림 3) 살오징어(Todarodes pacificus) 서식지 (출처: fishbase.org)
(그림 3) 살오징어(Todarodes pacificus) 서식지 (출처: fishbase.org)

일본에서는 1970년대 한 때 연간 60만 톤 이상을 잡기도 했으며, 우리나라도 어획 기술이 발달하면서 1990년대 이후 20만 톤 이상 연간 어획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모두 2000년대 이후 살오징어 어획고가 점점 줄어들다가 최근에는 격감하여 오징어 어업 존망 자체가 위태로워 보인다. 그 이유는 동해 온난화에 따라 그 서식지가 점점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동해나 일본 홋카이도에서는 오징어가 줄어든 대신에 방어가 많이 잡히고 있다. 나도 10년 전쯤 살오징어 주어장이 북상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라갈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다. 일본, 북한이나 러시아 자료 없이 우리나라 어획고 자료만 분석하여 너무 보수적으로 예측한 셈이다(Jung et al., 2014. “Latitudinal shifts in the distribution of exploited fishes in Korean waters during the last 30 years; a consequence of climate change”. Reviews in Fish Biology and Fisheries 24: 443-462).
이렇게 우리나라 동해 어장에서 기후변화로 살오징어 어획고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동안 해양수산부가 내어놓은 대책이라고는 원인 규명을 위한 아무런 조사도 없이 그냥 막연히 우리 어민들이 어린 오징어를 많이 잡아서 어획고가 줄어들었다는 출처불명 ‘뇌피셜’을 근거로 ‘오징어 금지체장 신설’, ‘총알오징어 안 팔겠다고 SSG닷컴과 업무 협약’과 같은 기후변화와 무관한 관행적 행정뿐이다. 더구나 2007년에 시작한 오징어 총허용어획량(TAC)제도는 국경을 넘나드는 회유성 어종에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지 못함은 현대해양 연재를 통해서 이미 지적한 바 있다(http://www.hdh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511). 그런데도 이 TAC 대상 업종을 확대하겠다고 밀어붙여 근해자망 어업인들 반발을 자초하고 있다. 기후변화라는 큰 쓰나미가 몰려오는데도 해변에서 아이들 소꿉장난 하는 듯 엉뚱한 대책이나 내놓고 있는 셈이다.


대화퇴 새 어장 개척 필요
기후변화에 따라 그 동안 잡아왔던 어종이 안 잡히게 되면 거기에 적응하는 대책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잡는 대상어종을 바꾸거나, 새 어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부산 트롤업계가 1990년대 대상어종을 말쥐치에서 오징어로, 남해에서 동해로 새 어장을 개척한 것은 불법이지만 어업이 기후변화에 자연스럽게 적응해가는 과정이었다. 앞으로 오징어 주어장은 더 북쪽으로 자주 올라갈 것이 확실해보이기 때문에 동해 대화퇴어장과 한일중간수역은 물론 러시아 수역까지 새 어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그림 4>. 이렇게 새롭게 개척한 어장은 우리 바다에서 살오징어 어획이 부진할 경우에 대비하는 완충 어장으로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해양수산부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동해 오징어 새 어장 개척을 가로 막고 있는 동경 128도 이동 조업구역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동경 128도선을 철폐하거나 그 기준을 독도 근처로 옮겨 그 이동에 있는 대화퇴어장과 한일중간수역에서라도 부산 트롤어선들이 동해 연안어업인들에게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조업을 해주도록 하면 우리나라 독도 부근 영해권과 어업권도 확보하고 오징어 어획고도 증가시킬 수 있다<그림 4>.
그러나 동해 연안어업에서는 혹시라도 이 때문에 그 동안 잡아왔던 오징어 어획고가 줄어들까 염려해 이 동경 128도 규제 철폐를 반대하고 있다<그림 1>. 다른 업종들이 망할수록 우리 업종만은 더 오징어를 비싸게 팔 수 있게 되어 좋다면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오징어 게임’이 지금 동해 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다. 남들 다 죽고 나면 나 홀로 상금 456억 원을 차지하려는 셈이다.
따라서 이 동경 128도 규제를 철폐하는 대가로 동해 연안어업인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해양수산부에서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 오징어 조업구역 분쟁은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부산 트롤 어선들이 러시아에 입어료를 내고 동해 러시아 수역에서 오징어 조업을 하려고 해도 이 동경 128도 규제에 묶여서 조업할 수 없기 때문에, 이대로 간다면 기후변화에 따른 살오징어 어장 북상으로 수익이 악화된 부산 트롤어업은 더 이상 존속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수산업법에서 정하고 있는 동경 128도 동쪽 트롤어업 금지수역 안에 위치한 대화퇴 어장과 한일중간수역
우리나라 수산업법에서 정하고 있는 동경 128도 동쪽 트롤어업 금지수역 안에 위치한 대화퇴 어장과 한일중간수역

“동경 128도 이동 조업금지 철폐해야”
한번 사라진 어업 기술과 문화는 다시 되살릴 수 없다. 따라서 기후변화에도 소멸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오징어 어업은 경제논리가 아닌 문화적인 측면에서 그 보존 가치를 평가하여 어업 다양성을 유지하도록 해양수산부에서는 관련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이런 동경 128도 이동 조업 금지구역뿐만 아니라 대부분 우리나라 어업규제나 수산관리정책들은 경직되어, 기후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어장이나 어업기술 발전을 따라 잡지 못해 우리 수산업 발전은커녕 잡는어업이라는 것을 아예 없애버리려는 족쇄들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탄력적이고 융통성 있는 수산정책이 필요하며, 관행적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금어기, 금지체장, 혼획금지와 같은 규제도 완화하거나 없애서 어업인들이 스스로 기후변화에 적응하여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기후변화에는 정부가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크게 혁신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 첫 큰 걸음은 이 동경 128도 이동 조업금지를 철폐하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일제 잔재라고 다 없애면서 유독 동경 128도만 천년만년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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