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척도 경쟁시대 도래하나
감척도 경쟁시대 도래하나
  • 박종면 기자
  • 승인 2022.01.0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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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 대형선망도 문제
기선권현망 어선

[현대해양] 때 아닌 감척(減隻) 바람이 불고 있다.

감척은 말 그대로 배를 줄이는 행위를 일컫는다. 배, 특히 어선을 줄이는 이유는 자원량이 적거나 어획량이 많아 자원량과 생산량 조절을 위해 시행하는 어선 구조조정이다. 감척을 한다는 것은 이를 이용하는 어업인에게는 생계수단이 사라지기 때문에 업종을 변경을 하거나 폐업을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어업인 감소, 생산자와 생산 수단 감소라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는 최후의 구조조정 방법이다. 단순히 어선의 마력수를 줄인다거나 톤수를 줄인다는 개념과는 다른 원천적인 생산수단 제거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에서 수산자원 보호 등을 이유로 감척을 추진하려 해도 늘 어업인들의 저항에 부딪혀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감척 희망자가 늘고 있어 때 아닌 감척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감척을 희망하는 어업인, 선주가 늘고 있다. 단순 희망을 넘어 서로 먼저 감척을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감척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율감척과 직권감척이다. 자율감척은 자발적으로 감척을 희망하고 신청하는 경우이며, 직권감척은 자율감척 대상에 포함되는 데도 응하지 않는 경우에 감척을 하도록 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멸치 자원 급감

해양수산부(장관 문성혁)는 지난해 4월 5일부터 6월 4일까지 자율감척 신청척수가 감척 시행계획 목표에 미달된 8개 업종, 62척을 대상으로 2021년도 근해어선 직권감척 추진계획을 공고했다. 직권감척 대상은 △근해연승 △근해채낚기 △서남해구외끌이 △대형트롤 △동해구중형트롤 △근해자망 △근해안강망 △소형선망 등으로 대부분의 업종이 자율감척에 응하지 않았던 것. 자율감척에 적극 응했던 업종은 △근해형망 △근해장어통발 △기선권현망 등 3개 업종에 불과했다. 그나마 근해형망 업종은 1차 감척을 거부했다가 뒤늦게 수용하는 형태를 취했다. 처음부터 감척에 응했던 업종은 11개 근해 업종 중 근해장어통발, 기선권현망 등 2개 업종에 불과했다.

이는 다른 업종은 상대적으로 어업 환경이 괜찮다는 뜻인 것에 반해 장어통발, 기선권현망 어업은 경영이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이 중 멸치를 잡는 기선권현망은 특히 상황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초 5선단(1선단은 대개 5척으로 구성됨) 감척 계획이었으나 해수부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접수를 받은 결과 계획보다 많은 6선단이 지원했다. 예상을 훨씬 초과한 것이다. 직권감척까지 계획하던 차에 자율감척 단계에서 의외로 지원이 많음을 알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해수부는 지난해 10월 29일 기선권현망 업종에 한해 2021년 근해어선 감척 시행계획 변경 공고를 냈다. 2선단(10척)을 추가 감척한다는 내용이었다. 근해어선 감척 필요성과 변경 사유로 주요 수산자원 보호와 어업갈등 해소 등을 통한 연근해어업 경쟁력 강화와 지속 가능한 어업 실현을 위해 근해어선 추가 감척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앞서 멸치권현망수협 등의 어업자단체에서 한 근해어선 추가 감척 건의도 한몫을 했다.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감척을 거부하던 수산업계에서 감척을 더 많이 해달라고 정부 부처에 요청하는 사례는 사실상 없었던 것.

해수부는 중앙수산조정위원회 심의·의결 과정을 거쳐 근해어선 감척 시행계획을 변경했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감척 시행계획이 한 번 더 변경됐다. 2개 선단을 감척하겠다는 계획에서 실제는 4선단에 걸쳐 감척이 이뤄졌다. 당초 계획에서 변경된데다 또 추가된 것이다.

감척 시행계획 변경에 무려 17선단이 지원했던 것. 52개 선단 중 앞서 상반기에 6선단이 지원한데 이어 하반기 추가(변경) 공고에 17개 선단이 어업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단순 어업 포기 의사 표출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방법 등을 알아보거나 방법을 찾기 위해 분주했다. 해양수산부 담당과에 선정기준을 전화로 문의하거나 직접 방문해 문의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준표에 따라 감척 신청 선단의 점수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신청한 것으로 알려진 다른 선단 어선에 대한 점수까지 채점해 스스로 순위를 매기는 등 치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감척은 로또’라는 얘기까지 들렸다. 기피하던 감척이 로또 복권이 된 이유는 무얼까. 그만큼 조업환경이 좋지 않다는 반증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멸치 어군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조업을 나가지 않는 선단이 많다”고 말한다.

