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㊾ 동백꽃 피거든 오세요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㊾ 동백꽃 피거든 오세요
  • 김준 박사
  • 승인 2022.03.1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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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지주식 김 양식장
지주식 김 양식장

[현대해양] “세종 원년에 왜 선적 50여 척이 쳐들어와 도두음곶의 병선을 포위하고 불태우니, 만호 김성길이 그의 아들 윤과 더불어 왜적에 항거하여 싸우다가, 성길은 창에 맞아 물로 떨어졌으나 발헤엄을 쳐서 죽음을 면하였다. 아들 윤은 적을 쏘아 3명을 죽였는데 그 아버지가 이미 물에 떨어지는 것을 돌아보고는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물에 투신하여 죽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편 비인현’에 기록된 내용이다. ‘도두음곶’이 오늘날 마량리와 도둔리 일대다. 마량리로 가는 길에 도둔리라는 지명도 남아 있다. 도두음곶은 비인반도 혹은 마량곶에 해당한다. 그 끝자락에 마량리가 있다. 비인은 비인현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일대를 말한다. 이곳은 왜구의 침입이 잦아 고려말 조선초에 이르는 시기에 마을을 이루며 살기 어려웠다. 오천에 충청수영이 설치되고 성포현에 있던 ‘마량진’이 1656년(효종 7) 마량리로 옮겨오면서 사람들이 머물기 시작했다. 마량리와 내도둔마을 사이 언덕을 넘어 오가는 길에 장승이 있어 ‘장승배기’라 했다. 동백정으로 가는 언덕길이다. 지금은 화력발전소가 자리했다.

서천군 서면은 신년에 해맞이축제, 봄철에는 주꾸미축제, 가을철에는 전어축제와 광어축제, 꽃게축제 등이 이어진다. 금강과 하구갯벌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들의 먹을거리와 자연자원이 어우러진 축제이다. 특히 마량은 서천군 대표축제를 가장 많이 치루는 공간이다.

마량리 서쪽에 있는 연도
마량리 서쪽에 있는 연도

 

황금어장, 서천바다로 가는 길, 마량리

포구에 차를 두고 방파제 끝으로 걸었다. 계속 걸으면 곧 손에 잡힐 듯 다가온 섬, 연도에 닿을 것 같았다. 날씨가 차갑다. 바람까지 부는 날이다. 이런 날 물김을 채취해 트럭에 옮겨 싣고 있었다. 추울수록 김 맛이 좋다. 김 맛을 아는 사람들이 찾는다는 ‘서천김’이다. 서천김은 지주식이다. 조차가 커서 물이 빠지면 김발이 오롯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해 김 양식의 특징이다. 

서천은 해안을 따라 장항읍, 마서면, 종천면, 비인면, 서면 등 5개 읍에 걸쳐 72.5km 해안과 71.3㎢에 이르는 갯벌이 있다. 그 중 금강하구 유부도를 중심으로 68.09㎢ ‘서천갯벌’이 순천만, 보성벌교갯벌, 신안갯벌, 고창갯벌과 함께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비인반도 동쪽은 갯벌이 발달한 내만형이며, 서쪽은 모래해변이 발달한 트인 바다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다양한 바닷물고기들이 서식한다. 조류소통이 좋고 금강을 통해 공급되는 영양염류가 황금어장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 김 양식이 잘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서천군 토산으로 해의(海衣)가 소개되어 있다. 이 외에 조개, 석굴, 홍어, 상어, 숭어, 오징어, 갈치, 부레(魚.), 조기, 웅어, 전어, 민어, 준치, 삼치, 농어, 청어, 전복, 홍합, 김, 토화, 낙지, 대하 등 해산물이 포함되어 있다. 지금도 갈치, 홍어, 멸치, 삼치, 뱅어, 붕장어, 병어, 넙치, 주꾸미 등이 잡히고 있다. 갯벌에서는 바지락, 소라, 백합, 맛, 민꽃게 등이 서식한다. 또 갯벌은 검은머리물떼새와 다양한 도요류 등 물새들이 찾아오는 장소이기도 하다. 서천갯벌이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다. 

