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여행 56] 행정청 뒤에 숨어버린 다른 행정청의 책임은 어떻게 물어야 하나?
[해양수산법 판례여행 56] 행정청 뒤에 숨어버린 다른 행정청의 책임은 어떻게 물어야 하나?
  • 한수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승인 2022.02.17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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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일군 권한쟁의 사건
한수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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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여섯 번째 여행의 시작>

예전에는 사기업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와 같은 발주처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이 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기 연장으로 인한 간접비 소송, 설계 변경으로 인한 대금 청구 소송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건설 등 분쟁이 많은 곳에서 시작되었는데, 이제는 소프트웨어사업을 비롯한 각종 용역 계약을 거쳐 해양수산 분야에서도 서서히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소송이나 분쟁의 이면을 살펴보면, 해당 발주처가 직접 잘못한 것이 아니라 발주처의 뒤에 있는 다른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원인인 경우가 상당수 있습니다. 만약 사기업이 국가를 상대로 거액의 공사대금 내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국가가 패소한다면 국가는 해당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패소한 금액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까요? 그것보다 더 직접적으로 국가가 자신을 대신해서 해당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사기업에 돈을 지급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사건에서 A는 1983. 10. 6. 정치망어업면허(이하 ‘이 사건 어업면허’)를 받고 어업을 하던 중 그 기한이 임박하자 당시 경상북도 영일군수에게 구 수산업법에 따라 이 사건 어업면허의 유효기간연장 허가신청을 하였습니다. 영일군수는 관련 법에 따라 1993. 7. 21. 포항지방해운항만청장에게 그 유효기간 연장에 관한 협의를 요청하였는데, 포항지방해운항만청장은 위 면허에 따른 정치망 설치 위치는 포항항 입출항 및 항내 운행 선박의 교통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추진 중인 포항항 광역개발사업 시행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어업면허 유효기간의 연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회신하였습니다.

영일군수는 1993. 8. 6. 이 사건 어업면허는 이미 신규면허 당시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부여된 것으로서 단순히 이를 연장 허가하는 것일 뿐이고, 연안 어민들이 생계대책으로 위 어업면허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유효기간의 연장에 부동의하는 경우 정부에게 보상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재검토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포항지방해운항만청장은 신규면허를 발급해 줄 당시 동의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후 관계 법령의 개정, 항세 확장, 항만 개발 등 여건 변화와 현재 추진 중인 포항항 광역개발사업 시행을 고려하면 어업면허 유효기간의 연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회신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영일군수는 어쩔 수 없이 1993. 8. 30. A에게 이 사건 어업면허의 유효기간연장을 불허가하는 처분을 하였습니다.

A는 경상북도지사에게 구 수산업법에 의하여 이 사건 어업면허의 유효기간연장 불허가처분에 따른 손실보상을 청구하였고, 경상북도지사는 수산조정위원회의 조정을 거친 후 1995. 9. 4.경 보상금을 789,664,000원으로 정하였습니다. 경상북도지사는 포항지방해운항만청장에게 이 사건 어업면허의 유효기간연장에 부동의하였음을 이유로 위 보상금을 지급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포항지방해운항만청장은 경상북도지사에게 보상금의 지급을 거부하였습니다. 이에 영일군은 1994. 5. 16. 위 보상금 지급업무는 정부인 포항지방해운항만청장의 직무범위에 속하고 그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은 영일군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였습니다.

위 사안에서 정부(포항지방해운항만청장)는 손실보상금을 지급하게 되었을까요?

 

<쟁점>

분쟁의 본질이 권한의 존부 및 범위 자체에 관한 영일군과 정부 사이의 직접적인 다툼이 아니라 어업권자인 A와 영일군, A와 정부 사이의 단순한 채권채무관계의 분쟁에 불과한 경우 권한쟁의 심판청구가 적법할까요?

 

<헌법재판소의 판단- 헌법재판소 1998. 6. 25.자 94헌라1 결정>

이 사건 분쟁의 본질은 이 사건 어업면허의 유효기간연장의 불허가처분으로 인한 A에 대한 손실보상금채무를 처분을 행한 영일군이 부담할 것인가, 아니면 그 기간연장에 동의하지 아니한 정부가 구 수산업법상 불허가처분의 수익자나 불허가처분을 요청한 행정관청으로서 부담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결국 이와 같은 다툼은 영일군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유효기간 연장의 불허가처분으로 인한 손실보상금 지급권한의 존부 및 범위자체에 관한 영일군과 정부 사이의 직접적인 다툼이 아니라 그 손실보상금 채무를 둘러싸고 A와 영일군, A와 정부 사이의 단순한 채권채무관계의 분쟁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영일군이 정부를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부적법하다.

 

<결정의 의의>

영일군으로서는 정부의 요청으로 인하여 어업면허를 연장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실보상금은 또 자신이 부담하게 되니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 영일군으로서는 정부를 상대로 정부의 책임으로 인해 생긴 문제이니 ‘A에게 손실보상금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민사 소송 등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민사소송이 실무적으로는 승소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영일군은 헌법재판소를 통해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분쟁은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사이의 권한쟁의의 다툼이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쉰여섯 번째 여행을 마치며>

발주처나 행정청의 뒤에 숨어버린 다른 행정청에게 실질적인 책임이 있을 경우, 실질적인 책임자가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법이나 실무상 사기업이 앞에 있는 행정청 또는 뒤에 있는 행정청 중 책임 있는 자를 골라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으나, 앞에 있는 행정청이 뒤에 있는 행정청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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