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㊽ 갯벌이 준 선물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㊽ 갯벌이 준 선물
  • 김준 박사
  • 승인 2022.02.1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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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 무안군 도리포

[현대해양] 서해는 일몰이, 동해는 일출이 아름답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둘을 모두 바다에서, 그것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더구나 도심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다면 더욱 찾기 힘들다. 전남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 도리포가 딱 그런 곳이다. 함해만(흔히 함평만이라 부른다)을 배경으로 뜨는 해를 보고, 오후에 칠산바다로 지는 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여행객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함해만은 무안군 현경면과 해제면, 함평군 함평읍과 손불면, 영광군 염산면 사이에 있는 내만으로, 칠산바다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함해만은 수심이 깊지 않고 조차가 크고 조류 소통이 좋아 갯벌이 발달했다. 덕분에 주민들은 갯벌에 기대어 바지락을 캐고, 낙지를 잡고, 김 양식을 하며 생활했다. 갯벌을 막아 농지를 조성하고 염전을 만들기도 했다. 조차가 심해 좋은 포구가 발달하지 못했지만 그나마 항만 구실을 하는 곳이 도리포다. 최근 바다로 열린 무안 도리포와 영광 향화도를 잇는 칠산대교가 완공되며 여행객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무안 도리포 일출
무안 도리포 일출

갯벌이 준 선물, 무안 겨울숭어

어느 해 겨울이었던가. 정말 눈이 많이 오던 날, 도리포에서 배를 타고 그물을 털러 나갔다. 운이 좋아 열 댓마리 숭어를 한 그물로 건져냈다.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참숭어’다. 전라도에서는 숭어를 참숭어, 보리숭어, 개숭어, 가숭어 등으로 부르고, 경남이나 부산에서는 밀치라고도 부른다. 삼면 바다 어디에서나 잡히는 것이 숭어다. 어류도감에 소개된 숭어는 ‘숭어’와 ‘가숭어’ 두 종이다. 두 종의 확실한 구별은 눈동자로 가능하다. ‘숭어’는 큰 검은 눈동자를 금테가 감싸고 있고, ‘가숭어’는 작은 검은 눈동자 주변으로 노란 테가 있다. 숭어는 통통한 유선형이며, 가숭어는 라인이 살아 있는 날렵한 유선형이다. 숭어는 늦가을에서 겨울에 먼 바다로 나가 산란한다. 반대로 가숭어는 봄철에 알을 낳는다. 그래서 가숭어는 산란 직후인 봄보다 직전인 겨울부터 초봄까지 맛이 좋다. 반대로 숭어는 알을 낳고 난 직후 겨울에는 맛이 없고, 왕성한 먹이활동을 한 후 탄탄하진 육질을 갖춘 보리가 익어갈 무렵 맛이 좋다 해서 ‘보리숭어’라고도 한다. 여름철에는 어느 숭어나 맛이 없다. 그래서 개도 쳐다보지 않는다고 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물고기는 수온 변화가 적은 깊은 바다로 자리를 옮긴다. 그런데 가숭어는 고맙게도 갯벌에 의지해 자리를 지킨다. 움직임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갯벌에 파묻혀 겨울을 난다.

도리포 겨울철 숭어잡이
도리포 겨울철 숭어잡이

 

도리포 숭어회
도리포 숭어회

 

영산강 물길이 막히기 전에는 몽탄 숭어가 유명했다. 또한 숭어 알로 만든 어란도 유명했다. 나주 영산포 구진포 앙암바위까지 올라온 숭어를 잡아 생계를 잇기도 했다. 산 사람만 아니라 망자를 부르는 제사에도 숭어가 곧잘 오른다. 무안에서 숭어를 부르는 이름은 열손가락을 넘는다. 크기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달라 ‘출세어’다. 그 중 인상적인 이름은 ‘눈부릅뜨기’다. 나름 클 만큼 컸는데 ‘숭어’라 부르지 않자 두 눈을 부릅떴다고 붙어진 이름이란다. 손암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숭어는 ‘고기 맛이 달고 깊어 물고기 중에 최고’라며 수어라 불렀다.