지금은 마량항과 홍원항이 중심어항이지만 과거 중선배 시절에는 서천의 중심포구는 도둔리 남촌이었다. 남촌에 중선배만 해도 20여 척이 있었다. 중선배시절에는 봄에는 조기잡이, 오뉴월에 젓새우잡이(칠산바다), 가을에 젓새우잡이(경기도)가 중심이었다. 홍원항이 1종어항이 만들어지고, 배도 목선에서 FRP로 바뀌면서 남촌 어선어업은 약화되었다. 대신 김 양식과 주꾸미 잡이가 늘어났다. 최근에는 봄에는 주꾸미, 6월 도미와 농어, 여름 꽃게, 가을 멸치와 대하, 겨울 젓새우를 잡고 있다. 양식으로는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김 양식을 한다. 

한국 최초 성경 전래지

 

한국최초성경전래기념비
한국최초성경전래기념비

곶은 흔히 땅끝이라 하지만 사실은 바다로 가는 관문이다. 그곳으로 문화가 들어오고, 그곳에서 전쟁을 치루기도 한다. 성경이 이곳으로 처음 들어온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량포구가 한국 최초 성경 전래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순조실록>(순조 16년 7월 19일 병인, 1816년)에 소개된 내용을 정리하면, ‘마량진 갈곶(땅끝) 밑에 이양선 두 척이 표류해 첨사 조대복과 비인현감 이승렬이 바다로 나가서 필담을 나누었다. 하지만 알아듣지 못하고 책 세 권을 받아 내렸다’고 했다. 그 배가 영국의 함선 Alceste호(함장 Murry Maxwell)와 Lyra호(함장 Basil Hall)다. 이 배는 영국 정부가 중국에 파견하는 사신 암허스트(Jeffrey William Pitt Amherst)를 광동에 내려놓고 조선 서해안 일대를 탐험하면서 해도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영국측 기록에 따르면, 배에서 준 세 권 중 한 권이 성경이었다고 한다. 맥스웰이 조대복에게 준 성경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으로는 한국에 전래된 최초 성경이다.

‘한국 최초 성경 유입 추진위원회’는 2016년 200주년을 맞아 마량리에 ‘한국 최초 성경 전래기념관’을 개관하고 기념비와 범선 등 조형물을 설치한 기념공원을 만들었다. 그 동안 1832년 독일인 칼 귀츨라프가 충청남도 고대도 주민들에게 준 한문성경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최초 성경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귀츨라프 선교 150주년 기념으로 1982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주한 독일대사관과 네덜란드 대사관 이름으로 세워지기도 했다. 또 성경의 조선 전래사에서 주목하는 사건이 1866년 평양에서 발생한 ‘제너럴셔먼호 사건’이다. 당시 척왜양이 정책에 따라 통상을 요구하는 이양선은 침략자로 규정했다. 통상을 요구하던 제너럴셔먼호가 불타 침몰했고, 배에 탔던 영국인 선교사 로버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는 평양주민들에게 참수 당했다. 그가 조선에서 사망한 최초 개신교선교사다. 그가 사망하면서 조선인에게 한문성경을 전달했다.

한글성경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평양에 들어오면서다. 이 한글성경은 1882년 수신사 수행원으로 일본에 간 이수정이 1884년 한문성경을 받아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량리 포구에 조성된 기념공원에 만들어진 성경을 전해준 이양선
마량리 포구에 조성된 기념공원에 만들어진 성경을 전해준 이양선

마을의 자존심, 동백정

동백정으로 오르는 길 앞에서 70대 중년 여성이 힘들다며 멈췄다. 앞서가던 남편이 돌아가는 길은 수월하다며 용기를 주었지만 여성은 ‘기둥이 무너져서 힘들다’며 나에게 동조를 구한다. ‘요즘 좋은 기둥이 많이 있어요. 새로 세우던데요’라 했더니, 기둥을 다시 세웠는데도 힘들단다. 그렇게 세우고 찾은 곳이 동백정이다. 정월보름을 앞둔 동백은 아직 붉은 입술만 내밀었을 뿐 활짝 농익은 붉은 꽃을 보기에는 이르다. 천연기념물 169호로 지정된 80여 그루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동백숲은 400여년 전 마량 수군첨사가 험난한 바다를 안전하게 다니기 위해서 제단을 만들라는 백발노인의 계시를 받고 제단을 만들면서 심은 나무로 알려져 있다. 마량리 주민들은 정월 초가 되면 동백정 옆에 당집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낸다.