 

1년 뒤 감척하면 그만큼 손실

A선사 관계자는 “멸치가 회유성인데 예전 이맘 때면 울산이나 세존도 쪽에서 마산쪽으로 세멸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아예 세멸이 없다. 기름값도 엄청 올랐다”고 실상을 전했다. A선사는 지난해 가을부터 조업을 포기했다. 업계 말로 배를 달아맨 것이다.

멸치업계에서는 “멸치잡이는 조업을 나가는 순간 유류비 걱정에 선원 월급 등 고정비 부담이 커 출어를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또 이들은 “어획 부진에 어가 하락에 따른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선단 운영비는 하루 1,000만∼1,500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보통 하루 1억 원의 매출을 올려야 타산이 맞다고 말한다.

기선권현망어업은 대형 그물을 두 척의 배가 양쪽에서 끌면서 멸치를 자루그물로 유도한 뒤 어획, 양망하는 어법이다. 따라서 어군을 탐지하기 위한 어군탐지선 1척이 있으며, 그물을 끄는 어망선(그물배) 2척이 있다. 그리고 잡은 멸치를 삶아 건조장으로 실어 나를 가공·운반선 1~2척 등 총 4~5척으로 한 선단을 이룬다. 선원은 25명 내외. 가공·운반선에 가장 많은 14명 안팎으로 승선하고, 어탐선 3명, 그리고 본선 에는 10여 명 정도 승선한다.

경남 통영에 본소를 둔 멸치수협 소속 B수산 관계자는 “조업 나가면 유류비도 건지지 못할 가능성이 커 걱정이 태산이다. 가장 큰 부담은 인건비다. 조업을 나가지 않는데도 인건비는 지불해야 되고, 정리를 하더라도 사전 몇 개월 전에 고지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조업을 나가도 문제, 안 나가도 문제, 이래저래 골치 아픈 상황이 연출돼 감척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감척을 할 경우 폐업 지원금이 나오니 앉아서 손실을 보느니 페업지원금, 감정가, 어선원 생활안정지원금 등을 받아 업을 정리하는 게 이익이라는 판단이 선다. 그래서 감척 선정은 로또라는 말이 나온다”라고 털어놨다.

결국 통영, 마산, 남해, 삼천포 일대에서 주로 조업하는 멸치수협 소속 52개 선단 가운데 17개 선단이 감척을 신청했고, 이 중 2021년에만 9개 선단이 감척 대상에 선정됐다. 2022년에도 같은 수준의 감척이 있을 예정이다.

해수부에 따르면 남해안 일대 멸치 어황 부진으로 2021년 멸치생산량은 전년 10월 대비 60.2%(2021년 10월 기준 연간 누계 –25.5%) 감소했으며, 멸치 산지가격은 전년 같은 달 대비 32% 하락했다.

 

일시적 이유?

멸치 자원 급감 이유는 무얼까?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김희용 연구관은 “여름 수온이 전년 대비 6℃ 정도 상승함에 따라 부화된 멸치자어의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사망률도 높아지게 됐다. 이러한 영향으로 여름에 성장해 가을에 어획대상이 되는 소형멸치와 이들이 더 성장해 어획대상이 되는 중멸이상 멸치의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정석근 제주대 교수는 “남해안에서 동중국해로 이동했을 뿐이지 멸치 자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곧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현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C선사 관계자는 “감척 신청 선사가 대부분 노후선박이다. 선령이 오래된 배를 갖고 있는 선사는 신조하느냐 감척을 하느냐 기로에 설 수밖에 없는데 코로나19로 소비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자원도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무작정 버티느니 감척하는 게 현명한 경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신조하거나 새로 중고선박을 구입하는 데 투자할 만큼 매리트가 있거나 버틸 여력이 있는 선단이 많지 않은 건 확실해 보인다. 현대해양이 취재한 선사 중에는 선령이 오래되면 감척하겠다는 이들만 있었다. 선박을 교체하거나 배를 새로 짓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오징어도 위험

그럼 멸치 자원의 감소와 소비 감소는 다른 자원에는 영향이 없을까? 멸치자원 감소에 따라 해양생태계 먹이사슬 상위단계 자원의 감소가 우려된다. 국립수산과학원 김희용 연구관은 “해양생태계 먹이사슬에서 가장 낮은 단계인 멸치는 다른 상위단계인 고등어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올해 어획대상이 되는 고등어 1년생 개체의 성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감척을 하려면 빨리해야 한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2021년 감척에 선정되지 않은 선사는 불확실한 2022년을 버터야 하는 곤경에 처한다는 것. D수산 한 어업인은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온, 고수온은 생태계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며 “이에 따른 파장 또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대형선망업계 D 선주는 “우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멸치잡이 기선권현망뿐만 아니라 다른 업종에도 경쟁적으로 감척을 원하는 때가 오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해수부 어업정책과 관계자는 “오징어 잡는 트롤어선도 2021년 7척이나 감척을 원해서 감척했다. 몇 년전 대형선망도 감척을 요청해서 감척에 들어갔던 적이 있다. 코로나19로 수요가 적어 경영이 힘든 업종이 감척 신청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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