무안갯벌 지주식 김양식장
무안갯벌 지주식 김양식장

갯벌이 준 선물, 해저유물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보관하는 곳을 수장고(收藏庫)라고 한다. 이곳은 유물이 변하지 않도록 항온, 항습 기능을 갖춘 장소다. 바닷속 갯벌이 때론 해저유물을 저장하는 진짜 수장고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려와 조선조에 개경이나 한양을 오가던 조운선이나 중국이나 일본 등을 오가던 무역선이 침몰하면서 다양한 해저유물이 갯벌에 묻혀 보관되기도 했다. 도리포 해역에서 해저유물 탐사가 시작된 것은 1995년 10월 14일이다. 정부가 탐사를 시작하기 전 민간인에 의해 강진에서 만들어진 고려청자가 수백 점 발굴된 곳이다. 유물을 처음 발굴한 민간인은 패류양식업자였다. 이곳에 청자가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상금을 받기 위해 잠수부와 함께 직접 인양에 나섰다. 민간인이 당국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문화재를 발굴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들은 이후 수사를 받아야 했다. 이후 세 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고려청자 639점을 건졌다. 이 청자들은 왕실과 관청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미산부락 가마터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1997년 4월 18일 이곳을 사적 ‘무안 도리포 해저유물 매장해역’으로 지정했다.

도리포해역에서 인양한 청자들(문화재청)
도리포해역에서 인양한 청자들(문화재청)

당시 우리나라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육상문화재에 비해 수중문화재는 발굴기술은 물론 관련법도 부재한 실정이었다. 수중문화재란 강이나 바다속에 있는 유적과 유물을 말한다. 해수면이 상승하기 이전의 유적이거나 배로 운반하다 풍랑이나 암초에 부딪혀 침몰해 갯벌에 묻힌 난파선과 그 속에 있는 것들이다. 지중해 연안에서 발견되는 포도주 단지 ‘암포라’나 우리나라 서해 해역에서 건져올린 ‘고려청자’ 등이 대표적이다. 그 선적이 외국일 경우 유물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수중문화재는 당시 시대상이나 뱃길이나 무역로를 살필 수 있어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도리포보다 앞서 신안군 증도 해역에서 해저유물을 발굴한 이후 목포에 수중문화재를 발굴·전시할 전문기관 국립해양유물전시관(1990년 개관, 2009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로 명칭 변경)이 설립되었다. 이후 비안도, 십이동파도, 야미도, 대부도 등 서해 여러곳에서 수중문화재를 발굴했다. 태안에는 마도해역에서 발굴한 유물을 전시하는 ‘태안해양유물전시관’이 설립되었다.

 

어촌재생의 아이콘, 곱창 김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포구로 김을 채취한 배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배에 가득 담긴 것은 겨울철 가장 맛이 좋다는 ‘곱창김’이다. 도리포 동쪽과 서쪽으로 발달한 갯벌에서 일찍부터 김 양식을 시작했다. 무안군 운남면과 청계면 사이 갯벌(청계만)은 조류 소통이 좋고 갯벌이 발달한 내만을 중심으로 일찍부터 김 양식이 발달했다. 또 도리포를 중심으로 송석리, 만풍리, 유월리 등에서도 김 양식을 많이 했다. 지금은 도리포가 있는 송석리 30여 가구 주민들이 겨울철에 지주식 김 양식장을 이용해 곱창김을 양식하고 있다. 곱창김은 일반 김과 달리 대량 생산이 어렵다. 일반 김은 겨울철에 대여섯번 채취를 하지만 곱창김은 두세 번 채취하면 끝난다. 대신에 물김 값이나 가공한 김 값이 좋다. 일반 김은 김밥용 김으로 유통되지만, 곱창 김은 구이용으로 인기가 높다.