동백나무 숲에 있는 동백정
동백나무 숲에 있는 동백정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동백정은 도둔곶에 있고, 동백정은 비인현 서쪽으로 26리에 위치한다’고 했다. 그곳이 서천군 서면 마량리이며, 마량곶이라고도 한다. 비인현의 서쪽에 있어 서면이라 했다. 조선시대 문인 이건명(1663-1722)의 시문집 <한포재집> ‘제1권’에 실린 ‘동백정(冬栢亭)’이란 시다. 

드넓은 바다 서남쪽에 작은 섬 솟아 / 海闊西南小島嵬

모래가에 한 줄기 오솔길 열렸는데 / 沙邊細路一條開

새벽 조수 올라오려니 파도 거세지고 / 曉潮欲上風濤壯

저녁 안개 막 걷히니 물새가 슬피 우네 / 晩靄初收水鳥哀

호우의 산천이 이곳에서 끝나고 / 湖右山川玆土盡

하늘가 절서는 이 시간을 재촉하는데 / 天涯節序此時催

푸르른 동백정은 임자 없으니 / 靑靑冬柏無人管

나는 신선 낭랑하게 읊으며 스스로 오가누나 / 朗詠飛仙自往廻

동백정에서 춘장대까지 해송이 우거지고 해안에는 모래밭이 펼쳐져 서해안 최고해수욕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 자리에 화력발전소가 건설되어 옛모습을 찾기 어렵다. 대신에 춘장대해수욕장이 개발되었다. 

동백정 옆에는 마량리 주민들이 모시는 당집이 있다. 마량리처럼 동백정 옆에 당집을 짓고 신체를 모신 당집제당도 있지만, 내도둔 마을처럼 고목을 신체로 삼는 마을도 있다. 또 마량리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공정마을처럼 바닷가 바위(도깨비바위)를 모시기도 한다. 자연제당은 고목, 바위, 샘 등이 많다. 많은 바닷마을들이 정원에 지내는 당제가 멈췄지만 마량리를 비롯해 서천군 서면에는 마을제의가 이어지고 있다. 마량리도 한때 선창제, 당제, 용왕제, 샘제, 거리제 등 체계를 갖추고 열흘에 걸쳐서 펼쳐지기도 했다. 정월 초사흗날 편탕제(떡국을 올리는 제의), 당굿, 소지, 용왕제, 샘제(샘을 이용하지 않으면서 드리지 않고 있다), 뱃고사, 거리제(장승제)를 지냈다. 지금은 옛날에 비해서 많이 간소해졌지만 중단되지 않고 모시고 있다. 당집에는 해신격인 각시서낭님 내외와 아들며느리, 그리고 산신격인 스님이 모셔져 있다. 

마량리 당집에 모신 각시서낭내외와 아들내외
마량리 당집에 모신 각시서낭내외와 아들내외

갯벌과 바다, 다시 풍성해지길 

한포재 이건명이 보았던 그 모래해변엔 화력발전소가 자리를 잡았다. 바다로 흐르는 물줄기도 방조제에 막히고 간척되어 농지가 조성되었다. 옛 정취를 엿보기 어렵지만 서남쪽 작은 섬 ‘연도’는 여전히 바다에 떠 있다. 서천은 슬로시티, 세계유산이라 브랜드를 가졌다. 여기에 유네스코무형유산인 한산소곡주와 서천김과 전어와 박대 등도 유명하다. 국립생태원과 해양생물자원관, 금강하구 등도 있다. 금강과 바다가 만나는 물길이 열려 갯벌과 바다가 다시 풍성해지길 동백정 서낭님께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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