지주식 김 양식은 70, 80년대 일본 수출이 잘 되면서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수출이 막히고, 연안오염과 개발 그리고 노동집약적인 양식 등으로 쇠퇴하기도 했다. 대신에 깊은 바다에서 소수가 대규모로 양식하는 부류식 김 양식으로 전환되었다. 최근에 중국, 동남아시아, 유럽까지 확대되면서 다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제 가족노동 중심에서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해 김 양식을 하고 있다. 도리포에서 직접 물김 경매가 진행된다. 이렇게 도리포가 겨울철 김 양식으로 활기를 띨 수 있었던 또다른 이유는 직접 판매하는 매장이 하나 둘 문을 열면서다. 칠산대교가 완공되면서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해 영광 쪽에서 건너오는 사람도 많아졌다. 또 무안과 목포에서 영광과 고창으로 건너가는 것도 편리해졌다. 도리포에 카페가 생기고 주변에 펜션도 들어서고 있다. 김 공장을 리모델링해 카페와 가공김 판매장을 운영하는 새로운 모습도 생겨났다. 덕분에 김 양식을 하는 주민들의 자긍심도 높아지고, 소비자들이 김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고 있다. 경제성도 있고 전망도 보인데다가 생산과 판매하는 모양새가 좋으니 자식들도 기웃거린다. 어촌마을의 재생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함해만 무안갯벌에서 양식한 곱창김
함해만 무안갯벌에서 양식한 곱창김

아쉽고 안타까운 무안갯벌

함해만의 무안갯벌만 생각하면 아쉽고 안타깝다. 지난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될 때 꼭 포함되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갯벌이며, 람사르습지다. 문화재청이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후보지역으로 가장 먼저 고려됐었다. 무안갯벌은 ‘영산강4단계사업’을 통해 뭍으로 바뀔 운명이었다. 그러나 시화호 수질문제와 새만금사업의 찬반논란 등 홍역을 치른 후 1998년 농림부(김성훈 장관)가 간척사업을 포기하는 결정을 했다. 당시 간척사업 30년 역사에서 최초이자, 추진 중인 정부정책을 백지화한 최초의 사례로 기억된다. 그리고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그렇게 함해만 전체가 아니라 무안군에 속하는 갯벌만 지정되고, 함평군에 속하는 갯벌은 해당 지자체의 개발계획 때문에 제외되었다. 이후 갯벌의 가치를 지역사회와 시민들에게 확산하고 인식증진을 하기 위해 ‘무안생태갯벌센터’가 들어섰다. 해양수산부가 만든 최초의 갯벌생태 전시관이다. 결국 함해만은 반쪽짜리 습지보호지역이 되고 말았다.

세계유산 후보지를 조사하기 위해 무안갯벌을 찾았던 전문가들은 함해만의 반쪽짜리 습지보호지역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무안반도 맞은편 신안군 습지보호지역과 연결할 수 있는 탄도만을 권하기도 했다. 이는 세계유산에서 강조하는 ‘완전성’과 ‘보호관리’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무안갯벌은 세계유산이라는 브랜드를 눈앞에서 놓친 셈이다. 이후 충청남도 가로림만처럼 보호지역 지정 시에는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상례로 되었다. 그런데 최근 함평읍 돌머리 갯벌에 갔다가 그곳에서 영산강4단계 간척사업을 백지화한 것을 기념하는 비를 발견했다. 반가우면서도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최근 황새와 재두루미 등 귀한 새들도 무안갯벌을 찾기 시작했다. 길조가 분명하다. 함해만에 다시 기회가 올 수 있다. 함평군은 영광군과 함께 ‘한국의 갯벌’ 세계유산 2단계를 준비에 나서야 한다.

무안갯벌에서 만난 황새(사진제공_명호)
무안갯벌에서 만난 황새(사진제공_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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